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의 실패와 호남 '반문정서'의 실체

[이충렬의 정권+교체] 박원순 추락의 교훈: 그의 부활을 기대한다.

도대체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걸까? 새해 처음 실시된 한국갤럽의 월례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박 시장이 설문조사에도 끼지 못하는 이변이 발생했다.

한국갤럽은 지난 2년 동안 매월 첫째 주 1차 조사를 통해 상위 8명을 걸러낸 다음 2차로 지지도 조사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해 들어 첫 여론조사에서 박원순 시장은 8명에 들지 못해 설문조사 대상에서 탈락하였다고 한다.

박원순 시장의 날개없는 지지도 폭락은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비슷하게 나온다. 1월 8-9일 실시된 조원씨앤아이 조사에서 박시장은 2.2% 나왔다. 지난 달 31일 실시된 직전 조사에서는 4.6%였다. (조원씨앤아이는 전국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ARS여론조사(유선전화47%+휴대전화53% RDD 방식)를 실시한 결과이며, 표본수는 1,060명이며 응답률 4.0%, 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 ±3.0%p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 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인구 천만이 넘는, 한국의 정치·행정·경제의 명실상부한 수도인 서울특별시를 대표하는 수장이 왜 이렇게 수모를 겪게 되었을까? 한국갤럽의 지난 2년간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박시장은 1년 반 전 메르스 사태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각을 세우면서, 여야를 통틀어 1위를 기록한 적도 있었다. 이후 완만하게 하향곡선을 그려 6%전후의 지지율을 기록하였다.

그러다 작년 11월 촛불항쟁이 본격화하면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급기야 지난 연말 한국갤럽의 조사에서는 3%로 내려앉았다.

ⓒ한국갤럽

박 시장의 지지도 추이를 보면 3개의 변곡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지난 총선이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여소야대와 민주당의 원내1당 약진이라는 총선 결과는 문재인, 안철수 그리고 박원순의 운명을 갈라놓았다. 야권 지지자 사이에서 정권교체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면서 문재인은 은퇴 압력에서 벗어나 완만한 상승세를 보였고, 반면에 박 시장은 안철수의 그림자에 가려 장기 침체의 늪에 빠졌다.

둘째는 누구도 예측치 못한 11월 촛불항쟁의 발발이었다. 촛불항쟁은 새누리당의 해체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목표로 하는 시민혁명으로 발전했다. 촛불항쟁은 2~3%의 미미한 후발주자였던 이재명 성남시장을 1, 2위 주자인 문재인과 반기문을 위협하는 3번째 후보로 밀어올렸다. 박 시장에게는 상상도 못했던 재앙이었다. 한자리수 반올림 미만 후보로 전락하고 말았다.

세 번째 변곡점도 누구도 예측치 못한 가운데 일어났다. 박 시장이 야권의 가장 유력한 후보인 문재인 전 대표를 '적폐 청산의 주체가 아니라 청산대상'이라고 지목하고 전면투쟁을 선언한 것이었다. 모두가 놀랐다. 그리고 그 투쟁 선언의 결과가 지금의 지지도다.

박원순 현상을 깊게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현재 진행되는 촛불혁명이라는 대변혁의 와중에서 올바른 내비게이션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항해를 할 때, 우리는 바람의 방향, 파도 등 여러 요소를 염두에 둔다. 파도만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파도 밑바닥에서 흐르는 해류의 흐름도 감안해야 한다. 여론조사는 파도의 흐름을 보여준다. 빅데이타 분석은 깊숙한 해류의 흐름을 예측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또 하나의 요소를 추가해야 한다. 촛불항쟁이라는 쓰나미가 그것이다. 거대한 쓰나미 한복판에서 조기대선을 치러야 할 상황이다. 백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특별한 정치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일상적인 항해 매뉴얼이 모두 무용지물이 될 수 밖에 없다. 쓰나미가 지나간 뒤에 학문적으로 분석할 수는 있겠지만 그건 나중 이야기고, 지금 당장 코앞에 넘실대는 쓰나미 한복판에서 우리는 어떻게 항해해야 할까?

우선 야당의 분열이라는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 여소야대를 만들어낸 지난 해 4월 총선, 12월 국회의 박근혜 탄핵안 의결 그리고 올 봄 (아마도 예정돼 있을 것 같은) 조기 대선까지 이 시기를 관통하는 시대정신과 혁명적 에너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정권교체와 건국에 버금가는 대변혁을 압도적인 시민이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지금 이 상황은 야당이 선두에서 잘 싸워서 만들어졌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거꾸로 야권이 죽을 썼지만, 국민들이 나서서 정권교체를 시대정신으로 만들었다고 보아야 한다.

촛불항쟁의 밑바닥에서 소용돌이치는 에너지를 엿볼 수 있는 데이터가 있다. 여론조사업체 리서치뷰는 해마다 2회씩 전직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리서치뷰

지난 연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47.7%, 김대중 대통령은 11.8%를 각각 얻어 합계 59.5%를 기록했다. 반면 박정희 대통령(25.9%)를 포함한 범 보수 대통령의 합은 32.6%로 집계되었다.

(이 조사는 12월 29일 전국 만19세 이상 휴대전화가입자 1031명을 대상으로 컴퓨터자동응답시스템을 이용 임의걸기(RDD)로 진행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였으며 응답률은 4.1%였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리서치뷰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노무현과 김대중이 얻은 59.5%가 촛불항쟁의 기본 동력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박근혜 탄핵이라는 와중에도 32% 정도의 보수 세력은 굳건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도 우리는 위 조사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위 조사표를 깊이 들여다 보면 현재 정치권을 요동치게 하는 쓰나미(노무현·김대중의 59.5%)와 해류(노무현의 47.7%)와 파도(문재인의 지지도)의 삼각함수를 풀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받은 47.7%는 탄핵 이후 민주당과 문재인 전 대표의 지지도가 수직상승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즉 국민의당이 분가해나간 민주당은 노무현 지지자로부터 야당의 정통성을 인정받고 있으며, 문재인 역시 노무현을 계승한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재인 개인의 리더십이나 자질에 대한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의 지지율이 30%를 넘어가는 이유를 우리는 여기서 알 수 있다.

박원순의 재앙은 이 트렌드를 읽지 못하는 데서 출발했다. 그가 문재인의 한계와 부족한 점을 지적할 때는 경청할만 했다. 실제 문재인과 민주당의 지지도는 노무현의 지지도보다도 한참 아래에 있다. 그러나 그가 '문재인이 적폐청산의 주체가 아니라 오히려 청산되어야 할 대상'이라고 까지 치고나가면서부터는 오히려 그 자신이 노무현 지지자 뿐 아니라 범야권의 지지자로부터 고립되었다.

아마도 그는 반문재인 노선을 분명히 하면 호남을 비롯한 반문재인정서를 지닌 세력의 대변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으리라 보고 승부수를 던졌으리라. 문재인 대항마로 선명하게 부각되면 10%를 돌파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졌으리라 짐작된다.

결과는 참담한 오판으로 나타났다. 왜 그럴까?

첫째, 지금 민심은 정권교체가 최우선이다. 시대교체니 세대교체니 정치교체니 별 조어가 많지만, 국민이 가장 바라는 것은 정권교체 그자체다. 특히 범야권 지지자들은 촛불항쟁 이후 정권교체의 가능성에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모든 가치보다도 정권교체가 최우선시된다.

둘째, 야권의 주자들이 가진 리더십이나 자질의 차이는 인정하더라도 누가 되더라도 그를 중심으로 뭉쳐 정권교체를 가져와야 한다는 강렬한 요구가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후발주자에게는 참으로 억울한 측면이다. 그러나 현실이다. 박원순이 보기에 문재인은 청산 대상으로 보일 지 모르지만, 대다수 야권 지지자들은 둘 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에 '문재인을 청산하자'는 박원순이 뜬금없는 사람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셋째, 호남의 반문재인 정서에 대한 오판이다. 지금 정권교체를 방해하는 내부의 교란 세력이 두 개 있는데 하나는 ‘친문탈레반(근본주의자)’이고 또 다른 하나는 ‘호남탈레반’이다. 친문탈레반은 다른 기회에 거론하기로 하고, 이 글에서는 호남탈레반(반문탈레반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에 대해 언급하기로 한다. 서남대 김욱 교수가 노무현과 친노를 박근혜 정권과 동일한 영남패권주의 세력으로 규정한 책을 펴낸 이래 반문재인 세력들은 암암리에 문재인의 패권주의에 굴복하느니 차라리 새누리당 내지는 아류 세력과 연합해서 호남의 몫을 챙겨야 겠다는 속마음이 널리 퍼졌다.

그런데 촛불항쟁이 정권교체를 절체절명의 과제로 부각시키면서 호남탈레반은 심각한 혼란상태에 빠졌다. 호남의 박근혜 지지도가 0%를 기록하면서 호남민심이 급격하게 정권교체로 쏠려버렸다. 그런데 호남의 정치적 자주성을 최우선으로 내세웠던 호남탈레반은 자신들의 대권주자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 결과 그들은 이쪽 저쪽 기웃거리면서 자신의 몸값을 쳐주는 세력에 추파를 던지는 정치적 거간꾼으로 전락해버렸다.

호남탈레반은 마치 자신들이 호남 민심을 독점하고 있는 듯이 말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수도권의 출향민을 포함한 호남인들은 정치적으로 더 이상 하나가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 투쟁을 한 50대 이상의 특무상사들은 반문재인 정서가 확고하다. 이들은 끊임없이 문재인 대안을 찾아 이러저리 떠돌아다닌다. 그런데 50대 미만은 다르다. 이들은 호남 정서에 묶이기 보다는 오히려 촛불 민심에 동조 현상을 보이며 전국성과 보편성을 보이고 있다. 최근 호남에서 문재인 지지도가 상승하는 이유는 50세 미만 세대의 이러한 성향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지지율이 점차 떨어지고 있는 박원순 시장은 호남탈레반과 악마의 키스를 한 듯하다. 호남탈레반들은 촛불항쟁이 거세게 타오랐을 때 당황하면서 침묵하였다. 그러다 숨 고르는 조정기가 되자 다시 악마의 속삭임을 되풀이한다. '친문과 친박은 동일한 패권세력이다. 정권교체가 아니라 반문이 시대의 과제다.' 호남탈레반의 논리는 호남에서조차 배척받는다. 그들은 노무현과 문재인에 대한 증오에 사로잡힌 나머지 정권교체라는 시대정신은 망각하고 있다.

박원순 시장은 이제 어떻게 해야할까? 그는 범야권의 소중한 지도자다. 이렇게 망가질 수는 없다. 우선 본인 스스로 바로 잡아야 한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중과 소통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느끼게 된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재능이 있고 성공한 사람인가를 열심히 말한다. 흙수저나 무수저 상태에서 좌절과 분노, 노후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인 사람들에게 그는 정서적으로 소통하지 못한다. 그는 자신의 그릇과 업적을 인정하지 않는 대중들에게 분노하는 듯이 말한다. 왜 나 같은 지도자를 (감히) 알아보지 못하느냐고? 절망감을 가진 사람들에게 눈과 귀를 번쩍 뜨이게 할 대안으로 자신이 등장하지 못한 것을 자책하지 않는다. 만약 그가 서울시장으로 좋은 대안을 보였다면 인구 100만의 성남시장이 이렇게 부각되었을까?

당내 경선이 치열할수록 경선 주자들은 악마의 유혹을 받는다. 페어플레이보다 이기기 위해서는 무슨 수라도 써야된다든지, 또는 눈앞의 승리에 소위 ‘몰빵(다걸기)’하느라 돌아올 다리조차 불살라 버리든지 하는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이겼지만 지는 승부도 있고, 졌지만 이긴 승부도 있다. 한 번 만에 이기는 경우도 있지만, 두 번 세 번 만에 이기는 승부도 있다.

승부에 대한 집착보다는 정권교체에 복무하겠다는 초심을 살리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후보가 되면 후보로서, 패배하면 후보를 돕는 역할로서 자신의 역할이 있을 것이며, 또 치열한 경선에서 제로섬의 마이너스가 아니라 야권의 저변을 확대하는 포지티브 섬으로서의 역할을 해나가는 것이 최선의 방도다.

박원순 시장이 기존의 선거전략을 전면적으로 검토하고, 눈 앞의 승부에 매몰되기보다 긴 호흡으로 역사에 기여하는 역할을 찾는다면 대중은 반드시 기억할 것이고, 재기의 기회도 주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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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렬

『박정희 김대중 김일성의 한반도 삼국지』(2015년, 레디앙) 저자. 1957년 출생. 유신시절 민주주의 운동에 평생 헌신할 것을 맹세, 민주화운동·노동운동·정당활동에 참여하고, 김대중·노무현정부에서 미관말직을 지냈다. 2012년 대선이후 당대에 대한 기대를 접고 강화도에 귀촌, 언젠가 이 땅에 사필귀정(事必歸正)의 역사가 꽃피는 날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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