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이 복지를 한다고?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정부, 재정 지원뿐 아니라 운영도 책임져야

우리나라 사회복지 영역에 '사회 서비스'라는 개념은 비교적 최근에 등장했다. 2007년 노인, 장애인, 산모, 아동에 대한 재가 방문 서비스에 보건복지부가 재정을 지원하는 '사회 서비스 바우처' 사업이라는 이름을 통해서였다. 같은 해 제정된 '사회적 기업 육성법'에는 사회적 기업이 '취약 계층에게 사회 서비스나 일자리'를 제공하는 곳이라고 설명되기도 하였다.

당시 일선 사회복지 기관들은 '사회 서비스가 과연 사회복지인가'라고 심각하게 문제 제기했다. 정부 보조금이 모자라 지역 사회 기부물품, 자원봉사에 의지하여 근근이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해오던 비영리 사회복지 기관에게 경쟁을 통해 이용자를 유치하고 이용 요금을 받아 운영하라는 정부의 요구는 한없이 낯설 따름이었다. 사회 서비스란 본래 서구 복지국가에서 일찍이 공적으로 제공하는 보건 의료, 교육, 주거, 고용, 대인 서비스(돌봄)를 포괄하여 가리킨다는 설명도 의미가 없었다.

사회 서비스는 비영리만이 아니라 영리 기업도 제공할 수 있으며, 기관 간의 경쟁을 통해 이용자를 유치하여 수익을 창출하라는 정부의 주문도 어렵기는 매한가지였다. 이렇게 사회 서비스 정책은 정부가 주도하는 사회 서비스 시장의 육성과 더불어 출발하였다.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사회 서비스, 사회 보장의 한 축으로 급속히 확대

사회 서비스에 사회복지의 시민권이 부여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13년 전면 개정된 사회보장기본법 시행으로 사회 서비스가 사회 보장의 한 축을 설명하게 되었다. 개정 법률에서 사회 보장은 "출산, 양육, 실업, 노령, 장애, 질병, 빈곤 및 사망 등의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모든 국민을 보호하고 국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소득·서비스를 보장하는 사회 보험, 공공 부조, 사회 서비스"를 의미했다.

사회 서비스는 기존의 '사회복지 서비스와 기타 관련 제도'로 설명되던 자리를 대체하였다. 우리나라 법제에서 사회 서비스는 사회 보장의 한 축으로 사회복지 서비스를 포괄하는 영역으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나라 사회복지 정책의 중요한 변화를 의미한다. 사회 보장의 범위가 노동시장으로부터 발생하는 소득 상실의 위험만이 아니라, 가족 돌봄의 결핍에서 오는 위험까지 포괄하는 것으로 확대된 것이다.

종래의 사회복지 서비스가 빈곤한 '무의탁' 아동과 노인, 장애인에게 기초 보장을 보완하는 의미로 지원했다면, 이제 소득과 별도의 생애주기별 '욕구'를 사회적으로 보장하는 사회 서비스가 국가의 책임으로 자리매김되었다. 아동과 장애인 그리고 노인에 대한 돌봄은 이제까지 개인과 가족이 감당해온 영역이었지만, 저출산 고령 사회라는 변화에 조응하여 사회 서비스 정책의 중심이 되어 급속히 '사회적 돌봄'으로 제도화되었다.

지난 십여년간 사회 서비스 부문은 재정, 수혜자, 제공기관, 제공 인력 모든 영역에서 급속히 확대되었다. 2000년도에 국고 예산 규모가 1500억 원에도 미치지 못하던 보육 부문은 2014년을 기준으로 중앙과 지방정부, 보육과 유아 교육 재정을 모두 합하여 14조 8600억원 규모,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 1%를 상회하게 되었다. 2007년 도입된 노인 장기 요양 보험 제도는 2016년 기준 4조가 넘는 예산을 가지게 되었으며 2007년 약 1000억 원 예산으로 도입된 사회 서비스 바우처 사업의 2015년 예산은 지방비 포함 약 1조 2억 원에 도달했다. 보육 서비스를 이용하는 아동은 2015년 기준 약 145만 명이 넘고, 노인 장기 요양 보험 제도는 65세 이상 노인의 약 7%에 달하는 약 46만 명에게 장기 요양 시설과 재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프레시안(허환주)

사회 서비스의 낮은 질을 만드는 악순환 구조

그런데 보육과 장기요양기관의 정원이 현원을 웃도는 상황으로 표면적인 사회 서비스 공급이 늘었지만 "믿고 맡길 곳이 없다"는 하소연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낮은 질의 급식과 불안한 수준의 위생과 안전, 보육교사 혹은 요양보호사에 의해 발생하는 방임과 폭행 사건이 끊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보육교사와 요양보호사의 자질이 도마에 오른다. 명색이 국가자격증 제도로 운영되고 있지만 온오프라인 민간 교육기관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의 충실성이 떨어지고(이 대목에서 가짜 실습확인서를 발부해준 기관도 폭로된다!) '관리'도 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CCTV를 달자, 자격증을 박탈하자는 비난이 거세질 무렵, 보육교사와 요양보호사가 강도 높은 장시간 노동을 낮은 임금으로 수행하고 있다는 현실이 드러난다.

그래? 누가 그러는 거야? 비난의 화살은 한 층 위 기관 운영자에게로 올라간다. 이제는 근근히 운영하는 영세한 제공기관의 현실, 또는 허위 신고로 적정 인력 수준을 속이면서 이익을 취하는 현실 둘 중 하나가 폭로된다. 다음엔 정부가 지급하는 서비스 단가(1인당 보육비, 혹은 요양비)로는 저임금 인력을 쓸 수밖에 없고 싸구려 급식을 할 수밖에 없다는 운영자의 변명이 터져나온다. 정부는 보육시설, 혹은 요양시설 실태조사, 지도점검에 착수하겠다고 발표한다.

근래 수년간 반복되어온 이야기다. 개인 사업자도 아니고 영리를 추구하지도 않는 비영리법인, 종교법인, 사회복지법인에서는 그러면 아무 문제가 없을까? 장애인 시설에서 발생하는 성폭행과 감금 등 인권 유린, 반인권적 처우와 시설 운영의 부정과 비리도 수십년간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이어지는 문제들이다. 다만 보육 시설과 요양 시설보다 밖으로 알려지기 어려운 조건이라는 것, 그리고 문제가 발생한 시설 폐쇄가 어렵다는 것도 차이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우리나라 사회(복지)서비스 정책의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십수 조 원의 예산을 쓰면서도 기초적인 안전과 신뢰가 확보되지 못하는 것일까?

사회 서비스 확대는 민간 공급자 육성의 역사

나는 문제의 출발이 우리나라 정부가 사회 서비스 공급을 자신의 공적 업무로 사고하지 않는 데 있다고 본다. 전쟁 이후 고아 등 전쟁 이재민에 대한 구호 활동처럼 대단히 취약한 일부에게 사회 서비스를 제공해야 했을 때부터 생겨난 뿌리깊은 민간 의존성은 경제가 나아지고 정부 재정으로 사회 서비스 정책을 수립하게 되었을 때도 민간 공급자 유치, 민간 자원 확대를 습관처럼 정책 요소로 포함하게 하였다.

정부는 사회복지사업법을 제정하면서 사회복지법인이라는 민간 비영리 주체를 만들어 사회복지 사업을 전담하게 하였다. 본질적으로 민간 자원을 동원하여 정부 목표를 실현하고 약간의 보조금과 특혜를 주는 방식으로 이들을 관리했다. 비영리 사회복지 기관이 부족한 정부 보조금을 보충하는 방법은 민간 기부금, 후원금, 자원봉사라는 자원이었다. 이들 기관에서 제공하는 사회(복지) 서비스의 질은 추가적인 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기관의 능력과 서비스의 내용과 양, 대상을 전부 결정하는 기관의 재량에 좌우되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복지) 서비스보다 사정은 낫지만, 주로 민간 공급자에 의해 제공되기는 보건의료나 고등교육이나 마찬가지였다. 의료법인에 의한 병원, 사학법인에 의한 사립학교가 공공 의료와 공교육의 생산을 담당해왔다. 이들의 공공성은 비영리법인으로서 목적 사업에 충실할 것 그리고 사익 추구, 이익 배당 금지로 강제되었다. 정부는 보건의료 서비스 공급의 일부를 요양 급여로 재정 지원해주는 동시에, 이들 민간 기관들이 비급여 서비스를 판매하여 이용자로부터 직접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마찬가지로 사립 교육기관도 서비스 이용 요금인 등록금을 직접 수령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보건의료와 교육이 공적인 사회 서비스로 간주되고 적지않은 정부 재정이 투입되지만, 이용자는 개인 부담으로 서비스를 이용한다고 생각하게 되고, 또 병원이나 학교의 소유주나 운영자들이 스스로 정부 위임을 받은 공적인 사회 서비스 공급자로 사고하기 어려운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제공 기관은 정부로부터 부분적인 재정 지원을 받고 규제를 받기도 하지만 결국 기관의 생존은 민간법인의 사적인 책임이다. 따라서 병원과 학교는 유지하기 위해서건 번창하기 위해서건 끊임없이 재정에 도움이 될 사업을 찾게 된다. 어린이집과 노인 장기 요양기관도 다르지 않다.

무상 보육과 노인 장기 요양 보험 제도가 시행되면서 보육과 요양에서 서비스 단가는 거의 고정적으로 정부에 의해 정해지고 지원된다. 아동 1인당, 노인 1인당 같은 정부 재정을 지출하지만, 기관 선택은 온전히 이용자의 몫이다. 기관 선택에 실패하여 낮은 질의 서비스를 받는 것도 개인의 책임이다. 정부가 사회 서비스 정책에 이용자 재정 지원 방식을 도입하면서 서비스 대상을 직접 심사하고 수급권을 부여한 것은 수혜자 권리 측면에서 진보했다고 할 수 있다. 정부가 보장하는 사회 서비스 양을 지원되는 재정의 크기로 측정할 수 있게 된 것도 형평성 면에서 나아진 부분이다. 이러한 점에서 시혜적 사회(복지)서비스에 권리적 성격이 부여되었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하지만 정부가 보장한 것은 보육과 장기요양 이용자의 구매력, 딱 여기까지다. 정부는 구매력을 갖춘 이용자를 두고 기관이 서비스 질 경쟁을 할 것이며 이를 통해 서비스 질과 이용자 만족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하였지만, 보육이나 장기 요양 같은 대인 서비스, 관계적인 노동의 특징을 가지는 사회 서비스에서 이 시장 논리는 통하지 않았다. 가격 경쟁으로 작동하는 시장 논리를 적용받았으나 가격은 통제되는 이상한 '보육 시장', 이상한 '장기 요양 시장'에서 불법과 편법이 기승을 부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돌봄의 사회화를 통해 구축한 사회 서비스의 권리는 정부가 육성한 사회 서비스 시장 안에서 걷잡을 수 없이 소비자주의 방향으로 변질되면서 돌봄 주체들 간에 각종 갈등을 야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 어린이집 교사들이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직영 운영을 요구하고 있다. ⓒ문경자

정부는 재정지원자 이상의 역할을 해야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첫째, 정부는 재정 지원만이 아니라 공급 측면의 관리자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사회 서비스 제공 기관과 제공 인력의 질, 특히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보육과 장기 요양 서비스의 제공 기관과 제공 인력의 질을 강화하기 위한 로드맵을 수립해야 한다.

특히 보육과 장기 요양 서비스에서 단기간에 급속하게 양산된 제공 기관과 인력의 질적 수준을 균질화하고 높이기 위해 중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 정부에서 자격증만을 관리하고 양성과 고용을 모두 민간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교육 과정과 고용도 정부가 직접 하는 방안도 고안해볼 필요가 있다.

둘째, 사회 서비스 공급의 목적이 사회 구성원의 욕구를 충족하고 권리를 실현하며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있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따라서 사회 서비스의 제공 과정과 이용 과정에서 서비스 이용자의 권리가 존중되고 일정한 서비스의 질이 보장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가장 취약한 구성원을 위한 시설이라고 할 수 있는 생활시설 입소자의 인권 보장, 시설 환경, 안전 보장은 중앙 정부가 통일적으로 관리하고 보장해야 한다.

반면 지역 사회 서비스의 경우 지방자치단체의 지역복지 서비스 계획에 의해 조정되고 생산될 필요가 있다. 지역사회 서비스의 재편은 이용자의 욕구에 통합적으로 부응하기 위한 사회 서비스 공급 체계를 지역 차원에서 구축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시혜적 공급과 시장적 구매 구조가 지방 정부의 통합적 관리 안에서 배치되고 조정되어야 하며 이용자의 권리를 옹호하고 사회 서비스의 공공성을 높이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양난주 내만복 운영위원은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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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시민들이 복지국가 만들기에 직접 나서는, '아래로부터의 복지 주체 형성'을 목표로 2012년에 발족한 시민단체입니다. 건강보험 하나로, 사회복지세 도입, 기초연금 강화, 부양의무제 폐지, 지역 복지공동체 형성, 복지국가 촛불 등 여러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칼럼은 열린 시각에서 다양하고 생산적인 복지 논의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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