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목을 벤 촛불, '박근혜 청산 정국'이 답이다

[김민웅의 인문정신] 우리는 지금 세계사를 쓰고 있는 중이다

왕정의 가산체제 해체

시민혁명 제1단계가 완료되었다. 탄핵이라는 방식으로, 마침내 '왕의 목을 벤 시민'들은 이제부터 혁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대통령 궐위에 따른 국정 공백의 혼란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시민들이 아니다. 이미 그 자신이 국정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기성 정치권은 이 위력적인 시민혁명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에 따라 그 운명이 결정될 판이다.

'박근혜'는 왕정을 지향했다. 그래서 공화국의 민주주의 헌법을 쉽게 유린할 수 있었고, 공적 권력을 자신의 가산(家産)이라고 여긴 것이었다. 새누리당은 그 가산체제의 신분 질서를 유지하면서 왕정을 방어하는 기본 세력이었다. 검찰과 국정원도 이 기본 세력을 구성하고 있었고, 공영 방송과 보수 언론 역시 다르지 않다. 시민혁명의 타격 대상이 누구인지 뚜렷한 상황이다.

한편, 탄핵은 '박근혜 퇴진' 절차의 보조적 수단일 뿐이다. 시민혁명의 주체가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은 지금도 앞으로도 '즉각 퇴진' 외에는 없다. 뿐만 아니라,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의 권한을 '박근혜'가 임명한 국무총리와 내각이 이어받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헌법적 정당성이 무너진 '박근혜'를 비롯해 그 휘하에 있던 모든 권력자들도 탄핵과 퇴진 대상이라는 점을, 시민혁명은 분명히 밝히고 있다.

지난 10일 탄핵 통과를 자축하기 위해 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요구는 '즉각 퇴진'과 함께 '박근혜 구속'이었다. 시민들이 세월호 유가족의 노래가 울려 퍼진 인권콘서트에서 들었던 "약속해"의 의미는 끝까지 진실을 밝혀서 책임져야 할 자들을 처벌하겠다는 것이었다.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우리들은 행동할 거야. 끝까지 다 밝혀낼 거야. 끝까지 다 처벌할 거야. 세상을 바꾸어 낼 거야. 약속해, 반드시 약속해."

정의는 그렇게 세워진다. 역사는 그런 과정을 거쳐야만 새로워진다.

이제 시민들은 탄핵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수동적으로 기다리지 않는다. 권력의 지휘를 받아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했다는 의문이 생겨난 지금은 더욱 그렇다. 탄핵에 대한 헌재의 법률적 검토와 결정 과정이 진행되는 사이, 시민혁명 무산을 우려하는 시민들은 헌재도 역사의 흐름과 만나지 못하면 그대로 두지 않을 기세다. 헌재도 현재 재판대에 오른 셈이다.

▲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다음 날인 10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는 세월호 희생자를 뜻하는 304개의 구명조끼가 등장했다. ⓒ프레시안(최형락)

시민혁명 제2단계의 과제

그렇다면 시민혁명 제2단계의 과제는 명료해진다. 첫째는 박근혜 권력의 적폐 청산이다. 그 청산이 어느 시기에 이르러야 완결될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다. 탄핵 국면 직후, 개헌이나 대선 정국을 말하는 세력은 청산 정국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단정해도 된다.

적폐 청산은 우선 권한대행 체제의 교체에서 비롯된다. 그 자신들이 박근혜 권력의 적폐 생산자 내지 동조 또는 방치에 관여한 세력이 여전히 정부를 구성하는 것은 시민혁명의 요구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검찰과 국정원의 대대적인 개혁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적폐를 주도한 정부가 계속 가동된다는 것은 시민혁명의 본질을 훼손하거나 좌절시킬 가능성이 높다. '새누리당 해체'가 구호로 외쳐지고 있는 상황이 이를 대변한다.

두 번째로 세월호 특별법 개정과 특조위 활동 재개를 비롯해, 역사 국정교과서, 한일 군사정보 협정, 사드 배치, 한일 위안부 협상 등의 작동 중지 내지 폐기 조처를 즉각 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박근혜 없는 박근혜 체제'를 경험하게 될 것이며, 우리가 해결하고자 했던 고통이 그대로 잔존한 채 혁명의 성과를 이루지 못할 수 있다.

특히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의 오랜 고투와 꺾이지 않았던 진실 규명 의지는 오늘의 시민혁명을 가져온 가장 중요한 밑바탕이었다. 2014년 4월 16일 그 엄청난 희생이 이뤄지고 있을 때 국가는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박근혜의 7시간'은 '박근혜 체제'의 일탈적 본질을 고스란히 보여준 사례가 아니었던가.

뿐만 아니라 관련 사실이 드러나면서 점점 확인되고 있지만, '7시간' 의혹은 단지 직무유기 정도가 아니라 300명이 넘는 목숨을 학살한 적극적 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재앙이 발생했는데 그 재앙을 막아낼 책임을 지지 않았다면 의도가 의심되고, 여러 형태의 구조작업 시도가 있었는데 이를 차단한 것은 아이들의 몰살을 가져온 중대 범죄이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권한을 강화하는 것은 그래서 박근혜 체제의 가장 민감한 대목을 짚어 청산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셋째, 권력과 재벌의 결탁을 만천하에 보여준 박근혜 체제는 대자본에 대한 개혁 조처와 노동자, 농민들의 삶을 지켜내는 법과 제도 그리고 정책이 얼마나 절박하고 긴급한지를 일깨워주고 있다. 성과급연봉제를 전면 도입함으로써 노동자에 대한 착취 강도를 높이고 직업 안정성을 중대하게 위협하는 정책은 돈으로 움직인 권력의 핵심 기반이다.

생존의 위기에 몰린 농민을 물대포로 가격해 살해한 권력의 행태는 바로 그런 흐름에서 가능했다. 노동자들도 벼랑으로 몰리고 있다. 이들의 처지는 모두 돈과 권력이 손을 잡고 만들어낸 정책의 희생물이다. 이를 반전시키지 않으면 시민혁명은 기성 정치인들의 기득권 유지에 기여하는 역설에 직면하게 된다.

▲ 촛불은 매주 광화문 광장을 달구고 있다. 광장에 세워진 거대 촛불에는 '시민혁명 만세'라고 쓰여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혁명은 왕의 목을 벤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혁명은 왕의 목을 벤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 왕을 중심으로 국가를 피폐하게 만든 구조물 전체를 해체시키고, 새로운 구조물을 만드는 작업까지 포함한다. 따라서 이제 탄핵 절차를 냉정히 지켜보고 시민들은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라는 '훈계'는 혁명을 멈추게 하려는 역사적 반동일 뿐이다. 이들은 언제라도 기회를 노리고 자신들의 주도권을 복구하려는 기도를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촛불 시민들의 시민대토론회를 경내 질서 유지라는 이유로 시민들을 잠재적 질서파괴자로 몰면서 불허하고, 탄핵 압박을 위한 국회 전면 개방을 거부한 의회의 기득권, 그리고 국회 앞에 차단벽을 설치한 것 또한 두고두고 비판받아야 한다. 시민 배제적 대의제의 정치적 수명은 이제 끝났다. 그럼에도 여전히 시민 배제적 대응이 작동한다는 것은 직접 민주주의 주체에 의한 의회 정치의 수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한다.

이 시기, 제왕적 대통령제를 막기 위한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운 개헌 논리도 매우 경계해야 한다. 검찰과 국정원 개혁, 그리고 집회, 결사의 자유가 헌법대로 보장되었다면 제왕적 권력은 가동하지 못한다. 언론에 대한 권력의 통제는 현행 헌법이 보장한 조처도 아니다. 제왕적 대통령은 현행 헌법에서 파생한 것이 아니라, 제왕적 권력의 구조물이 된 기구와 이들의 민주주의 탄압에서 가능했다. 더군다나 정확한 대표성을 반영할 수 있는 대의제를 가로막은 선거제도는 기성 정치권의 부패와 타락을 가져왔고 직접 민주주의의 요구를 거듭 배반해온 것이 아닌가.

우선, 청산 정국이 답이다

다시 강조하건대, 제2단계의 최대 작업은 청산 정국의 전개다. 어물쩍 넘어가려는 순간, 땅속에 묻혀야 할 세력들이 좀비가 되어 나타나 교묘한 변신과 기만으로 시민혁명의 흐름을 왜곡하고, 시민들에게 정치적 좌절감을 안겨줄 수 있다. 이 청산과정에서 우리는 통진당 해산 문제를 결코 망각하지 말고, 새롭게 접근하고 제기해야 한다. 통진당을 지지하건 아니건, 그것은 헌법 정신을 유린한 권력의 폭거이기 때문이다.

내란 혐의도 무죄이고, 이른바 혁명 조직 'RO(Revolution Organization)'의 존재도 인정되지 못했음에도 정당 해산을 결정한 헌재는 사실 대통령의 탄핵을 심리할 자격이 없다. 이 사안은 그냥 대충 묻어두고 갈 일이 절대 아니다. 진보 정당의 위법적 파괴를 철저하게 따져 묻는 작업을 비롯해 다른 한편으로는 진보 세력 내부의 통합 의지도 재점검하고, 통합을 촉구해야 한다. 오늘의 정치권이 이렇게 지리멸렬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진보 정당의 왜소화에도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체제의 적폐는 그 뿌리가 박정희 체제에서 시작되었고, 그 과정에서 이명박 체제의 문제 또한 심각하기 이를 데 없다. 파고 들면, 우리는 MB와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친일 세력의 청산을 완결하는데 실패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경험을 재연할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시민혁명의 과정 하나하나를 놓치지 말고 차근차근하게 밟아나가야 한다. 시간이 없다면서 서두를 이유가 없다. 묵직하고 본질적으로 시민혁명의 궤도를 건설해야 한다.

본격적인 혁명을 위하여

다가올 대선은 바로 이러한 청산 과제를 정확히 제시하고 실행할 수 있는 대선주자와 세력이 선택되어야 마땅하다. 민주 정부 수립을 위해 어떤 희생과 기여를 할 것인지 모든 것을 걸고 나서는 이를 시민들은 가려볼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 전에, 우리는 시민혁명이 어느 특정 대선 주자나 지도자가 성패를 결정짓는 것이 아님을 재차 확인해야 할 것이다.

전국 방방곳곳에서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이 주역이 되어 '시민 민주주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민주 시민 정치 교육이 이루어지고, 주요 의제가 제기되어 치열하면서도 상호 존중하는 토론 역량이 성숙해질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시민혁명의 구체적인 현장을 탄생시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누구나 말한다. "이제부터 진짜"라고. "지금부터 혁명은 본격적"이라고.

그렇다. 혁명 전야는 예상을 뛰어넘어 황홀했다. 이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면, 시민혁명의 완성을 위한 정치적 내전은 더욱 뜨거워질 것이다. 그래도 겪어 나가야 한다. 그로써 시민혁명은 보다 견고해질 것이며, 시민들은 보다 위력적이 되어갈 것이다.

우리는 지금 세계사를 쓰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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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

미국 진보사학의 메카인 유니온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동화독법>, <잡설>, <보이지 않는 식민지> 등 다수의 책을 쓰고 번역 했다. 프레시안 창간 때부터 국제·사회 이슈에 대한 연재를 꾸준히 진행해 온 프레시안 대표 필자 중 하나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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