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귀히 여기는 게 진짜 유기농"

[살림이야기] 농사 경험하고 유기농 영화제 개최한 청년의 이야기

도시에 사는 한 청년이 유기농이 도대체 무엇인지, 상품성이나 인증보다 더 중요한 게 있지 않을지 의문을 품었다. 답을 찾고 싶어서 1년여 동안 유기농가에서 일손을 도우며 농사 현장에 있었고, 그때의 경험과 생각을 모아 지난 2월 '신촌. 유기농 영화제'를 개최했다. 그 여정을 함께 따라가며 우리 각자도 유기농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

날카로운 첫 농사의 추억

2012년 친구들이 변산공동체로 귀농했다. 그들의 행보가 왜 농사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한 달간 그곳에서 생활해 보기로 했다. 생애 첫 농사 경험이었다. 그러나 농사일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뜨거운 여름 햇볕 속에서 감자밭 잡초를 뽑기 시작한 지 20일이 되었을 때, 그동안 참아 왔던 눈물을 쏟아 내며 더 이상 못 하겠다고 포기 선언을 했다.

도시에서 언제든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식재료들이 이렇게 힘들게 얻어지는지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 어쩌다가 먹거리에서 이렇게 멀어졌을까. 지금은 상품성이나 인증을 강조하기보다는 먹거리 생산 전반을 명확하게 되짚어 보는 게 필요한 건 아닐까, 그런 맥락에서 유기농을 다시 읽어야 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유기농이 담고 있는 정말로 중요한 것을 찾고 싶어졌다. 그것이 나를 떠미는 힘이 되어 2015년 3월 영국으로 떠났다. 영국이 첫 행선지가 된 건 1971년 '우프(WWOOF, willing workers on organic farms)'가 처음 시작된 곳이기 때문이다. 우프는 유기농가에서 숙식을 제공받는 대신 일손을 돕는 프로그램이다. 나는 우프로 1년여 동안 영국, 네덜란드, 일본과 제주, 구례를 다녔다.

▲ 실링퍼드 오가닉스 농장은 한 바퀴 도는데 2시간 정도가 걸릴 만큼 규모가 컸다. 그러나 실제로 농지로 사용되는 땅은 30% 정도고 나머지는 그대로 두거나 양을 방목하고 있었다. ⓒ김지연

농기구 쓰고 일꾼 식사 신경 쓰는 농부에게 배우다


질문에 답을 찾은 곳은 영국 엑서터 근교에 있는 '실링퍼드 오가닉스' 농장이었다. 유기농업은 흔히 소농이나 공동체 차원에서 이뤄지게 마련인데, 이곳은 대농이었다. 농장을 운영하는 농부 마틴은 의도적으로 작업의 반 정도는 기계를 사용해 하고, 맨손보다 최대한 도구를 활용하도록 했다. 이전 농가에서는 작물에 피해를 준다며 장갑조차 끼지 못하게 해서 한 달 가까이 내 손은 상처투성이였고, 손금과 손톱 사이에 낀 흙은 몇 번이고 씻어 내도 씻겨 나갈 줄 몰랐다. 이게 진정한 농부의 손이라며 애써 속상함을 감춰 왔는데, 마틴은 유기농업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고생스럽지 않기를 바랐다. 거의가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유기농업의 이면에 노동이 착취되는 구조가 자리하고 있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생산품의 질에만 집중한 나머지 공장식 농업 방식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그는 나와 같은 우퍼들의 작업환경뿐만 아니라 먹거리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건강한 먹거리를 위해 애쓰는 우리들이 누구보다 건강하고 좋은 음식을 먹기를 바랐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100% 유기농으로만 먹었다. 여러 농장을 다녔지만 유기농 먹거리를 제공한 데는 이곳이 유일했다. 판매를 위해 유기농 방식을 선택했을 뿐 일반 농장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노동환경에 인스턴트 음식을 제공하면서 갖은 생색을 내는 국내외 농장 몇 군데를 경험하고 나니 이곳이 더 특별하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무엇을 위해 유기농업을 하는 걸까. 유기농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단순히 농약이나 제초제를 쓰지 않고 생산하는 걸 유기농업이라고 말해버려도 괜찮은 걸까.

마틴은 사람뿐 아니라 자연 역시 귀하게 여겼다. 농부라기보다는 다음 세대와 지구를 위해 '땅을 지키는 파수꾼'이고자 했다. 내 눈에도 그는 땅을 위해서 유기농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매년 기후변화에 따른 땅의 변화를 자세히 설명하고 이를 걱정하는 내용의 글로 농장 소식을 전하는 그를 보면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를 보며 세계 최초로 유기농업국을 선언한 부탄의 한 젊은 농부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가 유기농업을 하는 이유는 단순히 국가정책이어서나 농산물의 가격이 좋아서가 아니라 농사를 짓는 농민 스스로의 건강과 환경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유기농에서 정말로 중요한 건 사람과 자연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었다.

▲ 지난 2월 26일 '신촌. 유기농 영화제' 둘째 날의 모습. 세 번째 영화가 시작되기 전 참석자들 사진을 찍었다. ⓒ김지연

지역에서 영화로 유기농 하자

여행에서 돌아온 뒤 '신촌. 유기농 영화제'를 개최했다.

일본에서 우프를 할 때 우연히 국제유기농업영화제를 알게 되었다. 유기농업을 주제로 한 영화제라니 무척이나 생소하고 독특했다. 2007년에 시작되어 2016년 10회째를 맞이한 영화제를 지켜보면서, 유기농에 관한 내 경험과 생각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소통하는 매개체로 누구나 부담 없이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영화가 안성맞춤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제 장소로 영화 전용 상영관이 아닌, 지역 공간을 활용했다. 그 배경에는 유기농이 지역사회를 변화시켰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사회적 이슈를 주제로 한 영화제라도 개인의 감상으로만 끝나 버려 아쉬울 때가 있었다. 어떻게 하면 영화가 던진 질문들을 각자의 일상으로 가져오고 답을 찾아가는 작업으로까지 이르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영화제 이후에도 지역 공간이 유기농과 관련한 담론과 실천이 이어지는 사회적 실험 장소로서 역할을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난해 9월 말부터 약 5개월 동안 서울 신촌 지역 마을카페인 '체화당'의 매니저 민주와 영화제를 준비했고, 지난 2월 영화들을 교재 삼아 우리 먹거리를 되짚어 보고 유기농을 함께 공부하는 기회를 가졌다. 홍보한 지 5일 만에 사전 예매가 각 공간이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을 넘어서는 등 예상치 못한 뜨거운 반응에 놀랐고, 영화제 이후 각자의 지역에서 이야기를 이어가고픈 사람들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지역마다 다양한 형태의 유기농 영화제를 만날 수 있다면 이보다 멋진 일이 또 있을까. 그리고 지금 나는, 유기농 영화제를 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혹시 도움이 될까 해서 ‘신촌. 유기농 영화제’를 어떻게 기획하고 진행했는지 기록한 책을 준비하고 있다. 이 책으로 또 한 번 사람들과 유기농에 대해 소통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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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이야기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우리나라 대표 생협 한살림과 함께 '생명 존중, 인간 중심'의 정신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살림은 1986년 서울 제기동에 쌀가게 '한살림농산'을 열면서 싹을 틔워, 1988년 협동조합을 설립하였습니다. 1989년 '한살림모임'을 결성하고 <한살림선언>을 발표하면서 생명의 세계관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살림은 계간지 <모심과 살림>과 월간지 <살림이야기>를 통해 생명과 인간의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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