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제2차 협동조합 실태조사에 따르면 협동조합들은 평균적으로 출자금 4069만 원, 부채 1675만 원을 조달하여 사업을 수행하기 위한 자산으로 5744만 원을 투자하고 있다. 이는 3년 전 1차 조사 때 출자금 2938만 원, 부채 1018만 원, 자산 3956만 원보다 증가한 수치이다. 하지만 기업으로서 여전히 영세한 규모이고, 자본을 조달하기 위해 금융기관 대출금을 빌린 경우는 9.2%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협동조합 금융 인프라 확보를 위한 정책(17.7%)이 요구되고 있다.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된 지 3과 4분의 3년을 지나고 있고, 1만 개에 가까운 협동조합이 생겼다. 하지만 은행을 비롯한 기존의 금융기관들이 협동조합을 이해하기에는 짧은 시간이었고, 협동조합을 명확히 인식하기에는 한국 경제 규모에 비해 협동조합의 비중은 여전히 낮다. 협동조합이라는 조직 형태로 인해 지금까지 일반 금융기관으로부터 돈을 빌리기 힘들었고 앞으로 이에 대한 개선이 뒤따르기를 기대하지만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자금수요자가 자금공급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시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직접금융시장 또는 자본시장이라고 부르는 시장으로, 주식과 회사채 등의 증권을 발행하여 자금공급자들로부터 직접적으로 자본을 조달한다. 또 다른 하나는 간접금융시장으로, 은행과 같은 금융기관이 자금공급자들과 자금수요자 사이에서 자금을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협동조합은 이 두 시장 모두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협동조합은 주식과 회사채를 발행할 수 없기 때문에 직접금융시장을 통해 자본을 조달할 수 없다. 협동조합의 1인 1표라는 의사결정 형태와 조합원의 자유로운 가입·탈퇴 등의 소유권 형태는 은행에서 생소하기 때문에 대출을 하는데 조심스럽다.
한편, 직접금융시장이든 간접금융시장이든 금융시장은 자금 전달 기능뿐만 아니라 정보전달의 역할을 담당한다. 즉, 자금공급자와 자금수요자 간의 정보 비대칭을 해소함으로써 자금을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자금을 효율적으로 전달한다는 것은 운영비용, 감시비용 등 최소한 비용으로 자금을 전달함을 말한다.) 협동조합을 위한 금융시장이 없다는 것은, 혹은 협소하다는 것은 협동조합과 자금공급자 간의 정보 비대칭이 크다는 것이고 협동조합이 자금을 조달할 때 더 많은 비용이 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협동조합이 주식시장이나 은행을 통하지 않고 사업자금을 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협동조합의 특징, 장단점을 잘 이해하고 있으며 자금을 빌려주는 우호적인 곳은 없을까? 장기적으로는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들의 협동조합에 대한 이해가 높아져 협동조합에 적합한 방식의 대출상품을 만들어 자금을 공급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중단기적으로 협동조합들이 연대하여 만드는 기금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제부터 외국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기금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보자.
협동조합 기금 사례
○ 공유자본협동조합(Shared Capital Cooperative)
공유자본협동조합은 미국의 30개 이상의 주(州)에서 175개 이상의 협동조합들이 함께 설립해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협동조합연합회이며, 지역사회개발금융기관(Community Development Financial Institution, CDFI)이다. 이 협동조합의 미션은 소득이 상대적으로 낮은 지역에 자리 잡은 협동조합 기업에 자금을 제공함으로써 경제민주화를 육성하는 것이다. 연합회의 구성원으로 가입하려면 협동조합의 자산 규모에 따라 최소 150달러에서 최대 1만 달러의 출자금을 납입해야 한다. 주거협동조합의 경우 세대 수에 따라 출자금 규모가 정해진다. 지난 37년 동안 800회 이상 협동조합에 대출을 진행했으며 그 금액은 4000만 달러(약 448억 원) 정도이다. 이 기금의 56%는 협동조합들을 통해 확보하며, 나머지는 은행, 재단, 종교기관과 정부 등으로부터 자금이 공급한다. 투자도 받고 기부도 받는다.
○ 뉴잉글랜드 협동조합 기금(Cooperative Fund of New England)
뉴잉글랜드 협동조합 기금은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과 뉴욕 주에 있는 협동조합, 지역사회 기반의 비영리 및 노동자소유기업에 사회책임투자를 촉진시키는 지역사회 개발 차입기금이다. 1975년에 시작하여 약 40년 동안 820회, 금액으로는 4300만 달러(약 482억 원)의 대출, 1만650개의 일자리를 만들었고, 5629개의 괜찮은 주거 공간(affordable housing)을 제공했다. 협동조합들은 최소 1000달러에서 최대 75만 달러(약 112만 원 ~ 8억4000만 원)의 금액을 차입할 수 있으며, 대출 기간과 이자율은 협의해서 정하는데 일반적으로 5~7년 동안 5%~7% 이자율로 차입할 수 있다. 기금의 원천은 앞선 공유자본협동조합과 달리 개인들을 통한 조달이 전체 기금의 42%를 차지하고 있으며, 정부(13%), 종교기관(12%), 재단(10%), 협동조합(8%)의 순으로 기금을 확보하고 있다. 뉴잉글랜드 협동조합 기금 역시 투자도 받고 기부도 받는다.
○ 협동조합 개발재단(Cooperative Development Foundation)
협동조합 개발재단(CDF)은 1944년 유럽 협동조합의 발전과 재건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었으나 1980년대부터 미국의 협동조합 발전에 초점을 맞춰 운영되고 있다. 협동조합 기업을 통해 지역사회 안에서 자조와 상호부조, 경제 발전과 사회 발전을 증진시키는 미션을 갖고 있다. 교육 장학금, 노인주택 공급, 재난 구호금 등 협동조합을 위한 다양한 목적의 기금들이 운영되고 있다. 예를 들면, 가가와 기금(Kagawa Fund)은 학생들의 주거를 돕기 위한 협동조합을 지원하고 있으며, 자본금은 일본생협연합회에서 제공하고 학생주거협동조합들의 자문위원회가 운영한다. 특이한 점은 매년 협동조합 명예의 전당 행사를 개최하는데 저명한 협동조합 지도자들이 모여서 협동조합 지원에 큰 기여를 한 사람에게 명예를 선사하는 연례행사가 열린다는 것이다. 이 행사는 CDF를 위한 주요 기금을 모으는 역할을 하고 있다.
○ 리치몬드 협동조합 차입기금(Richmond Worker Cooperative Revolving Loan Fund)
미국 캘리포니아주 리치몬드 시의 노동자협동조합을 위한 기금이다. 기금의 목적은 리치몬드 시의 경제에서 중요한 차별점(a material difference)을 만들고 노동자 소유권과 거버넌스 문화 창조를 촉진시키는 것이다. 노동자협동조합은 이 기금으로부터 보통 3000달러에서 최대 2만 달러(약 336만 원 ~ 2240만 원) 정도의 차입이 가능하다. 노동자협동조합이 차입을 받기 위해서는 다음의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 노동자 소유, 노동자 거버넌스 협동조합 기업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 최소 2명 이상이 리치몬드 시 거주자여야 한다. △ 사업의 주요한 장소가 리치몬드 시에 위치해야 한다. △ 사업계획서가 요구된다. 리치몬드 협동조합 차입기금은 비영리 조직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 협동조합 차입기금(Co-operative Loan Fund)
2002년 영국에서 설립된 협동조합 기금으로 협동조합만 차입이 가능하다. 윤리적이고, 이용 가능한 차입금 제공으로 협동조합 섹터의 규모와 범위를 확장하는 것이 목표이다. 협동조합 차입기금은 영국의 협동조합 4곳(The Co-operative, Midcounties Co-operative, East of England Co-operative Society, Chelmsford Star Co-operative Society)에서 받은 자금을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는 다른 협동조합을 돕는다는 협동조합의 명확한 목표를 보여주는 것으로, 협동조합 간 협력의 실질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차입을 위해서 인적 보증은 필요하지 않으며, 차입 기간은 1~20년 사이로 유동적이다. 최소 1만 파운드에서 최대 8만 5000파운드(약 1762만 원 ~ 1억5000만 원)까지 차입이 가능하다.
○ 협동조합과 지역사회 금융(Co-operative & Community Finance)
산업 공동소유권 금융회사(Industrial Common Ownership Finance Ltd., IOCF)가 소유하고 있으며, 조합원들이 민주적으로 소유하고 운영한다. 이 기금은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 분야에서만 사용 가능하다. 거의 40여 년간 지역사회의 작은 규모 기업에서부터 큰 규모의 기업까지 수백여 개의 기업들을 지원했다. 이를 통해 사회적경제 내에서 수천 개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유지될 수 있었다. 보통 1만 파운드에서 7만5000파운드(약 1780만 원 ~ 1억3000만 원)까지 차입이 가능하다. 이자율은 현재 6~10%이고, 대출 수수료는 1~2%이다. 다른 기금과 마찬가지로 인적 보증을 요구하지 않는다. IOCF에서 자금을 빌리는 협동조합은 IOCF의 조합원이 된다.
○ 노동자협동조합 기금(The Worker Co-op Fund-Tenacity Works)
캐나다 노동자협동조합 연합회(Canadian Worker Co-op Federation, CWCF)가 소유하고 운영하는 소규모의 투자기금이다. 기금의 목적은 캐나다 전역에 새로운 노동자 소유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현재의 노동자 소유 협동조합 규모를 확장하는 것이다. 노동자협동조합은 최소 2만 달러(약 1700만 원)에서 최대 5만 달러(약 4300만 원)까지 대출을 신청할 수 있다.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은 노동자들이 소유권을 갖고 있는 협동조합이어야 하고, CWCF의 정규 구성원으로 가입해야 한다. 또한 모든 노동자들에게 조합원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조건을 정관에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 협동조합 기금(Coopfond)
이탈리아 레가쿱(Legacoop) 전국 연합회가 100% 소유, 운영하는 협동조합개발기금으로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져 있다. 1992년 1월, 법 31의 59(leggen. 59 del 31 Gennaio 1992)를 통해 자본금 12만 유로(약 1억5000만 원)로 기금을 설립했다. 이탈리아 각 협동조합연합회는 각자의 기금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중에서 레가쿱의 협동조합 기금(Coopfond) 규모가 제일 크다. 자금은 레가쿱 소속 협동조합들의 순이익의 3%와 청산하는 협동조합의 잔여 재산을 통해 확보한다. 본 기금은 신규 협동조합의 설립, 주식회사의 협동조합 전환, 기존 협동조합의 확장을 위한 용도로 사용된다. 2004년까지 2억9000만 달러(약 3271억 원)를 조달하여, 3억4000만 달러(약 3835억 원)를 투자했으며 이를 통해 많은 일자리를 창출했다. 또한 14개의 지역 기금을 보유하고 있다. 1994년부터 2001년까지 4800만 달러(약 541억 원)의 출자금과 1700만 달러(약 192억 원)의 대출자금을 통해 109개 신규 협동조합 설립을 지원하고, 4640개의 새로운 일자리, 1300만 달러(약 598억 원)의 대출금으로 82개 협동조합 확장 프로그램을 지원하여 2690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했다.
해외 협동조합 기금 사례의 시사점
해외의 협동조합 기금 사례를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더 자세히 살펴보면 기금별 실제 운영에서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앞서 언급한 협동조합 기금 외 수많은 협동조합 기금 사례를 통해 또 다른 현황과 시사점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본 원고에서는 확인한 8개의 기금 사례로부터 국내 현실에 비추어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그 함의로 보다 세밀하게 살펴보려 한다.
첫째, 왜 협동조합 기금을 만들었는가? 앞에서 다룬 협동조합 기금의 목적은 확인했듯이 신규 협동조합의 설립, 주식회사의 협동조합으로의 전환, 협동조합의 확장 등을 지원하는 것이다. 기금의 주체에 따라 전체 협동조합 대상의 기금은 물론 노동자협동조합에 특화된 기금도 있다. 이는 노동자협동조합이 겪는 자금 조달의 어려움을 기금을 통해서 해결하는 것으로 보인다. 협동조합의 지속가능성 확보라는 목적 이외에도 뉴잉글랜드 협동조합 기금과 리치몬드 협동조합 차입금을 살펴보면, 지역사회에서 협동조합이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있어 중요한 수단으로 생각되고 있는 것 같다. 리치몬드 기금의 경우, 차입을 받으려면 리치몬드 시에 거주하는 노동자가 재직 중이어야 하고, 주 사업장이 리치몬드 시에 있어야 한다. 협동조합의 생존을 위해서 기금을 만들기도 했지만, 협동조합이 지역사회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인식이 협동조합 기금을 설립하게 된 중요한 이유인 것으로 보인다.
둘째, 기금의 주체는 누구이고 자금은 어디서 오는가? 기금의 주체는 주로 개별 협동조합들의 연합 또는 협동조합연합회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기금의 사례는, 민주적으로 운영되어야 하며 협동조합 간의 협력을 중요하게 보고 있는 협동조합의 모습을 구체화한 실질적인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기금별로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다. 먼저 이탈리아 협동조합 기금은 전국 연합회 차원에서 자금을 조달하며, 소속 협동조합의 순이익 3%를 법적으로 연대기금으로 받기 때문에, 가장 안정적으로 자금 공급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기금의 규모도 다른 기금에 비해 크다.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으거나 기부금을 받는 형태로 자금을 조달하는 경우도 있다. 공유자본협동조합, 뉴잉글랜드 협동조합 기금 등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협동조합 기금은 정부로부터 일정 정도 자금을 지원받고 있다. 협동조합 개발재단의 경우 매년 열리는 협동조합 명예의 전당 행사(Cooperative Hall of Fame)가 기금을 모으는 중요한 방법 중 하나이다.
셋째, 기금은 어떻게 사용되는가? 기금은 당연히 협동조합에게 대출을 해준다. 그런데 각 기금에서 개별 협동조합이 차입 가능한 금액을 살펴보면, 그리 큰 금액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외적으로 뉴잉글랜드 협동조합 기금에서 빌릴 수 있는 금액이 최대 8억 원 정도이지만, 다른 기금에서 빌릴 수 있는 차입금은 최대 1억5000만 원을 넘지 않는다. 사업자금으로 1억 원 내외의 금액은 그리 큰 규모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협동조합들이 자금 조달을 기금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다. 협동조합이 일반 은행도 함께 이용하고 있다면 기금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탈리아 레가쿱의 협동조합 기금을 비롯한 몇몇 기금들을 살펴보면 지렛대(leverage)라는 표현이 나온다. 지렛대를 이용해 무거운 물건을 들고 옮길 수 있는 것처럼 기금에서 빌려준 차입기금이 기반이 되어 필요한 사업자금을 금융기관으로부터 빌릴 수 있는 것이다. 앞서 얘기했듯이 신생 협동조합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일반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낮다. 만약 신생 협동조합이 협동조합 기금에서 먼저 차입을 받고, 이 차입거래 기록을 통해 신용정보를 쌓을 수 있다면 일반 금융기관으로 이동할 수 있는 가교 역할을 협동조합 기금이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협동조합 연대, 호혜 기금 등을 설립하고 운영하려면 많은 지식과 지혜 그리고 자금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기금을 운영할 수 있을지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으며 이에 따라 많은 시간이 소요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협동조합 간의 협력과 연대의 방식을 작은 단위에서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지역에서 지자체를 설득하고 지역 내 협의회, 혹은 연합회의 형태로 각 협동조합이 연대하여 조금씩 자금을 모아 기금을 만들어보자. 물론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자. 부실이 날 수도 있고, 적자가 생겨 운영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그로 인한 갈등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성공의 경험, 실패의 경험들이 쌓여서 건강한 협동조합 생태계를 형성해갈 수 있다. 다시 한 번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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