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년(丙申年)을 보내며…"천민 자본주의 끝내자"

[김성훈 칼럼] 한비자(韓非子)의 나라가 망할 징후들을 극복하려면…

병신년(丙申年)은 가히 '난세(亂世)'라 불러 부족함이 없는 한 해이었다. 그 마지막 날 12월 31일 광화문 광장에 모인 촛불 시위대 말석에 참가하여 박근혜 치하의 국정 문란과 최순실 일당의 국정 농단 사태를 규탄하던 중 어마지두에 새해 정유년(丁酉年)을 맞이한 소감은 착잡하였다. 박근혜 통치 하의 4년을 되돌아 볼 때 이미 해마다 곳곳에 나라가 망할 징조가 나타나고 있었다. 갑오년의 304명 세월호 수장(水葬), 을미년의 옥시싹싹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1000여 명 살상 사건, 병신년의 최순실과 문고리 3인방의 국정 농단 사태, 이외에도 2014년 갑오년 코오롱의 경주 마우나 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사고(138명의 사상자)와 장성 효사랑 요양병원 화재사고(28명의 사상자), 메르스 사태 등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애먼 죽음을 맞았고 수천 수백만 민초들의 심장을 쥐어뜯어 엄동설한 심야임에도 촛불을 들고 광장을 헤매게 하였다.

ⓒ프레시안(최형락)

한비자(韓非子)의 "나라가 망할 때 나타나는 징후"가 바로 지금 이 나라에서

지금으로부터 2300여 년 전 중국 진시황 치세하의 소국 한(韓)나라의 비(非)라는 법사상가가 황제에게 제왕학(帝王學)의 정수라 일컬어지는 '나라가 망하는 징조 47가지(亡徵篇)'를 바쳤다. 당시는 오늘날과 같은 백성이 주인인 민주(民主)주의 체제가 아니고 왕이 곧 나라인 군주(君主)주의 체제라, 곧이곧대로 적용하기 곤란한 대목도 발견되지만 그 원칙, 그 징후는 여전히 유효하다. 동서고금의 정치지도자 중에 그 이치를 애지중지 학습하고 행여 국정을 망쳐 나라를 망하지 않게 하려고 노심초사한 군왕도 부지기수였다. 훌륭한 구국치세의 대안서로 그리고 도덕윤리와 양심의 수양서로서 공맹의 유가(儒家)적 가르침이라든가 불가(佛家)의 대자대비(大慈大悲)사상, 기독(Jesus Christ)의 구속(救贖, redemption) 사상이 모두 죄악과 비참함으로부터 인류를 건져내 자비와 사랑을 베푸는 가르침이다.

지면의 제약으로 한비자의 '나라가 망하는 징조 47가지'를 일일이 해설할 수는 없으나,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 치하의 작금의 사태는 그 전임 이명박 시대의 국정 문란 사태와 겹쳐 나라가 온통 한비자의 망할 징조에 꽉 차 있는 듯하다. 흔히들 대통령과 그 지도부 및 부화세력의 탐욕과 무위·무능·무원칙 그리고 비리와 부정부패 행위는 지금의 이 나라가 다행스럽게도 헌정(憲政)체제라 5년의 단임 임기제로서 그 총수를 합법적으로 갈아 치울 수 있어서 무너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나라의 진짜 주인인 풀뿌리 국민(民草)들이 깨어 있어 희망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다.

다른 한편, 자기네 기득권과 탐욕을 박근혜 정권의 운명과 동일시하려는 무조건적인 '박사모'들과 나라가 망하고도 호의호식할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이 여기저기 산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나라의 비극이다. 하기야 국치(國恥) 36년 동안 부귀영화를 누렸던 이완용 매국노들에겐 나라가 망하든 말든, 망했건 말건, 자기들 가족과 친지들만 잘 먹고 잘 살면 그게 태평성대요 행복이라 여기는 족속들이 있었으니 한 때는 '민족소멸론(萬世一家大和族)'이 횡행하기도 했잖은가.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명박근혜' 8년간 한비자의 망징들이 고스란히 드러난 시대임에도 지금 우리나라 민초들은 깨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명박근혜' 정부의 망징(亡徵, 나라 망친 징후)들

일찍이 공자께서 나라가 제대로 설 수 있는 근본 기둥으로 믿음(신뢰)과 식량 그리고 군대, 셋을 들면서 그중에 으뜸은 백성들의 믿음이요, 그다음이 식량주권과 군대라고 순서를 매겼다. 무역자유화가 된 현시점이지만 그 옳고 그름을 다시 한 번 겸손하게 물어보자.

첫째, 박근혜 씨가 나는 "순수하게"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을 나라를 위해 나라가 번성하는 방도라고 믿고 재벌들에게 수백억 원을 거둬들였다고 말했을 때 '그렇고 말고요'라고 동의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장차관 임명과 대일, 대북 외교문서에 최순실 씨의 가필 충고를 그대로 받아들여 위안부 범죄 문제를 순수하게 눈감아주고, 개성공단도 그냥 폐쇄하고, 우병우 김종 일당도 순수하게 임명했을까? 박근혜 씨의 순수성을 그대로 믿을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둘째, 우리나라에 식량주권(Food Sovereignty)이 지금 존재하는가. OECD 국가 중 식량자급율(23.6%)이 최하위인 국가이며 GMO(유전자조작 농산물) 식품과 가공품 수입이 제1위인 나라, 미국 다음으로 1인당 GMO 식품 소비량이 높은 나라, 유방암, 자폐증, 치매, 불임증 유병률이 두 번째로 높은 국가, 식품완전표시제를 정부가 앞장서 틀어막는 국가가 다름 아닌 대한민국이 아니던가. 이쯤 해서 아직 나라가 망하지 않는 이유는 그나마 깨어 있는 민초들 덕분이다.

셋째, 눈만 떴다 하면 들리는, 천문학적인 방산비리 사건, 군대 사고, GMO 식품 일등 소비의 국군과 어린이 단체급식, 세월호가 가라앉아도 가서 구하지 못한 막강 해군의 구조함 통영호의 침묵, 대통령 선거에 동원된 군인들의 댓글 행위, 이 모든 엄연한 사실들을 박근혜 정권은 없었던 일로 치부한다.

공자님께서 지금 우리나라에 와서 보시면 그 제자 자공에게 말한 "백성들이 믿지 않으면 그 나라는 설 수 없다(民無信不位)"라는 말씀만 되풀이하실 것 같다. 게다가 4대강의 녹조라떼와 이끼벌레가 녹색혁명이라고 우기는 전직 대통령 앞에선 차마 할 말을 잊으실지 모른다.

천민(賤民)자본주의를 끝내야

"피눈물이 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알겠다"라는 박근혜 씨에게 들려줄 충고가 하나 있다. 아무리 자기 아버지 박정희가 그립다고 해서 자기 주변에 죽을 날이 살아갈 날보다 길지 않은 노욕(老慾)의 나이 7순 8순 노춘(老春)들의 득세가 너무 심하다는 말이다. 이들이 그동안 쌓아온 재능과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면서 살아도 남은 인생이 바쁜데 이래저래 사적 부역에 동원되어 노년을 먹칠해야 하는가. 그 피해, 그 잘못들이 우리 사회 민생들을 더욱 고달프게 하고 병들게 했다면 그 폐해를 누가 갚아야 하는가. 고스란히 민생의 몫으로 돌아올 뿐이다. 그들의 '박근혜 찬양'이 드높은 곳에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가고, 그들의 자축 파티장 촛대가 휘황찬란하게 타오르는 곳에 백성들의 피눈물이 고스란히 흘러내린다.(歌聲高處 民聲高, 燭漏落時 民漏落). 박근혜 씨는 피눈물을 운운할 자격이 없다.

한 마디로 나라 경영 방식을 박정희 시절부터 수출주도의 고속성장체제로 산업화 정책을 몰아붙이는 과정에서 삼성 등 재벌 우선주의, 매판자본들의 성장 제일주의, 민주주의 대신 대기업천민자본주의(Corporatocracy)를 앞세워 왔던 과정에서 '돈이 최고'라는 맘몬주의가 우리 정치경제 사회 곳곳에 뿌리내렸고 그것이 지금 서민들의 피눈물 나는 삶이 되었다. 정치가와 대자본이 유착하는 곳에 과학자들은 돈을 위해 도덕과 양심을 내팽개치고, 교수 학자들은 영혼을 팔았다. 종교집단도 십자가 위에 세종대왕 표와 신사임당 표를 덩달아 붙였다. 예수, 부처님, 공자는 언제나 세종대왕 표나 신사임당 표의 뒷자리로 물러나야 했다.

이른바 천민자본주의 시대가 60여 년 넘게 이 사회 전반의 의식(意識)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민생은 부익부 빈익빈의 피눈물 쏟는 구도 속에 사회 양극화에 매몰되고 환경생태계는 파괴되었으며 종(種)의 다양성은 사라진 침묵의 봄(Silent Spring)이 찾아왔다. 천민자본주의가 '끝'나지 않으면 기업도, 국가도, 대통령과 정치꾼들도 '쫑(終)'이 나는 세상에 살게 된 것이다.

이제 거시(巨視, Macro)가 아닌 미시(微視 Micro)적 접근이 필요한 시대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가족들의 식사비용과 생활비를 자신의 월급에서 지급하는 원칙을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다. 캐나다의 젊은 총리 트뤼도는 지난 한해 자기 연봉 34만 달러(CAD) 중에서 세 자녀 양육비(2명의 고용보모비)와 가족 생활비, 아홉 차례 휴가 시 전용비행기 사용비, 심지어 한 달 83달러씩 내는 인터넷과 케이블 이용비를 국고에 반납하였다. 도합, 연봉의 10% 이상을 반납한 것이다. 이는 일찍이 EU 스위스 등 선진국가들의 공직자들이 불문율로 행하고 있는 관행이다. 잘 보이지 않고 잘 들리지 않는 작은 일부터 솔선하여 챙기는 것이 민생·민권 민주주의의 시작이다.

작지만 그냥 스쳐 지나칠 수 없는 기본적인 미시적인 민생문제를 우리나라에 몇 가지만 풀어보자. 예컨대,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관저에서 키우는 대여섯 마리 진돗개 사육비를 누가 부담하는가? 혼밥·혼술을 즐기는 사적인 그의 식사 생활비는 어디서 지출되고 있는가? 국민들을 "개, 돼지"라고 총칭하는 장차관과 고위 관료들의 골프 요금, 점심 식사 등 사적인 경비지출은 누가 부담하는가. 대부분 국민의 혈세로 충당하거나 국고에서 지출되고 있지 않는가? 범위를 확대하여 대기업체 임원들의 각종 사적인 경비지출은 어디서 감당하는지 묻지 마라 갑자생이다.정치인과 기업인의 공적 업무와 사적 업무가 구분이 어렵다고 변명하려 들지 마라. 문제는 통치자들의 철학이요 양심의 문제이지 미시적인 구분의 문제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풀뿌리 민생들의 안전한 먹을거리와 그 뒷바라지가 더 중요하냐? 아니면 기업들의 이윤과 수출입 문제가 더 중요하냐? 기업체의 전기료를 낮춰주기 위해 일반 가정의 전기료를 더 많이 올리는 정책이 민초들의 민생보다 더 중요하단 말인가. 이를 일컬어 현대적 경영방법이라고 합리화할진대, 그게 국가인가. 박정희 식 수출주 도의 산업화 정책이 '이명박근혜'로 전이되어 가족농 주도의 우리나라 농어업을 황폐시킨 오늘날의 천민자본주의야말로 단두대에 올려야 할 암적인 존재들이 아닌가. 우리 주변에 산적해 있는 이들 매크로적 갈등 문제를 이제 좀 눈높이를 낮춰 미시적 민생 위주의 구조로 전환할 진정한 사회개혁운동이 전국적으로 시작돼야 할 때이다.

백성이 살아야 궁극적으로 나라가 살고 정부와 대기업도 살 것이 아닌가? 노동자 농민 서민 자영업자들이 대기업과 함께 두루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과정이 진정한 보수개혁의 종착지가 아니던가. 그러기 위해선 배려와 나눔과 협동의 문화, 대자연을 품은 따뜻한 사회공동체 세상이 퍼져야 가능하다. 그것은 미시적으로 접근할 때 이를 수 있는 길이다.

(이 글은 2017년 1월 5일 자 <한국농정신문> '김성훈의 농사직썰'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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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

농업 및 환경문제 전문가로 김대중 정부에서 농림부 장관을 역임하였으며 <프레시안> 고문을 맡고 있다. 대학과 시민단체, 관직을 두루 거치며 농업과 농촌 살리기에 앞장 서 온 원로 지식인이다. 프레시안에서 <김성훈 칼럼>을 통해 환경과 농업, 협동조합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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