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보장률 하락, 민간 보험만 웃는다"

[서리풀 연구通] "건강보험은 공동체의 재정을 건강하게 한다"

국민건강보험 제도를 운영하는 일차적인 목적은 가입자를 과중한 의료비 발생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이 사상 최대 재정 흑자를 매년 경신하고 있지만, 건강보험의 보장률은 개선되지 않고, 과중한 의료비 부담으로 고통 받는 개인과 가구는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이다. 건강보험 흑자를, 보장률 개선을 위해 지출해야 한다는 사회적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민건강보험 재정은 2011년 9592억 원의 흑자를 기록한 이후 2016년 말까지 총 20조656억 원의 누적 흑자를 기록했다. 이는 2011년 이후 6년 동안 매년 평균 약 3조3400억 원의 흑자가 발생한 셈이다. ('보험료 대비 급여비 비율'이 100 이상이면 국민건강보험 보험료 수입보다 지출액의 규모가 더 크다는 의미이며 반대로 100 미만이라면 보험료 수입보다 지출액의 규모가 더 적다는 의미이다. 2015년 '보험료 대비 급여비 비율'이 89.0%이면, 국민건강보험 보험료 수입 중 89%만을 지출하고 나머지 11%는 흑자라는 뜻이다.)

반면 같은 기간 국민건강보험의 '보험료 대비 급여비 비율'은 2010년 101.3%에서 2015년 89.0%로 크게 낮아졌고, '보장률' 또한 2009년 65.0%를 정점으로 2010년 63.6%, 2014년 63.2%으로 2009년보다 오히려 감소하였다. 국내 한 연구에 의하면 가구의 지불 능력 대비 10%를 넘는 보건의료비를 지출하는 '재난적 의료비' 지출 가구는 2011년 16.0%에서 2013년 19.3%로 증가하였는데, 이러한 과도한 의료비 부담은 가구의 소비 지출 감소와 빈곤화로 이어졌다.

요약하면 2011년 이후 정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국민건강보험 지출 규모에 비해 더 많은 보험료 수입을 거둬들이고 있지만, 보장률은 거의 향상되지 않아 단기간 동안 국민건강보험 흑자가 크게 늘어난 것이다.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의료보장 제도의 보장률이 정체를 보이고 있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2014년 1월부터 일명 '오바마 케어법'을 통해 보장률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오바마 케어법'의 주된 목적은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아 적절한 의료이용이 어렵거나 과중한 의료비 발생으로 빈곤화 위험이 높은 이들(일명 비보험자)에게 부담가능한 비용으로 필수적인 의료보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2013년 기준 미국의 65세 미만 성인인구 중 20.4%(약 4150만 명)이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는데, 이들은 의료보험에 가입한 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재정 상태가 더 열악하고, 따라서 의료비로 인한 빈곤화를 경험할 가능성이 더 높은 집단들이었다.

미국 연방준비은행의 매줌더(B. Mazumder)와 미시간 대학교의 밀러(S. Miller)는 보편적인 의료보장 제도 확대가 개인의 의료비를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재정 상태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를 파악하기 위한 연구를 시행하였다.

연구자들은 '오바마 케어'의 원형이 된 2006년 4월 시행된 메사추세츠 주의 의료보장 개혁이 비보험자 가구의 재정 상태에 미친 영향을 평가하고자 하였다. 개혁의 주요 내용은 메사추세츠 주 모든 주민들로 하여금 주 정부가 규정하는 최소한의 보장을 갖춘 의료보험 가입을 강제화하는 것으로 보험 가입자에게는 소득 공제 혜택을 제공하고, 가입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매월 미가입 벌금을 부과하는 것이었다.

의료 개혁 이전에 시행한 한 조사 결과에 의하면, 비보험자들 중 36%는 장기간 의료비를 연체하고 있으며, 이들 비보험 장기 연체자의 47%는 저축한 돈을 모두 소진하여 의료비를 납부할 수 없었고, 40%는 의료비 지불을 위해 식품 구입, 난방, 집세 지불을 포기한 경험이 있었다.

연구자들은 의료 개혁 전후 시기로 구분하여 제도 개혁의 영향을 받는 메사추세츠 주 거주 18~64세 표본 인구의 재정 상태를 분석하였다. 제도 개혁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연방정부 고령자 의료보험(메디케어)이 적용되어 의료 개혁의 영향을 받지 않는 65세 이상 인구 집단, 그리고 의료 개혁을 시행하지 않은 뉴잉글랜드 인구통계국 관할 다른 지역(메인 주 등 5개 주)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재정 상태 변화를 비교하였다. 주민들의 재정 상태 변화는 연방준비은행의 소비자 신용 패널 자료를 활용하여 1999년부터 2012년까지 제도 시행 기간 전후의 재정 상태를 나타내는 연평균 신용 점수, 총 부채액, 30일 이상 납부기간이 경과한 부채, 납부 기간이 경과한 부채의 비율, 제3자 채권추심 금액, 2년 이내 개인파산 여부 등을 통해 확인하였다.

연구 결과, 제도 개혁 이후 비보험자들의 재정 상태는 전반적으로 개선되었다. 제도 개혁 이후 미보험자들의 신용 점수는 증가하고, 총부채액, 30일 이상 납부 기간이 경과한 부채 계정 부채금, 납부 기간이 경과한 부채 비율, 제3자 채권 추심 금액, 2년 이내 개인 파산율은 감소하였다. 특히, 신용 점수와 제3자 채권 추심 금액을 제외한 나머지 변수들은 매년 감소하였다.

연구자들은 메사추세츠 주의 의료 개혁이 미보험자들의 재정 상태 및 의료보장 전반에 미친 영향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① 의료 개혁으로 인해 미보험자들의 체납율과 체납 금액이 감소하고, 특히, 고액 체납자 규모가 감소하는 등 미보험자들의 재정 안정에 긍정적으로 기여하였다.


② 보장성 수준이 일정 기준 이상을 충족시키는 의료보험을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함으로써 아동에게 보다 포괄적인 의료를 보장하게 되었다.


③ 제도 개혁으로 빈곤층을 위한 의료보장 제도인 메디케이드(Medicaid)도 치과 및 안과 서비스에 대한 급여를 추가로 확대하였으며, 고용주가 근로자에게 제공하는 의료보험 또한 (의무 가입 의료보험과 비교하여) 일정 기준 이상의 보장성을 충족하도록 촉진함으로써 전반적인 의료보장의 질 향상에도 영향을 주었다.


④ 청년 인구에 대한 의료보장 적용 확대로 인해 그들 부모의 재정 상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통계청 가계 동향 조사에 의하면 전체 가구의 소득 증가 폭이 둔화되고 있으며 특히 40대 가구의 2016년 3분기 가구 소득은 가계 동향 조사가 시작된 2003년 이후 처음으로 감소하는 등 가구의 재정적 취약성이 증가하고 있다.

반면 2013년 개인 의료비 지출 중 국민건강보험과 같이 공공 재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55.9%(OECD 평균 72.7%)로 과중한 의료비로 인한 불안을 덜어주기에는 여전히 미흡한 수준이다보니 의료비 부담에 대비해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한 이들만 2015년 말 기준 3265만 명, 보험사의 실손보험료 수입은 국민건강보험 한 해 수입의 약 10%에 해당하는 5조5000억 원에 달하고 있다. (☞관련 기사 : 못 말리는 실손의료보험 팽창)

국민건강보험의 재정 안정뿐만 아니라 적어도 'OECD 회원국 평균치'보다 떨어지지 않는 보장률 확보를 통해 '가입자'의 재정 안정도 우선시하는 국민건강보험의 역할 강화와 사회적 합의가 시급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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