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넛크래커에 낀 호두가 돼 버렸다

[기고] 미·중 사이 샌드위치 한국 외교…출구는 어디에

한반도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사드‧THAAD) 배치가 현실화되자 중국은 한국의 사드 배치가 마치 패착임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한국에 대한 노골적인 압력을 다층적으로, 정교하게 진행하고 있다.

추궈훙(邱國洪) 주한 중국대사는 지난 8일 여당 정치인과 만난 자리에서 "중국도 안보이익을 수호할 권리가 있는 만큼 한국은 심리적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전면적 협력동반자관계'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음을 뜻했다. 동시에 기시감을 준 외교적 겁박이었다.

쇠락하던 청조와 패권의 꿈을 지니고서 거칠 것 없이 달리던 일본과 미국 사이에서 풍전등화에 놓인 구한말 백성들이 품었을 깊은 번민을 이제는 패권국 미국과 굴기의 중국 사이에서 또다시 느끼게 됐다.

이는 한국이 미중 간에 균형 또는 위험 분산 대신에 미국으로의 편승을 택함으로써 얻은 자발적 결과이자 감내해야 할 고통이다. 한국 정부는 사드 배치가 이른바 연미제중(聯美制中)전략을 통해 점차 고도화되는 북한의 핵 위협을 상쇄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상당수 군사안보 전문가들은 이에 선뜻 수긍하지 않는 눈치다.

화이질서(華夷秩序)의 구조와 규범에 익숙한 중국의 눈에는 한국의 '사드 배치'가 전통적 중화의 질서에 도전하는 외교·군사적 행위로 비춰졌음에 틀림없다. 미국의 힘을 차용하였다고는 해도 한국의 전격적이고도 대담한 조치는 대다수 중국 엘리트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동아시아 역사인식에 대한 명백한 배반이었다.

지정학적으로도 한반도가 중국에게는 목을 겨누는 '단검'에 비유되었던 역사적 사실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사드 배치로 촉발된 '광분의 중국' 현상은 그래서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종속변수로 놓인 한국의 전략적 번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깊은 시름에 빠져 있기 보다는 이참에 25년이 지난 한중 관계의 장을 새롭게 여는 신호로, 변곡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들린다.

▲ 지난 6일 사드 발사대 1기가 오산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한미연합사령부

한중 관계는 본질적으로 미중 관계의 하부구조

사드 배치로 드러난 한중의 첨예한 갈등은 본질적으로 미중 패권경쟁의 하부구조에서 발생한 융기현상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미국이 일관되게 일본과 경쟁하거나 일본을 견제하는 위치에 있었다면, 지금은 중국으로 그 대상만 바뀌었을 뿐이다.

영토와 인구 측면에서 동아시아 전체가 '중화제국'이라는 하나의 정치·경제적 단위로 통합되어 가는 과정에서 미국의 대중 견제는 불가피했다. 무엇보다, 미국은 안보협력기제로서 일본, 한국과의 지정학적 연대의 필요성을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느꼈다. 정상국가로의 활로를 찾고 있던 아베의 일본은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반면에, 한국은 국내 비판여론 등을 의식하여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하지만, 미국이 한일 군사비밀협정보호협정 성사(2016년 11월23일 발효)를 위해 막후 역할을 한 것은 분명 심모원려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외에, 미국이 더는 독자적으로 경제 규모 세계 2위인 중국을 '제압'하는 것이 현실적이지도 효과적이지도 못하게 되었다. 일례로, 중국의 2017년 국방비는 1조 211억 위안(약 171조 2000억 원)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중국의 국방비가 통상 다른 항목으로 분산되어 있는 경우가 많음을 고려하면 실제 국방예산은 발표된 것보다 2~3배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그렇다면 이는 미국의 2018년 회계연도(2017년 10월~2018년 9월) 국방예산 6030억 달러(약 684조 1000억 원)에 비견할만한 수치이며, 나아가 2030년에는 미국의 수준에 대적할 것이라는 전망도 이미 나왔다.

미국 정권 교체기 때 미중 관계는 늘 경쟁적

한편, 중국학자의 미중 관계 연구결과에 따르면 미국 대통령 선거에 따른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는 시기에는 일반적으로 미중 관계가 불안정하게 진행되고, 이후 연임에 성공한 대통령은 2기 집권 시기에 미중 관계를 개선하고자 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권 교체에 성공한 공화당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정책 역시 국익을 최우선시하는 현실주의를 토대로 불안정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미국 우선주의'에만 매몰된 외교 문제 초보자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 안보문제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하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대신에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의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대선 기간 중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고, 중국산 제품에 45% 고율관세를 부과하여 중국의 불공정한 보조금 행위를 시정하겠다고 호언했다.

최근에는 미국에 진출한 중국의 최대 통신장비업체 ZTE에 대해 11억 9200만 달러(약 1조3700억 원)의 벌금을 부과했으며, 중국의 대표적인 스마트폰 기업인 화웨이는 수출금지대상국에 미국산 부품 등을 판매했다는 이유로 조사대상에 올라 있다. 트럼프 식의 '중국혐오 발언'에 이은 '중국 길들이기'의 신호탄으로 해석될 수 있다.

동시에,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중국을 견제할 목적으로 아시아 지역에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나아가 남중국해나 센카쿠 열도(尖角列島, 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과 같은 군사외교 정책을 이어나갈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그럴 경우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하여 군산업체와 보호무역주의 집단, 인권조직, 보수적 종교단체 등으로 구성된 반중 세력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 위협론에 가세할 가능성도 높다.

중국 역시 미국의 이러한 압력에도 불구하고 미국 국채(2016년 12월 현재 미국 국채 보유액은 1조600억 달러)매각, 중국에 진출한 애플‧퀄컴 등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독과점 여부 조사, 미국산 농산물 수입 규제, 보잉사 항공기 구매 제한 등을 거론하면서 맞불 전략을 준비하고 있다. 나아가 중국은 올 가을로 예상되는 19차 당 대회를 앞두고 미국 국내정치의 동학을 감안, 이에 상응하는 대책을 수립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시진핑 정상회담 개최

오는 4월에 트럼프-시진핑(習近平) 간 정상회담이 미국에서 개최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는 중국의 대대적인 지도층의 물갈이를 앞두고 시 주석의 권력기반 강화를 목적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지려는 다목적 용도의 포석으로 보인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15일부터 한국을 포함, 일본과 중국을 공식 방문하는 것 역시 미중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한반도 관련한 의제를 사전에 정지 작업하려는 의도이며, 4월 회담을 가정한다면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의 의제와 일정 등이 최종 조율될 가능성이 높다. 북핵을 포함한 사드 배치 관련해서도 미중 간에 절충적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 ⓒAP=연합뉴스

또한, 지난 2012년 2월 시진핑 당시 부주석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제의한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를 어떻게 재정립할 것인가도 관심거리이다. 중국은 이번 전국인민대표대회 개막 정부공작보고에서 미국을 겨냥해 단골용어처럼 사용했던 이 용어를 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평등, 상호신뢰, 관용, 협력, 윈-윈'을 내용으로 하는 신흥대국관계의 핵심 골자가 중국의 핵심이익을 미국이 침해하지 않는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므로 전략적 협력의 공간은 여전히 열려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양국 대표단은 이렇듯 상호 전략적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여타 분야에서 사드를 고리로 미중이 주고받는 협상의 공간을 만들려고 할 것이다. 고공(高空)에서 이루어지는 미중의 비밀협상 내용을 알 리가 없는 한국의 차기 정부가 추후 워싱턴으로부터 날아올 청구서에 대비해야 하는 이유이다.

한편, 미국 싱크탱크 '아시아 소사이어티'는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참조해야 미중 관계 중장기 이슈 10가지-사이버, 에너지 및 기후변화, 글로벌 거버넌스, 아시아‧태평양 지역안보, 북한 핵위협, 해양분쟁, 대만 및 홍콩, 인권, 국방 및 군사 관계, 그리고 무역과 투자 관계-를 담은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태스크 포스 형태로 구성하여 작성한 동 보고서에 따르면, 아직 양국 간 힘의 균형을 이루지는 못하였지만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항상 협력과 경쟁의 요소를 함께 지니고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즉, 기후변화, 이란 핵협상, 지구적 유행병, 군사 분야에서는 만족할만한 협력 등이 이루어졌으나 남중국해와 같은 지역분쟁, 무역과 투자, 인권, 그리고 사이버 간첩행위 등에서 미중 양국은 첨예하게 대결적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았다.

보고서는 그러면서 중국의 굴기가 자제되고 미국의 힘이 중국과 책임을 분담하는데 열린 자세를 보여준다면 양국이 적대적일 필요가 없다고 결론을 맺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중국을 국제체제에 통합시키려는 노력이 수포로 돌아감에 따라 동북아는 현상유지를 타파하려는 위험한 수정주의 중국과의 대결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고 믿고 있다. 이는 미국이 중국의 국력과 국제무대에서의 영향력을 애써 평가절하하려 한다는 중국 측의 불만과 무관하지 않다.

최근 중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 1월께 네이멍구(內蒙古) 지역에 한국과 일본의 수도 방향을 겨냥해 한국과 일본 전역을 탐지권에 둔, 최대 탐지거리가 3000킬로미터(km)에 이르는 두 번째 '톈보(天波)' 초지평선(Over The Horizon) 탐지 레이더를 설치했다.

후베이(湖北), 허난(河南), 안후이(安徽) 3개 성의 교차지점에 설치해 놓은 첫 번째 톈보 레이더와 함께 운용할 경우 모든 서태평양 지역이 중국의 감시 아래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동중국해, 남중국해, 서태평양의 해상 주도권을 놓고 미국과의 갈등을 예고하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관계에 불안정 요소를 끌어들일 경우 위기 또는 전쟁의 위험은 증대될 수 있다.

특히 집권 초기부터 난맥상을 보이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으로 대외적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미중 상호 간 인식상의 오류에서 오는 전략적 오판의 가능성도 높다. 냉전 시기 취했던 미국의 안보 공약 강화가 독이 될지 약이 될지 현재로써는 이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단적인 예로, 미국의 세계전략의 목표가 패권기반 유지인 반면에 중국은 미국 주도의 단극세계질서가 아닌 다극화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상이한 양국의 전략적 비전은 분명 양국 관계뿐만 아니라 동북아를 포함한 세계질서에도 불안정한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6차 북핵 실험과 트럼프의 선제 타격론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만일 한반도에 전술핵무기를 배치하는 것으로 결정을 내린다면 한반도에서 강 대 강의 신냉전 전초전은 시간문제다.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38노스>는 지난 10일 북한이 6차 핵실험을 준비 중이며 핵 폭발력이 역대 최대에 이를 것으로 분석했다.

지난 1일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과 리길성 북한 외무성 부상 간의 회담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할 경우 현재 작성 중인 트럼프 행정부의 동아시아 정책은 김정은 정권에게 악몽이 될 수 있다.

첫째,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정책 저변에 보수적 강경론이 지배적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고서부터 워싱턴 발 북한 선제 타격론이 쉬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중국 견제라는 동북아 국제정치 현실에 따라 트럼프 외교는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보다 현실적인 인식에 다다르게 되겠지만 그 전에 트럼프의 외교·안보 매파 정책결정자들이 김정은 제거를 포함한 북핵 문제를 주도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과거 부시 행정부가 후세인 제거를 목적으로 이라크에 그랬던 것처럼 이들 역시 미국과 북한이라는 힘의 비대칭성에 걸맞게 무력으로 '위대한 미국'의 의지를 관철해야 한다는 적의가 선명하다.

둘째, 트럼프 대통령 자신의 발언이다. 트럼프는 지난 2월 13일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가진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분명히 북한은 크고 큰 문제"라면서 "북한을 아주 강력히 다룰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그 전날인 2월 12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만찬 도중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자 긴급 회견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는 아베 총리의 언급에 "100% 지지한다"고 언급한 데서 한 걸음 더 나간 것이다.

▲ 지난 2월 16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질문할 기자를 지정해주고 있다. ⓒAP=연합뉴스

따라서 북한이 또다시 ICBM 발사를 시도하려 할 경우 선제적으로 이를 무력화 시킬 가능성도 있다. 이는 북한이 얻고자 하는 미사일 데이터를 사전에 방지하려는 미국의 군사전략적 목적과 무관하지 않다.

이렇듯 북핵을 빌미로 트럼프 행정부가 동북아에 군사자원 투입의 우선순위를 앞에 두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중국으로 하여금 대비태세를 높이는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나아가 지금까지 중국이 취해 온 '핵무기 선제 사용 불용' 원칙을 포기하고 전략적 모호성 정책으로 방향을 바꾸는 동기를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전략적 모호성이 자칫 미국으로 하여금 선제공격을 하도록 유도하거나 핵전력 삼위일체의 현대화 속도를 급진전시킬 수 있는 요소를 내포하고 있음에도 불구, 냉전시절 미소 군비경쟁으로 소련이 사실상 몰락하는 과정을 지켜본 중국은 미국과 군비경쟁의 경제적 부담을 핵무기 사용의 위험보다 더 큰 안보위협으로 여기고 있다.

여기에다 북한이 ICBM을 발사하고 또다시 핵실험을 도발한다면 이는 사드 배치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해 온 국내 찬반 여론을 하나로 모으면서 동시에 반중 분위기에 산소를 공급하는 모양이 된다.

그렇다고 중국이 당장 북한을 전략적으로 포기할 이유도 없다. 중국에게 북한은 '가지되 먹어서는 안 되는 케이크'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이 미국으로 경사되고, 통일한국의 영토문제 갈등 등으로 인한 반중화(反中化)로 중국의 한반도 현상유지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북핵 실험으로 인한 중국의 정책변화는 따라서 전략적이기보다는 상황에 따른 전술적 대응조치에 불과하다. 중국의 미래 패권에 대해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워싱턴 정책결정자들이 이를 모를 리가 없다. '강대국 정치 카르텔'이라는 틀 안에서의 사드 갈등은 결국 미국과 중국 간 외교적 흥정으로 봉합될 수 있다.

지정학적으로 강대국 사이에 끼인 한국외교는 특히 미중 관계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반도 정세는 이렇듯 미국 내 강·온파 간의 역학관계와 중국을 포함한 주변국들의 외교행태와 역학에 따라 널뛰듯이 형성되어 왔다. 한국외교는 불행하게도 이에 일희일비하면서 자기 중심성을 스스로 탕진하고 있다. 누군가 사막화되어 가고 있는 한국외교의 비극을 여기서 멈추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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