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선투표제가 위헌?…헌법 모독!

[기고] 헌법은 "'유권자'의 1/3 이상" 규정했다

결선투표제 도입의 당위성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다. 당연하다. 과반수 득표도 못 한 소수파 후보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시도지사나 시도교육감으로 당선돼 전체 시민을 대표하는 작금의 현상을 누구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선투표제 도입 논의는 소수파 승자에 의한 대의권력 행사를 바로잡자는 민주주의 강화 프로젝트다. 과반수 득표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1위와 2위를 대상으로 결선투표를 실시하면 반드시 과반수 득표자가 만들어진다. 이로써 선출직 대의권력의 민주적 정당성이 한층 강화된다.

뿐만 아니다.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면 사표(死票)가 될까 두려워 차순위 선호 후보에게 표를 주고 마는 사표 심리에 따른 투표왜곡 효과를 없앨 수 있다. 결선투표가 있을 경우에는 3위나 4위를 달리는 지지 후보에 대해서도 마음 놓고 표를 줄 수 있다. 제3당이나 진보정당 후보들이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어서 다당제 정당정치와 합의제 민주주의를 뿌리내리는 데도 도움이 된다. 많은 나라들이 결선투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이유다. 결선투표 실시비용도 적은 건 아니지만 국민주권과 민주주의 강화 효과가 훨씬 더 크다고 판단한 나라들이 많다.

단일화의 덫


우리나라의 정치구도상 최소한 대선에서 결선투표의 필요성은 더 강력하고 더 시급하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대통령 권력 교체기는 단10년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한 뿌리에서 나와 이합집산하며 진화한 수구보수 연합 세력의 독차지였다. 의회권력은 더해서 지금의 여소야대를 포함해서 단 3년밖에 과반수 세력 교체기가 없었다. 이렇듯 기울어진 정치구조 때문에 민주진보 진영은 대선이 있을 때마다 정권교체가 우선이라는 당위를 앞세우며 제3의 분파정당이나 진보정당의 진출을 억눌러온 딜레마적 상황에 빠져왔다.

돌이켜보면 1987년 이후 대선에서 제3의 후보가 등장하지 않은 경우는 드물다. 정주영, 이인제, 정몽준, 권영길, 문국현, 안철수 등이 떠오른다. 이들은 대부분 단일화의 덫에 걸려들었다. 어떤 정책 대안을 내놓아도 언론과 국민의 관심은 이들이 과연 완주할 것인지, 단일화에 응할 것인지에만 쏠렸다. 이들은 자신의 비전과 정책을 제시할 수 있는 공정한 기회를 전혀 얻지 못했다. 정권 교체라는 압도적 요구 앞에서 제3후보, 특히 진보 진영의 제3후보들은 단일화 압력에 시달리다 무대에서 사라졌다.

결선투표제가 도입됐더라면 단일화의 덫이 작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경쟁이 더 치열하고 공정했을 것이고 3, 4위 후보들도 국민의 표심을 확인했을 것이며 유권자들도 표심 왜곡 투표를 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선투표제가 도입되지 않은 이유는 거대양당이 기득권 수호 차원에서 늘 야합했기 때문이다. 특히 해방이후 거의 모든 기간 동안 제1당을 차지해온 새누리당과 그 전신정당이 한사코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과반수당 지위를 상실한데 이어서 이번 탄핵과 분당으로 여당 지위와 제1당 지위까지 상실함으로써 결선투표제는 이제야 의회에서 입법이 가능하게 되었다.

결선투표제 입법, 위헌이라고?

그런데 갑자기 결선투표제 입법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며 이 국면에 고춧가루를 뿌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12월 26일에는 국회입법조사처가 의원 질의에 대한 답변 형식으로 위헌론에 가세했다. 대선주자 중에서는 박원순과 안철수, 정의당은 결선투표를 입법으로 도입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문재인은 결선투표는 자신이 대선공약으로 내세웠을 만큼 필요성이 강하지만 개헌 사항이라고 주장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선투표법 위헌론은 우리헌법과 국민을 바보라고 선언하는 나쁜 해석이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위헌론자들의 논거는 헌법 제67조 2항이다. 대선에서 "최고득표자가 2인 이상인 때에는" 국회에서 표결로 당선자를 정한다는 조항이다. 위헌론자들은 이 조항에서 최고득표자가 1인일 경우에는 '결선투표 없이' 최고득표자를 당선자로 해야 한다는 뜻을 읽어낸다. 이 조항이 결선투표 금지 조항을 내포한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은 문언에 입각한 것은 아니다. 문언만으로 보면 이 조항은 복수의 최고득표자 발생 시 당선자 결정 방식을 정하고 있을 뿐이다.

문언만으로 보면 우리 헌법은 결선투표를 요구하지도, 금지하지도 않는다. 헌법은 명문으로 결선투표를 요구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1987년 이후 이미 6명의 대통령을 상대 다수 득표자로 뽑았다. 헌법이나 법률로 결선투표를 요구하지 않는 이상 한 표라도 더 얻은 상대 다수 득표자가 당선자가 될 수밖에 없다. 헌법은 명문으로 결선투표를 금지하는 것도 아니다. 결선투표를 하라는 헌법의 적극명령과 결선투표를 하지 말라는 헌법의 금지명령 사이에는 법적 형성을 허용하는 큰 여백이 남아있다. 결선투표제 입법이 겨냥하는 부분이 바로 이 회색지대다.

6월 항쟁이 낳은 헌법이 '상대 다수' 득표자 당선을 절대시한다?

우리 헌법은 결선투표를 강제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 다수 대표를 결과적으로 용인할 뿐, 상대 다수 대표가 아니면 안 된다고 고집하며 결선투표(=절대 다수 대표)의 도입을 막는 것은 아니다. 우리 헌법이 상대 다수 대표제를 의지적으로 명령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절대 다수 대표제로 바꾸려면 개헌이 필요하다는 식의 강한 해석에는 무리가 따른다.

현행 헌법의 행간에는 결선투표 입법 금지까지 숨어있다고 보는 강한 해석은 현행 헌법과 1987년 직선제 개헌 당시의 우리 국민이 바보였다고 선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당시 우리 국민들이 결선 투표 제도를 적극적으로 금지하는 헌법적 결단을 의식적으로 내렸다는 어리석은 해석이자 그 보완 입법마저 위헌으로 금지한다는 위험한 해석이기 때문이다.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에서 결선투표 없이 상대 다수 득표자를 당선자로 내온 결과 유권자의 과반수는커녕 투표자의 과반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많은 소수파 대의권력이 탄생했다. 1987년 이후 50%를 넘은 당선자는 박근혜 1인에 그친다. 나머지는 모두 소수파 대통령이었다. 특히 노태우, 김대중, 이명박은 유권자 대비 33.3%에도 못 미치는 득표로 대통령이 될 정도였다. 대부분의 시도지사들과 시도교육감들도 과반수 득표에 실패한 경우다.

우리헌법이 과연 이런 상대 다수 득표자 당선 현상을 규범적으로 절대시하며 소수파 대표 현상을 옹호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겠는가. 아니면, 1987년 당시 6월 시민항쟁과 전두환 정권의 6.29항복 선언, 7,8월 노동자 대투쟁을 거치면서 급하게 직선제 헌법 개정을 단행하는 가운데 정치권과 국민들의 생각이 미처 여기까지 이르지 못해서 결선투표제 도입을 놓쳤다고 해석하는 편이 올바르겠는가. 당연히 후자다.

"'투표자' 아닌 '유권자' 1/3이상 득표" 규정한 까닭

"대통령 후보자가 1인일 때에는 그 득표수가 선거권자 총수의 1/3이상이 아니면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없다"고 규정하는 헌법 제67조 3항은 이런 추론에 헌법적 근거와 무게를 제공한다. 대통령 후보자가 한 사람밖에 없는 경우 무투표 당선을 선언할 수도 있다. 경쟁 후보가 없으므로 상대 다수 득표자 당선 원칙에 따라 단 1표만 얻어도 무조건 당선이다. 그런데 헌법은 이 경우에도 무조건 투표를 실시해야 할뿐 아니라 최소한 '선거권자' 총수의 1/3 이상을 득표해야 한다고 못 박는다.

'투표자'의 1/3이 아니라 '유권자'의 1/3이상을 득표해야 한다고 못 박는다. 왜 그랬을까? 유권자의 1/3 이상은 득표해야 대의권력으로서 대통령의 민주적 정당성이 확보된다고 본 것이리라. 지금의 높은 기권율을 감안할 때 선출직 중 절반이상은 이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할 것이 틀림없다. 이 헌법정신에 비춰볼 때 위헌적 사태가 아닐 수 없다.

헌법은 제67조 3항에서 유권자 1/3 이상의 득표율을 올리지 않고는 대통령이라는 선출직의 민주적 정당성이 확보되기 어렵다고 봤다. 그렇다면 선거에서 최종승자의 과반수 득표 기회를 보장하는 결선투표 입법을 위헌이라고 낙인찍기보다는 선출직의 민주적 정당성을 헌법이 예정한 수준(유권자의 1/3 이상 지지)까지 강화시키는 헌법 실현이라고 칭송해야 올바른 해석이 아닐 수 없다. 결선투표를 도입해도 최고득표자가 1인 이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제67조 2항은 여전히 필요한 조항이다. 만약 헌법 제67조 2항이 결선투표를 금지하는 취지나 효과, 문언을 담고 있다면 결선투표제를 개헌이나 입법으로 도입할 경우 필연적으로 제67조 2항의 문언을 조금이라도 수정해야 할 것이다. 그럴 필요가 없는 것만 보더라도 결선투표제 도입이 헌법 제67조 2항 위반이라는 위헌론은 성립할 여지가 없다.

재벌, 관료에 포획된 소수파 대통령, 대안은 결선투표제

결론적으로 이번 대선부터는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옳다. 헌법에 명문의 규정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국민의지와 헌법 정신을 비이성적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헌법 해석은 헌법 원칙과 헌법 조항을 최대한 민주주의의 원칙과 요청에 부합하게 해석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여기에 후보 개개인의 유불리 계산이 개입할 여지는 없다. 결선투표제 입법은 특정정파의 요구가 아니라 헌법의 요구이다. 특정주자의 불확실한 이해관계가 아니라 한국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의 확실한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중대 사안이다. 선거에서 유권자의 사표심리를 없애고 대표되지 않는 사표 규모를 줄이며 유권자 선택을 강화하는 입법이 위헌이 될 리는 만무하다. 선출직의 민주적 정당성 기반을 강화하는 입법이 위헌이 될 리도 만무하다.

야3당과 국회는 지금의 다시없을 기회를 놓치지 말고 결선투표 입법을 서둘러서 내년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과반수 대통령이 되게 하라. 그래야 재벌을 위한, 관료에 의한, 소수파의 대통령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만약 문재인이 하루바삐 기존 입장을 바꿔서 이 일에 앞장서면 가장 감동적일 것이다. 결선투표제는 문재인이 피할 수 없는 헌법목장의 첫 번째 '결투'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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