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피살 의문점, 누가 왜 죽였나?

"북한 소행" 무게 실리지만 증거 확보 난항 예상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발생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피살 사건을 둘러싼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범행 정황이나 범행 주체 등에 대한 사실 관계가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채 미확인 정보에 기초한 추정들이 서로 엇갈리는 상태다.

우선 말레이시아 수사 당국과 외신 보도, 국가정보원 등 정부기관이 현재까지 수집한 정보를 종합하면 독극물에 의한 범행이란 점은 분명해 보인다.

김정남 씨는 13일(현지시간) 오전 9시 경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 공항 제2청사에서 오전 10시에 탑승할 마카오행 항공편 탑승 수속을 밟다 신원 미상의 여성 2명에 의한 독살됐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김철이라는 북한 여권을 가진 북한인"이라고만 밝혔을 뿐, 아직 김정남으로 특정하지는 않고 있다.

범행 당시 상황에 대해서도 말레이시아 당국은 "누군가가 그를 뒤에서 잡고 얼굴에 액체를 뿌렸다"고 발표한 반면, 김정남이 독침이나 독극물이 든 주사를 맞고 살해됐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구체적인 범행 정황은 말레이시아 당국의 김정남에 대한 부검을 통해 드러날 것으로 전망된다.

김정남을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용의자 검거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용의자로 추정되는 여성 2명이 범행 후 택시를 타고 공항을 빠져나간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CCTV에 포착된 신원 미상의 동양인 여성 1명이 용의자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 경찰력이 상대적으로 열악해 용의자로 추정되는 인물들이 말레이시아를 이미 빠져나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이들이 실제로 북한에서 고도의 훈련을 받은 공작원일 경우 검거 가능성은 더 낮아질 것이란 관측이다.

이와 관련해 일본 <교도통신>은 15일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용의자들이) 이미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정보가 있어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용의자가 생존한 상태로 검거되거나 북한이 공식적으로 확인하지 않는 한, 이번 사건이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에 의한 것인지도 밝혀내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우리 정부는 물론이고 미국, 중국, 일본 정부도 아직까지 공식 입장을 내지 않고 있지만, 정보당국과 외신들은 대체로 김정남 살해 배경으로 김정은 정권에 의한 숙청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 정부는 북한 요원들이 김정남을 살해한 것으로 강하게 믿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정원도 이날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김정남 암살은 김정은의 '스탠딩 오더(변할 수 없는 지시사항)'이라며 북한 정권에 의한 소행 가능성을 강하게 제기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김정남을 체제 불안 요인으로 간주하고 정찰총국 등에 그의 제거를 직접 지시했을 것이란 추론이다.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달 김원홍 국가보위상을 해임한데 이어 이제 이복형까지 살해한 것"이라며 "이번 사건은 북한 내부에 얼마나 많은 저항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언론들은 2013년 처형된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과 밀접했던 김정남이 망명을 시도하다 발각돼 피살됐다는 설, 김정남이 망명 정부의 간부로 취임하려고 했다는 설 등을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국정원은 김정남의 망명 시도와 관련해 "과거에도 (망명 시도는) 없었다"고 국회 정보위에 보고했다.

또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이기는 하지만, 동남아 등 해외를 전전하며 떠돌이 생활을 해 온 김정남이 북한 권부의 내부 암투에 영향력을 행사할만한 위치가 아니라는 점에서 권력 암투설을 둘러싼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국제 정세가 불안정한 현 상황에서 친중파로 분류된 그를 제거해 북한이 실질적으로 얻을 이익이 별로 없다는 점도 북한 소행설을 의심하는 정황이다.

중국 <인민일보> 해외판 매체인 '협객도(샤커다오)'는 북한 소행으로 의심할만하다면서도 "북한 내부에 김정남 지지 세력이 거의 없고 내부정세 변화가 있더라도 그가 권력을 이어받을 가능성이 없었다"면서 "북한이 암살을 저질렀다면 부정적 영향만 있고 국제정세만 나빠지는 등 이익이 전혀 없어 이해할 수 없다"고 보도했다.

황교안 권한대행은 이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주재한 자리에서 북한의 추가 도발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안보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이번 사건이 북한 주변국들의 안보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의 동향에 대해 평소보다 중대한 관심을 갖고 주시하면서 경계, 감시에 나서고 있다"면서도 "현 시점에서 (김정남 피살이) 우리나라의 안보에 직접 영향을 주는 특이한 현상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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