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앞에 사죄 않는데 용서와 사면을 들먹이는가?

[안종주의 안전 사회] 4월에 새겨보는 세월호 참사의 의미<上>

차가운 바다 밑에 3년씩이나 수장되어 있던 세월호가 마침내 물 위로 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운명처럼 세월호의 달, 4월이 시작됐다. 영국 시인 엘리엇이 말한 대로 4월은 잔인한 달이었다. 세월호 유가족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사람에게. 이제 4월은, 세월호는 희생자와 유족만의 시간과 사건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에서 안전의 소중한 가치를 일깨운 역사적 일대사건이다. 세월호 참사를 안전에만 가두는 것도 정말 속 좁은 짓이다.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 안전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교육 등 그 모든 것이 녹아 있는 역사의 용광로이다.

세월호는 사람들마다 서로 다른 의미로 다가갈 것이고 새겨질 것이다. 세월호 노란 리본만 보면, 아니 노란 색만 보아도 질겁하는 박근혜-최순실과 그 추종자와 같은 유형의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노란색에서 빨갱이를 떠올린다. 대한민국에 노란 색이 빨간 색으로 보이는 적노색맹 돌연변이들이 새로 탄생했다. 그들과는 반대로 노란 리본만 보면 지난 3년간 참 많이 눈물 흘렸음에도 또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다. 분노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있다.

박근혜 정권이 그토록 그대로 두고 싶어 했던 세월호가 어느 날 쑥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내자 한 지인은 나에게 카톡을 보냈다. "선생님 자꾸만 눈물이 나요." 세월호 참사에 그 어떤 감정을 드러내든 세월호는 이미 대한민국 역사의 일부가 됐다. 그것도 교과서나 박물관에서 배우는 역사의 평가나 유물이 아니라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역사의 현장으로 말이다.

세월호 참사, 국가의 참된 역할을 묻다

세월호 참사는 국가란 무엇인가를 다시금 되새겨보게 만든 결정적 사건이다. 어떤 사람이 국가 지도자가 되어야 하고 어떤 세력이 국가와 사회를 이끌어야 하는가를 많은 시민들이 깨닫게 해주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희생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하고 또 해야 한다. 그 억울하고 원통한, 비극을 맞은 세월호 희생자와 유족 앞에게 그 어떤 추모와 위로의 말글로 다 이야기할 수 없다.

세월호 참사보다 더한 비극은 적어도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없다. 물론 이런 비극의 당사자 앞에서 조롱을 하고 세금을 축낸다는 둥 비아냥거리는 이들도 분명 있다. 그들은 한줌도 안 된다. 하지만 이런 일그러진 행태와 행동에 발을 맞추는 친박 정치인과 세력들도 있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이들의 저주 섞인 댓글과 말들이 있다. 반성과 사죄는커녕 또 다시 권력을 잡으려는 후안무치한 행태를 웃음 띠며 보이는 이도 있다.

세월호 참사는 특별하다. 대통령의 7시간 때문이다. 7시간이라는 시간적 길이는 우리가 복기하기 어려울 만큼 긴 시간도 아니다. 더군다나 불과 3년 전의 일이지 않은가. 기억상실증이란 치명적 질병에 걸리지 않은 한 되살릴 수 있는 시간이다. 하지만 지금은 구치소에 있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그를 보좌하던 핵심 참모와 경호원, 수발자 등 그 어느 누구도 둘러대는 말들만 하고 있다.

세월호 영령 앞에 사죄 않는데 용서와 사면을 들먹이는가?

이들은 아직 역사 앞에, 생명 앞에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인간들이다. 인간이라면 응당 지녀야 할 최소한의 양심마저 버린 이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고 역사 앞에 진실조차 고해하지 않는데 벌써 모든 것을 용서하자거나 사면을 들먹이고 있다.

세월호가 3년 만에 물 위로 떠오른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참사 당해 연도에 적극적으로 선체를 끌어올릴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오로지 진실이 드러나는 것과 정권 부담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아니면 1980년 광주비극을 일으킨 장본인인 전두환이 정권을 탈취한 뒤 임기 7년 동안 단 한 차례도 그 비극을 치유하기 위한 최소한의 몸짓과 말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다른 중요 국정 때문이었다고 구린내가 진동하는 구차한 변명을 한 것처럼 박근혜도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뒤 회고록에서 따라 할 것인가.

대통령의 7시간은 우리가 정치 세력과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지도자들을 잘못 뽑으면 얼마나 생명과 안전이 도탄에 빠질 수 있는가를 너무나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이들도 있는 것 같다. 특히 지금도 서울구치소 앞에서 '박근혜 여왕님을 대통령으로 다시 돌려놓으라.'고 외치는 이들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은 그와 같은 비극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부류들이다.

국민의 생명이 바람 부는 들판에 놓인 촛불 신세임에도 무덤덤하기만 했던 박근혜와 그 부역자들의 행태는 그런 착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분명 교훈을 주어야 함에도 그들은 여전히 대통령의 7시간에 대해 더는 캐지 말자, 여성의 사생활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에 물개박수를 보낸다. 생명 존중을 외치면 죄다 빨갱이로 몬다.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에게 과도한 애도와 추모, 세금 낭비를 한다고 부르댄다.

타인의 비극에 대해 눈 감는 사람들, 통합 쉽지 않아

만약 자신의 가족과 형제자매에게 세월호 참사와 같은 비극이 닥친다면 그들은 어떤 언행을 보일까. 단순 교통사고로 죽은 것이니까 주검을 그냥 땅에 묻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지낼 것인가.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죽인 정권을 향해 정치지도자들은 아무 잘못이 없으니 그냥 조용히 넘어가자고 할 것인가. 분명 그렇지 않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 분명한 교훈을 하나 더 남겼다. 타인의 죽음에 대해 안타까움과 애도를 하는 이들과 옆집 개의 죽음만도 못한 것으로 취급하는 이들이 우리 사회에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우리에게는 분명 시급한 해결과제가 있다. 이런 비이성적 언행을 보이는 사람들을 어떻게 통합해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임에 분명하다.

이들도 우리 사회의 일원이기 때문에 유령 취급을 할 수는 없다. 타인의 생명에 대해서도 경외심을 갖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 왜 이들이 이런 비뚤어진 행태를 보이는지를 세밀하고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박근혜와 그 일당은 영원한 역사 죄인들

박근혜뿐만 아니라 그 일당들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숨기려했던 일, 수사를 방해하려 했던 일, 참사 뒤 선체 인양과 사고 원인 조사를 지연하거나 방해하려 했던 일 모두에 대해 끝까지 추적해야 한다. 그래야 그와 같은 권력 행태와 인간 행태가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고 이 땅에서 사라질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죄인은 역사에 죄상이나 나쁜 일이 기록되는 역사죄인이다. 세월호 참사는 역사적 일대사건이다. 이 사건과 관련해 온전한 선체 인양과 조사, 나아가 대통령과 그 참모들의 7시간, 구조·재난 대응기관의 대처, 사후 수습의 적절성, 국회 차원의 대응 등이 어떠했는지를 낱낱이 밝혀내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시민들이 깨어 있어야 한다. 어떤 세력이, 어떤 언론과 언론인이 세월호 참사를 비하하는지를 감시하자. 곧 3주기, 그것도 비극이 발생했던 공간이 우리 눈앞에 덩그러니 놓인, 슬픔 속 기쁨이 엇갈리는 3주기를 맞는다. 어떤 정치지도자와 정치 세력이 그 때 어떤 언행을 보이는지 두 눈 똑똑히 뜨고 보자. 어떤 언론과 언론인이 세월호 참사를 진정한 역사적 사건으로 자리매김하며 다루는지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살펴보자. 그것이 역사적 사건 세월호 참사를 올바로 맞는 시작이다. 세월호가 우리 가슴에 살아 숨 쉬게 하는 길이다. 역사 속에 영원히 살아 있게 만드는 길이다.

▲ 목포 항구에 도착한 세월호.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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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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