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잔인한 달, 북한이 위험해진다

[정세현의 정세토크] "차기정부 북핵 '골든 타임' 잡으려면…"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취임 후 처음으로 아시아 순방길에 올랐다. 틸러슨 장관은 한국에서 대북 정책과 관련, 전임 정부인 버락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는 끝났다며 대화부터 선제타격까지 모든 선택지를 올려놓겠다고 밝혔다. 이에 트럼프 정부가 군사적 수단을 동원한 강경한 대북 정책을 입안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틸러슨 장관의 발언은 곧 "아직 미국이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았다"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지금 미국 국무부는 장관 하나밖에 없다. 쉽게 생각하면 모자만 덜렁 있는 상황이다. 머리도, 몸통도, 손발도 없다"고 진단했다.

정 전 장관은 "현실적으로 미국이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도,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대화도 힘들다면 제재와 대화를 어떻게 배합할 것이냐는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해볼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되면 결국 중간에서 다리를 놓는 한국과 중국이 일정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를 위해 남한의 차기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정 전 장관은 "북핵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려면 한국이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며 "그러려면 미국과 중국 중에 어디를 먼저 만날지 따질 것이 아니라 일단 물밑으로 북한의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우리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판을 벌였을 때 대화 테이블에 나올 것인지, 참여 의사 정도는 미리 확인해야 한다"며 "북한이 '못할 것 없다' 정도의 분위기를 전달해주면 그걸 가지고 중국, 미국과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남북은 이렇다 할 대화를 해보지 못했다. 이 기간 동안 남한 사회 내에서 북한에 대한 반감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 것 또한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 간 물밑 접촉이 가능하겠느냐는 질문에 정 전 장관은 "진정성을 가지고 국민들을 설득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이 예뻐서 뭔가를 주려는 것이 아니다. 남북이 처한 지정학적 특수성을 고려했을 때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것은 곧 남한의 외교적 위상과 권능이 높아지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정 전 장관은 "이러한 실체적인 진실을 알리고 우선 영유아나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민간인들의 대북 인도적 지원을 적극적으로 개방하고 허용한다는 방침을 발표할 필요가 있다. 이게 남한의 새로운 정부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다르다는 일종의 '시그널'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차기 정부가 이러한 입장을 가지고 북한과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한다고 해도 북한이 다음달 6차 핵실험을 감행한다면 상황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특히 다음달에 있을 미중 정상회담에 맞춰 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한다면 이는 "죽도 밥도 안되는 꼴"이라는 것이 정 전 장관의 판단이다.

그는 "트럼프가 아무리 사업가 출신이라고 해도 중국과 정상회담의 축포랍시고 북한이 핵 실험을 감행하면 협상에 나서겠나?"라며 "따귀 맞고 협상장에 나갈 사람은 없다"고 일갈했다.

정 전 장관은 "지금 트럼프 정부는 이전 미국 정부와 다르다. 온건한 대화주의자인 클린턴 때, 그리고 강경한 보수주의자였음에도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강하게 나가니까 먼저 만나자고 손을 내밀었던 조지 부시 정부 때의 추억을 북한이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트럼프는 이들과 출신 성분이 다른 정치인"이라며 "만약 북한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정말 착각하고 있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지금 트럼프는 국내 정치적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본인이 추진하려던 정책들이 번번이 의회에 가로막혀 있다. 국내적으로 힘든 상황을 뚫고 나가려면 외부 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며 "그런데 이와중에 북한이 핵 실험을 한다? 트럼프를 살려주는 셈이다. 북한은 미국에 이용당한 채 희생양으로 전락하기 싫다면 핵 실험 카드를 꺼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27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이후 대선 국면이 본격화됐습니다. 이 와중에 미국의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취임 이후 최초로 한국을 찾았고, 미국 6자회담 수석대표인 조셉 윤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도 한국을 방문해 주요 대선 주자 및 캠프 관계자들과 만남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틸러슨 장관의 방한 및 아시아 순방이 별로 성과가 없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과 만찬 문제를 두고 뒤끝을 남겼을뿐만 아니라, 미국 내에서도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과 회담에서 사실상 왕이 부장에게 말린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데요. 심지어는 미국이 외교적으로 패배했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정세현 : 일단 틸러슨 장관은 기존의 국무장관들과 좀 다릅니다. 정치인 출신인 국무장관들은 워싱턴에서 그래도 정치 바닥에서 굴러봤던 감이 있는데, 틸러슨은 사업만 하던 사람이니 국제관계, 외교 판의 기본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일단 틸러슨 장관이 왕이 부장에게 사드 이야기는 한 것 같습니다. 당시 회담과 관련해 안팎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사드 이야기를 하다가 잠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고도 합니다. 결국 공식 기자회견에서는 미국과 중국이 긴밀히 협력한다는 것으로 정리했지만요.

그런데 이렇게 정리된 것을 두고 '미국이 중국에 굽히고 들어갔다', '중국에 외교적으로 패배했다'는 평가를 내리기는 좀 어려워 보입니다. 지금 미국 국무부는 장관 하나밖에 없습니다. 쉽게 생각하면 모자만 덜렁 있는 상황입니다. 머리도, 몸통도, 손발도 없습니다. 반면 중국은 진용을 갖추고 언제든 '액션 플랜'을 가동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미국이 시기적으로 봤을 때 지금은 세게 나갈 수가 없는 상황인 겁니다.

틸러슨 장관이 한국에 와서 "전략적 인내는 끝났다"면서 북핵 문제 해결과 관련한 모든 선택지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이 주목받았는데, 이후에 조셉윤 특별대표 방한까지 이어진 미국의 행보와 관련해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미국이 무력 사용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미국 내에 합리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외과에서 수술을 하는 식으로 핵심을 정밀 타격한다는 이른바 '서지컬 스트라이크(surgical strike)'는 어렵다고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미국과 북한의 무조건적인 대화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선제타격도, 무조건적인 대화도 안 된다면 제재와 대화를 어떻게 배합할 것인지의 문제로 갈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되면 결국 중간에서 다리를 놓을 수 있는 한국과 중국이 일정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북핵 문제의 주요 행위자는 미국과 북한입니다. 한국과 중국은 중재자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북핵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려면 한국이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려면 미국과 중국 중에 어디를 먼저 만날지 따질 것이 아니라 일단 물밑으로 북한의 상황을 파악해야 합니다. 우리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판을 벌였을 때 대화 테이블에 나올 것인지 정도의 의사 파악은 미리 해야 합니다. 북한이 '못할 것 없다' 정도의 분위기를 전달해주면 그걸 가지고 중국, 미국과 이야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더군다나 지금 미국은 국무부뿐만 아니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도 아직 정비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한국에 들어서는 차기 정부 입장에서는 북한과 북핵 정책에 대한 로드맵을 마련해서 미국에 제의하기 좋은 일종의 '골든 타임'을 맞이한 셈입니다.

또 미국도 한국의 차기 정부가 어떤 정책을 펼지 확인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미국이 조셉 윤을 한국으로 보내 주요 대선 주자 및 캠프들의 동향을 체크한 것이 그 증거입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남북 간 대화 및 접촉이 상당 부분 끊겼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 간에 물밑 대화가 가능할까요? 일단 남북 모두 대화를 할 수 있는 인물이 있는지도 확실치 않아 보입니다.

정세현 : 오랜 기간 동안 대화가 끊기긴 했지만 그래도 남북 모두 여전히 대화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한에 들어설 새 정부는 이런 사람들을 버리지 말고 잘 활용해야 합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남북 접촉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전 정부 사람이라고 내치지 말아야 합니다. 문제를 풀어나가려면 선수들이 있어야 합니다. 척하면 알아들을 수 있는 선수들이 있어야지, 난데없이 싱가포르에서 북한과 마주 앉아 테이블에 현금이나 두고 오는 서툰 사람들이 남북관계 제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남북 접촉과 대화의 현장에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북한에도 있습니다. 물론 장성택이 남북관계를 많이 관여한 상황에서 장성택 라인이 없어지긴 했습니다만,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만나면 이야기가 됩니다. 이걸 물밑으로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물밑 접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우선 민간인들의 대북 인도적 지원을 적극적으로 개방하고 허용한다는 방침을 발표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게 남한의 새로운 정부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다르다는 일종의 '시그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북한도 일단 접촉에 응하려고 할 것입니다.

프레시안 : 지금 완전히 남북관계가 막혀있기 때문에 물밑대화라도 해야 한다는 진단이 설득력이 있지만, 여론이 너무 좋지 않습니다. 10년 전과 다르게 북한의 핵은 고도화됐고 3대 세습까지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과 전면적인 대화 및 교류를 한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정세현 : 진정성을 가지고 국민들을 설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단 남북관계 중요성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정확히 알려야 합니다. 북한이 예뻐서 퍼주려는 것이 아니라, 남한과 북한이 처한 지정학적 특수성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점을 설득해야 합니다.

이 지정학적인 특수성 때문에 남북관계가 연결돼있거나 교류가 있을 때는 남한이 나름의 몫을 챙길 수 있습니다. 남북관계를 개선하면 북한에 퍼주려고만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이건 남한의 외교적 위상과 권능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 지난 2015년 12월 11일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에서 열린 제1차 남북당국회담 이후 남북 당국 간 대화는 2017년 3월 현재까지 전무한 상황이다. 사진은 황부기(왼쪽 첫 번째) 당시 남측 수석대표와 전종수(오른쪽 첫 번째) 북측 수석대표를 비롯한 대표단이 회담 시작 전 악수를 나누고 있는모습. ⓒ사진기자협회제공

물론 인도적 지원부터 시작하려고 해도 그에 대한 반발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선은 인도적 지원도 영유아나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시작하면 됩니다. 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에 동참하고 있지만 여전히 민생 물자는 북한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들어가는 물자 중에는 군사적으로 전용이 가능한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취약 계층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군사적 전용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5.24조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전임 정부가 했던 조치이기 때문에 새 정부는 5.24조치를 중단하고 천안함 사건은 북한과 만나서 직접 따지겠다고 해도 됩니다. 그런데 이것도 너무 급작스럽다면 5.24조치를 비껴갈 수 있을 정도의 인도적 지원을 시작하겠다고 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남한의 반발도 최소화할 수 있고 북한의 호응도 일정 부분 얻어낼 수 있습니다.

왜 우리만 북한에 손을 내밀고, 왜 우리만 북한으로 가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비판은 좀 옹졸해 보입니다. 무슨 일이든 일을 주도하는 사람이 움직이는 겁니다.

북핵과 미사일 문제가 조금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무슨 남북 대화냐 라고 따지고 들면 우리는 평생 북한과 대화도 못하고 북핵 문제를 풀어내지도 못합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동안 그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는 바람에 북한은 대놓고 핵무기를 고도화시켰습니다. 다시 우리가 호랑이 굴로 들어가서 북핵 고도화를 막기 위한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합니다.

북핵의 위기 국면을 돌파해 나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주도하지 않으면 미국과 중국은 우리를 빼고 북한과 대화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가지 않도록 하려면, 우리가 우리 손으로 우리 운명을 결정할 수 있게 하려면 우리가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남한의 새로운 정부가 남북관계나 외교안보문제에 있어서 큰 그림을 국민에게 제시하면서, 남북 접촉이나 한중, 한미 접촉이 결국은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한 것이니까 불안해 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상황을 주도해 나가겠다는 진정성을 가지고 국민들에게 보고 해야 합니다.

저는 참여정부 때 두 번째 통일부 장관 임기를 시작하면서 소위 '남남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민들과 직접 대화했습니다. '열린 통일포럼'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장관급 회담이나 차관급 회담, 각종 회담이 끝나면 언론 관계자들을 비롯해 각계 각층의 사람들과 식사를 하며 직접 회담에 대해 보고하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굳이 왜 북한에 비료를 줘야 하느냐, 자재와 장비는 왜 넘겨야 하느냐 등등의 이야기가 있었고 저는 그들을 설득하는데 노력했습니다. 국민들이 먼저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정부가 이처럼 스스로 내세우는 정책에 대해 국민들에게 설명해가면서 설득해서 끌고 나가야 합니다. 이게 정치 지도자가 할 일입니다.

북한, 트럼프 희생양 자처할 것인가

프레시안 : 미국이 북핵 문제를 어떻게 접근할지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다음달에 있을 미중 정상회담이라는 관측도 있는데요. 그런데 과연 거기서 북한과 북핵 문제가 어느 정도 우선순위에 있는 의제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정세현 : 사드 이야기는 잠깐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미국 입장에서는 북핵은 해결하면 좋고 안 해도 그만인 문제입니다. 오히려 북한이나 북핵 보다는 남중국해 문제가 주요 의제로 거론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동아시아를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미국의 군사 헤게모니를 유지하려면 남중국해의 자유로운 통행이 필요합니다. 그동안 태평양과 인도양을 마음대로 휘젓고 다녔던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이 남중국해를 장악하고 일종의 '검문소'를 세우는 것만은 막아야 할 것입니다.

▲ 18일 렉스 틸러슨(왼쪽) 미국 국무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회담 이후 기자회견장에서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프레시안 : 일부에서는 북한이 4월에 6차 핵실험을 감행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세현 : 4월이 좀 위험하긴 합니다. 올해 4월 15일이 김일성 탄생 105주년이고 4월 25일은 조선인민군 창건 85주년입니다. 김정은은 군사 강국과 핵 강국이라는 점을 과시하면서 내부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서 핵 실험카드를 꺼내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이걸 미중 정상회담에 맞춰서 한다면 죽도 밥도 안되는 겁니다.

트럼프가 아무리 사업가 출신이라고 해도 중국과 정상회담의 축포랍시고 북한이 핵실험하면 협상에 나서겠습니까? 따귀 맞고 협상장에 나갈 사람은 없습니다.

북한도 외부 상황을 파악하고 계산해서 적정한 시점을 택하겠지만, 누울 자리 보고 다리를 뻗어야 합니다. 지금 트럼프 정부는 이전 미국 정부와 다릅니다. 온건한 대화주의자인 클린턴 때, 그리고 강경한 보수주의자였음에도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강하게 나가니까 먼저 만나자고 손을 내밀었던 조지 부시 정부 때의 추억을 북한이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트럼프는 이들과 출신 성분이 다른 정치인입니다. 만약 북한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정말 착각하는 겁니다.

지금 트럼프는 국내 정치적으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본인이 추진하려던 정책들이 번번이 의회에 가로막혀 있죠. 국내적으로 힘든 상황을 뚫고 나가려면 외부 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외부에 위기가 생기면 국내 정치는 트럼프가 원하는 대로 끌고 갈 수 있는 동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북한이 핵 실험을 한다고요? 이는 곧 트럼프를 살려주는 셈입니다. 미국에 이용당하고 희생양으로 전락하기 싫다면 핵 실험 카드를 꺼내서는 안 됩니다.

북한은 지난 2009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취임 직후, 그리고 2013년 박근혜 대통령 취임 직전에 사고를 쳤습니다. 자기들은 축포일수도 있지만 다른 국가가 보기에는 '저주의 포'인데요. 북한이 핵 실험이든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발사든 뭐라도 하면 미국은 더 강한 제재와 압박으로 방향을 아예 잡아갈 겁니다.

그런 상황을 만들지 말고, 일단은 4.15와 4.25를 잘 넘긴 뒤에 남한 정부와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북한도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지난 2005년 9.19 공동성명을 만든 주역은 누구입니까? 한국이었습니다. 어떻게든 북핵 문제가 해결 국면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러한 절박감 때문에 남북관계를 디딤돌로 삼아 북한을 설득했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태도 변화가 보이고 가능성이 보이니까 미국을 설득했고 이후 중국과 협조해서 합의를 낼 수 있었습니다.

한국이 이집 저집 다 돌아다니면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을 북한이 기억하고 있다면, 그리고 그때 그 합의로 자신들도 만족해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면, 한국의 새 정부가 들어서서 다시 한 번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시간을 줘야 합니다. 사고 치지 말고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북한이 만약에 사고를 치면 한국이 움직일 수 있는 입지가 현격히 줄어듭니다. 그리고 한국이 이 상황에서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면 북한도 얻을 것이 별로 없습니다. 미국이 이미 북한과 일대일 협상에서 끌려가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 '38노스'는 25일(현지 시각)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일대에서 트레일러로 추정되는 차량 4~5대가 포착됐다고 밝혔습니다. 이 차량이 핵 실험 관련 장치나 핵폭탄 반입을 위한 것일 수 있다고 내다봤는데요. 정말 핵 실험이 임박했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정세현 : 38노스가 위성 사진을 분석해서 맞춘 적도 있고 틀린 적도 있기 때문에 38노스의 보도만 보고 핵 실험을 판단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미국의 국제정치나 외교가 돌아가는 원리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미국은 외교를 끌고 나가는 데 있어서 가장 주요한 수단으로 군사 정보를 사용합니다. 이 정보를 이용해서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만들고 미국 무기를 살 수밖에 없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미국의 국방 예산을 깎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죠.

모든 정보가 공개될 때는 그에 대한 의도가 있기 마련입니다. 단순히 실수로 정보가 새어 나가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더구나 저렇게 공개적인 정보는 의도가 없을 수가 없습니다. 38노스 역시 자기들 정책을 정당화하거나 정책 기반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정보를 내놓은 것인데요. 그렇다고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38노스가 공개하는 분석 자료를 볼 때 무턱대고 믿을 수만은 없다는 뜻입니다. 공개하는 의도와 맥락을 잘 읽어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왼쪽에서 세 번째)이 지난 18일 신형 로켓 엔진 실험을 참관했다고 북한 관영매체들이 보도했다. 이날은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베이징에서 회담을 하는 날이었다. ⓒ노동신문

프레시안 : 북한이 4월에 핵실험을 하지 않는 한 대선이 끝나면 대외 분야에서는 일단 사드 문제부터 재점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과연 차기 정부는 사드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까요?

정세현 : 선거가 끝난 시점에 사드 배치 및 운용이 어느 정도 진전될지 예측하기는 힘들지만, 설사 배치가 된다고 해도 운용 문제와 관련해서는 기술적으로 조금 연기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일단 성주에 가져다 놓고 운용을 하는 시점은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이죠.

만약 차기 정부가 언제부터 운용을 하겠다는 식으로 아예 선언해버리면 중국과 협상에 있어서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겁니다. 그렇다고 그냥 우물쭈물 있을 수도 없으니 일단 모호한 입자에서 중국과 대화를 하고, 보복 조치를 완화시킬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또 최근 중국 내 지한파들 사이에서는 중국이 너무 한국에 심하게 보복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고 합니다. 이렇게까지 세게 보복하는 것은 대국답지 못하다는 것이죠. 이러한 목소리를 차기 정부가 잘 관리해서 중국의 보복 조치나 강도를 완화시키면서 미국과 협의에 들어가야 합니다.

단순히 사드뿐만 아니라,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같이 묶어서 협상하는 판을 벌리자고 제안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차피 사드를 배치한 이유가 북핵과 미사일 때문이라고 했기 때문에 사드를 해결하려면 북한의 핵과 미사일 해결도 필요하다는 논리입니다.

그리고 사드를 가져다 놓고 북한이 여기에 반발해서 핵과 미사일을 강화하면 한반도의 군비 경쟁은 격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건 남한이 감당하기 어려운 시나리오입니다.

우리는 국부의 합리적 배분을 기본 전제로 하는 민주국가입니다. 하지만 북한은 계획경제 국가인 데다가 소위 '강성대국' 논리로 모든 것을 결정하기 때문에 군사경제에 너무 많은 자원을 투자합니다. 군사경제에 대한 과도한 투자 때문에 인민경제가 몰락하고 이 때문에 체제 변환이 올지언정, 일단은 김정은의 스타일로 보면 군비경쟁을 가속화할 것입니다.

이러한 여러 사정을 미국과 터놓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우리가 국방비로 돌릴 수 있는 비용이 한계가 있으니 협상으로 풀어야 한다고 말해야 합니다. 어차피 미국도 전략적 인내는 끝났다고 하지 않았냐며, 북한의 태도 변화를 무조건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대화와 협상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쪽으로 옮겨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핵과 미사일, 사드를 연계해서 4자든 6자든 협상을 시작해야 하지 않겠냐고 설득해야 합니다.

이게 가능하려면 미국‧중국과 물밑대화를 하면서도 한쪽으로는 남북대화를 해야 합니다. 과거의 사례를 보면 남북관계가 그런대로 연결돼 있고 서로 엮여 있는 사안이 있을 때는 우리가 미국이나 중국에 대해서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북 간 전혀 접촉이 없으면 미국과 중국 어디에도 영향력이나 발언권을 행사하지 못합니다. 결국 우리는 남북관계 개선으로 생존을 모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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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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