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일당 5만원이라고? 누가 5000억을 댔나

[왜 촛불인가 ④] 직접정치를 위한 촛불혁명은 계속돼야 한다.

2016년 병신년이 가고 새해가 밝았다. 지난 10월 29일부터 시작된 촛불집회는 어느덧 11회를 거치며 횃불로 번졌다. 참가 시민들은 연인원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일부 관변단체들이 내놓은 '일당 5만 원 지급 설'에 따르면, 참가자를 1000만으로 단순 계산해도 무려 5000억 원이 필요했다. 주말까지 반납하며 광장에 나온 시민들의 열의를 모욕하는 부당한 폄훼지만, 관변단체조차 인정한 최소한의 가치가 5000억이라고 넉넉히 받아들이고 싶다. 그래도 새해니까.

만약에 퇴진행동에 그 돈의 1/100 정도만이라도 넉넉하게 쓸 수 있는 자금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활동가들의 시간외수당이라도 챙겨줬으면 좋겠다는 망상부터 해본다. 약 1500개의 시민사회단체에서 파견한 100여 명의 활동가들이 거의 모든 실무를 담당하다보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본래 하던 활동이 뒤로 밀리는 건 기본이고, 수 주째 저녁과 주말이 없는 삶을 살아오고 있다. 말 그대로 소리 없는 헌신이다.

이렇게 활동가들의 열정과 시간을 자양분 삼아 준비된 수많은 행사 가운데 하나가 시민들이 퇴진운동의 방향과 해법을 고민하는 '시민평의회'다. 백만에 가까운 대규모 인파가 모이다보니, 원활한 행사 진행을 위해 본무대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시민들이 충분히 의견을 나눌 시간이 부족했다. 직접 자유발언을 할 수 있는 인원은 한정되어있고, 발언 시간도 3분 정도라 시민들이 보다 깊이 토론할 수 있는 숙의민주주의의 장이 필요해보였다.

이리하여 제1회 시민평의회는 11월 19일에 닻을 올렸고 연말까지 총 4회 진행되었다. 2회까지는 모든 시민들이 함께했으며, 3회는 청소년들이, 4회는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토론한마당을 꾸렸다.

매회 평균 3시간가량, 백여 명이 열띤 토론을 펼쳤다. 주로 둥그렇게 서로의 얼굴을 보며 둘러앉았고, 사회자가 던져주는 2~3개의 큰 주제에 따라 한 조당 10명 내외의 인원이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논의주제는 광범위했다. 집회문화와 퇴진운동의 방향, 박근혜 즉각 퇴진을 위한 해법을 고민하며 시작한 토론은 자연스레 우리사회가 당면한 현안까지 흘러갔다.

ⓒ프레시안(최형락)

시민들은 단순한 문제의식만 공유하는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대안들도 거침없이 쏟아냈다. 이쯤 되면 '토론의 민족'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IT강국다운 첨단 토론문화도 신선했다. 조마다 1명씩 배정된 퍼실리테이터들이 주요발언들과 쟁점들을 실시간으로 의제지원팀에 전달하면, 함께 나눠볼만한 주제들이 정리되어 중앙에 마련된 대형 스크린에 떴다.

이를 기반으로 전체토론을 진행했으며, 원하는 시민들에게는 추가 발언시간도 주어졌다. 참여자들의 생각을 도표로 시각화해서 보여주는 주제별 모바일투표도 인상적이었다.

평의회 실무진으로 결합해 주로 현장에서 사진을 찍다보니, 평소보다 한 발짝 더 다가가게 되고, 말하는 이의 표정과 뉘앙스 하나하나 좀 더 집중하곤 했다. 자신들의 일상에서 우려낸 진정성과 깊은 문제의식을 담은 이야기들, 기발한 대안들을 보고 들으면 감탄사가 절로 나오기 마련이었다.

한편으론 참 애석했다. 이렇게 말 잘하고 생각이 깊은 시민들이 함량 미달인 사람들에게 개, 돼지취급이나 당하다니! 그동안 얼마나 답답했을까? 물론 이제 시작하는 마당이라 개선해야할 점도 많았지만, 우리도 충분히 알고 있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줬으며, 우리가 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 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는데도 아직도 많은 시민들이 불안해한다. 촛불의 열망대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향한 첫걸음이 될지, 아니면 과거 4.19혁명이나 6월 항쟁처럼 예기치 않은 결과가 발생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있다. 시민들의 대표자로 선출된 이들의 어정쩡한 행보와도 무관하지 않다. 민의를 대변하는 척 하면서도, 잿밥에 더 관심이 많다는 속내를 번번이 들켜왔기 때문이다.

상당수 의원들은 탄핵정국에서도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 일부 성과는 있었지만 국정조사 특위는 결정적인 한방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활동 기한조차 연장하지 못하고 어영부영 종료되었다. 그리고 뜬금없이 개헌특위가 출범했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의 실체적 진상규명을 원하는 시민들의 열망을 무시하는 처사다. 단순한 무시를 넘어 대리인이 주인 행세를 하는 것 같다. 현행 헌법에서 처리 가능한 산적한 개혁입법은 외면하고, 내각제니 분권형 대통령제니 통치구조에 대한 이야기만 풍성하다. 조기대선을 앞두고 있는 만큼 새롭게 해쳐 모이겠다는 것인가?

결국, 공은 다시 시민들에게 돌아왔다. 연인원 천만의 촛불들이 눈치만 보던 정치권을 정리하고 탄핵 가결을 이끌어 낸 것처럼, 향후 펼쳐질 개헌정국에서도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줘야 할 것 같다. 시민들이 배제된 채 밀실에서 진행되는 나눠먹기 개헌은 위험하다.

지금 대한민국에 가장 필요한건 토론이다. 개헌이 필요하다면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하나하나 따져 묻고 치열하게 대안을 고민해야한다. 이미 우리는 알고 있다. 백마 탄 초인은 오지 않으며, 우리를 구원해줄 절대적인 영웅은 있지도 않을뿐더러 필요도 없다. 시민들이 이 나라의 진정한 주권자이며 당신들은 그저 대리인일 뿐이라는 걸 다시 보여줄 필요가 있다.

새롭게 밝은 정유년 1월 전국 각지에서 시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토론공화국을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당신의 참여가 필요하다. 주인의 의중을 잘 못 읽는 못난 대리인들 때문에 피곤한 시간이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촛불혁명은 계속되어야한다. 말뿐인 민생과 장식용 개혁을 넘어, 우리 피부에 와 닿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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