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는 늘 있는 식재료로 다양하게

[살림 이야기] 콩나물해장밥·소고기파국·무조림·호박범벅

새로이 한 해가 시작되었지만 이미 지난해에 시작된 겨울이 계속되고 있어서 새해라는 실감이 크게 나지 않는다. 지리산 뱀사골 골짜기의 겨울은 춥고 눈이 많아 늘 노심초사하면서 지내야 한다. 봄이 와야 이제 뭔가 새로운 해가 시작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리산에 사는 나는 해가 바뀌는 일에 너무나 무감하다. 새해 첫날 떡국을 끓여 먹는 정도의 의식을 치른 산골의 1월은 먹을 것이 흔하지 않아 늘 있는 식재료를 이용해 어떻게 다양하게 조리해 먹을까로 고민이 많은 때다. 가끔은 밤바람이 창밖에서 내는 소리에 잠을 설칠 만큼 매섭고 추운 날이 계속되므로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는 음식이 가장 필요한 때이기도 하다.

ⓒ류관희

콩나물비빔밥과는 다른 콩나물해장밥


겨울 실내에서 키워 봄 직하게 만만한 것이 콩나물이다. 콩 한 줌을 시루에 넣고 빛을 차단한 채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면서 기다리면 어느 사이 싹이 나고 자란다. 물론 시중에서 판매되는 것처럼 매끄럽고 통통하니 쪽 뻗은 콩나물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어떤 콩나물보다 고소하여 자꾸 키우고 싶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콩나물은 한꺼번에 자라기 때문에 국을 끓이고 나물로 무치고 별별 음식을 다 해 보지만 늘 제자리라 지친다. 그래서 이웃과 나눔이 시작된다. 남이 키운 콩나물을 얻어먹는 재미를, 이웃에게 주는 것도 큰 재미가 된다는 걸 깨닫는다. 나는 주로 얻어먹는 쪽이지만 그렇게 얻어 온 콩나물로 밥을 지으면 유난스럽게 더 맛있는 건, 아마 추운 겨울에 이웃으로부터 받은 따뜻한 마음도 같이 담겨서일 거라 여긴다.

콩나물밥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소고기나 돼지고기와 함께 짓는 것이 가장 흔하게 해 먹는 것이라면, 친정어머니가 자주 해 주시던 콩나물밥은 김치와 함께 넣고 짓는 것이다. 영남 지방의 갱죽과 같은 맛을 내는 것으로, 김장김치가 많은 계절이라 밥상에 자주 올라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서울 명동 거리를 어슬렁거리고 돌아다니던 20대에 자주 가던 콩나물밥집이 있었다. 가서 앉으면 손님 수대로 그냥 흰쌀밥에 삶은 콩나물 한 줌과 다진 돼지고기 볶은 것을 한 술 얹어 김치와 함께 내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성의가 없는 밥집이었지만 그때는 명동에서 싼값에 한 끼 때울 밥집이 그리 흔하지 않아 자주 갔다. 따로 지은 밥에 콩나물, 돼지고기 볶음을 하나로 어우러지게 하긴 했지만 그건 콩나물밥이 아니라 콩나물비빔밥이라고 하는 편이 맞는 음식이었다. 콩나물밥을 맛있게 짓고 싶다는 욕구를 가지게 한 식당이었다고 기억한다.

콩나물을 처음부터 같이 넣고 밥을 지으면 콩나물에서 수분이 빠져 실처럼 가늘어진다. 그래서 콩나물을 밥 위에 얹어 내면 그야말로 비빔밥이 된다. 궁여지책으로 생각해 낸 것이 콩나물을 따로 삶고 그 물로 밥을 지은 뒤 밥을 풀 때 미리 건져 놓았던 콩나물을 넣고 섞는 방법이다. 콩나물북어해장국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밥을 지었더니 쓸 만해졌다. '해장밥'이라고 불러 줘야 하나 하는 고민만 남았다.

콩나물해장밥

재료
쌀 2컵, 북어포 20g, 들기름 1큰술, 소금 1작은술, 청주 1큰술, 콩나물 300g, 물 3~4컵
양념장: 간장 1큰술, 물(맛국물) 1큰술, 쪽파 3뿌리, 다진 마늘 1작은술, 참기름 1큰술, 깨소금 1큰술

만드는 법
① 쌀을 씻어 건져 30분간 불린다.
② 콩나물을 다듬어 깨끗하게 씻는다.
③ 냄비에 물 3컵을 붓고 센 불로 끓이다가 물이 끓기 시작하면 콩나물을 넣고 뚜껑을 열어 놓은 채 6~7분간 삶는다.
④ 삶은 콩나물을 건져 찬물에 5분 정도 담갔다가 건져 물기를 뺀다.
⑤ 북어포를 흐르는 물에서 빠르게 씻어 물기를 꼭 짠 뒤 잘게 찢는다.
⑥ 압력밥솥에 북어포와 들기름을 넣고 달달 볶는다.
⑦ 북어포를 볶은 솥에 불린 쌀과 콩나물 삶은 물 2컵을 넣고 청주를 넣은 다음 흰쌀밥을 짓듯이 밥을 한다.
⑧ 밥이 되는 사이 양념장을 만든다.
⑨ 밥이 다 되면 물기를 빼놓은 콩나물을 넣고 고루 잘 섞어 퍼서 양념장과 함께 낸다.

겨울 추위를 이기는 뜨끈한 소고기파국

겨울이 되면 늘 육개장을 끓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쉽게 실행에 옮겨지지 않는다. 토란대랑 고사리를 불려 준비하고 숙주나물도 챙겨야 하고, 이것저것 재료가 많다 보니 미리 준비할 게 많아지기 때문이다. 다만 복잡할 뿐인 육개장이 어느새 만들기 어려운 음식으로 여겨져 사서 먹게 되는 음식이 되어 버렸다. 대도시에 '전통' 어쩌고 하면서 육개장을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들이 점차 생기는 이유가 육개장이 만들기 어려운 음식이 되어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일부러 어느 하루 이름 있는 육개장 전문 식당에 들러 시식을 해 보았다. 혀를 찌르는 매운맛 이 거슬려 밥을 다 먹지 못하고 일어서고 말았다.

쉽게 할 수 있어야 해 먹게 된다. 그래서 나는 가끔 대파를 듬뿍 썰어 넣고 끓이는 소고깃국을 상에 올린다. 대파의 달콤함이 소고기가 내는 국물 맛과 어우러져 제법 쓸 만한 국이 끓여지기 때문이다. 이때 시원한 맛이 나라고 큼직하게 무를 한 토막 같이 넣고 끓인다. 무를 그대로 썰어 국에 넣어도 좋지만 대파만 넣고 즐기기에도 부족함이 없으므로 무는 건져서 다른 음식으로 이어 가는 재미를 즐긴다.

소고기파국

재료
소고기(양지머리 혹은 사태) 300g, 무 500g, 다시마 3~4장, 대파 4~5뿌리, 물 2L, 국간장 1큰술, 소금 약간
무침 양념: 다진 마늘 1큰술, 참기름 2큰술, 고춧가루 2큰술, 청주 1큰술

만드는 법
① 소고기는 덩어리째 찬물에 담가 핏물을 뺀다.
② 냄비에 소고기와 다시마, 무를 덩어리째 넣고 물을 부은 뒤 센 불로 끓이다가 끓기 시작하면 불을 줄이고 20분간 더 끓인다. (이때 거품을 걷어 내면 국물이 맑고 맛이 깔끔하다.)
③ 국물이 완성되면 체에 밭쳐 국물을 따로 두고 소고기는 흐르는 물로 한 번 씻어 찢어 놓는다.
④ 대파는 깨끗이 씻어 길이로 반을 갈라 4~5cm 길이로 썬다.
⑤ 따로 둔 국물에 간장으로 간을 하고 썰어 놓은 대파를 넣고 끓인다.
⑥ 찢어 놓은 소고기에 마늘, 참기름, 고춧가루, 청주를 넣고 조물조물 무친다.
⑦ 국물의 대파가 무르게 익으면 무친 소고기를 넣고 한 번 더 끓이고 소금으로 간을 한다.
※무는 따로 건져 썰어 무조림에 이용하면 조리 시간도 줄고 무에 소고기의 단맛이 들어 무조림이 더 맛있어진다.

조연이던 무가 주인공이 되는 무조림

아직은 가을에 수확한 무가 흔한 계절이다. 땅에 묻어 둔 것도 있지만 농가 창고엔 여전히 무가 넉넉하니 겨울식 재료로 무만 한 것도 드물다. 밥도 짓고, 국도 끓이고, 무쳐서 먹고, 지져도 먹고, 온갖 조리법을 동원해서 해 먹어도 질리지 않고 맛난 것이 무다. 많은 음식에서 무는 주재료가 되지만 유독 생선 등을 조리는 음식에서는 늘 주재료의 맛을 더해 주는 조연이 된다.

아주 어릴 때는 잘 몰랐지만 나이가 들면서 어머니가 하시던 말씀에 100% 공감하게 되는 것이 '나는 이 무가 더 맛있다. 생선은 너 먹어라'였다. 먹을 것이 많이 부족했던 때니 자식들 입에 생선살을 넣어 주느라 어머니는 무만 드신다고 생각해서 서로 미루기도 하였는데, 나이가 들어서야 어머니의 그 말씀이 진심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자식 사랑하는 마음도 진심이고 사실이지만, 생선의 맛이 배어 달고 부드러운 무의 유혹을 뿌리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오늘은 크기가 작지만 감칠 맛을 내는 데는 일등 공신인 멸치를 한 줌 넣고 무를 조린다. 이제 멸치는 뒷전이고 무가 주인공이다. 큰 생선과 함께 조린 것이 아니라도 무는 여전히 맛있다. 비록 멸치지만 생선을 이기고 무가 당당하게 자기 이름을 걸고 반찬으로 나서는 날이다.

무조림

재료
소고기파국에서 꺼낸 무(또는 생무) 500g, 국물멸치 50g, 대파 1뿌리, 고추 1개
조림장: 간장 2~3큰술, 물 1컵, 고춧가루 1큰술, 설탕 2작은술, 다진 마늘 1큰술, 생강즙 1작은술, 청주 2큰술, 식초 1큰술

만드는 법
① 국물멸치는 부스러기를 털어 내고 머리와 내장을 제거한다.
② 무는 두툼하게 편으로 썬다. 생무로는 잔뿌리를 없애고 껍질째 깨끗이 씻어서 썬다.(1cm 두께의 반달 모양)
③ 대파는 손질하여 깨끗이 씻고 어슷하게 썬다.
④ 고추는 꼭지를 떼고 깨끗이 씻어 어슷하게 썬다.
⑤ 조림장을 만든다.
⑥ 냄비 바닥에 준비한 무를 깔고 멸치와 조림장을 넣어 끓기 시작하면 불을 줄여 타지 않게 주의하면서 무가 무르도록 끓인다.
⑦ 대파, 고추를 넣고 냄비를 기울여 국물을 끼얹으면서 2~3분간 더 조린다.

달콤함과 부드러움의 절정 호박범벅

늙은 호박이 나오기 시작하면 살림을 하는 주부라면 누구나 한 덩이씩 사서 인테리어 소품처럼 집 안을 장식하고 싶어 한다. 실제로 많은 주부가 실행에 옮겼다가 음식으로 해 먹지 못하고 썩히는 일이 종종 있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다들 못생긴 것의 대명사로 호박을 꼽지만 늙은 호박은 그 모습이 마치 제후인 양 당당하고 아름답다. 수많은 생명을 잉태하고 있기에 단단한 껍질로 보호를 하고 있는 것도 마치 임신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좋기만 하다.

늙은 호박은 큰마음을 먹고 날을 잡아 해체를 해야 한다. 그래서 가끔 지인 중에 호박을 한 마리 잡는다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힘이 좀 들어가야 하지만 반으로 가르면 속살의 붉은색이 눈을 호사스럽게 하고 그 안에 가득 들어 있는 씨앗들이 '나를 어서 데려가 줘' 하고 말하는 것 같아 손길이 바빠진다. 씨앗은 씻어 말려 두었다가 심심할 때 간식으로 까먹으면 된다. 가른 호박은 칼에 손을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껍질을 벗기고 편으로 썰어 소분한 뒤 냉동해 두고 쓰면 좋다.

밥맛이 없거나 멀리서 손님이 오는 날 한 뭉치 꺼내 푹 끓여 고구마나 밤 등을 넣고 범벅으로 해서 먹으면 산골의 겨울 간식으로 이만한 것이 없다. 늙은 호박만이 지닌 향은 멋지게 나이 든 사람의 품위와 비슷하고 그 달콤함은 연인의 부드러운 속삭임 같아 도무지 숟가락질을 멈출 수가 없을 것이다.

호박범벅

재료
늙은 호박 1kg(물 5컵), 팥 1컵, 고구마 1개, 밤 10알, 찹쌀가루 1/2컵(물 1컵), 설탕 2큰술, 소금 1작은술, 잣·대추 약간

만드는 법
① 늙은 호박을 씻어 반으로 갈라 속을 파내고 껍질을 벗겨 적당히 자른다.
② 냄비에 자른 호박과 물 5컵을 넣고 센 불로 끓이다가 끓기 시작하면 불을 줄이고 20분 정도 더 끓인다.
③ 호박 끓이는 동안 팥을 씻어 삶는다. 팥이 우르르 끓으면 팥물을 버리고 팥은 씻는다.
④ 삶아서 씻은 팥에 찬물을 붓고 다시 팥이 터지지 않을 정도로 삶아 익힌다.
⑤ 밤은 속껍질까지 벗기고, 고구마는 씻어 껍질째 깍둑썰기한다.
⑥ 삶은 호박에 팥, 밤, 고구마를 넣고 밤과 고구마가 익도록 끓인다.
⑦ 고구마가 익으면 찹쌀가루를 물에 풀어 넣고 농도를 주어 익힌다.
⑧ 불을 줄이고 설탕과 소금으로 간을 맞춘 뒤 뜸을 들인다는 느낌으로 2~3분간 더 익힌다.
⑨ 그릇에 담아 잣이나, 모양을 내서 썬 대추를 올려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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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우리나라 대표 생협 한살림과 함께 '생명 존중, 인간 중심'의 정신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살림은 1986년 서울 제기동에 쌀가게 '한살림농산'을 열면서 싹을 틔워, 1988년 협동조합을 설립하였습니다. 1989년 '한살림모임'을 결성하고 <한살림선언>을 발표하면서 생명의 세계관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살림은 계간지 <모심과 살림>과 월간지 <살림이야기>를 통해 생명과 인간의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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