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대선주자들 '균형'의 함정에 빠져 있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 <2> 북한은 극복해야 할 대상...'주도전략'은 어디에

2017년 정유년 새해,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거의 매일 잠재적 대선 후보들의 동정이 보도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대선 주자 중에 누구도 산적한 동북아 현안들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에 대한 비전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지금 대선주자들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설프게나마 균형을 도모하겠다는 이야기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며 "그런데 그런 어설픈 균형 전략은 반드시 눈치 외교, 줄서기 외교를 거쳐 굴욕 외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그는 "박근혜 정부는 균형외교를 지향하다가 눈치 외교를 선보였다. 그런데 이렇게 국가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순간 강대국으로부터 더 홀대를 받을 수밖에 없다"며 "이게 균형이라는 담론이 가지고 있는 함정인데, 이걸 보수와 진보 모두가 이용했다. 참 불행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지금 대선 주자들의 대외정책 전략에서 균형과 편승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사실 이것들은 모두 강대국 정치 프레임을 수용한 것"이라며 "자강과 주도 전략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과거 서독 빌리 브란트 총리가 4개국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주변국에 협조를 구하면서 외교의 판을 만들었다며 "약한 나라도 강대국을 상대로 얼마든지 외교의 판을 짤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 사례"라고 언급했다.

김 의원은 "지금은 판을 짜는 외교를 해야 생존할 수 있는데, 이걸 가장 정확히 하고 있는 사람이 다름 아닌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라며 "아베는 적극적인 외교를 통해 보통국가화를 꿈꾸고 있는데, 전시 작전권을 환수하고 강력한 주권을 세워서 보통국가가 돼야 할 한국은 정작 너무나 조용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한국의 차기 정치 지도자들이 대외 문제에 있어서 제대로 된 발언을 하지 못하는 주요한 이유로 한국에 내재된 '북한에 대한 두려움'을 꼽았다. 김 의원은 "북핵은 위협적인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다만 이는 극복의 대상이어야지, 두려움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 우리가 두려움의 노예가 됐다는 것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핵무기가 없어도 북한은 우리에게 언제나 공포의 대상이었다. 1960~70년대에는 북한의 전차, 80년대는 특수부대, 90년대는 장사정포였다"며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 대해 모든 군사적 방어 대책을 마련하면서 공포를 이겨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북한과 관계, 그리고 이를 관리하는 다양한 수단을 확충하면서 공포를 극복했다"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냉전 시대에는 군사적 수단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외교, 정보, 경제 등 비군사적인 수단이 굉장히 많다"며 "그런데도 군사적 조치는 서두르고 나머지 비군사적 조치는 버리자? 이는 북한 핵을 극복하겠다는 자세가 아니라 오히려 두려움에 떠는 노예가 되겠다는 뜻"이라고 일갈했다.

인터뷰는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 위치한 김종대 의원실에서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1편 보러 가기 : "국방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했다")

▲ 김종대 정의당 국회의원 ⓒ프레시안(이재호)

프레시안 : 우리 정부는 미국의 전략자산은 북한을 막기 위한 거라고 보는데, 실제 미국은 동아시아 전체를 바라보고 있고, 한국은 거기에 말려 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김종대 : 여기서 우리가 고민이 되는 지점이 있다. 한반도 방위를 위해 한미 동맹이 확장 억제력을 제공하고, 북한 제재와 압박에 기여할 수 있다면서 전략 자산을 보낸다고 하면 이걸 무슨 명분으로 거절할 수 있을지 난감하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 위협과 두려움에 떠는 정부라면 이를 거부하거나 비토할 만한 논리가 준비돼 있지 않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국제사회가 한국을 돕는 만큼 한국도 지역 안보에 기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수도 있다. 한국도 남중국해와 관련해 항행의 자유를 이야기하고 다국적 훈련에 참여하라는 압박을 받을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아시아 14개국과 34개의 군사협정을 맺고 있다. 미국은 한국이 이렇게 많은 국가와 협정을 맺고 있을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일원이기도 하니 항행의 자유, 국제 안보, 공공재, 지역 안보를 위해 한국이 기여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를 펼 수 있다.

또 미국은 지역 안보에 초점에 맞춰져 있는데, 한반도 방위는 지역 안보를 강화하는 틀 내의 한 부분이라며 한국이 지역 안보에 참여한다고 해도 한반도의 방위는 나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이랬을 때 우리 정부가 이 논리를 비토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이러한 지역 안보 담론들에 자연스럽게 편승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사실 유달리 안보 문제가 절박한 우리 입장에서는 이는 곧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에 스스로 전쟁/평화를 결정할 수 있는 주권이 있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데 이런 부분은 지금까지 소홀히 돼왔다. 그런 가운데 지역 안보에만 편승하려고 한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프레시안 : 사드뿐만 아니라 이른바 '이명박근혜' 정권 이후 악화된 남북관계가 군사문제를 악화시켰고 안보를 위태롭게 한 측면이 있다. 그런데도 여야를 막론하고 대권 주자가 안보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김종대 : 지금 대선주자들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설프게나마 균형을 도모하겠다는 이야기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어설픈 균형 전략은 반드시 눈치 외교, 줄서기 외교를 거쳐 굴욕 외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는 균형외교를 지향하다가 눈치외교를 선보였다. 그런데 이렇게 국가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순간 강대국으로부터 더 홀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게 균형이라는 담론이 가지고 있는 함정이다. 그런데 이걸 보수와 진보 모두가 이용했다. 참 불행한 일이다.

지금 대선 주자들도 상황을 타개할만한 전략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 보인다. 문재인 전 대표는 균형전략,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은 편승전략, 안희정 지사는 자강전략, 이재명 성남시장은 균형전략, 안철수 의원은 편승전략에 가깝다. 문제는 여기서 주도 전략이 빠졌다는 점이다. 편승이냐 균형이냐는 사실 강대국 정치 프레임을 수용한 것이다. 자강 및 주도전략으로 가야 한다. 그게 정의당의 전략이다.

야권은 강대국 정치의 프레임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예전에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는 미국에서 그렇게 안 좋은 소리를 들어가면서 소련과 밀월 외교를 했고, 그러면서도 외부에서 간섭할 수 없는, 독일 국민들이 스스로 결정해야 할 영역을 명확히 규정했다. 또 주변국에 협조를 구하면서 미국과 소련, 모두가 싫어하는 판을 짜버렸다. 2차 세계대전 전범국이었고 네 나라의 외국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나라에서 이런 판을 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약한 나라도 강대국을 상대로 얼마든지 외교의 판을 짤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 사례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가 일본에 발언권이 밀리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해 심각한 위기 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 결과가 2015년 12.28 위안부 합의로 나타났고 지금의 부산 소녀상 문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이러다가 당사자 지위마저 뺏기게 생겼다. 주도하지 않으면 주도 당하는 것이 국제정치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은 미중 균형외교로 대한민국이 생존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판을 짜는 외교를 해야 한다. 그런데 이걸 가장 정확히 표현한 사람이 다름 아닌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다. 아베 총리는 '적극적 평화외교'를 펼치겠다고 밝혔다. 물론 아베는 적극적인 외교를 통해 평화보다는 보통국가화를 꿈꾸고 있지만, 어쨌든 적극적으로 움직인 아베 덕분에 일본의 위상은 엄청나게 올라갔다.

▲ 지난 10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 도착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맞이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런데 정작 이러한 외교를 펼쳐야 하는 한국 정치 지도자들은 조용하다. 정전협정 서명국도 아니고, 전시 작전 통제권도 없는 한국은 주권 취약성을 가지고 있는 국가다. 이런 우리가 보통국가가 돼야 하는데, 지금 이런 담론을 이야기하는 주자는 단 한 명도 없다.

한반도 안보의 당사자는 한국 국민이다. 이는 동맹이나 협정이라는 '법과 규정' 보다도 우선시 되는 가치다. 주권의 문제는 전쟁이냐 평화냐를 선택할 권리를 말하는 건데 우리한테는 이게 점점 멀어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적극성을 띨 수가 없고, 이런 터전 위에 정책을 내놓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물론 안보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은 충분히 고려해야 할 상황이다. 하지만 현재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적극적 평화외교가 필요하다. 이를 어떤 내용으로 채울 것이냐가 문제인데, 예를 들어 과거 보수와 진보 정권은 대북 정책에 있어 주로 경제와 안보의 교환 모델을 활용했다. 그 방식에서 앞뒤가 달랐을 뿐이다. 진보 정권은 일단 경제지원을 먼저 하고 신뢰를 쌓아서 평화를 달성하자는 선불제였고, 보수 정권은 경제지원 한다는 약속을 하고 일단 평화부터 달성하자는 후불제였다.

그런데 이러한 교환 모델은 선불제와 후불제 모두 단기간 내에 성공적인 결과를 맺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 물론 미국도 있고 주변 여건도 있었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지금 와서 경제와 안보의 교환 모델은 성립하기 어렵다. 안보와 안보, 평화와 평화의 직접 교환 모델로 나아가야 한다. 이게 적극성이다.

남한과 북한, 그리고 주변국가의 안보 우려는 즉각 교환돼야 한다. 경제는 다음 문제다. 이는 예전에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조성렬 박사가 제시한 방안인데, 이걸 진보정당이 수용해야 한다고 본다.

한반도의 전쟁 방지와 긴장 완화, 위기관리를 거쳐 군사협력과 평화협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면서 비핵화프로그램까지 곧바로 연결되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 지금은 우회로를 찾을 때가 아니다.

남한이 경제적인 부문을 통해 북한과 뭔가를 하려고 해도, 일단 북한이 남한과 경제협력을 원하지 않는다. 북한은 이제 남한이 아니더라도 생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물론 이명박 정부 초기 까지만 해도 북한은 남한과의 관계 개선을 희망했다. 하지만 적어도 이명박 정부 이후로는 이러한 경향이 없어졌다. 그래서 과거와 같은 햇볕정책의 유인 요소가 사라졌다.

안보와 안보 교환 모델을 1단계로 하고 그것이 어느 정도 성과를 냈을 때 경제적 교환 모델이 보완적으로 결합될 수 있는 접근법이 합리적이라고 본다.

북핵, 두려움의 대상? 극복의 대상!

프레시안 : 문재인 전 대표가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을 영입한 것은 상당히 주목할만한 일이었다. 전인범 전 사령관이 "문재인은 빨갱이가 아니라는 것을 확신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실제 문재인 전 대표가 가장 걱정하는 것이 본인을 이른바 '빨갱이'로 보고 있는 적극적인 반대층이 많다는 점이라는데, 그래서 전인범 전 사령관을 영입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방식이 다소 소극적인 대응으로 보인다.

김종대 : 지금과 같은 이런 식의 대응이 바로 2012년 대선의 패인이다. 지금 민주당 대선 주자들은 문 전 대표뿐만 아니라 누구도 적극적으로 본인의 언어를 활용해 안보 문제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프레임만 의식하고 있다. 외교안보 문제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럴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안보를 이데올로기적인 영역으로만 바라보고 있다. 이는 비전과 대안을 제시하는 적극적인 자세라기보다는 안보 문제의 대선 쟁점화를 회피하는 관리적인 모드에 돌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안보 쟁점화는 무조건 진보에 불리하다는 선입견 때문이다.

물론 이 전략이 정치 공학적으로 봤을 때 옳은 전략일 수도 있다. 대선을 사실상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고공 지지율을 관리하는 모드에 들어서면서 프레임에 말려들지 않겠다고 선택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전인범 전 사령관 같은 사람이 문 전 대표에게 필요했던 거라고 본다.

실제 문 전 대표는 한미동맹과 색깔론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긴 하다. 최근 미국의 기관 사람들이나 언론인 등 국내 보수 세력과 연결된 계층들에서 '문재인이 당선되면 한미동맹은 끝장난다'는 괴담이 꽤 넓게 확산돼있다. 또 문 전 대표는 색깔론 공격을 당하곤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 후보 입장에서 일단 미국과 관계를 가장 잘 풀어줄 수 있는 인사임과 동시에 색깔론에서 자유롭게 해줄 외부 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럴 때 전인범 전 사령관이 이런 부분을 희석시켜줄 수 있는 대안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프레시안 : 문재인 전 대표의 소극적 대응 자체도 문제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북핵 위협이 우리 안보의 모든 것인 것처럼 떠들어 온 프레임이 안보 문제와 관련한 소신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든 것 같다.

김종대 : 북핵은 위협적인 것은 분명하다. 다만 이는 극복의 대상이어야지, 두려움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 우리가 두려움의 노예가 됐다는 것이 문제다.

사실 핵을 가진 북한을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북한이 핵을 사용하면 이는 곧 파멸이다. 한반도는 물론이고 동아시아 전체가 쑥대밭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미국은 북한이 핵을 사용할 조짐만 보여도 참수 작전, 정밀 타격 등으로 사전에 예방 공격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면 북한의 핵은 역설적으로 쓰지 않을 때 더 위력을 발휘하게 되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는 핵을 가진 북한을 두려워하면서 정책을 짤 필요가 없다.

▲ 13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12일 북극성 2호가 발사됐다며, 김정은(오른쪽 세 번째) 국무위원장이 이를 참관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

핵무기가 없다고 하더라도 북한은 우리에게 언제나 공포의 대상이었다. 1960~70년대에는 북한의 전차가 무섭다고 난리였고 1980년대가 되니까 북한의 특수부대가 위협적이라고 대대적인 난리를 피웠다. 오늘날 우리의 안보 체제가 1년 365일 대간첩 작전 체제로 가동된 것도 이때부터다.

그러다가 1990년대는 북한의 장사정포가 무섭다고 했고 2000년대 들어와서 북한의 핵미사일이 현실화됐다. 핵이 아니더라도 북한이 공포의 대상이 아닌 적이 없었다. 오히려 과거에, 핵보다도 못한 무기에 더 공포에 떨었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까지 이러한 공포를 어떻게 극복해왔을까? 모든 군사적 방어 대책을 마련하면서 공포를 극복해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북한과 관계, 그리고 이걸 관리하는 다양한 수단을 확충하면서 공포를 극복했다. 군사적인 수단 보다는 놀라울 정도로 다양화된 외교적 수단을 활용했고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만의 전략 자산들이 굉장히 많이 늘어났다. 외교(Diplomacy), 정보(Intelligence), 군사(Military), 경제(Economy) 등의 종합적인 접근 방식을 택한 것이다.

냉전 시대에는 군사적 수단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외교, 정보, 경제 등 비군사적인 수단이 굉장히 많다. 그런데도 북한 핵 미사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군사적 조치는 서두르고 나머지 비군사적 조치는 버리자? 북한과 대화할 필요 없다? 이는 북한 핵을 극복하겠다는 자세가 아니라 오히려 두려움에 떠는 노예가 되겠다는 뜻이다.

프레시안 : 하지만 21세기인 오늘날에도 북한에 대한 심리적 두려움을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 아닌가?

종대 : 냉전의 유산으로 우리가 물려받은 것이 바로 이 두려움이다. 소련에 비해 압도적 군사력 우위를 누렸던 미국도 그랬다. 소련에 대한 공포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수없이 많은 실수를 저질렀고, 그게 결국 인류 최악의 군비 경쟁을 촉발시켰다.

그런데 우리보다는 북한이 훨씬 두려울 것이다. 북한은 두려움과 함께 자신들이 주변국가들로부터 포위돼있다는 이른바 '피포위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가장 유사한 것이 중동의 이스라엘이다. 핵에 매달리면서 동맹에 의존하지 않고 공격 전력을 통해 행동의 자유를 확립하겠다는 것인데 북한의 전략과 완벽하게 닮아 있다.

촛불 이후, 무엇을 남길 것인가

프레시안 : 촛불 민심은 단순히 박근혜 퇴진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는 물론이고 경제, 남북관계와 외교‧안보 등 사회의 모둔 분야에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을 염원하고 있다.

그러나 대선 주자들은 경제 문제에 대한 언급 외에 안보 문제 등에 대해 총체적인 쇄신 전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 지도자들이 안보 현실에 대한 제대로 된 진단과 대안을 하지 못하고 있는 근본적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나?

김종대 : 기본적으로 정치권에서 외교‧안보 전문가 집단이 완전히 와해됐다는 것이 문제다. 19대 때부터 이런 현상이 생기기 시작했고, 20대 국회에 들어와서는 완전히 무너졌다. 일례로 국회 상임위원회 중에 국방위원회와 외교통일위원회는 완전 찬밥 신세다. 지원하는 의원이 거의 없다. 갈 곳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오는 곳인 경우가 많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정치권이 이쪽 분야의 전문가를 발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문가 의원들이 없다 보니 보좌진도 부실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식의 연쇄 반응이 일어나면서 전문가 집단이 붕괴됐다.

그러다 보니 대선 후보들은 캠프 때 전문가 그룹을 급조하고, 이들은 단기적 상품 개발에 투입된다. 이렇게 되면 국가 생존을 모색하는 통찰력 있고 적극적인 외교안보 정책이 나오지 못한다.

국회의원 선거제도에도 문제가 있다. 현재 선거 제도는 승자독식과 지역 패권주의를 반영하고 있다. 비례대표의 효용성은 부인하는 쪽으로 개악돼왔다. 이렇게 되면 국회 내에서 전문가 집단이 양산될 수가 없다. 국민을 닮은 국회를 만들어야 하는데, 기득권을 강화하는 쪽으로 국회가 구성되고 있는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었던 촛불집회 이후 정치 경악을 금치 못했던 것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이 지난해 12월 9일 가결된 이후 야3당 대표회담이 두 달이 지난 8일이 돼서야 처음 열렸다. 그 두 달 동안 개혁 입법을 처리하자고 모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열다섯 번째 촛불 집회 '천만 촛불 명령이다! 2월 탄핵, 특검 연장'이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 등 전국 곳곳에서 열렸다. ⓒ프레시안(최형락)

1987년 6월 항쟁을 우리사회의 민주화를 이룬 시기라고 하지만, 이만큼이나 중요했던 것이 바로 이듬해 1988년 총선에서 국민들이 여소야대 국회를 만들어줬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당시 국회는 5공 청문회를 열었고 노동과 언론의 자유 등 시민의 권리를 다양한 제도를 통해 뒷받침했다.

1988년 이후 다시 기회가 찾아왔는데, 국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국민들이 애써 정치적으로 열린 공간을 만들었는데, 과실이 국민에게 돌아갈 수 있는 구조를 국회가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금 국회는 대선 국면에 들어가 있다. 모든 것을 대선 이후로 미뤄놓고 있다. 이게 합리적인 선택일까? 지금 상황에서는 누가 대통령에 당선된다고 해도 여소야대 정국인 데다가, 막상 집권하면 개혁의 속도는 늦어질 수밖에 없다. '다음 대통령이 집권하면 알아서 하겠지'라는 식인데 이건 실패로 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태에서 대선에 이른바 '몰빵'했는데 새 대통령이 기대에 못 미치면 대통령 탓을 또 얼마나 하게 되겠나?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대통령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누가 되도 여소야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정당정치가 살아나고 개혁입법이 이뤄져야 한다. 국회가 지금 돌아가야 다음 대통령이 성공한다.

미국의 독립선언서 없이 독립전쟁을 설명할 수 있나? 어떤 사회적 변동이 있을 때는 그것을 집약하고 정리해서 방향을 잡는 치열한 사회적 켄센서스 과정이 뒤따라 나와야 한다. 그런데 국회는 개혁입법에는 손을 놓고 사실상 대선만 바라보고 있다. 이런 과정은 역설적으로 다음 대통령이 성공할 수 없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현재 국회 역시 제도적으로 아무 일도 못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여기에는 여야가 똑같은 불만을 가지고 있다. 서로 상대 당의 방해 때문에 아무것도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시민들의 참여마저 봉쇄돼있다.

경제정책을 예로 들어보면 경제민주화나 재벌개혁은 사실 도입부에 불과하다. 청년과 비정규직, 노동조합에 자신들의 합당한 시민권을 되돌려주는 것이 진짜 개혁이다. 시민들이 직접 시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그 권한을 돌려줘야 한다. 노조가 협상권을 가지고, 노동이 합당한 가치로 인정받아서 국가정책에 개입하고 청년들이 투표하는 것이 중요한 개혁이다. 대의적 정치에서 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부분들이 혁신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음 정부가 출범했을 때 박근혜 정부가 물려준 숙제를 과연 어떻게 풀 수 있을까? 이건 경제뿐만 아니라 외교안보 정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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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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