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회고록과 박근혜 사면

[인권으로 읽는 세상] 청산하지 못한 과거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

제주 4.3항쟁 69주기인 2017년 4월 3일, 5.18광주항쟁 유혈 진압의 주범인 전두환 회고록이 출간되었다. 전두환 회고록의 골자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광주 사태는 폭도들이 일으킨 폭동이다", "나는 광주 사태의 희생자이다" 30년이 지나도 아픔이 가실 수 없는 유가족과 피해 생존자들에 대한 무례함을 넘어선 공격이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모두에 대한 조롱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된 지 며칠 안 돼 '사면 논란'이 일었다. 전두환 회고록이 나온 상황과 겹치며 참 웃기고도 슬프다. 시간이 또 흐른 후 박근혜의 회고록이 나오고 '나는 억울한 피해자다'라고 주장하는 상황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바로 다음 정권에서 이와 같은 일이 생길 수 있다는 불안감도 숨길 수 없다.

청산하지 못한 과거가 왜곡시키는 역사

전두환의 회고록을 단순히 한 개인의 광기로 보기는 어렵다. 2002년 대선을 전후로 광주항쟁에 대한 역사적 왜곡이 다시 등장했다. 이와 같은 왜곡은 2010년대 들어 인터넷을 기반으로 영향력을 확장했다. 결국 광주 지역 사회가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이와 같은 글을 유포하는 개인들에 대해 고소·고발을 진행했고 이는 현재진행형이다. 같은 주장이 탄핵 반대를 주장하는 집회에서 연설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도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전두환의 주장에 동조하고 정당성을 부여하는 집단은 실재한다. 그 집단의 유력 인사들 중 일부는 전두환·노태우의 정권을 만들고 유지해온 부역자이다.

전두환은 12.12 군사반란, 5.17 내란 및 5.18광주 민중항쟁 유혈진압 혐의 등 총 13가지 법률 위반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대법원 확정 판결 이후 8개월 만에 이루어진 특별 사면으로 석방되었다. 전두환의 만행에 대한 법적 절차는 너무나 손쉽게 마감되었다. 전두환은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법적 예우를 박탈당했지만 이후 대통령들의 취임식에 참석하고 대통령 당선인, 정치인들의 방문을 받아 왔다. 성대한 팔순잔치에는 청와대 국정기획 수석, 특임장관, 국회의원, 교수 및 연예인들이 참여했다.

광주항쟁 피해자들이 역사 왜곡에 항의하며 진실을 지키는 동안 그는 마치 사회의 원로인 양 행동해왔다. 망월동 묘역의 차디찬 흙 속에 묻힌 원혼을 찾아가는 사람이 날로 줄어가는 현실과 반대로 그는 따뜻한 집안에서 자신을 어른으로 떠받드는 기성사회에 살아간다. 전두환과 그 세력은 절대 반성하지도 사죄하지도 않는다. 공식적인 정부 보고서조차 만들지 못하고 왜곡당하는 위태로운 역사는, 정치적 화합이라는 명목으로 단행되는 불처벌의 문제를 여실히 보여준다. 청산되지 않은 과거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다.

독재 정권의 부역자들이 만든 박근혜 체제

1995년 법정에 불려나온 전두환·노태우는 무기징역 판결을 받았지만 당시 정치권과 사법부는 매우 수동적인 입장을 취했다. "성공한 쿠데타를 처벌할 수 없다"는 말까지 나오는 수준이었다. 문민정부를 내세우며 집권한 김영삼 정권은 1993년 특별담화에서 "진상규명과 관련하여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이는 훗날의 역사에 맡기는 것이 도리라고 믿습니다"라고 밝혔다. 전두환·노태우의 '민주정의당'과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과 손을 잡아 대통령에 당선된 김영삼의 소극적 입장은 당연한 것이었다. 군사 독재 시기 정권의 비자금을 마련해주며 성장한 재벌까지 생각하면 당시 지배 세력은 온전히 과거사 청산을 할 의지를 보일 이유가 없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진 군사 정권의 역사는 수많은 민주화 운동 피해자를 양산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정상 궤도에 오르기 위해 한국 사회는 과거를 청산해야 했다. 1990년대 중후반 들어 과거 청산 논의가 활발해졌다. 당시 인권운동은 유엔이 작성한 '인권침해자의 불처벌에 대한 투쟁을 통해 인권을 보호하고 신장하기 위한 원칙들'을 소개하며 한국 사회의 과거청산에 대한 원칙들을 제시했다.

다시 살펴보며니 눈에 띄는 문장이 하나 있었다. "같은 원인이 같은 결과를 유발하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자신들의 존엄성에 영향을 끼치는 새로운 침해를 감당해야만 할 것을 피하기 위한 세 가지 조치가 취해져야만 한다." 세 가지 조치 중 하나는 "심각한 침해와 연루된 상급 공무원들을 공직에서 퇴출"하는 것이다.

전두환·노태우의 처벌과 특별 사면은 인권 침해의 가해자들을 퇴출시키지 못하게 했다. 수많은 사람을 고문하고 조작 사건으로 고통에 빠뜨린 세력들을 더 이상 처벌할 수 없도록 했다. 공안검사로 고문을 자행한 정형근은 3선 국회의원에 2011년까지 건강보험공단 이사장도 했으며, 전두환이 만든 민주정의당 창당 발기인이자 국회의원이었던 김종인은 현재도 유력정치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노태우 정권을 비호했던 김기춘은 당시 어떤 처벌도 받지 않은 채 국회의원,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그 자리를 이어갔다.

군사 정권부터 이어진 공안 검사의 계보를 이어갔던 검사들, 간첩 조작 사건을 일삼은 전 안기부 현 국정원, 유력 정치가문들, 전두환·노태우 정권의 특혜로 성장한 재벌과 그들이 후원하는 정치인들… 민주주의를 짓밟아온 세력에 의해 형성된 정치권, 그리고 수구 세력의 가장 큰 집결지가 박근혜 정권이었다.

다시 써야 할 역사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검찰의 입장을 뒤엎고 전두환·노태우를 법정으로 몰아붙인 것은 시민의 힘이었다. 박근혜를 파면까지 이르게 한 것 역시 시민의 힘이었다. 1997년 대선에서 모든 후보가 대선승리를 위해 전두환-노태우에 대한 사면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모습은 지금의 데자뷰 같다. 박근혜 탄핵을 망설이던 정치권은 벌써부터 '사면' 운운하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되며 이제야 진실의 시작점에 들어섰다. 하지만 시작점을 지켜보는 마음에 불안감이 찾아온다. 화합과 통합이라는 미명하에 박근혜가 짧은 수감 생활을 마치고 다시 5년 후 대통령 취임식에 참여하지는 않을까? 어떤 정치인이 "부족한 점은 역사에 판단에 맡기겠다. 우리는 이제 화합하여 위기를 타개해야 한다"고 말하며 박근혜 정권에 기생하며 민주주의를 질식시켰던 사람들을 용서하자 하지는 않을까?

다시 길었던 겨울을 떠올려 보자. 촛불의 힘은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박근혜 정부를 청와대에서 끌어내렸다. 움직이지 않던 정치세력에 시민의 정치를 보여주었고 지금도 여전히 진실을 숨기려 하는 세력들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다.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다시 자신들의 정권 창출을 위해 거래하려 하는 정치권에 경고해야 한다. 불처벌의 역사를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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