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이후 정세에 미묘한 변화가 포착되고 있다. 무엇보다 박근혜 탄핵 인용이 목전에 와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수 세력의 준동이 날로 거세지고 있다. 설 명절 연휴로 인하여 촛불이 잠시 쉬는 동안에 일명 '태극기 집회'를 통해 폭력을 동반한 극우적 행태까지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도전과 응전
사상 최악의 국정 농단 세력들은 처음부터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법은 평등하지 않고 상식은 원래부터 없었다. 그들은 법과 원칙을 지키지 않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기 때문에 노동자 민중들의 불법과 거짓말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편법과 비리, 부정으로 무장한 그들에게 합리성과 원칙으로 맞서는 것은 과분하다. 그들의 사과와 책임은 영혼이 없고 기계적이고 가식적이다. 그들의 창끝은 무디지만 꼼수에는 숙련가로서의 면모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반격 전략은 궁색하지만 끈질기다. 그들은 규모를 좋아한다. '규모의 경제'를 좋아하고 '규모의 정치'를 좋아한다. 수백만이 촛불을 들면 잠시 움츠렸다가 숫자가 줄어들면 반격한다.
이들이 반격이 본격화된 계기는 지난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 영장이 기각되면서부터다. 세습을 통해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삼성에 대한 사법부의 그릇된 판단이 박근혜 세력에게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우리 사회가 비정상적인 사회가 된 여러 이유 중의 하나는 재벌 비리와 정경유착이다.
재벌 비리와 정경유착이 근절되지 않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재벌 총수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때문이기도 하다. 대기업의 지배구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구체제 청산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독점적-폐쇄적 지배구조 하에서 기업이 투명하게 경영되기를 기대할 수 없다. 지배구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정경유착의 깊은 고리를 단절할 수 없다. 따라서 이재용의 구속은 수십 년간 누적된 정치권력과 재벌간의 추악한 거래를 일소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박근혜 세력은 노골적인 선고 지연 전술과 공공연히 '대통령 사수'를 외치며 조직적으로 '탄핵 기각설'을 유포하면서 여론을 몰아가고 있다. SNS상에는 이들의 '가짜 뉴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 때문인지 헌재의 최종 변론기일이 2월 27일로 연장되었다. 우병우의 구속 영장은 기각되었고 특검 기간 연장의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야당의 무능함과 대통령 놀이가 박근혜 세력에게 반격의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지난 2월 11일부터 촛불 광장에 야당 의원들과 그 지지자들 그리고 수많은 야당 깃발이 나부꼈다. 신나게 대통령 놀이를 하다가 '탄핵 기각설'에 '깜놀' 했나 보다.
이들이 광장에 나오는 건 별로 중요치 않다. 오히려 불편하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탄핵 국면인 현재까지 야당은 아무것도 한 게 없다. 박근혜 정권 내내 선거 부정에서 세월호, 국정 역사 교과서, 위안부 합의, 사드 배치, 백남기 농민 사망에 이르기까지 '제대로'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탄핵 국면에서도 아무런 개혁 입법을 하지 않고 촛불을 등에 업고 권력 놀음에 취해 있다. 헌재의 결정에 승복하겠다는 야당의 합의가 박근혜 세력에게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다. 물론 그 배경에 헌재의 상식적인 판단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해도, 그러한 정치적 발언은 촛불을 무시하는 처사에 불과하다. 이렇게 촛불 민심을 부정하고 기만하는 야당을 박근혜 세력은 좋아라 하면서 반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하지만 촛불의 응전은 변함이 없이 담대하다. 지난 11일부터 촛불의 숫자가 증가한 것은 단순한 야당의 참여 때문이 아니다. 설 명절과 추위를 겪으며 원기를 회복하고 에너지를 다시 충전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야당의 몰상식과 기회주의적 행태가 다시 촛불을 분노케 하고 있다.
박근혜의 탄핵에 찬성하는 80% 안팎의 대중은 야당에게 탄핵의 결정을 위임한 적이 없다. 촛불이 원하는 것은 구체제의 청산을 통한 새로운 국가와 사회 건설이다. 그런데 야당은 이를 수용할 만한 의지와 능력이 없다. 이번 촛불은 과거의 촛불과 다르며 단순한 시민 혁명이 아니다. 어떠한 정치적 판단을 하느냐에 따라 촛불에 의해 야당도 휩쓸려 갈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촛불 민심이 우려하는 바는 헌법재판소가 '제대로' 판단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법은 절대이성이 아니다. 자본주의 국가의 법이 노동자 민중의 편을 들어준 적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촛불 민심은 헌재의 상식적인 판단을 기대하고 있다.
가장 큰 우려는 자유한국당을 위시한 박근혜 세력의 2월 총력전이다. 또 어떠한 꼼수를 부릴지 알 수는 없지만 촛불항쟁은 반동의 도전에 맞서 끈기있게 응전할 것이다.
조직적 개입과 촛불의 확장이 필요하다
이번 촛불항쟁은 대중운동의 급진화에도 불구하고 자발성이 매순간마다 매너리즘에 빠진 형식적 제도에 소진되는 문제점이 있다. 급진화된 운동에 조응하며 조직적 결합이 필요하지만 여전히 주저한다. 따라서 대중의 역동성과 자발성의 고양에도 불구하고 이를 뒤따라만 가는 운동조직들의 의식성은 비판 받아야 한다.
지금은 정세를 보면 촛불에서 드러난 대중들의 정치적 의지와 열망을 정치적으로 대표하거나 반영하는 것은 민주노총 등의 조직 집단이 아니면 결국 개별 정치인에 대한 선택으로 분산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시민사회운동과 민주노총 등의 정치적 태도가 중요하다.
물론 촛불항쟁을 민주노총 등 조직집단이 정치적으로 대표하기는 어렵다. 여전히 민주노총에 대한 대중적 인식과 이미지는 조합원 외에는 우리의 조직으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촛불이 진행될수록 '한상균을 석방하라'가 낯섦에서 익숙함으로 전환되고 있고, 부정적 인식도 점점 나아지고 있다.
따라서 민주노총 등의 조직노동자 운동은 촛불항쟁에서 나타난 의제와 이슈를 중심으로 자신의 요구를 압축하여 제시할 필요가 있다. 특히 미조직, 저소득, 청년, 여성, 실업 등 다양한 계층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면서 조직하고 주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조직노동자 운동은 촛불 집회에서의 유의미한 동력, 행진 대오에서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동자 본래의 투쟁으로 촛불 항쟁과 결합할 때 구세력에게 심대한 타격을 가할 수 있는 것이다.
혁명은 한 세기를 넘는 약속과 실천에 의해 이루어지고 개인이 아니라 개인의 평생을 뛰어넘는 조직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했다.
그리고 광장에 갇혀 있는 의제와 공간을 지역, 공동체 등으로 확대·심화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기적 성과를 거둠과 동시에 중장기적 전망 속에서 사회운동의 대안으로서 지역운동의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한 필요한 조건이다.
문제의 핵심은 스스로 주권자임을 확인하면서 광장에 나온 이들이 주체인 듯 주체 아닌 관객같은 촛불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광장이 내용을 생산하지 않고 틀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자발적 참가자들은 조직화 된 세력에 거리를 두기도 하고, 조직화되기를 바라기도 하고, 스스로 조직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거대한 촛불이 어느 정당이나 단체에 대규모로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정치의식적으로 조직하는 일이다.
따라서 촛불항쟁이 열어 놓은 광장을 확장해서 다양한 형식과 내용으로 채우는 것이 필요하다. 그곳은 거리, 지역, 공동체 등 상관없다. 내가 발 딛고 있는 곳이 광장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토론하고 결정된 것을 함께 실천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바로 광장을 정치적으로 '조직화' 하는 것이다. 촛불항쟁은 일상의 삶과 현실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으면 커다란 의미가 없다. 광장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일상에서 만들어져야 하며, 광장 안과 밖이 동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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