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하는 일, 먹는 일이 세상에서 젤 좋은' 엄마와 아이들

[격월간 민들레] 공동부엌육아

자립의 기초, 요리

'학원을 언제 보낼까?'가 아니라 아이에게 '부엌칼을 언제 사줄까?'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나는 그런 엄마였다. 20대를 보냈던 한국의 1990년대는 공동육아나 대안학교, 어린이책 문화운동처럼 획일적인 교육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찾는 사회의 움직임이 활발한 때였다. 그런 시대 흐름 덕분에 대안적인 삶과 교육을 이야기하는 많은 책을 읽고, 결혼한 선배들이 생협을 이용하며 기존 교육과는 다른 방식으로 아이들을 키우는 노력을 지켜보면서 한 가지 결심한 것이 있었다. '내가 만약 아이를 키운다면 거창한 이론에 의지하기보다 실생활에 밀착된 교육과 육아를 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2001년 결혼을 하고 일본에서 살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때 아이에게 필요한 가정교육, 생활교육에 대한 정보를 찾다가 인상적인 제목의 책을 발견했는데, 그게 바로 사카모토 히로코의 <부엌육아>라는 책이었다.

"요리는 자립의 기초다. 핵가족일수록 아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런 짧은 문장 몇 줄만 읽고도, '내가 찾던 게 바로 이거구나!' 싶었다.

1970~80년대 고도성장기를 지나면서 일본 사회에는 맞벌이 가정이 늘어나고, 바빠진 부모들이 손쉽게 식사를 준비할 수 있도록 완전 조리식품이나 인스턴트식품이 엄청나게 쏟아졌다. 한국에서는 요즘에야 아이들의 식생활 문제, 1인 가구의 증가, '혼밥'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지만, 일본은 80~90년대에 이미 시작된 현상이다. 아토피나 알레르기 질환을 가진 아이들이 늘어나고 불규칙, 불균형한 식생활은 건강뿐 아니라 성격이나 학습 태도, 인간관계에까지 다양한 문제로 드러나게 되었다고 한다.

<부엌육아>는 1990년 일본 사회의 이런 현실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한 책이었다. 평범한 주부였던 저자가 부엌이란 공간에서 자신의 아이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며 경험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바빠진 현대 사회의 부모들에게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우는 내용을 담았다. 아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영재교육이 아니라, 먹고살기 위한 삶의 기초로서의 요리이고, 부모가 아이에게 요리를 가르침으로써 '천천히 흐르는 시간과 사람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나는 그녀의 말에 100% 공감했고, 2003년 태어난 딸아이와 함께 '부엌육아'를 시작했다. 돌이 되기 전부터 아이는 식물도감을 보는 대신 부엌에서 쌀이나 채소를 만지면서 놀았고, 토마토를 손으로 주무르고 으깨서 스스로 만든(!) 이유식을 먹으며 자랐다. 부엌 바닥에서 기거나 앉아서 놀던 아이가 서고 걷게 되면서는 싱크대에서 채소를 씻거나, 설거지 흉내를 내며 놀았다. 만 세 살부터는 안전한 유아용 부엌칼로 두부, 바나나처럼 다루기 쉬운 재료들을 썰기 시작했고, 만 다섯 살 무렵에는 엄마가 지켜보고 도와주면 국을 끓이거나 달걀을 굽고, 쿠키나 케이크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생활교육에 대한 관심과 실천이 아직 대중화되지 않은 한국 부모들에겐 유아기의 아이가 부엌에서 물과 불, 칼을 다룬다는 이야기가 놀라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제 겨우 두세 돌밖에 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문자뿐 아니라 외국어까지 가르치고, 한두 해 정도 선행학습 하는 것을 보통으로 여기는 한국의 현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학습 위주의 교육이 일상생활에서는 아이들을 거의 무능할 지경으로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냉장고에 먹을 게 잔뜩 쌓여 있어도 차려줄 사람이 없으면, 하루 종일 굶고 있는 10대들이 많다. 거창한 요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자기 주변에 있는 먹을거리를 스스로 찾아서 차려 먹고 치우는 정도만 할 줄 알아도 그게 어딘가.

지금 젊은 부모들이 살림과 육아를 유난히 힘들어하는 배경에는 사교육에만 올인(all-in)하며 생활교육을 등한시했던 부모 세대의 책임도 크다고 생각한다. 자라는 동안 제대로 배운 적이 없으니, 어른이 된 후에도 부엌일에 익숙해지기까지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고 그래서 자신의 아이들에게 가르칠 여유도 없는 게 아닐까. 그런 면에서 부엌육아는 지금 우리의 현실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한 대안이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사진 왼쪽은 만 두 살부터 부엌육아에 참여한 일곱 살 아이. 칼을 쓰는데 능숙하다. 오른쪽은 일본에 보편화된 어린이용 부엌칼. ⓒ윤영희

쉬운 것부터 하나씩

10년 넘게 아이와 부엌에서 함께 요리를 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그게 아주 어렵고 힘든 일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쌀을 씻어 밥물을 맞추고 밥솥에 안치기, 냉장고에서 필요한 재료를 꺼내 씻고 다듬기 같은 아주 기본적인 준비부터, 반찬을 그릇에 나눠 담고 수저를 놓는 일 같은 위험하지 않으면서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많다.

유아 때부터 이 정도의 일은 충분히 할 수 있고, 어른의 선입견과는 달리 어린아이들일수록 부엌일을 무척 즐긴다. 바쁜 어른의 생활 리듬에 맞추려면 부엌을 향한 아이들의 관심이 부담스럽고 겁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집집마다 나름의 룰을 정해서 주말 하루만이라도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부엌일을 가르치고, 그런 일상이 초등학교 졸업 시기인 열세 살 정도까지만 이어져도 놀랍도록 많은 능력을 기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기본적인 생활능력은 아이가 평생 자기 것으로 가져갈 수 있다. 기초체력, 기초학력과 마찬가지로. 생활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쉬운 것부터 하나씩 하나씩'이라고 생각한다. 빨래를 가르친다고 해서 처음부터 이불 빨래를 시키는 건 아니니까.

우리 집 부엌육아의 두 번째 주인공인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은 요즘 주말이면 점심 준비를 돕곤 한다. 부엌일을 야무지게 돕던 누나에 비하면 자기가 재밌어하는 일만 골라 하려 들고, 마지막 단계까지 완성하기도 전에 귀찮아하며 줄행랑을 치거나 부엌까지 장난감을 가져와서 어지럽히곤 했다. 그래서 더 쉽고 간단한 작업을 맡겨서 아이 스스로도 성취감을 느끼고 나도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도록 했다. 다 삶아진 스파게티 면을 식구들 수대로 나눠서 담는 일 정도는 가르칠 필요도 없을 만큼 사소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살다 보면 다 된 빨래를 세탁기에서 꺼내줄 누군가가, 다 준비된 밥과 반찬을 차리기만 해줄 누군가가, 식탁 위에 수북이 쌓인 책과 서류 더미를 옮기기만 해줄 누군가가 늘 간절하지 않은가. 식구들에게 층층이 쌓이는 불만은 어쩌면 이렇게 사소하고 하찮은 도움과 배려를 자발적으로 보여주지 않는 데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난이도가 높은 집안일까진 못하더라도 쉽고 간단한 수준의 일들을 내 일로 여기고 연습하게 하는 생활교육은 스스로 공부하는 힘을 키우고 삶을 주체적으로 관리하는 일과도 맞물려 있다고 생각한다.

싫든 좋든 요리, 청소, 빨래 이 세 가지는 인간이면 누구나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일이다. 어차피 피해갈 수 없는 일이라면, 좀 더 익숙하고 즐겁게, 합리적으로 해낼 수 있는 연습 기회를 아이들에게 줘야 하지 않을까. 아주 쉬운 것부터 하나씩 하나씩 말이다.

공동부엌육아 모임을 만들다

집에서 아이와 둘이서만 해오던 부엌육아를, 둘째가 태어난 뒤로는 몇몇 뜻 맞는 엄마들과 모임을 만들어 하게 되었다. 생협을 통해 알게 된 엄마들과 영유아부터 열 살 정도의 아이들까지 스무 명 가까운 인원이 모였다. '먹방'과 '쿡방'이 만연한 시대에 아이들만은 그런 분위기에서 소외되어 있는 건 아닌지, 어른들이 해주는 음식을 먹는 대상일 뿐인 아이들이 요리의 주체가 될 순 없을지, 이젠 아들들에게도 적극적으로 요리를 가르쳐야 하는 시대가 아닐지, 이런 의문에 모두 공감했다. 무엇보다 우리 모임 멤버들은 일본의 국민 그림책 작가라 할 수 있는 나카가와 리에코의 <구리와 구라> 시리즈에 나오는 표현처럼 '요리하는 일, 먹는 일이 세상에서 젤 좋은' 엄마와 아이들이었다. 팍팍한 현실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웃을 일이 별로 없는 일상에 아이와 어른이 함께 어울려 느긋하게 먹고 싶은 걸 함께 만들어 먹고, 편하게 수다 떨고 놀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어른과 아이들이 모여 안전하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간단한 조리가 가능한 부엌과 화장실이 갖춰진 공간이 일단 필요했다. 산만한 분위기에 비싼 비용을 내고서도 형편없는 음식을 먹어야 하는 '키즈카페'가 아닌, 우리가 주도적으로 분위기를 만들고 음식도 직접 해 먹을 수 있는 곳이었으면 싶었다.

일본은 동네마다 '공민관'이라 부르는 시민센터 같은 곳이 있는데, 낡고 오래된 곳이라도 꼭 조리실이 딸려 있다. 한국으로 치면 동네 주민센터 2층에 부엌시설과 식기, 조리기구 등을 구비한 공간이 갖춰져 있다고 보면 된다. 우리는 대부분 이곳에서 모였는데, 사용 후 공간을 정리하는 조건으로 언제든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동네 주민들이 만든 커뮤니티라면 누구나 예약을 통해 사용할 수 있는데, 우리 모임이 오래 지속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런 공공 공간의 덕이 컸다.

근사한 주방과 완벽한 요리기구들이 갖춰져야 요리가 잘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맛있는 음식은 비좁고 가난한 옥탑방 부엌 같은 데서 만들어지기도 한다. MBC <나 혼자 산다>라는 TV프로그램의 육중완이 살던 부엌을 떠올려 보시라. 2000원으로 만드는 생존요리책을 시리즈로 냈던 블로거 '나물이네'도 귀신이 나올 것 같다던 옥탑방에서 요리를 했다. 값싼 재료로 만든 음식들이었지만, 그가 만든 음식은 품위가 있었다. 모임 운영은 그날 사용한 전체 비용을 한 가정당 얼마씩 계산해 나누곤 했다. 요리 재료에 따라 싸지기도 하고 조금 비싸지기도 하는데, 한 가정당 비용이 평균 1~2만 원을 넘지 않게 해서, 어느 가정이나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모임을 처음 시작했을 때, 아이들이 대부분 유아기이기도 해서 몇만 원으로도 여럿이 충분히 맛있게 먹고 과일, 케이크, 빵까지 직접 만들며 풍성하게 즐길 수 있었다. 나중에는 가입해 있던 생협에서 연간 얼마씩 적은 돈이지만 지원을 받기도 했다. 키즈카페를 가거나 놀이시설을 전전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기에 비용 때문에 고민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스스로 만든 모임이니, 결국 모든 멤버가 스스로 자기 역할을 찾아야 했다. 돈 관리에 자신 있는 사람은 총무를 맡고(그래 봐야 10만 원도 넘지 않는 살림이지만), 요리에 능숙한 사람은 레시피와 당일 전체 조리 진행을 맡고, 식재료 구입은 모임 전에 분담해서 문자 메시지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아직 아기가 어린 젊은 엄마들은 특별한 고정역할을 맡진 않지만, 뒷설거지나 쓰레기 정리를 알아서 도맡아 하곤 했다.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할 일을 찾아 조용히 해내는 멤버들이 많을수록 모임이 잘 굴러간다. 부엌육아는 손으로, 몸으로 해야 할 자잘한 일들이 많은 모임이기 때문이다. 이런 성실함과 신뢰관계는 우리 모임의 가장 큰 매력이자 꾸준히 이어지는 원동력이 되었다.

▲ 공동부엌육아가 열린 날, 음식을 만들고 먹고 치우기를 모두 함께한다. ⓒ윤영희

우리 부엌육아 모임의 특징은 아이와 어른이 어우러져 함께 음식을 만든다는 점이었다. 기본 원칙은 아이들에게 억지로 요리를 가르치거나 시키지는 않는다는 것. 언제든 아이들이 원할 때, 자연스럽게 그 아이의 연령에 맞게 채소 씻기나 다듬기, 썰기, 볶기 등을 어른이 지켜보면서 돕거나 함께 만든다. 내 아이, 남의 아이 구분 없이 함께 돌보고 때로는 나이가 더 많은 아이들이 동생들과 짝을 맞춰 서로 도우면서 배우기도 하는데, 이것이 공동부엌육아의 가장 훌륭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많아야 둘, 셋밖에 안 되는 형제 관계를 벗어나 열 명 남짓한, 성별과 나이가 다른 아이들이 함께 놀이하듯 요리를 하며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어디서 경험하겠는가. 요즘 아이들을 위한 각종 요리교실들이 유행하는 모양인데, 그런 곳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자연스러움과 따뜻한 관계를 아이들도 느끼는 것 같았다.

한 달에 한두 번 만나는 이 시간을 아이들도 얼마나 기대하고 손꼽아 기다리던지. 한 달에 한두 번 모임을 가졌던 우리는 제철 음식을 주재료로 1년 치 저장식을 다 같이 만들곤 했다. 겨울에는 된장을 담그고, 딸기가 맛있는 초봄에는 잼을 만드는 식이었다. 매해 3월, 1년 동안 먹을 마멀레이드를 만드는 날이면 엄마들이 모여 앉아 폭풍 수다를 떨면서 오랜 시간 밀감 껍질을 벗긴다. 아이들은 저만치 떨어진 곳에 돗자리를 깔고 서로 가져온 장난감을 가지고 노느라 엄마들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나. 이럴 때가 공동부엌육아를 하며 가장 행복한 때다.

새 학기에 적응하느라 힘든 아이들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의 근황이나 육아 정보도 공유하고, 맛집이나 건강, 쇼핑 관련 고급 정보도 엄청 쏟아진다. 유치원, 학교, 동네 엄마들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얘기들을 원 없이 나눌 수 있었는데, 어쩐지 이 모임만 오면 속 시원히 풀고 위로까지 받고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백일이 겨우 지난 아기를 데리고 오거나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도 함께 참여할 수 있었던 건, 이렇게 편안하고 따뜻한 분위기 덕분이었다. 큰아이가 중학생이 될 만큼 시간이 많이 지난 뒤 생각해보니, 외로운 타향살이와 독박육아의 어려움을 이 모임 덕에 그럭저럭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더없이 좋은 텃밭육아

생협 엄마들과 부엌육아를 몇 년째 해오면서 머릿속에 늘 떠나지 않는 생각이 있었다. '작은 규모라도 언젠간 먹을거리를 직접 길러 먹을 수 있는 텃밭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텃밭농사와 연관된 블로그를 검색하던 중 공감 가는 글을 만나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저는 독서보다 더 많이 해야 하는 것은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경험하고 삶으로 부딪친 후에 읽은 책과 그전에 읽은 책은 전혀 달랐습니다. 책을 읽어도 답답할 때면, 더 이상 종이에서 답을 얻을 것이 아니라 몸으로 답을 얻으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농사는 보이지 않는 시간을 눈에 보이는 채소로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어떤 것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순리적 시간'이 흘러야 한다는 걸 가르쳐줍니다."('올빼미화원' 블로그에서)

그래서 시작하게 된 텃밭농사. 생협 조합원이 소유하고 있는 텃밭 한 귀퉁이를 빌려 대여섯 가족이 함께 시작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텃밭으로 나온 부엌육아였다. 사실, 농사에 특별한 지식도 경험도 없는 우리가 주말마다 밭일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텃밭은 그 어떤 근사한 키즈카페보다 훌륭한 놀이터가 되어주었다. 집 안의 좁은 부엌보다 100배는 신기하고 재밌는 것들이 많은 자연의 부엌이었던 셈이다. 한창 햇볕이 뜨거운 여름이면 텃밭은 날마다 토마토와 오이, 호박을 낳는 자연분만실이었고, 아이들과 우리는 채소들의 성장과 출산을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어떤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순리적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 아이를 키우는 데도 그런 순리적 시간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밭에 갈 때마다 온몸으로 배우는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직접 수확한 채소들로 텃밭 한쪽에서 바비큐 파티를 열고,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아이들이 물놀이를 즐기며, 곤충을 찾아 맨발로 뛰어다니는 모습 이 도시의 일상에 지친 엄마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텃밭이라는 공간이 특히 좋았던 건, 도시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적은 비용으로 놀이와 운동, 인간관계, 식사, 자연학습은 물론 지성과 감성까지 키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텃밭과 부엌에서 만난 새로운 육아 방법을 통해 아이와 어른 모두가 정말 많이 배우고 변했다. 읽을수록 머리가 복잡해지는 육아책에서 얻는 것보다 더 많은 지혜를 나는 텃밭에서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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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격월간 교육전문지 <민들레>와 함께 대안적인 삶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민들레>는 1999년 창간 이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구현하고자 출판 및 교육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이라는 통념을 깨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다양한 배움'의 길을 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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