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피살 사건, 사흘째 의혹만 커져간다

현지 언론 "주사 자국 없다", 법의학자 "독살설 곤혹스럽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씨 살해 사건이 점차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지 사흘이 지난 16일 현재까지 김정남을 살해한 범행 정황과 동기, 배후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아서다.

아흐마디 자히드 말레이시아 부총리는 16일, 부검을 진행한 결과 피살자가 김정남이라는 점을 확인하면서도 "사인은 특정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이번 사건에 쏠린 세계적인 이목을 감안하면, 오는 18일 경으로 예정된 정확한 부검 결과 발표일까지 신중한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는 말레이시아 정부의 불가피한 입장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김정남 씨 피살 이후 국내언론과 외신들이 일제히 독살에 무게를 싣는 가운데, 7시간 동안 진행된 부검을 통해서도 이를 뒷받침할 분명한 증거를 아직 찾지 못했다는 뜻으로도 해석돼 의문이 커지고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김 씨의 피살 정황은 2명의 여성과 접촉해 이상 증세를 보인 뒤 병원으로 호송 도중 사망했다는 것이다. 범행 수단은 독침, 스프레이, 독이 묻은 헝겊 등으로 엇갈려 추정되는 가운데, 김씨가 불과 몇 시간 만에 사망했다는 점에서 독살 방식과 독극물의 성분을 둘러싼 의구심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현지 언론 뉴스트레이츠타임스는 이날 김정남 부검 과정을 잘 아는 소식통을 인용해 김정남의 얼굴을 포함한 신체에 아무런 주사 자국이 없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독침 등 직접 주입 방식에 비해 효과가 떨어지는 헝겊이나 스프레이 공격만으로 짧은 시간에 살해할 수 있느냐는 논란이 불가피하다.

이와 관련해 말레이시아 현지 언론 더스타에 따르면, 말라야대학 의학센터 병리학장 K. 나데산 교수는 "이번 사건의 이른바 '독살'이란 부분이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시안화합물(청산가리)만이 이처럼 빠른 속도로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으나 이는 삼켜야만 효과가 있다"고 했다.

나데산 교수는 이어 암살에 주로 사용되는 독극물 '리신'도 주입 후 실제 사망까지 최소 1일~3일이 걸린다는 점을 들어 가능성을 낮게 봤다.

나데산 교수는 자신의 추론이 가정이라면서도 심장마비나 저혈당 쇼크 등 자연사 가능성도 배제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김 씨를 살해한 배후가 북한인지도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이날 동남아계 용의자 2명을 추가로 체포하는 등 성과를 내고 있으나 아직 범행의 실체를 파악하지는 못하고 있다.

수사 당국은 북한이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외국인들을 고용해 청부살인을 저질렀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으나, 아직 각각의 연결고리를 입증할 단서를 찾아내지는 못했다.

우선 전날 처음 체포된 여성 용의자는 경찰에 남성 4명이 공항 승객을 상대로 장난을 칠 것을 제안해 이를 따랐을 뿐이며 그 대상이 김정남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고 진술하는 등 전문적인 암살 공작원으로 보기 힘든 태도를 보였다.

또한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이 여성 용의자는 남성 용의자 4명 가운데 베트남계와 북한계가 포함돼 있었다고 진술했으나, 16일 추가로 체포된 남성 용의자는 말레이시아인으로 알려져 북한계 인물의 가담 여부도 나머지 용의자들이 체포될 때까지는 확인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말레이시아 정부의 태도도 북한 배후설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자히드 부총리는 "김정남 씨의 시신을 북한에 인도하겠다"는 뜻과 함께 이번 사건으로 "말레이시아와 북한의 관계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명토박았다.

북한 집권층의 소행으로 밝혀질 경우 타국에서 '정치 테러'를 저지른 문제가 되는데도 말레이시아 정부가 북한과의 외교적 갈등 가능성을 서둘러 차단한 것이다. 앞서 북한은 김정남 피살 직후부터 시신 인도를 말레이시아 정부에 강하게 요청해왔다.

우리 정부는 이처럼 사건의 실체가 아직 파악되지 않아 공식적인 입장 발표를 자제하면서도 북한 정권에 의한 소행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눈치다.

G20 외교장관회담 참석차 독일을 방문하고 있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김정남 피살에 대해 "북한 정권의 성향을 판단할 수 있는 일로서 국제사회에서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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