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근혜' 시대 '적폐청산' 특위부터 만들어야 한다

[김민웅의 인문정신] 박근혜 없는 '박근혜 체제' 용인할 수 없다

수상한 정치권

아무래도 전력을 재정비해야 하는 시점인 듯하다. 시민혁명의 기세를 좌절시키려는 움직임이 제도권 정치에서 뚜렷해 보인다. 단지 박근혜 세력과 새누리당 일파만의 문제가 아니다. 야당도 이 혐의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국정조사에 연일 바쁜 것은 충분히 알겠으나, 정국을 풀어나가는 기본 방향 설정이 불안하고 위태롭게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추운 겨울 길바닥에서 주말마다 '박근혜 퇴진(구속)'과 '황교안 사퇴'를 외치고 있는데, 제도권 정치는 '박근혜 없는 박근혜 체제'를 용인하고 있다. 그렇게 첫 단추를 잘못 끼워놓고 '황교안'을 비난해봐야 의미가 없다. 자신들이 깔아준 무대 위에서 최고 권력을 누리는 순번을 맞이한 자가 머리를 쉽게 조아릴 까닭이 있겠는가?

더군다나 '적폐청산특위'를 가장 먼저 설치해야 할 판에, '개헌특위'부터 만들었다. 정치개혁의 혁명적 위력을 모아나갈 의지가 없는 것이다. 탄핵 소추 발의 통과 이후 의회 권력 키우기에 가장 먼저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의혹을 벗어날 길이 없다. 개헌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이들이야 일부 있겠지만, 그 시급성과 절박성을 외치는 시민들은 지금 없다. 헌법 정신의 유린에 대한 분노가 더 크다. 그런데 뭣들 하고 있는 것인가?

ⓒ프레시안(최형락)

설명하지 않는 사람들


'박근혜 퇴진'과 '박근혜 구속'을 외치는 시민들은 대통령 박근혜가 발동한 일체의 권력이 정당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민혁명의 제1차 요구다. 따라서 '박근혜 탄핵'은 대통령 박근혜가 세운 내각의 정당성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탄핵 소추 표결과 함께 '박근혜 퇴진 촉구 결의'와 '황교안 내각 총사퇴'가 강력하게 추진되는 걸 시민들은 보고 싶어 했다. 지난 17일 8차 촛불 집회에서 '황교안이 박근혜다'라는 구호가 나오는 상황이다.

황교안 내각 퇴진에 대한 제도적 실현 가능성을 따지기 이전에, 그런 주장이 중심 의제가 되도록 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그러다 보면 방법도 강구되고 현실도 그런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청산되어야 할 세력이 정국 주도권을 여전히 쥐고 있는 것은 시민혁명이 용납하는 바가 결코 아니다. 권력을 부여받은 정치의 언어는 힘이 있다. 그걸 하라고 의회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야 3당은 그 누구도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시민혁명은 국정의 중심에 의회가 있도록 만들어 주었는데, 그걸 엉뚱하게 쓰고 있다. 국정의 방향에 대해 시민들과 대대적인 토론, 논의를 하려는 모습도 없다. 사태가 그렇게 될까봐 막아 나서려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렇지 않다면 최소한 이해를 구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게 순서다.

도대체가 설명하지 않고 있다. 왜 개헌특위를 만들었는지, 왜 황교안 체제를 그대로 인정해버리고 말았는지에 대해 입 다물고 있다. 어차피 개헌에 대한 논의가 나올 테니, 이러 저러하게 준비를 하려 한다든지, 국정의 일상적 운영에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하려는 노력이라고 하든지 뭔가 말을 해야 한다. 그래야 반론이 자유롭게 오가는 진지하고도 치열한 국민적 토론과 선택이 이루어진다.

집을 허물고 다시 세워야 할 판에

이러지 않으니, 대의제의 본질을 망각하고 있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주권자의 요구를 담는 노력을 성실하게 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다면 그건 착각이다. 직접 민주주의의 장을 열자는 시도가 곳곳에서 일어나는 까닭은 제도권 정치가 특권화되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보다 자신들의 권력 분점 구도를 만드는 일에 더 힘을 쏟고 있다는 비판이 잘못되었다고 보는가?

물론 억울한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민혁명의 목소리에 담긴 요구를 전면에 내세우고 의회 내에서 정치개혁의 깃발을 올리는 정치인을 보기 쉽지 않다. 그래서 제도권 정치에 대한 질타가 쏟아지고 있으며, 한국 정치의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 김수영이 뼈아프게 토로했듯이 '혁명은 하지 못하고 방만 바꾸고' 말 것만 같아서 말이다(시 <그 방을 생각하며>의 원문은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이다).

지금의 국면에서 개헌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살펴보자. 87년 체제의 유산을 넘어 새로운 공화국으로 가자는 논리도 있다. 현행 헌법에 따른 대선은 제왕적 대통령을 낳게 되어 있고, 그걸 욕망하는 이들이 개헌을 반대한다고 덧붙인다. 이 말이 맞으려면 첫째, 현행 헌법의 어떤 대목이 제왕적 대통령제를 보장하고 있는지 말해야 하고 둘째, 이 헌법에 따라 대통령직을 수행했던 김대중·노무현 두 사람도 제왕적 대통령이었다는 걸 실증해야 한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점에 대해 명확하게 들어본 바가 없다. 박근혜의 국정농단과 제왕적 통치는 국정원, 검찰이 손발 노릇을 했고 언론에 대한 장악이 기본 틀이었다. 현행 헌법은 이를 그 어떤 경우에도 허용하고 있지 않다. 제왕적 대통령제도 현행 헌법이 그 어느 대목으로도 보장하고 있지 않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헌법조문과 그 정신을 구현할 수 있는 법과 제도, 정치를 관철하지 못한 결과가 '박근혜'이다.

시민혁명과 개헌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헌법적 장치가 있음에도 그걸 붕괴시킨 것은 현행 헌법의 책임이 아니라, 권력과 대자본의 결탁이 그 원인제공자 아닌가? 통합진보당 해산도 헌법재판소가 김 아무개와 뭔가 수상한 교신을 통해 이루어낸 것이라는 혐의가 포착된 마당에 이에 대해서도 힘 있게 발언하지 않고 있다. 현행 헌법에 대한 위반 논란조차 거론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무엇을 헌법 정신으로 관통시켜야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아예 없다.

시민혁명은 개헌으로 완성된다는 주장도 있다. 그 말이 맞으려면, 시민혁명의 혁명적 위력을 강화하는 것이 우선이다. 거기서 개헌의 진정한 동력과 방향이 태어난다. 더군다나 시민혁명의 완성은 개헌이 아니다. 모든 특권과 기득권을 떠받치고 있는 정치경제적 구조를 혁파하고, 적폐 생산을 주도해온 세력을 깨끗이 청산하는 것에서 그 완성의 토대가 이룩된다. 국민적 차원의 적폐 청산 특위가 만들어져야 할 절실함이 그래서 있는 것이다.

이 경험이 헌법에 투철하게 녹아나고 부당한 권력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권이 내란으로 규정당하지 않고 당연한 권리로 명시되는 순간, 시민혁명과 그 정치적 성과는 온전히 시민의 정치적 자산이 될 수 있다. 이게 진짜 개헌이다. 이러한 과정과 경로를 펼쳐내기 위한 노력은 기울이지 않은 채 개헌론을 군불처럼 지피는 것은 시민혁명의 의미에 대해 무지하거나,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다고 판단해도 무방할 것이다.

물러설 수 없는 촛불

'혁명' 운운은 위험하다는 비난도 나온다. 제도 정치권 내에서 질서 있는 수습이 필요하단다. 이미 시민들은 혁명 중이다. 누구를 비난하는 건가. 뿐만 아니라 이만큼 질서정연한 혁명을 본 적이 있는가? 촛불 시민들에 대한 모욕이다. 제도 정치권에서 자신들의 목표와 방식만이 주도하기를 바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혁명에 위협을 느끼는 것은 기득권밖에 없는 법이다. 다시 김수영의 말을 빌자면, 혁명의 시기에 권력자들이 말하는 질서란 "정치 권력의 시정(施政) 구호"(1968년 <사상계> 1월호에 실린 글 중)에 지나지 않는다.

거듭 강조하건대 선거제도부터 바꾸면 일단 미래형 정치개혁이 되는 쉬운 방법이 있는데 그건 놓아두고 있다면, 기존의 정치 기득권 보호나 새로운 기득권 창출에 관심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국정 역사교과서를 비롯해서 한일군사정보협정, 사드 배치, 성과급 연봉제, 전교조의 법외 노조화 등 잘못된 적폐정책을 폐기하고 박근혜 세력과 맞서다가 감옥에 갇힌 이들도 속히 석방할 일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건 시민혁명이 아니다. 아니, 시민혁명의 요구를 가로막고 있는 권력에 대해 보다 더 강력한 저항과 압박이 필요함을 뜻한다. 우리가 촛불을 내려놓을 수 없는 이유다.

혁명은 그 어떤 경우에도 지칠 수 없는 쪽이 이긴다. 물러서면 그때부터 더 무서운 악몽의 시작이다. 새날을 원하는가? 우리는 다시 촛불을 든다. 바람 찬 저녁, 어깨를 나란히 함께 하는 서로에게 감동하면서.

매번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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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

미국 진보사학의 메카인 유니온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동화독법>, <잡설>, <보이지 않는 식민지> 등 다수의 책을 쓰고 번역 했다. 프레시안 창간 때부터 국제·사회 이슈에 대한 연재를 꾸준히 진행해 온 프레시안 대표 필자 중 하나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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