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조 1항,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이것은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교육받을 권리에 대한 내용이다. 교육 제도에 대한 기본적인 의무를 담은 교육기본법 제2조는 '교육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자주적 생활 능력과 민주 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人類共榮)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헌법의 취지에 맞게 제대로 교육받고 있는가?
헌법에 명시된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는 없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의 대답은 '아니다'이다. 균등한 교육은커녕 교육의 불평등과 이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까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교육 불평등은 학생 개인의 내적 요인 보다는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학생들 간의 성적 격차가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사교육이 교육의 불평등을 조장하고, 이로 인해 우리 국민의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가 훼손되었다.
군사 정부 시절에는 극단적인 교육 평준화 정책을 통해 중·고등학교의 균등화가 높은 수준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신자유주의가 사회 전반에 유입되면서 교육계에는 입시 명문고, 과학고와 외국어고 등의 특수목적 고등학교가 생겨 불평등 지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특목고는 학교 교육만으로 입학하기엔 어려웠고, 그 부족한 부분을 메우는 사교육이 급속도로 팽창했다.
위의 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특목고에는 충분한 사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상위층 자녀가 더 많이 분포한다. 입시 명문고에서 명문대로 진학하는 비율 또한 높다. 2017년 서울대학교 수시 모집에서 총 선발 인원 2434명 중 일반고 출신이 1193명(49%)인데, 입시 명문고 출신은 1241명(51%)이었다.
이는 입시 제도가 수시 중심으로 변하면서 따라온 부수적인 결과다. 수시 모집에는 체험 학습, 어학 연수, 각종 예술 및 스포츠 활동 등이 반영된다. 그러다 보니 사교육 의존도도 함께 높아졌다. 다양한 활동을 경험하려면 부모의 재정적·시간적 지원이 필수이다. 사교육을 하면 할수록 학생부 종합 전형에서 높은 점수를 획득할 수 있고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
소득 상위층이 입시 명문고를 보내기에 유리하고, 입시 명문고가 명문대를 보내기 유리하다. 이런 경향을 부채질 하듯이 서울대학교는 내년도 수시모집 비중을 78.5%까지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교육의 불평등은 계속 확대 중이다.
교육기본법의 이념인 '민주시민 양성'도 없다
교육기본법의 이념 역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교육이 인격도야와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 세계 평화와 공영에 이바지할 인재를 만들기는커녕, 보다 값나가는 '노동력'이 되어 오로지 경제사회적 지위가 높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한 수단이 됐다.
지금의 부모 세대는 교육을 받은 만큼 보상이 확실한 시대를 살았다. 소를 팔아서 대학에 갔든, 땅을 팔아서 대학에 갔든, 어쨌든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투자 대비 확실한 성공'을 보장받았다. 그렇게 성공한 부모 세대는 부와 명예를 자녀 세대에게 물려주기 위한 가장 확실한 수단으로 교육을 사용했다. 빈곤한 가정 역시 없는 돈을 쥐어짜서 학원을 보내고, 과외를 통해 성적이 오른다면 집 기둥이라도 뽑아서 공부를 시켰다. 교육은 계층 이동의 사다리였고, 성공을 위한 수단이었다.
민주 시민 양성이란 목표는 입시 제도와 사회 구조 속에 상실되어 버렸다. 수학 능력 시험은 아이들을 '성적'이라는 지표로 1등부터 꼴등까지 줄을 세운다. 서울대와 가까울수록 '우수'한 인간이 되고 소위 '지잡대'로 갈수록 '열등'한 인간이 된다.
헌법과 교육기본법의 이념은 모두 돈으로 인해 이 땅에서 거의 상실되고 말았다. 고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불평등이 만연하다. 더 심각한 것은 이렇게 해서 대학이 결정되면 직장까지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명문대 출신은 대기업, 그래도 '인 서울' 출신은 중견기업, 지잡대는 중소기업, 대학을 못나오면 일용직에 취직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출신 대학의 등급에 따라 이렇게 취업 자리가 정해진다.
'5-5-2 학제 개편?' 차라리 서울대 폐지를
더 이상 이렇게 소모적인 교육으로는 안 된다. 아이들과 부모, 모두가 불행해지고 부유층과 빈곤층의 격차를 더 크게 벌리는 교육 제도는 바꿔야 한다. 앞서 살펴본 대로 '부모의 재력-사교육-명문대 입학-대기업 취업'으로 순환되는 낡은 구조를 깨부숴야 한다. 교육의 불평등이 경제사회적 불평등으로 연결되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
또한 교육의 목적이 입시 교육의 학력 신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인적 성장과 민주시민으로서의 기본 자질을 가르치는 것이 되도록 해야 한다. 정규 교육 과정에 시민 교육과 정치 교육을 편성해서 사회에 진출하는 시기에는 학생들 스스로가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책임 있는 행동을 하게끔 도와줘야 한다.
각 정당과 유력 정치인들이 차기 대선을 앞두고 교육 개혁을 위한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공약 중의 하나로 국민의당은 '5-5-2학제 개편'을 주장한다. 이것은 현행 '6-3-3'학제를 바꾸자는 것인데, 교육 체계의 가장 중요한 문제점은 학제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학제를 바꾸는 것이 우리나라의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개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관련 기사 : 안철수 "초등 5년, 중등 5년, 진로학교 2년" 제안)
오히려 박원순 서울시장의 '서울대 폐지'가 훨씬 더 매력적이다. 전국의 국·공립대학교를 통합하고 지방과 서울의 학력 격차를 없앤다. 반값 등록금을 넘어 무상 교육까지 확대하고 고등 교육기관에 다니지 않더라도 양질을 일자리를 얻을 수 있게끔 취업 분야도 개혁한다. 사교육을 낳는 수학능력 시험은 SAT와 같은 자격 시험으로 변경한다. 훨씬 긍정적인 개혁의 방향이다. 여기에 개인적인 생각을 더하자면 지방 대학과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지방 기업 간의 협력을 통해 '산학연 클러스터'를 만든다면 지방과 수도권 간의 격차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교육 개혁의 정답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입시 제도의 개혁과 대학 서열화를 철폐하면 된다. 이 두 가지를 개혁하면 돈과 교육의 유착 관계를 끊을 수 있다. 그러나 부유층은 대물림의 수단으로, 빈곤층은 '개천의 용' 신화로 현 교육 체계의 개혁을 가로막고 있다.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다. 더 이상 교육이 출세와 성공의 수단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강력한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 이것은 단순히 정치의 요구만이 아니다. 우리 시대의 요구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처럼 백년을 갈 수 있는 교육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역동적 복지국가의 건설이 시대정신으로 요구되고 있는 지금이 바로 그 적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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