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에서 대선 후보를 결정하기 위한 '국민 경선'을 실시한다고 한다. 당원만이 아니라 국민이 뽑는 후보를 민주당 후보로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민주당은 제1야당이자 언론 발표에 의하면 가장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대선 후보들이 있는 당이다. 어느 당의 누가 당선될지 선거의 최종 결과야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지지도 조사에 따른 구도로 볼 때 민주당 경선은 어쩌면 실제 대통령 선거의 리허설적 성격을 갖는다고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즉 보기에 따라서는 본선 같은 예선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민주당 후보 결정 '국민 경선'에 교사는 참여할 자격이 없다는 중앙선관위의 해석이 나왔다. 대통령 선거에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교사가 그 후보를 뽑는 경선에 참여할 수 없다니 소가 웃을 일이다. 중앙선관위의 해석에 의하면 교사는 정당 가입 자격이 없기 때문에 정당 후보 경선에도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해석에 따르면 교사는 '국민'이 아닌 것이다. 교사인 나는 갑자기 정체성의 대 혼란에 직면했다. 교사인 나는 교사일 뿐 국민은 아니다? 국회의원 선거나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할 때만 나는 국민일 뿐이다? 그 외 일체의 정치적인 일에서 교사는 국민이 아니다?
이런 웃지 못 할 일의 근원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규정한 헌법 31조로부터 기인한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교사는 정당 가입, 정당 후원, 선거 출마, 선거운동 등 일체의 정치적 행위를 금지당하고 있다. 이로 인해 교사는 퇴근 후에도, 휴일에도, 방학 중에도 정치에 관여할 수 없으며, 국민 경선에도 참여할 수 없다. 심지어 교사들의 전문 분야인 교육정책 책임자를 뽑는 교육감 선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교육감 후보에게 후원금을 내거나, 공개적인 지지 표명을 하거나, 교사 자신이 교육감 후보로 출마할 수 없다. 이런 일을 하게 되면 해고와 구속을 각오해야 한다. 실제로 몇 년 전 교육감 후보에게 후원금을 준 교사들이 해고, 구속되었다. 정당에 월 1만 원 후원금을 냈던 1500여 명의 교사들이 재판을 받았고, 작년 총선 때 SNS에 짧은 의견을 냈던 이들이 지금 선거법 위반 소송으로 시달리고 있다.
이와 같은 시대착오적인 일의 근거가 되는 헌법31조는 실은 막걸리, 고무신 선거가 횡행했던 시절 교사들이 집권당 선거운동원으로 전락하게 된 현실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조항이다. 그래서 헌법 31조 4항은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그런데 박정희 군사 정권 시절 이 법 조항은 그 취지와 완전히 반대로 교사들을 일체의 정치 활동과 정치 행위로부터 배제하는 근거로 변질되어 악용되기 시작해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이다.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아이들을 교육하는 교사들이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면, 그것은 수업이나 학교 교육 활동에 국한되어야 한다.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우리나라에서 종교를 강요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로 교사가 특정 종교를 갖거나 종교 활동을 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지는 않는다. 수업시간에, 아이들 교육활동에서 교사가 자신의 종교를 강요하지 않으면 된다. 퇴근 후 교사가 저녁 예배를 보거나 절에 가서예불을 드리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기본권을 행사하는 것이고 아무도 이를 문제 삼지 않는다. 교사의 정치 활동 역시 동일한 원리가 적용되어야 한다. 교사로서의 직무와 관련해 정치적 중립성 의무를 요구하는 것으로 족하다. 퇴근 후에, 휴일에, 방학 중에 교사의 정치기본권 행사를 허용해야 한다. 이것이 합리적이다.
선진국에서는 교사의 정치 기본권에 대한 일체의 제한이 없다. 심지어 독일의 경우에는 정치와 직접 관련된 교과 교사의 경우에는 정치 활동을 권장하기까지 한다고 한다. 교사가 정치에 깨어 있어야 하며, 아이들에게 민주시민으로서의 모범을 보여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교육기본법 제2조에서는 교육의 목적이 민주시민 양성에 있다고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의 교사들은 일체의 정치기본권을 박탈당한 채 정치적 무능력자로 살기를 강요당하고 있다. 과연 민주시민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는 교사가 민주시민 교육을 제대로 해 낼 수 있을까? 이는 교사들에게 나무에 올라가 고기를 잡아오라 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본래 세상 모든 일은 정치와 무관한 것이 하나도 없다. 정치야말로 가장 높은 수준에서 삶의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수단이자, 삶의 방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하지도 않는 정치적 진공 상태를 강요당하는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삶과 세상을 이해하고 준비시켜야 하는 교육을 제대로 할 수 없다. 또한 끊임없이 자기 검열을 내면화하고 정치적으로 위축되는 삶을 강요당함으로써 한 인간이자 주권자인 교사의 삶조차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교사도 국민이다. 교사는 교사이기 이전에 먼저 국민이다. 교사에게서 빼앗았던 정치기본권을 돌려줘야 한다. 그래야 민주시민 양성이라는 교육 목적도 제대로 달성될 수 있다. 교사도 정당 가입과 정당 활동, 선거 출마가 가능해야 한다. 국민 경선 참여에서 교사를 배제하는 전근대적인 족쇄는 풀어야 한다. 당선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데 사표를 내야만 교육감 선거에 출마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교육감 선거에서 제대로 된 교육 공약이 나올 수 있도록 선거운동에 참여하고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공개적으로 밝힐 수는 있게 해 줘야 한다. 이게 최소한이다.
당장 중앙선관위는 교사의 국민 경선 참여에 대해 전향적인 해석을 다시 내려줘야 한다. 그리고 촛불 혁명으로 인해 조성된 개 혁국면에서 교사의 시민적 권리를 회복시키기 위한 법 개정 작업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내각제냐 이원집정부제냐 하는 권력구조 개편 논의보다 더 중요하고 더 시급한 것이 국민기본권, 특히 참정권을 확대하는 개혁 입법임을 정치권과 대선 주자들이 직시하기를 바란다. 이것이 촛불의 명령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