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같은 '토목 공약'이 없는 첫 선거

[복지국가SOCIETY] 촛불 혁명 계승하는 선거 혁명을 하자

해외 동포들의 투표율은 79.3%였다. 29.3만 명이 투표했다. 사전 투표율도 26%를 넘었다. 이미 약 1100만 명이 투표를 마쳤다. 선거 당일인 5월 9일의 투표율도 80%를 넘어 사상 최고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무려 7개월이나 앞당겨진 대통령 선거는 그 자체가 수개월 동안 광화문에 모여 준 촛불 시민들이 만들어 낸 전리품이고 국민 승리의 성과물이다. 그리고 높아진 관심과 투표율은 광화문 혁명을 이어가고자 하는 우리 국민의 마음과 정성이 구체적으로 반영된 것이다.

여느 때와 다른 19대 대통령 선거의 특징

외국 언론에서는 박근혜 탄핵을 영국의 명예혁명이나 프랑스 대혁명에 비견되는 촛불 혁명이라고 한다. 그 승리의 구체화된 형태인 이번 선거에서는 이전의 대통령 선거와 다른 몇 가지의 특징이 나타났다. 길지 않은 대통령 선거 기간이었지만, 우리 국민은 이미 그런 성과들이 공약으로 구체화되는 것을 지켜보고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이제 더 이상 지역주의가 선거의 중심이 아니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후보나 정당의 지지에서 지역주의가 상당히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는 지역으로 편을 가르는 방식이 결정적으로 작용하지는 않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단순히 영남에 기반을 둔 구여권 정당들이 분열되어 있거나, 호남 출신의 야권 후보가 없는 차이가 아니다. 실제로 어느 지역 출신인지의 여부보다는 구체제를 옹호하는가 아니면 새로운 체제로 가야하는가의 여부를 두고 후보들이 갈리고, 정당의 입장이 정해진다. 그래서 이번 선거는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지역 구도가 거의 사라진 채 치러지는 최초의 선거가 된 것 같다.

둘째, 이제 더 이상 토목과 건설은 후보들의 주요 공약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특정 후보가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4대강 개발 방식은 국민들에게 호응을 받지 못했다. 지난 선거에서 논란이 된 영남권 신공항 건설 같은 거대 토목 건설 공약은 이번 선거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지역 공약으로 건설을 중심으로 하는 일부 정책이 여전히 공약집의 한 구석에 자리 잡고는 있지만, 이제 더 이상은 중앙 공약으로는 등장하지 않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후보들 간에 이와 관련된 쟁점은 형성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공약 이행을 위한 재원 마련의 방안으로 SOC 부문의 축소 정책이 공론화되었다. 후보들 간에 얼마를 더 줄일 수 있을 것인지를 두고 경쟁을 하는 모양새였다.

셋째, 이번 선거가 이전의 선거들과 다른 가장 결정적인 것은 여러 가지 복지국가 공약이 전면에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아동수당 지급, 기초연금 인상,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 인상, 국민기초생활보장 제도 부양의무자 기준의 (단계적) 폐지,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와 공공의료의 확충, 주거 복지의 확대, 청년 일자리와 소득의 보장, 다양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들과 재벌 개혁을 포함한 경제 민주화 정책, 그리고 이들 공약들의 실행을 보장하는 다양한 재원 마련 방안들은 이전 선거에서는 볼 수 없었던 큰 성과들이며, 우리나라가 복지국가로 가는 데 하나의 중요한 징검다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무상 급식 이슈가 등장하면서 보편적 복지에 대한 정치사회적 논쟁이 시작된 이래 7년 만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실로 놀라운 발전이다. 특히 지난 10년 간 역동적 복지국가를 국가발전 모델로 제시하며 노력해 온 사단법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입장에서는 이번 선거는 그야말로 대한민국을 복지국가로 만들기 위한 획기적인 변화들이 진행되는 의미 있는 선거라고 하겠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처음 제안했거나 복지국가 정책으로 중요하게 연구하고 공론화해왔던 수많은 정책들이 주요 후보들의 공약에 상당 부분 반영된 것을 보고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복지국가소사이어티 후원 회원들이 월 1만 원씩 지난 10년간 후원해주신 정성이 이제 각각의 구체적인 복지국가 정책들을 통해 매년 수조 원 이상의 혜택으로 국민에게 돌아가게 되었다는 것도 알려드리고 싶다.

ⓒ프레시안

공약으로 나타난 19대 대통령 선거

역대 어느 선거보다 TV토론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정책 경쟁이 제대로 자리를 잡아가는 것의 반영인지, 최근에 발간된 주요 정당들의 대통령 선거 공약집에는 이전에 각 후보들이 산발적으로 말하던 정책이나 공약보다 상당히 진전된 내용들이 많이 담겨 있다. 북핵 문제와 미사일의 위협 등 외부적인 요인이나 사드 배치를 둘러싼 논란 등 여전한 공안몰이에도 불구하고 공약과 정책들은 복지국가를 강화하는 하나의 방향으로 일관되게 진행되었다. 또한 후보들 간의 공약이 상당 부분 한 방향으로 수렴되는 경향을 보인다.

아동 수당은 지급 시기나 금액의 차이는 있지만 5명의 후보들이 모두 공약했다. 공공 보육시설의 확충이나 보육시설의 교사 확충 및 처우 개선을 통한 보육 서비스의 질적 개선, 그리고 누리과정의 재정도 이번 선거를 통해 국가가 부담하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처음으로 제안해 2012년 선거에서 공약 경쟁을 벌였던 기초연금은 이제 30만 원으로 인상될 것으로 예견되고 있고, 국민연금 가입 기간과 감액 연계된 부분은 철회될 것이다. 이 둘 다는 대상자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후보들의 공통 공약이 되었고,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정책을 두고도 후보들 간의 토론이 이루어졌다. 교사 확충을 통한 공교육의 질 제고와 1교실 2교사, 그리고 교과과목 선택제 등도 다수의 후보들이 공통 공약으로 채택했다. 더 이상 학생 숫자가 줄어드니 교사 숫자도 줄여야 한다는 구시대적인 주장은 나오지도 않는 상황이 되었다.

적극적인 공공 임대주택의 확충으로 주거 문제를 해결하고, 주택 정책 자체를 주거 복지 정책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나, 주거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제안한 2년 자동 계약 갱신 제도를 통해 전세 기간이 최소 4년 이상으로 늘어나게 된 것이나, 지역 단위로 인상률을 정할 수 있도록 하고 세입자들이 협상권을 가지도록 한 부분도 이후에 주거비 부담을 줄이는 데 획기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무엇보다 그동안 복지국가소사이어티를 비롯해서 진보적인 시민사회단체들이 줄기차게 주장해왔던 '모든 의료비를 건강보험 하나로' 정책이 문구 그대로 주요 후보들의 공통 공약이 되었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80%와 비급여의 전면적 급여화로 '본인부담금 100만 원 상한제'가 구체화되는 등 이제 더 이상 국민이 매월 수십 만 원의 민간 의료보험을 들지 않아도 되는 계기가 마련된 것도 큰 진전이다.

이전의 각종 선거와 가장 결정적으로 차이가 나는 부분은 노동체제의 개혁과 경제민주화 분야에서 나타났다. 최저임금 1만 원 인상이나 근로시간 단축뿐만 아니라 근로감독 강화와 비정규직 사용 사유 제한과 같은 적극적인 노동 정책들이 후보들 간의 논쟁을 통해 공통 공약으로 자리를 잡았다.

또한 징벌적 손해 배상제도와 집단소송제의 도입, 공정위 전속 고발권의 폐지, 지주회사 요건의 강화,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 등 재벌들에 대한 특혜를 줄이는 것을 넘어 경제민주화를 통해 중소기업들과 상생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들이 공론화되고 구체화되어 각 정당들의 공식 공약으로 채택되었다.

그동안 선거 과정에서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던 재원 마련 방안들이 이제 제법 세세하게 기록되어 더 구체화된 것도 이번 선거의 큰 성과이다. 이제 새로 출범할 차기 정부는 세출의 구조조정이나 사업별 우선 순위 조절, 유사 중복사업의 조정 및 복지전달체계 개편 등 낭비 요소의 제거, 탈루 소득의 발굴 및 지하경제의 양성화 등으로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애매한 말은 하지 못하게 되었다. 금액의 다소에 상관없이 후보들 모두 증세를 포함해서 어느 정도 구체적인 재원 마련 방안을 제시한 것도 이번 선거를 통해 국민들이 쟁취한 구체적인 전리품이다.

압도적 투표율은 촛불 혁명의 계승

TV토론이나 공약을 분석한 기사를 통해 국민의 의견이 모아지고, 이 내용들이 다시 주요 후보의 캠프에 정책으로 피드백되어 공약으로 반영되는 선거의 '바람직한 기능'이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지난 10년간 어려웠던 국민의 삶이 촛불 혁명으로 폭발했고 민심에 민감한 정치인들이 선거 과정을 통해 국민의 여망을 "복지국가를 요구하는 시대정신"으로 받아 안는 정치의 선순환 과정이 일어난 것이다.

한편으로는 새로 출범할 정부가 맞닥뜨려야 할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을 보면 낙관만 하고 있을 수 없다는 불안감이 밀려온다. 대외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는 구시대를 향유해온 낡은 세력들이 여전히 큰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차기 정부의 성공이 쉽지 않기에 한편으로는 마음이 착잡해진다. 여전히 이명박과 박근혜를 잇는 정당이 다시 상당한 지지를 모으고 있고, 또 선거를 앞두고 자신들이 선출한 후보의 사퇴를 요구하며 집단으로 탈당하는 등의 구시대적인 이합집산이 벌어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구시대적인 잔재라고 생각하면, 적극적인 투표를 통해 낡은 세력을 심판해야 한다. 그들에게 역사의 수레바퀴가 도도하게 굴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첫 번째 촛불 혁명의 완성이 박근혜 탄핵과 헌재의 파면 결정이라면, 두 번째 완성은 개혁적 후보의 당선으로 정권 교체를 이루는 것이다. 그래서 압도적 지지로 국민의 개혁 의지를 표명해 차기 정부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이명박과 박근혜를 계승하는 세력과 후보의 지지율이 높게 나오면, 그것도 사사건건 새 정부의 개혁을 방해하고 발목을 잡는 명분이 될 것이다. 투표 전날까지도 20% 넘는 국민이 지지하는 정당이 없는 무당층이나 지지할 후보를 정하지 못한 부동층으로 존재하고 있다. 차기 정부가 힘을 가지고 개혁을 추진하려면 압도적으로 높은 투표율과 높은 득표율로 2위와 상당한 격차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 언론인이 방송에서 한 말이 가슴에 와 닫는다. 지금은 지지하는 후보가 같은 분들끼리 모여 동지애를 확인하며 즐거워할 시간이 아니다. 지지하는 후보가 다른 분들과 말싸움을 하거나 안 되는 설득을 하려고 시간을 낭비할 때도 아니다. 남은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아직도 지지할 후보를 정하지 못한 분들을 만나 지지를 부탁하고, 투표 자체를 하지 않겠다는 분들을 설득하여 투표를 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한 시기다.

그렇게 해야 우리가 노력해서 만든 촛불 혁명이 정권 교체로 이어지고, 궁극적인 승리인 복지국가 건설로 귀결될 수 있다, 그렇게 해야 후보 당사자뿐만 아니라 차기 정권을 담당할 주요 인사와 정치인들도 국민의 간절한 열망을 가슴에 부담으로 느끼면서 마음을 모아 의미 있는 개혁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만 역동적 복지국가 건설을 방해하는 구세력의 반대를 물리치고 국민이 행복한 복지국가라는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 수 있다.

(☞이상이의 칼럼 읽어주는 남자 바로 가기 : 개선이 시급한 임대주택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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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사회·경제 민주화를 통해 역동적 복지국가 대한민국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2007년 출범한 사단법인이자 민간 싱크탱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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