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대통령의 취임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나라의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 게다가 대통령 한 사람의 품격 있는 처신은 정치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안목을 바꾸고 있기까지 한다. 문재인 정부의 스타일과 행보가 새로운 시대에 대한 희망을 주고 있는 것이다. 기다리던 정치의 풍경이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는 기쁨을 표현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촛불시민혁명의 감격스러운 성과이다.
정치 뉴스를 지겨워하던 이들이 뉴스에 환호하고 있다. 정치가 시민의 권리로 복귀하는 중이다. 시민들의 요구와 갈망을 놓치지 않고 담아내는 지도자가 있는 나라는 행복해진다. 좌충우돌하면서 군림하다시피 하고 있는 트럼프의 미국은 민주주의의 후퇴를 경험하고 있으며, 일본은 아베의 폭주로 시민들이 불행해 하고 있다. 그에 비해 우리는 민주주의의 위력을 뿜어내는 나라가 되고 있다.
이러는 사이에 박근혜는 아득히 멀고 먼 과거의 땅에 파묻혔다. 아주 빠른 속도로, 기억조차 제대로 나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얼마 있지 않아 재판대에 서게 될 그녀의 모습은 참담할 것이다. 단 며칠 사이에 이토록 맑고 건강한 정치의 기운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자리에 있었던 그녀가 그 모든 기회를 날려버리고 권력의 사유화에 몰두한 결과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과정은 모두에게 귀중한 교훈이다.
'시민의 정부'와 겸손한 권력의 출현
역사라는 게 참으로 묘하다. 지금은 망각의 장에 담겨 있긴 하나,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은 자신이 열어나갈 정부를 '시민의 정부'라고 내세웠다.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 이어 그가 명명했던 '시민의 정부'는 5년 뒤, 촛불시민혁명으로 현실이 되고 있다. 이미 한참이나 진화한 시민들의 의식을 따르지 못했던 박근혜와는 달리, 문재인은 권력이 어떤 방식으로 시민들과 소통하면서 역사의 최전선에 서야 하는지를 취임 직후 며칠 사이에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취임사는 단연 돋보였다. 쉽고 짧은 문장으로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빈손으로 들어가 빈손으로 나오겠다"는 이 상식적인 자세가 감동적이었던 것은 그간 우리가 겪었던 권력의 반지성적이고 폭력적인 태도가 워낙 강하게 우리의 뇌리에 박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이 명문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철학 기조를 보여준다.
이렇게 낮고 겸손한 권력, 시민의 벗으로 친근하게 존재하는 권력, 따뜻한 체온을 가진 권력을 내세운 취임사는 나라의 혼탁했던 정치 기류를 부드럽게 풀어주고 있다. 그렇다고 유약한 권력이 되겠다는 것은 아니다. 국정농단과 세월호 조사위 강제해체과정에 대한 재조사를 강조한 적폐청산의 의지는 부패하고 오만한 권력에 대해서는 강한 대응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게 하고 있다.
한시적 국정기획자문위원회를 넘어
문재인 정부는 인수위원회의 조율 과정이 없는 채로 국정을 운영해야 하는 불리함을 지니면서 출범했다. 전 정권의 역량점검과 책임소재 확인, 그리고 정책의 단절과 지속성을 총체적으로 정리할 기회가 없는 상태로 국정의 방향을 틀어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내야 하는 고난도의 작업을 감당해야 하는 처지다. 이 빈틈을 메우기 위해 한두 달 정도 시한의 국정기획자문위원회를 구성, 운영하게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약 실천 순위의 조정과 향후 과제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는 역할이 그 주요기능이다.
이러한 위원회의 존재와 역할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한시적인 제도로 기능하게 하는 것은 재검토해볼 여지가 있다. 우리가 원하고 기대하는 것은 단지 문재인 정부만이 아니라, 지난 10년의 적폐를 본질적으로 청산하고 새로운 국가 비전을 만들어가면서 이후 10년, 20년, 100년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미래형 민주정부의 연속적 등장이다. 따라서 장기적이고 큰 비전을 세워 이 논의가 국정철학의 기조가 되고 우리 사회의 미래담론이 되며 우리의 의식세계를 바꾸어 세계적 수준의 역량으로 전환될 수 있는 근본적 설계가 절실하다.
이는 오늘날 미래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전환설계'의 핵심과 관련이 있다. 가령 기술주의적 유토피아를 꿈꾸며 내세워지는 이른바 '제4차 산업혁명' 담론에는 윤리적 가치논쟁과 인간의 문제가 빠져 있기 일쑤이며, 교육에 대해 거의 협박조로 밀어붙이려는 포장만 바꾼 CEO 논리가 숨어 있다. 이에 대한 철학적, 문화적, 문명사적 성찰과 논의가 단단하게 있지 않으면, 우리사회는 제4차 산업혁명의 담론에 무기력하게 끌려가고 말 수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의 요구를 수용하는 과정에는 이러한 논의가 반드시 필요하며, 그래야 미래정치의 본령을 제대로 세울 수 있게 된다.
미래 전환설계를 위한 21세기 '국가비전' 위원회를 만들자
경제는 윤리와 만나야 하며, 정치는 미학과 혼합되어야 하고 교육은 가치논쟁과 융합되어야 미래설계의 본질을 구축해낼 수 있다. 아니면 단기적 실용주의의 요구에 따라 만들어진 정책이 우리의 삶을 쥐고 흔드는 일이 반복된다. 인간의 삶을 배제한 압축 성장으로 인해 압축된 시간도 자신의 본래 속도를 되찾아야 하고, 도시는 자연을 다시 초대하고 인간관계를 재구성할 수 있는 공간을 창출해야 하며 역사와 합류해 문명의 뿌리를 회복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평화와 생명공동체를 만드는 세계적 책임의식을 가진 시민과 정부로 성장해나갈 수 있도록 새로운 사회계약의 정신과 내용을 제출해나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비전을 우리 사회의 21세기적 담론으로 창출해나가는 지적 작업은 매우 소중하다. 지성과 철학이 풍요한 국가, 문화예술의 감수성이 뛰어난 나라, 공적 기여의 소신이 분명한 시민의 성장, 지구적 윤리의식과 책임정치를 구현해나갈 지도력의 창출과 같은 목표와 비전이 우리의 화두가 되어갈 때, 우리 사회와 국가는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격조 있는 존재로 변모해나갈 것이다. 미래를 위한 전환설계가 이렇게 이루어지는 과정이 모두에게 교육적 상상력을 증폭시키고 정치의 본령을 바꾸어나가게 되면,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희망의 크기와 질은 보다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을 획득하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지적 역량, 문화예술의 힘, 윤리논쟁의 역동성, 새로운 시대를 향한 촛불시민혁명의 갈망이 하나로 모여지면, 다음 세대를 위한 미래비전과 실천도 보다 구체적인 에너지를 획득하게 될 것이다. 부디, 이 역사의 축복으로 주어진 시간을 '다른 100년의 새 역사'를 기획하고 구상하는 절호의 기회로 삼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싶다. 이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발랄한 상상력과 탁월한 정치력을 기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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