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마을을 선언하자"

[귀농통문] 아일랜드 킨세일, 한국에서도 가능하다

"행동 없는 비전은 단지 꿈일 뿐이다. 비전 없는 행동은 시간만 허비한다. 그러나 행동하는 비전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조엘 바커, 2015년 9월 '킨세일 전환마을' 10주년 기념비)

최초의 '전환마을운동(Transition Town movement)'이 시작된 곳은 아일랜드의 작은 시골 마을인 킨세일이다. 아일랜드가 매년 선정하는 '작고 아름다운 마을대회'에서 우승한 동화 같은 마을이다. 남쪽으로 해변을 바라보면 휴양지답게 형형색색의 보트들이 항구를 채우고 있다. 골목에는 관광객을 사로잡을 만한 작은 상점들과 아이리쉬펍들이 오밀조밀 들어차 있다. 전 세계 전환마을운동이 태동한 곳은 마을의 주거지와 좀 떨어진 마을 언덕 끝자락에 있었다. 바다에서 소금기 짙은 바람이 불어오는 벌판엔 잡풀과 가시덤불이 뒤엉켜 있다. 2005년 킨세일의 주민들은 이 버려진 터를 과수원으로 일구면서 '피크오일'과 '기후변화'에 대한 대안을 만들자고 이야기한다. 그로부터 10여 년, 전환마을은 전 세계 40여 개 나라 3000여 개의 마을이 되었다. 아무도 이 작은 과수원이 전환마을운동의 태동지가 될지 몰랐다.

▲ 아일랜드 킨세일 공동체 입구. ⓒ유희정

전환마을의 씨앗 '퍼머컬처'

21세기 들어 기후변화와 피크오일의 위협이 가시화되고 있다. 과학자들은 2007년쯤 피크오일을 예측했고 여러 환경지표들은 지구가 점점 더워지고 있음을 가리켰다. 빙하는 녹고 홍수는 잦아졌으며 숲은 사라졌다. 매초마다 동식물이 멸종되었다.

이 돌이킬 수 없을 것만 같은 지구적 문제를 미국 정부도 아니고, 아일랜드 의회도 아닌, 조그만 시골마을의 사람들이 걱정하기 시작했다. 걱정하기보다 스스로 비전을 만들고, 먼저 행동하자고 나섰다.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마을 공유지를 만들고 에너지를 자급하는 계획을 세우며 생태적인 전환을 선언한다. 바로 전환마을의 시작이었다.

전환마을은 킨세일의 조그만 '직업교육센터'에서 '퍼머컬처'를 공부하는 12명 남짓한 학생들에 의해 피크오일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설계되었다. 퍼머컬처는 자연의 순환체계를 모방해서 경작지와 주거지를 설계하고 자연과 조화롭게 살며 의식주를 자급하는 삶의 방법이자 철학이다. 그들은 마을의 생명력을 복원하고 자립적이면서 지속가능한 마을을 설계하기 위해 '킨세일 에너지절감계획'을 만든다. 이 계획이 세계적인 전환마을운동의 시작이 되었다. 2021년까지 마을이 화석 연료로부터 독립하고 저탄소 미래로 전환하기 위한 비전을 제시했다.

전환마을의 거름이 된 토트네스 마을

이 운동이 빠르게 확장되게 된 것은 킨세일에서 퍼머컬처를 가르치던 롭 호킨스 교수가 영국의 토트네스로 이주하게 되면서이다. 이곳의 슈마허대학은 많은 석학들이 생태주의를 가르치고 새로운 세대의 생태주의자들이 탄생한 교육공동체이다.

토트네스는 인구 2만 명 정도의 작은 시골 마을이다. 토트네스의 전환거리는 지역상점과 거주지가 모여 있는 읍 소재지이다. '히피타운'이라 불릴 정도로 전통적으로 대안적이고 진보적인 마을이었다. 마을의 진보성은 금세 전환마을의 비전을 받아들이고 전환마을을 선언한다.

곧바로 2030년까지 에너지절감계획을 설계하며 전환마을의 상을 잡아가게 된다. 국제적 생태주의자들이 모이는 마을답게 전 세계로 비전을 전달하게 되는데, 불과 10년 사이 전환마을운동은 금세기 들어 가장 빠르게 확장한 대안운동이 되었다.

토트네스는 다른 전환마을들의 모범이 되기에 충분했다. 지역먹거리운동, 텃밭나눔운동, 자기자원나눔, 에너지자립운동, 마을정원프로젝트, 새로운 경제센터, 지역화폐, 화제, 마을술복원운동, 생태건축 오픈하우스 등 수많은 프로젝트들이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

▲ 영국의 토트네스 마을장터. ⓒ유희정

전환마을은 어떻게 만드는 것인가?

유럽에는 이미 생태마을과 같은 계획공동체의 성공적 모델도 많다. 그러나 생태마을과 같은 결사공동체를 새롭게 건설하는 것보다 기존의 마을을 재편하자는 것이 전환마을의 전략이다. 전환마을은 어떻게 만드는 것일까? 스스로 전환마을이라고 선언하면 된다. 마을의 누군가가 중심그룹을 만들고 전환마을의 비전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모은다. 그 인원은 적게는 2명부터 많게는 100여 명까지 다양했다. 작은 소모임이나 책 읽기 모임, 혹은 영화보기 등을 통해 전환마을의 상을 공유한다. 그리고 지금 당장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작은 프로젝트부터 시작한다. 누구의 허가도 필요 없고 정해진 방식도 없다. 이러한 전략 덕분에 전환마을은 어떤 틀도 없이 공기처럼 퍼져나간다. 마치 수많은 점으로 이어진 수평적 네트워크처럼 '내가 좋으니 너도 함께하자'는 방식이다.

또 하나의 전략은 기후변화로 고통받는 미래가 아닌 생태적 전환을 통한 낙관적 미래에 한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 희망을 지키기 위해 지금 우리가 할 일을 직접 행동으로 연결한다. 그래서 전 세계 전환마을운동의 비전은 같으나, 결코 같지 않은 수많은 창의적이고 지역기반적인 운동을 만들어 나갔다. '전환마을네트워크'는 그러한 운동을 지원하면서 서로 모범을 배우며 전 세계 전환마을을 연결하고, 그들의 도전을 공유한다.

한국에서 전환마을 만들기

서울시 은평구에서 전환마을을 만들자고 처음 제안했을 때, 위계 구조와 틀이 없이 다양한 소모임과 프로젝트팀으로 구성되는 수평적 운동 방식은 체계적인 회원 조직에 익숙한 한국 사회에 낯설었다. 결국 단체 등록을 위해 총회식 의결구조와 운영위원회를 두었다. 하지만 이는 단체 등록을 위한 형식일 뿐 운영 방식은 작은 모임과 프로젝트 등을 통한 사람 간의 네트워크를 유지했다. 2014년 11월 29일에 '전환마을은평'을 선언했다.

또 한 가지 어려웠던 것은 기존의 마을만들기운동이나 마을공동체사업과의 차별성을 설득하는 일이었다. 한국의 마을만들기운동은 낙후한 지역에 인프라를 만들기 위한 지원 계획을 가진다. 마을공동체사업 또한 특정 프로젝트에 사업비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전환마을운동의 관점에서는 이러한 투자 중심의 사업으로 마을을 복원하고 공동체를 연결하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 마을이 가진 자원을 찾아내고 마을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생명력을 증진시키는 데 중점을 둔다. 마을은 살림을 사는 일상적 삶의 터이지 경제 성장을 해야 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의 수많은 마을만들기사업들이 돈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서로의 이해관계가 끝나면 사업도 마을도 끝이 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또한 개발 중심의 투자비가 지원되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전환마을운동은 자력이 생기기까지 훈련과 연습을 하고 공동체의 결속을 다진 후, 필요에 따라 공동체가 동의할 경우 투자를 받는 게 원칙이다.

지원사업이 있다고 사업을 구상하는 것이 아니라, 구상한 사업에 비용이 필요하다면 지원받는 방식이 활동을 지속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때문에 전환마을의 많은 사업들은 성공률이 높고 마을의 자체 사업으로 확장된다. 우리나라의 마을사업들이 마을과 무관한 기업의 돈벌이가 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전환마을은 위계와 권위주의가 아닌 평등한 사회, 작은 행동들이 중요한 사회, 공유 경제가 중요한 사회, 지역 자치와 지역공동체의 자산구축, 지역재생이 더 중요한 가치가 되어야 한다.

▲ 'ㅈ전환마을은평' 설명회. ⓒ유희정

한국식 전환마을의 실험

초기 '전환마을은평'은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다양한 단체와 모임들을 설득했다. 독자적 활동보다는 기존의 마을단체나 모임들과 연대하거나 프로그램을 공유하는 전략을 폈다. 이후 전환마을의 여러 프로젝트들이 진행되면서 예술학교, 퍼머컬처학교, 풀학교, 발효학교, 자립자족학교, 생명의논학교, 기억마켓, 은평토종씨앗지키기운동, 은반지연(반GMO운동) 등을 통해 지역의 생태 자원을 찾아내고 그 안에서 생산하는 자로서의 시민을 길러내는 교육에 집중하였다.

다양한 학교를 통해 발굴된 마을 리더를 중심으로 다양한 소모임이 생겨나게 되었고, 마을 의제에도 생태적 관점을 갖고 참가하게 되었다.

초기의 지역거점으로 도시텃밭을 가꾸는 도시농업운동으로 시작했던 '전환마을은평'은 먹거리자립운동을 꿈꾸며 마을식당을 시작하게 되면서 제2의 거점을 만들었다. 전환마을식당 '밥∙풀∙꽃'은 퍼머컬처 학교 2기 졸업 작품으로 제안된 곳이다. 도시인 은평에서도 로컬푸드가 가능하다는 퍼머컬처 설계를 바탕으로 마을식당에 도전했다. 은평의 도시농부들이 직접 생산한 제철 먹거리를 은평의 요리사들이 요리해서 밥상에 올리고 마을사람들이 건강하게 밥을 먹는다. 2015년 11월에 구산역 사거리에 '전환마을은평'의 첫 번째 사업소로 '전환마을부엌 밥∙풀∙꽃'을 개업했다. 처음에는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앞서 갈등도 있었고 적은 매출에 좌절하기도 하면서 머릿속에 그렸던 환상의 커뮤니티와 현실을 비교하며 서로를 괴롭혔다. 결국 생각으로 경영하던 사람들은 떠나고 행동으로 수정해 나가며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오늘도 끼니 거르지 않게 밥상을 차린다.

전환마을은 건강한 자아, 즉 영성적 각성을 바탕으로 성숙해진다는 생각이 커지면서 명상과 마음공부에 힘쓰게 되었다. 개인은 없고 공동체만 앞세우거나 대표나 지도자의 명성만이 있는 공동체는 위태롭다.

한국 사회에는 나이, 권위주의, 남성중심문화 등 위계적인 문화가 여전히 남아있기에 수평적 의사소통과 인간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더더욱 중요하다. 그래서 전환마을은 개개인의 내적 성장이 중요한 동력이다.

한국의 전환마을들은 전환학교로부터

'전환마을은평'이 시작된 지, 2년이 지난 지금 전환마을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전환도시 신촌이 시작되었고, 이후 서울에 여러 마을공동체들도 전환마을을 고민하고 있다. 가까이 서대문, 마포의 성미산마을, 하자학교가 있는 영등포, '삼각산재미난마을'이 있는 강북마을공동체 등이 그렇다. 그 밖에도 금산숲속마을, 제천의 덕산마을, 강화의 진강산마을공동체, 과천의 맑은샘학교 등이 동참하려 하고 있다.

한국의 전환마을의 특수성 중 하나는 대안학교를 중심으로 논의가 시작된다는 점이다. 20여 년 역사의 대안교육운동이 대안학교의 대안을 마을에서 찾는 것이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 과연 우리 사회에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먼저 마을공동체에서 생태적이며 자립적인 시민으로 살아갈 아이들을 길러내고자 전환학교를 선언했다.

지난 2017년 2월 이러한 고민을 하는 마을과 학교들이 모여 '한국전환마을네트워크'를 결성하다. 이미 시작한 전환마을과 전환마을을 고민하는 마을들, 학교들이 지혜를 보태면서 거침없이 상상하며 가보지 않은 길을 내보려고 한다.

아시아의 전환마을 운동

대만, 중국, 일본, 태국, 필리핀, 인도에서는 이미 많은 전환마을이 있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본은 50여 개의 마을이 전환마을을 선언하다. '전환마을네트워크'는 유럽을 중심으로 시작되었지만, 아시아의 전환마을운동이 특히 중요하다고 말한다. 아시아 국가들이 개발과 성장에 집중할 경우 지구적 위기는 더욱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아직 공동체가 살아있고 마을이 자족적으로 복지와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는 마을 자치가 이루어지는 전통적 공동체들이 살아있다. 아시아의 마을공동체들이 생명력을 유지하면서 전환마을의 창의적이고 수평적인 구조를 갖추길 기대한다. '아시아전환마을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려 한다. 이를 위해 아시아 전환마을들이 모여 서로의 연대와 지혜를 나누는 축제를 한국에서 열고자 한다.

연결하는 힘 '전환마을'

연결하고 함께 살아가려는 연성을 갈망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관계를 만들고 연결을 한다는 것은 하나의 유기체가 되는 일이다. 어느 한쪽의 변화는 다른 부분으로 옮겨가 변화하게 하고 점차 큰 변화를 불러온다. 세계는 하나의 유기체이고, 우리는 그 유기체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실천은 끊임없는 현실과의 직면이며 연결이다. 작은 시골 마을 킨세일의 실천을 생면부지의 다른 마을이 따라 하듯이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변화하고 연결될 때 세상은 바뀔 수 있다. 모든 마을이 전환마을로 연결되는 그물망의 한 코를 당신이 꿰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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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통문은 1996년부터 발행되어 2017년 10월 현재 83호까지 발행된 전국귀농운동본부의 계간지입니다. 귀농과 생태적 삶을 위한 시대적 고민이 담긴 글, 귀농을 준비하고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귀농일기, 농사∙적정기술∙집짓기 등 농촌생활을 위해 익혀야 할 기술 등 귀농본부의 가치와 지향점이 고스란히 담긴 따뜻한 글모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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