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대선', 대통령인수위 역할을 국회가 한다면?

[홍일표의 시민/풍/파] '지금'부터, 그리고 '다르게' 준비해야 할 차기 정부 정부조직개편

1000일이다. 세월호도, 아이들도, 진실도 여전히 바닷속 깊은 곳에 있다. 대통령도 여전하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라며 그날을 기억하지도, 말하지도 못한다. 대통령은 진심일 수 있다. 그날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 정말 기억하지 못할 수 있다. 그에게 그날은 그저 그런 날 중 하나였을 뿐. 세월호 참사 이후 팽목항을 방문했을 때, 안산 분향소를 방문했을 때, 촬영 카메라 앞에서 눈물을 흘렸을 때 이미 우리는 알았다. 진심으로 슬퍼하지도, 아파하지도, 미안해하지도 않음을. 그런 대통령이었다. 국민들은 물었다. "국가란 무엇인가?" 그 물음이 얼마나 깊고, 무겁고, 무서운 것인 줄 대통령은 몰랐다. 그녀가 내놓은 대답은 엉뚱하게도 갑작스러운 2차 정부조직개편이었다. 세월호 참사 발발 한 달이 겨우 지난 시점이었고, 실낱같은 희망으로 구조작업이 진행되던 때였다.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은 지금까지도 부족하다. 이 모든 것을 건너뛰고 2014년 5월 27일 정부조직개편안부터 발표했다. 앞도 뒤도 없었고, 밑도 끝도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다운 결정이었고, 박근혜 정부다운 행태였다.

2차 정부조직개편도 유민봉 청와대 국정기획수석(현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주도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에는 유민봉 교수, 옥동석 교수(조세재정연구원장을 거쳐 현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 강석훈 교수(새누리당 국회의원을 거쳐 현 청와대 경제수석) 등이 주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인수위원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정부조직개편안을 만드는 것이었고, 캠프에서 일했던 교수 출신 인수위원들의 역할이 컸다. 부처에서 파견된 공무원들이 조직보위의 최전선에 서고, 조직과 인사를 총괄하는 부처가 정부조직법 개정안 작성의 실무를 맡는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부처별 보고가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야당에 대한 설명도 않은 채 개편방안을 발표해 혼란과 갈등을 키웠다. 미래창조과학부 신설과 방송통신위원회와의 관계,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위상 등을 둘러싼 여야 간 다툼이 심했지만,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이름을 바꾼 것은 헛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청을 처로 승격시킨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경우와 달리, 불량식품에 대한 강력 단속을 국민 안전의 우선 과제로 내세운 것만큼 황당한 결정이었다.

▲ 세월호 참사 다음날, 진도체육관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 ⓒ연합뉴스

세월호 참사 직후 이뤄진 정부조직개편의 과정과 결과도 다르지 않았다. 국민안전과 '관피아 척결'을 내세우며 국가안전처(최종적으로 국민안전처)를 신설하고 안전행정부를 쪼개는 것을 개편의 주된 골자로 했다. 인사와 조직을 담당하는 행정혁신처를 신설하고, 행정자치 기능을 담당하는 별도의 처를 만든다는 게 처음 계획이었다. 그러자 조직을 보위하기 위한 온갖 논리들이 동원되었다. "지방의 권익을 담당하기 위해, 정부 3.0이라는 핵심 국정과제 실현을 위해, 경찰청을 외청으로 두기 위해서는 규모와 위상의 유지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자칫하면 "지방자치와 치안이라는 내치의 핵심 부처"라는 이유로 서울에 남을 수 있었던 명분마저 사라질 위기였다. 하지만 '정통 내무관료'들은 힘이 셌고 영악했다. 그들은 '인사'와 '조직'을 분리해서 '인사혁신처'만 세종시로 내려보냈다. '지방자치'는 '내무부' 소관으로 남겼고, 사실상 '정부 0.3'으로 후퇴했음에도 '정부 3.0' 사업을 붙잡았다. 다시 참여정부 시절 명칭인 행정자치부로 바뀌었지만 서울에 남았으니 되었고, '조직'과 '지방자치' 업무를 지킬 수 있으니 되었다.

'서울'에 남았더니 행정고시 재경직 수석이 기재부가 아니라 행자부를 선택하는 일이 벌어졌다. '조직'과 '지방자치'를 지켰더니, '열일'하게 된다. 대선이 조기에 치러진다면 인수위원회 없이 다음 정부가 출범해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조직을 땠다 붙였다 하는 것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지만 미래창조과학부를 그대로 둘 수는 없다. 공룡조직, 갑질 부처라 비난받는 기획재정부나 행정자치부도 있고,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국민권익위원회, 산업통상자원부, 교육부 등에 대한 개편요구도 거세다. 청와대와 검찰 등 권력기관개혁은 절대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보통의 경우라면 인수위원회에서 개편안을 마련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불가능하다. 그러자 때를 놓치지 않고 행정자치부가 나섰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행정자치부는 새 정부의 조직구상을 돕기 위해 신규인력을 대거 충원했다고 한다(행자부는 "조기대선과는 무관하다"는 해명자료를 서둘러 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행정자치부가 지방자치를 압살한다고 비판하고 있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행정자치부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는데, 행정자치부는 지난해 말 자치단체 조례업무 관리를 이유로 '자치법규과'를 신설했다. 권력의 공백, 정치의 빈틈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 조직의 규모를 키우고 있다.

행정자치부만 바쁜 게 아니다.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지난 연말 기자간담회에서 "새로운 정부가 이름을 바꿀진 모르지만 혁신 관련 부처로서 존속되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올해 업무보고에서 '창조경제' 대신 '4차 산업·지능정보'를 키워드로 내세워 생존의 근거를 삼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깊이 연루된 교육부나 문화체육관광부도 선제적 인사조치로 행여 있을 조직개편에 대비하고 있다고 한다. 다른 부처들도 연구용역 등의 방식으로 조직보위의 논리와 근거를 확보하고 있고, 불리한 조직개편을 막을 여론조성에 노력 중이다. 금융위원회나 여성가족부처럼 서울에 남아 있는 공무원들은 행여 세종시로 옮겨질까 걱정하며 촉각을 더욱 곤두세운다. 행정부처와 공무원들이 모든 관심을 조직개편에 쏟고 있을 동안 정부조직개편의 또 다른 중요 이해관계자인 국회와 정당은 조용하다. 그런데 과연 정부조직개편이 대선 이후에야 시작되는, 그리고 행정부처와 공무원들만의 문제인가?

그간 정부조직개편은 '집권세력의 전리품'처럼 여겨졌거나 '행정부와 공무원들의 일'로 치부되곤 한 게 사실이다. 더 이상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인수위나 청와대가 정부조직개편안을 발표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정부조직법이나 개별법 형태로 국회에서 통과되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정부조직법 개정이 지연되어 직전 정부 장관들과 어색한 동거가 한 달여 동안 계속되었다. 하물며 인수위원회조차 없는 다음 정부는 어떠하겠는가? 여야 정치권의 이해와 합의가 없다면 차기 정부 출범 후 최소 3개월은 엉망진창이 될 게 뻔하다. 대통령은 '적폐청산' 대상이기도 한 이들과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에 나서야 한다. 국회통과가 끝도 아니다. 개편된 조직의 실·국은 시행령으로, 과는 시행규칙으로 다시 정해야 한다. 그때 행정자치부와 각 부처 인사·조직 담당자들은 '달라진 줄 알았는데 그대로고, 그대론 줄 알았는데 달라지는' 신묘한 기술을 발휘할 것이다. 늘 그래 왔듯이.

세월호 이전과 이후가 달라야 했고, '촛불과 탄핵' 이후가 달라야 한다. 대선 이후 대한민국은 당연히 달라져야 한다. 그래서 개헌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개헌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지 않듯이 개헌 전에도 많은 걸 해결해야 한다. 정부 운영과 관료사회 개혁, 특히 정부조직개편은 그런 맥락에서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개편의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까지 달라져야 한다. 청와대와 행정부처 공무원들에 의해 비밀스럽고 갑작스럽게 이뤄지는 정부조직개편이 된다면 그것은 '적폐청산'과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이라는 목표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각종 위원회를 폐지하고 기획재정부와 지식경제부를 뚝딱뚝딱 만들었듯, 박근혜 대통령이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꾸고, 미래창조과학부를 밀어붙였던 행태를 다음 정부는 반복할 것인가? 아니면 참여정부의 정부 조직으로 회귀하면 되는가?

발상과 실천의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 인수위원회조차 없는 이번 대선은 '위기'이자 '기회'이다. 정부조직개편을 인수위나 행정부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과 국회가 하는 것으로 차제에 만들어 보자. 정당과 국회는 정부조직개편의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자일 뿐만 아니라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견제하기 위해서도 행정부처 인사와 조직에 대해 더욱 적극적인 관심과 간여가 필요하다. 이는 여당과 야당 모두에 해당한다(2013년 민주통합당,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모두 정부조직개편에 대응하는 당내 기구를 운영한 바 있다). 집권의 주체는 당선자나 캠프가 아니라 정당이다. 그리고 '수권정당'의 역량과 역할은 '대선 이전'만이 아니라 '대선 이후'까지 중요하다. 인수위 없는 다음 정부를 예상한다면 국회에 정부조직개편특위를 만들어 대선 전에 여야가 충분히 협의하고, 합의를 미리 시도해 봄직 하다. 2013년 예산·재정특별위원회에서 예결위 상설화를 검토하며 기획재정부 개편방안을 논의했던 것도 하나의 참고사례가 된다.

특위 설치와는 별개로(또는 그것을 전제로) 상임위원회에서 정부조직개편 관련 쟁점에 대해 검토하고 논의하는 것도 방법이다. 부처들도 유력 후보 캠프에 비밀리에 의견과 자료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상임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개최하는 토론회를 통해, 또는 의원실의 자료제출과 설명요구에 응하는 방식으로 부처 입장을 전달하는 게 맞다. 각 당에서는 이를 개별 의원실에 맡겨 두는 것이 아니라 원내 전략 차원에서 관리하고, 대선 후보가 최종적으로 결정되면 이를 바탕으로 당과 캠프가 함께 제대로 된 정부조직개편방안을 만들도록 하자. 이렇게 한다면 대선 이후 정부조직개편 과정에서 발생할 혼란과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다. 상임위 소속 의원들이 충분한 이해를 갖고 있기에, 행정부처가 법 개정의 취지를 벗어나 조직개편을 시도하는 것도 깐깐히 점검할 수 있다. 정부조직개편에서 정당과 국회의 역할이 더욱 강화된다면 세월호 직후처럼 즉흥적이고 엉뚱한 조직개편은 함부로 시도되지 못할 것이다. '제대로 된 정부'는 '제대로 된 국회와 정당' 없이 불가능하다. '새로운 대한민국'은 그 모두의 변혁을 필요로 한다. 그것이 '지금'부터, 그리고 '다르게' 정부조직개편을 준비해야 하는 까닭이다.

더미래연구소는 오는 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토론회를 열어 '차기 정부 조직개편의 원칙·방향·방안'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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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표

시민의 바람과 물결이 만드는 '새로운 정치'를 꿈꿉니다. 시민적 기풍과 세력이 만드는 '다른 정치'를 기대합니다. 홍일표 박사는 참여연대, 희망제작소, 한겨레경제연구소, 국회 등에서 일했고, <기로에 선 시민입법>, <세계를 이끄는 생각 : '사람'과 '조직'을 키워라-미국 싱크탱크의 전략> 등의 저서와 시민운동과 싱크탱크, 정치 관련 논문을 다수 발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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