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을 위하여, 진보를 위하여

[기고] 촛불 정신: 차이를 넘어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라

참으로 기적과도 같은 과정이었다. 전국적으로 한 명 한 명의 시민들이 참여해 이뤄낸 촛불 집회는 비타협적인 투쟁력을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모든 참여자들이 각자의 차이를 넘어 놀라운 자제력을 보여주면서 마침내 철옹성과도 같았던 독재자의 성벽을 무너뜨렸다.

그 동안 광장에 촛불을 들고 참여한 수많은 시민들이 공동의 큰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자신의 요구와 의지 그리고 이익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실천 운동을 전개해왔던 이 정신이야말로 바로 촛불정신이다.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성과는 순전히 촛불 시민들이 이뤄낸 위대한 결과이며, 이는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오늘의 탄핵 국면에 이르기까지 정치권 및 정치인들의 역할은 대단히 미미했다.

87년 6월 항쟁의 회한, 분열로 국가대개혁의 기회 놓쳐

87년 위대하게 타올랐던 6월 항쟁의 그 열기는 결국 우리로 하여금 오히려 짙은 회한과 아쉬움을 남기고 말았다. 그 회한은 비단 민주진영이 DJ와 YS로 분열되어 노태우 군사정권에게 정권을 빼앗겼다는 점에 그치지 않는다. 그 뒤 민주진영은 철저히 분열되어 서로 상대방 측을 원수처럼 적대시해왔고, 당시 결집했던 민주진영의 역량은 이후 결코 다시 복원될 수 없었다. 심지어 그 상처는 지금까지 지워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는 87년 이후 이 땅의 민주주의가 발전하지 못한 주요한 요인이었다.

필자는 당시 다수파였던 DJ 비판적 지지파였다. DJ 비판적 지지파는 말로만 ‘비판적 지지’였지, 기실 비판은 전혀 없고 오로지 광적인 지지만 존재하였다. 역시 광적 지지자였던 필자도 수배 시절부터 친형제처럼 지냈던 이범영 민청련의장에게 DJ를 지지하지 않고 후보단일화를 주장한다고 하여 개인적으로 심하게 맹비난할 정도였다.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럽고 역사에 죄를 지었다.

우리 사회의 보수는 강고하다

우리의 정치구도를 냉정하게 살펴보면, 사실상 보수 일당 정권이 지배하는 철저한 보수일색의 국가다. 분단 상황이 그 중요한 요인으로 작동하고, 독점 집중화된 대자본의 막강한 힘이 그 경향을 강화시킨다. 또한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은 바로 국가기관으로서 철저하게 보수적인 이 국가 공공기관들이 우리 사회 보수화의 강력한 토대로 기능하고 있다. 이렇게 보수일색으로 구조화된 보수국가에서 야당의 존재란 그저 구색을 맞추기 위하여 들러리로 존재할 뿐이라고 해야 차라리 정확하다. 그리하여 IMF 구제금융이나 6월 항쟁 그리고 이번처럼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등 절대 비상시기가 되어서야 가까스로 야당 집권의 기회가 도래할 수 있다(물론 그 기회조차 87년처럼 분열로 놓치는 경우도 있다).

설사 이번에 민주진영이 집권을 성공한다고 해도 국정원은 두말할 것도 없고 검찰, 법원, 국세청, 교육부, 문체부 등 우리 사회 도처에서 수구반동의 강력한 저항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이다. 우병우와 김기춘, 무슨 보훈처장하며 그리고 “일본 천황 만세!”를 외쳤던 고위 공직자 등의 어이없는 행태를 아직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이제 그들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민주진보 역량을 총집결시켜내야 한다. 그리하여 나라 같지 않은 나라를 나라다운 나라, 인갑답게 살 수 있는 나라로 만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하여 전국 각 지역의 삶터와 일터의 모든 시민 역량을 발굴하고 결합해야 한다.

최소한 차기 정부에서 보수일색으로 완전히 기울어진 우리 정치구도의 저울추를 균형을 맞출 수 있을 정도로 바로잡아야 한다. 이는 촛불집회의 시민들이 위임하고 명령한 것이다. 엄숙하게 부여된 이 역사적 과업의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면, 그것은 곧 무능이요 역사에 큰 죄를 짓는 일이다.

공동 목표- 나라다운 나라, 새로운 나라를 함께 만들어 가자

진보진영의 누구나 수긍하는 바처럼, 진보 진영에 인재풀이 취약하다. 따라서 진보진영이 집권을 한다고 해도 일정한 부분을 현재의 관료집단으로 하여금 수행하게 하는 상황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관료집단은 자기들이 상식이나 규범으로 알고 있는 것, 삶의 지향성, 인간관계 등등 모든 것이 뼛속까지 보수적인 성향이다. 그들에게 맡겨진 정책은 보수 일색으로 시행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진보 정권이 다시는 이들 관료집단과 대자본의 포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진보 정권이 철저한 보수파인 그들에게 일을 송두리째 맡기고 넘기는 것 자체가 이미 큰 모순이며, 이는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는 반기문과 김병준을 비롯하여 송민순, 김만복, 허준영 등의 관료출신 인사들이나 삼성경제연구소 등의 사례에서 충분히 드러났다.

눈을 돌려 밖을 보면, 차기 정권은 트럼프를 비롯하여 아베와 푸틴 그리고 시진핑 심지어 필리핀 두테르테에 이르기까지 좋게 말하면 야심만만한 리더라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나쁘게 말하면 마치 조폭이나 불한당과도 같은 비정상적 주변 정상들과 겨뤄야 하는 엄중한 국제 정세이다. 무사안일과 미국에의 일방적 의존만을 장기로 삼는 우리의 허약한 외교부 및 국방부 인력만으로 절대 대응하기 어려운 조건이 조성되고 있다.

모쪼록 이 나라를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간다는 자세로 임해야 할 일이다. 민주세력이 집권을 할지라도 무능함을 다시 드러내 보인다면 보수 세력에게 권력을 헌납하게(그것도 장기간에 걸쳐) 될 것이다.

문재인이 크게 사는 길

버릴 줄 알아야 비로소 크게 살 수 있고, 주는 것이 받는 길이다. 촛불정신을 받들어 우리의 공동 목표인 진정으로 나라다운 나라, 새로운 나라를 실현시키는 것, 이는 오늘 주어진 시대적 과제이다.

지금 차기 대권주자들이 우후죽순 중원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촛불정신에서 보자면,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나라 같지도 않은 나라를 진정으로 나라답게 만들 수 있느냐 여부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자는 이 시대적 과업의 실현을 위하여 자신이 무엇이 되느냐보다 자신을 철저하게 버리고 던져 이 땅의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는 인물이다.

현재 가장 유력한 주자인 문재인 역시 반드시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홍보만 하는 것은 대단히 부족하다. 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시민 모두에게 민주주의의 실현이 우선이고 자신의 이익과 미래는 그 다음이다. 지금 문재인에게 그리고 모든 주자들에게 필요한 자세는 바로 촛불시민들의 이러한 자세다.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사심 없이 성실하게 헌신하고 실천하는 그러한 진정성이야말로 대중들의 엄청난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촛불정신의 계승으로 평가될 수 있는 민주진보 진영의 공동정부 혹은 연립정부의 방안도 문재인이 앞장서서 주장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렇게 된다면, 이 나라 민주주의를 살린 영원한 명예를 가질 수 있고, 그리하여 존경 받고 국민의 사랑을 받는 국가 중흥의 지도자로 될 수 있다. 낙관적으로 보자면, 이후에도 권력의 기회를 잡는 실리도 주어질 수 있다.

힘이란 모름지기 내부로부터 나오는 법이다. 태산은 한줌의 흙도 가벼이 여기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클 수 있었던 것이고(泰山不讓土讓 故能成其大), 드넓은 바다는 아무리 작은 시냇물이라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깊을 수 있는 것이다. 참여정부 당시에도 탄핵 이후 한나라당과의 연정의 방향이 아니라 내부의 민주진보 역량을 결집해내고 민노당까지 연합했더라면 보수 한나라당은 그 존립 자체도 위태로웠을 것이다.

지금 우리 내부의 민주진보 역량을 한데 모아 공동으로 함께 나아가는 것, 이것이 차이를 넘어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촛불 정신을 계승하여 이 땅의 민주주의와 진보를 영원히 살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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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준섭

1970년대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학생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몸담았으며, 1998년 중국 상하이 푸단(復旦)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2004년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일했다.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2019), <광주백서>(2018), <대한민국 민주주의처방전>(2015) , <사마천 사기 56>(2016), <논어>(2018), <도덕경>(2019)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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