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 준비가 어렵다? 그럼, 이렇게…

[생협평론] 조합원의 시선으로 준비하는 총회

이즈음 협동조합에도 꼭 찾아오는 행사가 있는데, 뭔지 아시나요? 바로 정기총회입니다. 협동조합기본법 제28조에는 반드시 총회를 설치해야 하며, 소집은 누가, 의결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총회를 했는지 물어보면, '그걸 그렇게 제대로 해야 하는 거냐?'고 묻는 이들도 있고, 간단하게 압축해서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묻는 이들도 더러 있습니다. 이런 물음 속에는 '사업할 시간도 부족한데 총회할 시간이 어디 있나?' 하는 간절함도 담겨 있는 것 같아 마냥 모른 척하기도 어렵습니다. 정부에서 제공하는 총회의사록 양식만 보면, 총회는 형식적이고 번거로운 일이어서 넘어야 할 산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총회는 의사결정의 최고 단위 기구이자 민주적인 운영 원리의 기초입니다. 이는 법률적으로 보호된 역할입니다. 법률로 보장되지는 않았지만, 총회의 또 다른 역할 중 하나는 '공지성'입니다. 협동을 만들기 위해 '함께합시다'와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사람들은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협동할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할 때 자신만 아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메시지를 받았다는 것을 알 때 행동을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상대방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서로가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총회라는 의례(ritual)는 의사결정의 최고 기구일 뿐만 아니라, 공동이 메시지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협동을 촉진하는 좋은 수단이기도 합니다.

법률로 보장된 내용은 아니지만, 조합원에게 다양한 가치와 비전을 제시해주고 정보 교류와 교육 및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제공하는 것도 총회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입니다. 조합원들을 모아놓고 법에서 요구하는 요건대로만 총회를 진행한다면, 지루하고 단조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조합원들은 더 좋은 대접을 받아야 합니다. 무관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예속적 삶을 거부하고 자립적인 주체가 되기를 기꺼이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조합원들이 협동조합의 방향을 결정하러 모이는 곳이 총회입니다. 총회만 봐도 그 협동조합이 조합원과 얼마나 소통하고 민주적인지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매출이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조합원 없이 협동조합이 있을 수 없듯 조합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한 걸음으로 총회를 준비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더 성공적인 총회'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성공적인 총회를 준비하기 위한 준비

총회는 법률로 보장된 공식 기구이자 조합원과 다양한 활동을 공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기도 합니다. 안건을 심의하고 의결할 뿐만 아니라, 조합원에게 한 해의 활동과 기록을 보고합니다. 안으로는 고생한 임직원들에게 1년간의 노고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한 해를 새롭게 다짐하는 기회로 삼기도 하죠. 그런데 조합원 수가 10명이 넘게 되면, 총회를 혼자 맡아 이것저것 준비하는 일이 부담이 됩니다. 그래서 협동조합은 '총회준비위원회'를 두고 있습니다. 총회준비위원회에서는 총회의 전체적인 구상과 세부적인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각각의 역할을 배분해 언제까지 준비할 것인가를 점검합니다. 필요하다면 워크숍을 열기도 합니다. 보통 총회 2개월 전부터 위원회를 구성하는데, 규모가 조금 작은 곳은 1개월 전부터 하기도 합니다. 조합원 수가 적은 협동조합의 경우, 모이는 사람은 적겠지만 아무리 축소한다 하더라도 사업을 결산·평가하고 차기 년도 사업 계획을 수립하는 본질적인 일은 총회에서 생략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사업을 멈추고 총회를 할 수도 없으므로 사전에 역할과 책임을 나누는 것도 중요합니다.

총회준비위원회에 참여할 조합원을 선택할 때 연령별·성별 안배를 골고루 하는 것도 참고해볼 만합니다. 협동조합 내 다양한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총회준비위원회에 청년이 참여하도록 하거나 총회 이벤트에 청년이 즐길 수 있을 만한 프로그램을 추가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아무래도 그렇게 되면 관점 자체가 새로운 시각으로 이동할 수 있을 것입니다. 총회준비위원회에 일반조합원이 참여하면, 이사 및 대표의 관점이 아닌 일반조합원의 관점으로 협동조합을 볼 수 있습니다. 총회준비위원회는 조합원의 요구를 대변해야 하는 책임과 역할을 갖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을 설립했는데 조합원이 참여하지 않는다', '이사회에 이사가 참여하지 않는다', '총회에 조합원이 오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의심하기 전에 협동조합이 조합원의 관점에서 충분한 의견을 반영하는 구조인지 점검해봐야 합니다. 이제 총회준비위원회가 꾸려졌다면 구체적으로 준비해야 할 내용들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조합원 관점에서 생각하기

총회를 1년에 한 번 있는 가장 큰 교육 이벤트라고 부르는 것은 다양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떤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까요?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도 있지만, 아는 것이 때론 저주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한 분야를 너무 깊이 알면 잘 모른다는 것의 감각을 잃어버려 비전문가와 소통하기가 점점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정보를 제공할 때도 조합원의 관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조합원들은 협동조합에 대해서 잘 몰라요.' 많은 분들이 고민하고 있는 지점인데, 생각해보면 협동조합을 설명하는 것이 복잡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협동조합에 관한 퀴즈를 내고 함께 풀어볼 수도 있고, 협동조합의 자본참여 방식, 의결권의 특징 등을 카드 게임을 통해 쉽게 접근해볼 수도 있습니다. 분위기를 환기하는 것이죠. 훌륭한 연사를 초청해 총회의 격을 높이고 조합원들을 모으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이때도 조합원의 관점을 잃어버리면 잘 아는 것의 저주에 빠질 가능성이 큽니다.

조합원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야 하는 것 중 중요한 하나가 회계입니다. 회계감사보고서와 결산정보는 조합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정보지만, 동시에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내용입니다. 결산정보에는 예산대비실적표, 재무제표, 현금흐름표 등이 제공되는데 여기에는 자산·부채·자본과 같은 용어뿐만 아니라 감가상각·유가증권·지불어음과 같은 생소한 용어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런 용어를 바로 이해하실 수 있는 분들이 협동조합에 얼마나 될까요? 기업을 운영해본 경험이나 회계를 배운 적이 없는 대부분 사람들에겐 어렵고 낯선 단어입니다. 총회라는 공간이 조합원과 소통을 위한 자리라면 낯선 언어들이 좀 더 쉽고 익숙한 방법으로 서술되어야 합니다. 그림과 그래프를 통해 재무 상황을 설명해보려는 시도는 어떨까요? 물론 연차보고서 수준으로 만들면 예산이 들지만, 총회 자료집과 별도로 보조 발표 자료 등을 추가적으로 만들면 큰 비용 없이도 설명에 큰 도움이 됩니다. 특히 엑셀 시트 한 장을 가득 채운 재무제표의 숫자만으로는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유추하기 쉽지 않습니다. 작년도, 재작년도와 비교해 재무 상황을 보는 것만이 아니라 부채가 현재 자산 대비 몇 %인지, 총지출에서 인건비 비중은 몇 %인지 등 조합원들이 궁금해할 만한 내용별로 가공된 재무지표를 제공하면 그 의미를 보다 정확하고 빠르게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자리에 놓인 사진과 꽃 화분으로 총회의 분위기를 새롭게 했던 인천아이쿱생협. ⓒ김현하

총회를 흥미진진한 토론과 즐거운 축제로

총회는 정보를 제공하는 교육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교육도 그렇지만, 총회도 한방향일 수 없습니다. 양방향 소통이 필요합니다. 특히 총회는 조합원이 가지고 있는 궁금증과 의심을 풀어줄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조합원이 무슨 질문을 할지 알 수 없지만, 많은 경우 조합의 재정상태나 정책에 대해 그리고 항간에 떠도는 루머에 대해 질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가입과 탈퇴가 자유로운 만큼 흑색선전과 루머에 취약합니다. 루머를 덮어놓고 무시할 것이 아니라 시시비비를 분명히 가리고 조합원들이 가지고 있는 의혹과 염려들을 해소해야 합니다. 다만 토론 과정에서 논의가 과열될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하나로 모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토론 과정에 참여한 협동조합 리더의 섬세한 조정이 요구됩니다. 하지만 이런 '불편함' 때문에 조합원과 소통하는 것을 외면한다면 더 심각한 갈등일 일어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험담을 늘어놓는 것보다는 관련된 내용을 공론화하여 논의를 통해 오해를 최소화하는 게보다 나은 일입니다.

최근 한국을 찾은 몬드라곤 라보랄쿠차(라보랄쿠차(Laboral Kutxa)는 스페인 바스크 지역의 가장 큰 은행으로 몬드라곤의 노동인민금고(CAJA LABORAL)와 신용조합 이파르쿠차(Ipar Kutxa)가 합병하면서 탄생했다)의 전 대표는 협동조합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므로 협동조합 원칙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지 말고 현실적인 차원에서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호세 마리아 신부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해요. "존속하는 것이 생동감의 징후가 아니다. 다시 태어나는 것, 그리고 적응하는 것이 생동감이다." 협동조합에 상상력이 필요한 이유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본질을 잊지 않고도 협동조합의 가치를 추구하는 방법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ICA가 발표한 '협동조합 10년을 위한 청사진'에서도 협동조합은 미래의 리더인 청소년, 청년들의 참여를 장려하고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온라인을 이용해 조합원들이 새롭게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문합니다.

총회의사록 양식을 정부에서 제공하기 전에는 총회의사록을 공유해달라는 요청도 많았습니다. 형식과 절차가 생소하다 보니 참고자료 없이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정형화된 샘플을 보면서 총회의 방법을 가늠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형식이 굳어지면 또 하나의 깨어야 할 틀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 청소년들이 참여하는 학교협동조합에서는 총회의 형식성이 그 자체로 부담입니다. 어려운 용어와 법률적인 절차, 거기에 공증에 필요한 다양한 서류는 청소년들의 협동조합 참여를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호세 마리아 신부의 말처럼 협동조합이 존속이 아니라 매번 새롭게 태어나야 할 운명이라면, 총회 또한 조합원과 소통하고 유대를 만드는 일로서 즐겁고 흥미로운 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우리 협동조합의 상황에 맞춰 재정비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조합원과 소통하는 데 경직성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2016년 초 인천아이쿱생협에서는 총회를 찾은 조합원들이 앉을 테이블마다 총회 자료집과 함께 1년간 고생한 조합원의 사진과 꽃을 준비해두었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안건보다 1년 동안 고생한 조합원을 위로하고 내년에도 최선을 다하자는 다짐이야말로 꼭 통과시켜야 할 안건이 아닐까요? 경직된 사고를 버리고 마음을 열면 총회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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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협평론

계간지 <생협평론>은 (재)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가 펴내는, 협동조합을 다루는 본격적인 전문잡지로서 협동경제·나눔·평화에 대한 의견들이 교환되는 공간입니다. 정보지이자 실천적 교육서로서 협동조합 활동가뿐 아니라 협동조합에 관심 있는 모든 이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전달하고, 협동조합을 둘러싼 다양한 사회·경제·문화적 이슈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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