文대통령의 강경화 발탁, 왜 '역대급'인가?

[기고] 강경화 후보자에게 거는 기대

외교부 장관은 매우 상징적인 자리이다. 부총리를 제외하면 서열상 내각의 선임장관이자 주권국가의 대외적 표상이다. 외교부 장관은 외교의 최일선을 진두지휘하며 대통령의 수석 외교정책 참모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외교부 장관에게는 이보다 더 중요한 역할이 있다. 외교를 국내정치와 분리시켜 외교관들이 오직 '국익'이라는 목표 아래서 본연의 임무에 전념하도록 외풍을 차단하는 것이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국내정치 보다 더 국내정치적인' 분야가 외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교부 장관이 소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국제관계에 대한 식견은 물론이지만 국내정치에 대한 감각과 함께, 정치적 역량이 요구된다. 영국이나 일본 같은 내각제 국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이나 유럽, 중국도 당내 실세들이 맡는 자리가 외교부 장관이다. 직업외교관 출신이 승진을 통해 외교부 장관 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어려운 이유다.


우리나라의 경우 임시정부 시절 김규식, 조소앙 같은 최고 경륜가들이 외무총장으로 대외정책을 맡아서 수행했다. 하지만 1948년 정부수립 이후 외(무)교부 장관의 존재감은 정부 내에서 축소되었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경우 본인 자신이 학력으로나 경험으로 당대 조선 천지에 비교불가의 외교 달인이라는 생각 때문에 장관을 개인 비서 정도로 생각했다. 박정희 정권 이후에는 남북대결 구도에 매몰된 한국외교가 미국 일변도의 외교 패턴을 고수하면서 외(무)교부 장관은 외(무)교부라는 부처를 관리하는 행정기관의 장으로 전락한 느낌이다. 역대 외교부 장관 중 자리보전에 연연하지 않고 소신껏 외교를 수행한 인사가 있을지 의심스럽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강경화 외교부 장관 지명은 지난 70여 년의 패턴을 일시에 전환하는 역대급 카드이다. 문 대통령의 강경화 장관 후보자 지명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각 언론에서는 여성, 비외무고시, 유엔 경력 등이 중점적으로 언급되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강경화 장관 지명이 갖는 의미는 그런 형식적인 면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우리 외교의 패러다임을 한반도와 동아시아 중심에서 글로벌 전략으로 전환한다는 함의를 갖는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며 국부의 85%이상을 해외시장에 의존하는 한국이 장기적 글로벌 전략이 없다고 하면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정부나 민간에서 개최하는 국제관계 관련 모임이나 세미나의 주제도 남북관계나 한미동맹의 범위를 넘지 않는다. 새로운 생각이 들어갈 틈이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제시했던 제한된 수준의 기능적 전략인 '중간자 역할론'조차 당시 한국 사회에서 설 자리가 없었다.


거시외교전략 부재의 1차적 원인은 우리 외교 당국과 학계의 주류가 대북 문제와 한미동맹이라는 근시안적 틀에 갇혀 세상의 변화를 수용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반도 평화와 한미동맹의 유지 발전은 우리 외교의 가장 중요한 축이지만, 이러한 과제가 전지구적 틀 속에서 이해되고 재배치될 때 좀 더 효율적으로 달성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강경화 장관 지명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비전과 철학을 실행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평가된다. 무엇보다 강 지명자가 오랜 기간 다자외교의 중심인 유엔에서 국제사회가 당면한 핵심 쟁점과 의제를 직접 수행해보았고, 외교부보다 더 관료적인 유엔 체제를 온몸으로 부대끼며 최고위직까지 진출한 실력자이기 때문이다.


새롭게 출범한 3기 민주 정부는 첫 번째 외교수장에게 너무 현안에 급급하거나 부처관리에 몰입되도록 해서는 안된다. 우리 외교의 체질을 글로벌 중견국가로 업그레이드 시키는 중차대한 임무가 향후 강 장관 지명자에게 맡겨져야 한다. 이제 우리도 고래싸움 사이에 낀 '새우'가 아닌 이를 중재하는 '돌고래' 역할을 수행하는 국제사회 리더로서 자리매김을 해야할 때이다. 이를 위해서는 신임 외교부 장관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신뢰와 지원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곧 시작될 청문회가 후보자의 신상털기가 아닌, 국민의 대표인 국회와 후보자 사이에 새로운 외교전략을 위한 지혜와 마음이 모아지는 뜻깊은 자리가 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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