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거짓, 어떻게 이들 한(恨) 달래 주나

[김경욱의 데자뷔] <나는 부정한다>로 바라본 5.18을 둘러싼 왜곡

"겁쟁이는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낄 때만 위협한다." <나는 부정한다>에서, 변호인 리처드의 말.

'5. 18 광주 민주화 운동' 37주년이다. 그러나 그날의 진실은 아직도 온전히 규명되지 않고 있다. 지난 4월 29일에 방영된 <그것이 알고 싶다> 1074회에서는 '화려한 휴가..... 각하의 회고록'이라는 부제 아래, 4월 5일에 출판된 <전두환 회고록>을 다루었다.

방송에 따르면, 전두환은 회고록에서 "5.18을 광주사태라고 지칭하고, 불순분자와 폭도에 의한 난동"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자신은 광주에서 벌어진 비극과 무관하다’고 항변한다. 뿐만 아니라 "광주에서 양민에 대한 국군의 의도적이고 무차별적인 살상 행위는 일어나지 않았고, 광주에서 유혈사태가 벌어진 것은 시위대가 먼저 무장을 했기 때문"라고 주장한다.

인터뷰에서, 당시 계엄사령관 이희성은 "발포명령은 없었으며, 자위권 차원에서의 발포도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말한다. 심지어 지만원은 "5. 18이 600명의 북한 특수군이 일으킨 무장폭동이었다"는 날조까지 펼친다. 여전히 최초의 발포 명령자가 누구인지 명확한 증거가 나타나지 않는 상황을 악용해, 범죄 사실 자체를 부인할 뿐만 아니라 새빨간 거짓말까지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천인공노할 사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그것이 알고 싶다> 1074회와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믹 잭슨의 <나는 부정한다>에는 이 질문에 대한 시사점이 있다. 이 영화에서 역사학자 데이빗 어빙은 5.18에 대한 전두환 일당의 주장처럼, "홀로코스트는 없었다"는 논리를 펼친다. 왜냐하면 대량학살을 위한 가스실 같은 시설은 없었으며, 사망한 유태인들은 단지 전쟁에서 발생할 수 있는 희생자일 뿐이기 때문이다. 나치가 철저하게 증거인멸을 한 결과 히틀러가 학살을 지시한 기록이나 유태인이 가스실에 있는 사진이 단 한 장도 없는 현실이 그의 주장을 뒷받침 한다. 유태인 역사학자 데보라 립스타트는 저서에서 "어빙이 히틀러의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 같다"고 주장하는데, 어빙은 이를 꼬투리 삼아 데보라가 역사가로서의 자신의 명성을 훼손했다고 고소를 한다. 이것은 이차대전이 끝나고 50년이 지난, 1994년에 실재 있었던 일이다.

▲ <나는 부정한다>의 한 장면.

어빙이 영국에서 소송을 제기 했기 때문에 데보라와 변호인단은 그의 주장이 틀렸다는 걸 입증해야 한다. 재판 과정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어빙이 대중을 선동하는 방식과 변호인단이 마련한 전략이다.

어빙은 스스로를 변호하면서, 자신이 데보라의 주장 때문에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었는지를 강변한다. 또 홀로코스트로 가장 널리 알려진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이 대량학살의 장소였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없으므로, 홀로코스트는 날조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그는 "히틀러가 유태인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는 주장까지 한다. 그는 또 "지각 있는 사람들에게 이제 홀로코스트는 너무 지루하다. 유태인들은 그것이 3천년 동안의 유일한 흥미 거리이기 때문에 계속 홀로코스트 이야기만 떠든다"며 조롱한다(우리도 5. 18 또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 이와 비슷한 망언을 경험 했다).

어빙의 주장에 대처하는 데보라와 변호인단의 전략은 완전히 상반된다. 데보라는 홀로코스트 연구의 권위자인 자신과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들이 증언에 나서서, 어빙의 터무니없는 주장을 반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생존자들의 기억에는 착오가 있을 수 있고 어빙이 그 틈을 파고들어 증언 자체를 거짓으로 만들 위험이 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어빙의 무자비한 공격에 의해 상처를 받고 모욕감을 느끼는 이차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또 "홀로코스트는 없었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순간, 어빙의 프레임에 말려들 위험이 있다. '홀로코스트가 있었다'는 명확한 증거를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주장하듯이, 문제는 프레임이다. 데보라가 유태인으로서 매우 격앙된 상태인데 비해 노련한 변호사 리처드는 냉정하고 치밀하게 변론을 준비한다. 그는 데보라에게 "가장 옳다고 느껴지는 것이 반드시 가장 효과가 있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홀로코스트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대신, 어빙의 저서에서 홀로코스트에 대한 논리적인 허점과 모순을 파고든다. 어빙의 주장에서 발견되는 오류, 독일어 자료에 대한 오역 등을 밝혀내면서, 그를 역사학자가 아니라 역사를 왜곡하는 거짓말쟁이라고 규정한다. 더 나아가 어빙의 연설과 일기에 나타난 말을 근거로 그가 인종차별주의자이자 반유대주의자이기 때문에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히틀러의 무죄를 옹호하려는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날조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8주 동안 계속된 재판의 마지막 순간에 판사가 당혹스런 질문을 던진다. '어빙이 진짜 반유대주의자라고 해도 그 자신이 말하는 것을 정말 믿고 있다면, 거짓말을 한다고 비난할 수 있는가?' 이것은 학문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이에 대해 리처드는 "어빙이 반유대주의자라는 걸 우리가 알고 있다면, 홀로코스트의 부정이 어떤 역사적 정당성도 없다는 걸 우리가 알고 있다면, 그렇다면 그 둘이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건 억측이 아니다"고 답변한다. 판사는 리처드의 주장을 받아들이다.

판사가 판결을 내리기까지 감도는 긴장감, 그리고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는 어떤 기시감이 있다. 어빙은 텔레비전에 출연해 미국인 데보라의 영어 악센트를 조롱하고, 자신이 재판에서 이긴 것처럼 꾸며대면서,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주장을 멈추지 않는다. 재판에서 승리한 데보라는 "적에게 맞선다는 건 괴롭고 불확실하고 몹시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해야 했다. 모두 지나간 다음에야 그런 일들이 영웅적이었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고 말한다.

<그것이 알고 싶다> 1074회에서, 김상중은 "가해자들은 여전히 그날의 일을 사과하지 않고 피해자들만 살아남은 것을 죄스러워 한다. 반복되는 거짓과 왜곡 속에서 우리는 이들의 한을 어떻게 달래 줘야 할까?"라며 탄식한다.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하고 날조하는 이들의 주장이 <나는 부정한다> 같은 경우처럼, 법정으로 간다면 어떤 공방과 판결이 나오게 될까? 어처구니 없게도 자신이 희생자라고 주장하는 전두환의 회고록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고 한다.

"진실의 전모가 밝혀지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한지 모르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가능한 조사만이라도 이루어져야 한다."

절대로 진실이 밝혀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에서 나온 말 같아서 소름이 끼치고 화도 나지만, 정말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데보라처럼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생존자분들과 학살당한 분들, 여러분은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고통의 목소리는 전해졌습니다."

37년 전, 광주에서 희생된 분들의 영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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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

연세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동국대와 중앙대에서 영화이론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화사에서 기획과 시나리오 컨설팅을 했고, 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영화평론가로 글을 쓰면서 대학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블록버스터의 환상, 한국영화의 나르시시즘>(2002), <YU HYUN-MOK>(2008), <나쁜 세상의 영화사회학>(2012), <한국영화는 무엇을 보는가>(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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