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실검, 정부가 삭제 요청하면 삭제 가능하다

"실행한 적 없다" 주장하지만, 가능성은 남아 있어

네이버가 정부 당국이 요청할 경우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실검) 순위에서 특정 키워드를 삭제·제외할 수 있는 회사 차원의 지침을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대통령선거가 치러진 2012년에 만든 이 지침에 관해 네이버는 "실행한 적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런 조항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는 또 자체 판단과 이용자 신고 등을 이유로 하루에 수천 건에 이르는 자동완성·연관 검색어를 제외하고 있으며, 대학이나 기업 등의 요청으로 특정 키워드를 제외해 주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말썽을 피하려고 인터넷 여론을 검열한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 권력기관 요청 받고 검색어 삭제하는 규정…도대체 왜?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 검증위원회가 지난 19일 공개한 보고서를 보면, 네이버가 올해 1∼5월 임의로 제외한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는 총 1천408건으로, 하루 평균 약 9개였다.

네이버는 실검 순위를 인위적으로 조정하지 않는다고 대외적으로 강조해 왔으나, 실제로는 '법령이나 행정·사법기관의 요청이 있는 경우' 특정 키워드를 실검 순위에서 제외할 수 있다는 내부 지침을 갖고 있다.

행정·사법 기관은 청와대, 정부부처, 국가정보원, 경찰, 검찰, 법원 등을 두루 포괄하는 개념으로, 정부 당국이 '불편한' 키워드를 빼달라고 얼마든지 요구할 수 있는 여지를 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규정이다.

네이버는 이에 대해 "2012년 KISO의 전문가들과 공동으로 마련한 규정"이라며 "실제로 행정·사법기관의 요청을 받아 검색어 순위를 제외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네이버가 행정·사법기관으로부터 검색어 순위 삭제 압력을 받고 이를 수용한 사례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런 사례를 '행정·사법기관의 요청에 따른 삭제'로 분류하지 않고 '명예훼손'이나 '반사회적 정보' 등 다른 조항이 적용된 것으로 분류하는 등 방식으로 데이터를 '원천 관리'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설령 네이버 측 해명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더라도 규정 자체가 포괄적이며 오해나 악용의 소지가 커 권력기관이 일반 이용자 모르게 실검 순위에 영향을 미치는 통로로 쓰일 수 있으므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문용 녹색소비자연대 ICT 정책국장은 "행정기관 등의 요청이 있는 경우 검색어를 제외할 수 있다는 네이버의 내부 지침은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정부의 인터넷 통제를 구조화할 수 있는 독소조항"이라며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네이버가 이 조항의 실행 사례가 없다면서도 이를 계속 유지하는 이유에 관해서도 의문이 남는다.

네이버는 이에 대해 "예를 들어 범죄 수사 용의선상에 오른 사람 등이 실검에 노출되면 안 되기 때문에 수사기관이 공식 요청하는 등의 상황에 대비해 이런 규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특정 키워드가 실검 순위에 오른다는 것은 그 키워드가 이미 상당히 널리 알려져서 사용자의 검색 사례가 급증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므로, 비공개 수사를 위해 '키워드 관리'가 필요하다는 설명은 설득력이 낮다. 실제로 실검 키워드는 일반적으로 널리 공표된 시사·연예 관련 정보 중에서 나온다.

연합뉴스가 네이버의 라이벌인 인터넷 포털 다음(Daum)의 실검 순위에서 특정 키워드를 제외하기 위한 내부 지침을 점검한 결과, 네이버와 달리 다음에는 행정·사법기관의 영향을 열어둔 규정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네이버와 다음의 지침을 보면, 두 포털 모두 개인정보, 성인·음란성 정보이거나 정당한 사유로 명예훼손 관련 삭제 요청이 있을 때 실검 키워드를 제외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 자동완성·연관 검색어도 인위적 개입…"모니터링팀 있다"

네이버는 자동완성·연관 검색어에도 하루 수천건에 이르는 인위적 개입을 하고 있다.

KISO의 보고서를 보면 네이버가 올해 3∼5월 신고 또는 자체 판단으로 제외한 자동완성·연관 검색어는 총 11만9천317건에 달했다. 하루 평균 1천300개에 육박하는 키워드를 제외했다는 것이다.

네이버가 신고와 자체 판단으로 제외한 연관 검색어는 각각 7천259건과 3만2천343건이었다. 또 신고와 자체 판단으로 제외한 자동완성 검색어는 935건과 7만8천780건이었다.

'자동완성 검색'은 이용자가 검색창에 단어를 입력하면 다양한 단어를 추가로 추천해주는 기능이고, '연관 검색'은 이용자의 검색 의도를 파악해 찾고자 하는 정보에 빠르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 기능이다.

예를 들어 '최순실'을 검색하면 자동완성 검색어로 '최순실 청문회 생중계', '최순실 사건 정리' 등이, 연관 검색어로 '정두언 조순제', '박영선 녹취록' 등이 뜬다.

KISO가 보고서에서 지적한 여러 사례 중에는 올해 2월말 건국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발생한 성희롱·성추행 사건과 관련해 네이버가 학교 측 요청을 받고 해당 키워드를 검색어에서 배제해 준 사례가 눈에 띈다.

이용자가 '건국대'를 검색했을 때 '성추행' 등의 자동완성·연관 검색어가 뜨는 것을 네이버가 임의로 막았다는 뜻이다. 당시 인터넷에서는 언론 보도로 이 이슈에 엄청난 관심이 집중된 상황이었다.

KISO는 "허위가 명백하거나 피해자가 진위를 입증하는 경우 등은 적극적으로 조치해야 한다"면서도 "국민에게 필요한 정보가 적절한 시점에 유통되도록 외부 개입을 최소화하려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네이버는 기업들의 요청을 받고 해당 기업에 불리한 검색어를 배제하기도 했다.

'○○분유 구더기', '○○○○ 불매운동' 등으로, 역시 언론 보도가 이미 쏟아진 후였다.

KISO는 이에 대해 "기업과 관련된 다수의 검색어도 신고 때문에 제외 처리됐다"며 "소비자 보호를 위한 정보 유통의 측면에서 더 분명한 기준을 수립하고 신중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구체적 기업 이름을 적시하지는 않았다.

네이버의 이런 '인위적 개입'은 비일비재한 것으로 보인다.

검색 서비스에 관해 잘 아는 전직 네이버 직원 A씨는 "(검색어 순위 등에) 당연히 사람이 개입한다"며 "인위적인 개입이 없을 수 없고, 모니터링하는 팀도 있다"고 증언했다.

그는 '검색어 제외 내부 지침을 넘어서는, 의도를 가진 개입도 있느냐'는 질문에 "NCND(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음) 하겠다"고 답변했다.

※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 = 인터넷 사업자들이 2009년 업계 이슈를 자율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출범한 단체. 네이버는 2012년 노출 검색어 조작 논란이 벌어지자 이 단체에 검증을 맡기기로 했고, KISO가 구성한 1기 검증위원회는 2013∼2014년 네 차례 보고서를 발표했다. 2차 검증위원회는 올해 4월에 구성됐으며 12월 19일 첫 보고서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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