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기지 지하수 오염, 팔짱 낀 환경부

[안종주의 안전 사회] 주한 미군 당당히 상대할 후보, 누구인가?

주한미군은 우리에게 정말 든든한 동맹군이다. 또한 주한미군은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1980년대 중후반 에이즈를 퍼트렸다. 미순·효순이를 탱크로 깔아뭉개는 사고를 내었다. 그들은 우리들에게 살인·폭력 등도 저지르는, 그러고서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달갑지 않은 존재로도 각인되고 있다.

안전과 환경에 관심이 많은 필자에게 이와 함께 주한미군은 한강에 포르말린을 마구 무단방출해 영화 <괴물>의 소재가 된 일, 휴전선에 고엽제를 살포해 생태계를 망가트린 일, 부산, 왜관, 동두천, 서울용산 등 주둔기지마다 다이옥신, 화약, 각종 기름 등 유해물질을 마구 버리거나 오염관리를 소홀히 해 지하수와 주변 토양 등 환경을 오염시킴으로써 우리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환경 파괴꾼'으로 각인되었다.

주한미군보다 우리를 더 화나게 만드는 것은 우리 정부의 태도다. 우리의 땅과 물이 그들 때문에 정상 상태로 되돌리기 힘들만큼 만신창이 상태로 오염되어 주민들의 건강과 안전이 현실적 위험으로 다가와 그 실태 조사하고도 지난 2년간 쉬쉬 해왔다는 사실 때문이다.

환경부는 지난 18일 서울 용산 미군기지 내 지하수 오염 실태를 처음 공개했다.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라 대법원 정보 공개 판결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등 떠밀려 공개한 것이다. 그동안 환경부는 '외교 관계 등에 관한 사항'이란 이유 같지 않은 핑계를 들먹이며 환경·시민단체의 실태조사 결과 공개 요구를 깔아뭉갰다.

대법원은 18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이 환경부를 상대로 낸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 소송에서 "용산 미군기지 내 지하수 오염실태를 조사한 환경부 조사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며 원고가 승소한 원심을 확정했다. 즉각 공개했어야 할 일을 정부가 대법원까지 끌고 가며 진실을 숨기려 한 것이다. "이게 정부냐! 이게 대한민국 환경부냐!"라는 분노의 목소리에 귀를 닫았던 셈이다.

용산 미군기지 내 오염 실태를 우려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실태조사를 요구하는, 빗발치는 여론에 마지못해 환경부는 한·미 양국 간 합의 하에 지난 2015년 5월 22일부터 29일까지 서울시와 함께 용산 미군기지 내부 오염 실태를 조사한 바 있다.

용산 미군기지 오염 심각, 발암물질 기준보다 160배

이번에 공개된 조사결과를 보면 용산 미군기지 지하수에서 혈액암 등을 유발할 수 있는 인체발암물질인 벤젠이 허용 기준치보다 최대 160배 넘게 검출됐다. 벤젠뿐 아니라 톨루엔·에틸벤젠·크실렌 등 유해성분이 지하수 정화기준을 초과해 나왔다.

이번에 공개된 것은 1차 조사 관정 14곳의 시료 분석 결과였다. 절반인 7곳에서 벤젠이 지하수 허용 기준치를 넘어섰다. 이 중 한 곳에서는 무려 기준의 160배가 넘는 농도가 검출됐다. 이를 포함해 4곳에서 기준치의 약 20~100배에 이르는 고농도의 벤젠이 나왔다. 또 다른 독성 물질인 에틸벤젠과 크실렌 기준치를 넘어선 곳도 각각 4곳으로 나타났다. 톨루엔 기준치를 초과한 관정도 한 곳 있었다.

환경부가 공개한 것은 원본이 아니라 가공된 자료이다. 또 시민들의 알권리를 위해 지난해 1월과 8월에 각각 실시한 2·3차 조사 결과의 원본 자료는 아예 공개 대상에서 빼버렸다. 1·2·3차 조사 결과에 대해 미군 측과 최종 합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환경부는 오염 지하수 정화 계획에 대해서는 "아직 미군이 해당 기지를 사용 중인 관계로 한·미 행정협정(SOFA) 규정에 따라 수질 개선은 사용 주체 측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하지만 우리로서는 한시가 급하다. 팔짱만 끼고 그들이 하는 것을 방관자처럼 지켜보고 있을 계제가 못된다.

주한미군 득달해 올해 안으로 지하수 오염 정화 끝내야

미군이 올해 말 용산 미군기지를 국방부에 반환하면 국가 부지로 귀속되고 국토교통부는 국방부로부터 이곳에 대한 사업권을 물려받아 73만 5000평 규모의 국가 도시공원인 용산공원을 조성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심각하게 오염된 지하수 정화가 한두 달 만에 뚝딱 완벽하게 해치울 수 있는 문제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밤잠을 설쳐서라도 주한미군 측을 득달해 완벽하게 정화토록 해야 한다.

서울시는 조속한 정화 대책을 수립할 것을 촉구했다. 서울시는 기지 주변 오염 정화 사업은 자체적으로 계속 추진하면서 유류 오염 확산 감시를 위한 수질 모니터링 장소를 19곳에서 40곳으로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또 시민단체와 전문가, 지역 주민 등이 참석하는 포럼을 열어 SOFA 규정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공론화 할 계획이다.

서울시의 적극적인 해결 노력 모습과 환경부의 소극적인 모습을 보면서 이런 평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서울시가 대한민국 서울시민과 서울시 땅과 환경을 생각하는 광역자치단체라면 환경부는 주한미군 소속 환경과라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땅에는 국경이 있지만 지하수와 강물과 바닷물에는 국경이 없다. 용산 주한미군 기지의 지하수 오염은 주한미군 기지 땅 아래 지하수만 오염시키는 것이 아니다. 기지 울타리 밖 땅 아래 지하수도 당연히 오염되는 것이다.

어느 후보, 어느 정당이 당당하게 주한미군을 상대할 것인가

중앙정부와 서울시가 환상의 한 팀이 되어 주한미군과 맞서도 힘이 부칠 판에 환경부가 이런 미지근한 자세를 보인다는 것은 정말 납득하기 어렵다. 그동안 주한미군 기지 오염을 다뤄온 박근혜 정권의 적폐의 민낯이 이번에 대법원 공개 판결로 여실히 드러났다.

깨끗한 환경과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환경과 안전 부문에서 오랫동안 쌓여있던, 눈치 환경행정과 의지박약의 미세먼지를 싹 쓸어내야 한다. 자신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는데도 유독 미국과 주한미군에 대해서는 아무런 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상한 나라 코리아가 아니라 어떤 나라를 상대하더라도 당당한 태도를 지닌 이들이 나라를 새롭게 이끌어가야 이런 문제가 재발하지 않는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꿈꾸는 정치지도자, 정치세력이라면 주한미군이 우리 국토에 싸질러놓은 환경오염의 적폐들을 일소하겠다는 의지와 비전,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또 지혜로운 국민이라면 누가 그 일을 가장 책임 있게 잘할 것인가를 꼼꼼히 따져보고 한 표를 던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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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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