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대통령'과 끝나지 않은 이야기

[살림이야기] 한국 정치의 환절기

2016년 가을부터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이 시기를 한국 정치의 '환절기'라 한다면, 이 환절기는 언제 끝날까? 우리 사회는 어떤 정치의 계절을 떠나보내기 위해 환절기의 부산함과 불안감, 설렘을 맞이하고 있는 것일까?

20대 총선, 동료 시민들의 본심을 알게 되다

2016년 가을, 이 사태는 '이상한 대통령'과 그의 오랜 친구들이 행한 기상천외한 행태들이 드러나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이상한 대통령'과 위헌·위법 행위를 공모했던 친구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청와대 참모, 임명직 공직자, 직업 공무원, 집권당 정치인, 교육계 종사자, 재벌기업 총수와 관리자 등. 생각해 보면 '이상한 대통령'은 어느 날 갑자기 표변한 게 아니었다. 최소한 집권 직후부터는 계속 이상했다. 자신의 선거공약을 가타부타 변명 한마디 없이 파기해 버리고도 당당했고, 시민 수백 명이 수장되는 참사에도 아무런 책임을 느끼지 않았으며, 자신과 생각이 다른 시민들을 '무찔러야 할 적, 청산해야 할 적폐'로 대하면서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다수 시민은 점점 더 그의 기이한 인식과 행태에 의구심을 품었지만, 언론은 그에게 '콘크리트 지지층'이 있다고 했다. 그가 무슨 짓을 해도 지지해 준다던 '콘크리트 지지층'은 결국 나의 동료 시민들이었다. 그의 '콘크리트 지지층'에 속할 수 없었던 시민들은 서글펐지만,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다른 시민들의 뜻을 존중했고 좌절했고 체념했다.

그러다 2016년 4월 20대 총선 결과가 나왔다. 대통령의 정당이 압도적으로 이길 것이라던 관측을 뒤집고, 그를 지지할 수 없었던 시민들이 다수임을 서로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언론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또 정치인들이 말하기 시작했다. 사태 초기 언론과 정치인 들이 제공하는 단발성 정보만으로도 시민들은 분노했고, 거리로 나섰다. 관련자를 조사하고 처벌하며 대통령은 사임하라고 요구했고, 그가 이를 수용할 의사가 없음을 확인하자 곧 국회더러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키라고 요구했다. 매주 이어지는 광장을 보면서 드디어 검찰이 수사하기 시작했고 법원이 판결하기 시작했으며, 대통령의 최측근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정보들의 조각이 하나씩 맞추어지면서 평범한 시민들이 대거 정보 제공자로 나서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금 우리는 다수 시민들이 뒷배가 되어 국회와 검찰과 법원과 언론과 헌법재판소를 움직여서, '이상한 대통령'의 해임이라는 목적지로 꾸역꾸역 역사의 수레를 밀고 가는 중이다.(이 글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선고 이전에 작성됐습니다. 헌재는 지난 10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을 인용했습니다. 편집자)

ⓒ프레시안(최형락)

과연 몰랐을까?

이 사태의 주역은 의심할 바 없이 대한민국 시민들이다. 지난 몇 달 동안의 광장에 자주 혹은 드물게 섰던 시민들도 있을 것이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면서 탄핵 열차의 순항을 응원했던 시민들도 있겠고, 지금도 부단히 갈등하면서 지켜보는 시민들도 있을 테지만 다수의 합력이 만들어 내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함께 벗어나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이 계절, "'이상한 대통령'이 해임됐다. 하지만, 이런 의문들은 여전히 남는다. 20대 총선 이후, 대통령과 그의 친구들이 전방위적으로 벌인 위헌·위법행위에 대한 보도를 쏟아 냈던 언론들이, 그 이전에는 과연 몰랐을까? 그제야 바삐 움직였던 정치인들도 몰랐을까? 검찰은, 법원은 또 몰랐을까? 광장에서 다수 시민의 의지를 확인한 이후에야 간신히 제보자의 대열에 섰던 많은 평범한 시민들은, 왜 그제야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을까? 대통령이 탄핵되고 또 다른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 광장의 시민들이 하루하루의 일상으로 돌아간 이후에, 또다시 언론과 정치인 들은 침묵하고 검찰은 조사하지 않고 법원은 제대로 판결하지 않으며 잠재적 제보자들의 입이 닫혀 버린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지게 될까?

혹자는 이런 문제에 대비하여 언론개혁, 검찰개혁, 사법 개혁, 정치개혁 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긴 하다. 그런데 지나온 세월 우리가 이런 '개혁' 꾸러미들을 무시했던 건 아니다. 오히려 '개혁'들의 홍수 속에서 살아오지 않았나? 이걸 하면 언론이, 검찰이, 정당이, 국회가, 법원이 제대로 일한다고 해서, 지지도 해 주고 법도 만들어지곤 했다. 물론 그 방향이 틀린 것도 있고, 법을 만들었지만 제대로 시행되지 않은 것도 있고, 꼭 필요하지만 아직 만들어지지 못한 제도도 있을 것이다. 그건 그것대로 더 노력해야 한다.

2016년 가을, 자각하지 못했던 우리 시민의 힘

그런데 2016년 가을 이후 사태는, 정작 반드시 필요하지만 우리 스스로 자각하지 못했던 것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시민의 힘이다. 검찰이 수사하게 만들고 국회가 탄핵 소추안을 통과시키게 하고 언론이 보도 경쟁을 하게 만든 건, 시민의 힘이었다. 문제는, '이상한 대통령'과 그의 친구들이 사태를 엉망으로 만든 후에야, 몇 달 동안 추운 광장에서만 간신히 확인할 수 있는 시민의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 공적 제도가 몇 년에 한 번 겨우 열리는 광장의 시기에만 시민을 두려워하게 둬서는, 지금 이 계절이 언제든 다시 돌아온다. 그들은 '소나기만 피하면 된다'는 자세로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광장이 열리든 열리지 않든 언제나, 전국 어디서나, 공공기관들이 시민의 힘을 두려워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시민들이 언제, 어디서든지 자유롭게 말할 수 있고, 두려움 없이 권력의 문제를 공유할 수 있고, 수십만 명이 모이지 않아도 경찰의 차벽 없이 청와대 앞에서 집회를 할 수 있고, 온-오프라인에서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언제든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할 수 있어야 한다. 권력에 대한 의혹을 이야기하면 형법상 명예 훼손죄로 재판정에 서야 하고, 그들이 정해 준 시기가 아닌 때에 선거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행동하면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을 내거나 징역을 살아야 하고, 집회를 하려면 경찰의 허가를 구걸해야 하고, 제보자는 생계와 생명의 안전을 위협받는 사회에서는 시민의 힘을 느끼게 만들기 어렵다.

그렇기에 이 계절은 주권자인 시민들이 적어도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온전히 누리게 될 때가 되어야 끝날 것이다. 우리의 정치 환절기는 아직 꽤 남은 셈이다. 하지만 지난겨울 광장에서 온기를 나누었던 시민들이 함께라면, 좀 긴 환절기도 이겨 낼 수 있지 않을까?

▲ 2016년 11월부터 2017년 지금까지 시민들은 ‘이상한 대통령’의 국정 농단을 끝내기 위해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들며 시민의 힘을 자각했다. 그러나 단지 대통령을 바꾸는 것만이 아니라 주권자인 시민이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온전히 누리는 때 우리의 정치 환절기가 끝날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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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이야기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우리나라 대표 생협 한살림과 함께 '생명 존중, 인간 중심'의 정신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살림은 1986년 서울 제기동에 쌀가게 '한살림농산'을 열면서 싹을 틔워, 1988년 협동조합을 설립하였습니다. 1989년 '한살림모임'을 결성하고 <한살림선언>을 발표하면서 생명의 세계관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살림은 계간지 <모심과 살림>과 월간지 <살림이야기>를 통해 생명과 인간의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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