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사드 산성' 넘어서려면…

"치밀한 재검증 필수…정상적 국가 운영의 시금석"

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직면해야 할 대외 환경은 녹록지 않다. 특히 사드 (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여부가 당장 눈 앞에 떨어진 과제다.

사드 배치는 군사적 효용성, 외교적 마찰 등으로 인해 사회적, 경제적 논란을 불러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배치 과정에서도 적잖은 문제점을 노출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혀왔다.

문 대통령의 후보 시절 싱크탱크인 '정책공간 국민성장'에서 한반도안보신성장 추진단장을 맡았던 최종건 연세대학교 교수는 새 정부가 사드 배치 과정을 전반적으로 재검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골프장에서, 또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유지하던 지역 주민들 입장에서 보면 사드 배치는 갑자기 내가 살던 곳에 외국의 군 부대가 생긴 셈"이라며 "그렇다면 사드 배치가 주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환경영향평가를 비롯해 우리의 법적 체계에 명시된 절차대로 검증하는 것은 민주국가로서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새 정부가 사드 배치와 관련해 검증을 하면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대외적인 메시지를 줄 수 있고 이는 정부가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며 "또 이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외교적 타결을 할 수 있는 공간도 열리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즉 사드 배치 검증 자체가 한국의 외교적 운신의 폭을 넓혀줄 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의 타결 가능성 역시 높여준다는 지적이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최 교수는 "이러한 과정을 거친 뒤에도 배치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온다면 박근혜 정부의 결정과는 달리 신중하게 재검토한 결과가 되기 때문에 중국에도 좀 더 당당하게 우리 입장을 설명할 수 있고 한미 동맹에도 상당한 순기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27일(현지 시각)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한국에 그들이 이 비용(사드 배치 비용)을 내는 것이 적절하다고 통지했다"고 밝히면서 사드 배치 비용 부담 문제가 차후 한미 간 주요 논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관측에 대해 최 교수는 "우리 군이 사용하지 않는 무기체계에 비용을 내야 한다면 그것은 SOFA(한미주둔군 지위협정)을 개정해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SOFA 개정은 실무적 협상은 외교부에서 하지만 국회의 비준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이 현 상황에서 사드 배치 비용을 한국 정부에 떠넘기려면 국회의 비준을 거칠 수밖에 없고, 이는 곧 사드 배치 결정도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시민사회와 일부 정당의 요구대로 진행돼야 한다는 의미다.

최 교수는 "만약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방위비 분담금 증액이나 한국 정부의 국방비 자체를 증액하라는 의도를 담은 것이었다면, 국방비의 경우 우리가 결정할 주권적 사안"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이를 오히려 기회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 교수는 "협상을 해봐야 아는 문제지만, 협상을 한다면 방위비 분담금의 운영 투명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어느 정도의 비용이 한국 안보와 직결돼 사용되는지 따져보는 문제로 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초유의 사드 '알박기'철저히 따져 물어야

사드 문제를 졸속적으로 처리해온 관계자들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김동엽 교수는 "지금 가장 급한 것은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느냐에 대해 면밀하게 검증해야 한다는 점"이라며 "사드 체계를 배치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그 이후에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어차피 지금 이렇게 배치가 됐으니 도로 (미국으로) 가져갈 수도 없는 것 아니냐'라고 말하는 것은 절차를 무시하고 배치를 밀어붙인 사람들이 원하는 것 아니겠나"라며 "이건 사드가 군사적으로 유용한 무기체계냐를 따지는 문제와는 별개"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설사 사드가 유용한 무기 체계라고 하더라도 절차적으로 검증해야 할 부분은 하고 가는 것이 순서다. 이건 국가가 정상적으로 운영되느냐, 한미 동맹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느냐의 문제"라고 일갈했다.

그는 "사드 배치 과정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이대로 밀어붙인다면 향후에도 똑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국가가 절차도, 과정도 무시하고 '결정한 것이니 그냥 따르라'라고 하면 국가의 운영 문제와 함께 국격에도 문제가 생긴다"고 덧붙였다.

그는 검증 절차에 대해서는 배치 지역의 주민을 포함, 민간이 함께하는 특별조사위원회를 꾸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위원회가 국가의 의사정책 결정 과정을 검토하고 이 조사가 끝나면 국정조사든 청문회든 국회 차원으로 넘어가야 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사드가 안보 사안이기 때문에 공개적인 검증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종건 교수는 "국정조사와 같은 공개적 방식을 도입할지에 대해서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누군가의 잘잘못을 공개적으로 따지게 되면 우리가 스스로 우리 속살을 과도하게 드러내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반면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국회에 사드 관련 특위를 설립,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사드 배치 철회 성주 투쟁 위원회‧김천 대책위, 원불교 비대위 등은 지난 8일 성주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새 정부에 △사드 배치 즉각 중단 △사드 특위 구성 및 불법 배치 과정 조사 △국정조사, 청문회 등을 통한 책임자 처벌 등을 촉구했다.

▲ 지난 4월 26일 새벽 사드 장비를 실은 트레일러가 성주골프장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사드 배치 비용 발언과 관련, 김동엽 교수는 "미국이 한국에 통보한 것은 맞는 것 같다. 다만 사드 배치 비용을 내라고 말했다기 보다는 '너희가 내는 건 어때' 정도의 언질이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한국에 1조 2000억 원의 무기 구입 비용을 내라는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 미국 정부가 (사드 제조 업체인) 록히드 마틴에 사드 비용은 이미 지불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나 미국 정부는 '이거(사드) 되게 비싼 건데 우리가 갖다 놓았으니 추가 비용은 너희가 내라'라는 뜻을 전달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즉 사드 장비는 미국이 들여 왔으니 사드 운용이나 시설 건립에 필요한 비용을 한국이 부담하라는 의사를 전달했다는 해석이다.

김 교수는 "성주 골프장 부지에 사드를 운용하려면 관련 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이건 미국이 부담해야 한다"며 "그런데 미군이 이 비용을 국가 예산에서 쓰는 건지 아니면 방위비 분담금에서 쓰는 건지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 방위비분담금 불용액이 9000억 원이다. 예전에는 우리가 미국에 분담금을 주면 미국은 그걸 받아다가 방위비에 쓰지 않고 소위 '이자 놀이'를 한 적도 있다"면서 "그래서 미국이 마음대로 가져갈 수가 없는데, 마침 사드가 들어왔다. 미국이 이 돈을 요구해서 사용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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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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