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퇴출 뒤에 '100년 귀신' 도사린다

[김민웅의 인문 정신] 시민 혁명의 의의와 과제

시민 혁명의 다음 경로

'박근혜 탄핵'과 '퇴진'을 거세게 압박하고 있는 시민 혁명의 다음 경로는 과연 무엇인가? '박근혜 체제'를 청산하고자 하는 시민 혁명의 기세는 이제 정치권 전반에 대한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단지 '박근혜 탄핵'과 '퇴진'만으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간의 적폐와 그것을 만들어 낸 세력, 제도, 구조 전체를 대상으로 일종의 전면적 공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한 개인의 정치적 일탈에 대한 분노에서 시작했으나, 우리가 처한 현실은 기존의 정치로는 해결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달리 말해서 누구나 느끼고 있듯이 대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결과였다. 그것은 정치 기술이나 법과 제도의 문제라기보다는 직접 민주주의의 요구를 명확히 담아내지 못한 정치에서 비롯되었다. 기존의 정치권은 그 자체가 이미 기득권화됨으로써 시민들의 개입과 요구가 도처에서 차단되어버렸다. 시민들의 역할은 모두가 잘 알고 있다시피, 선거 기간에만 허용되는 구조가 고착되어버린 것이다. 대의제의 한계라기보다는 대의제의 본질이 상실된 것이다.

이는 정치가 시민의 손에서 떠나 정치인들의 정치 공학적 논리와 이해관계가 지배하는 장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로써 시민들의 요구가 정치에 제대로 담아지지 못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가 낡은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는 역동성 역시도 갖지 못하게 하고 말았다. 장외와 장내가 구별되고, 제도권과 광장의 요구는 괴리되어 갔다. 대의 민주주의의 뿌리가 직접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정치는 자신의 근본과는 관련이 없는 자기들만의 거래처로 전락한 것이었다.

ⓒ프레시안(최형락)

기존의 정치, 시민 권력과 마주하다

이로써 시민들은 정치에 좌절감을 느꼈고, 아무리 요구하고 외쳐도 별반 변하는 것이 없는 현실 앞에서 무력감에 빠졌다. 지난 두 달 동안의 촛불 시위는 이러한 좌절감과 무력감을 극적으로 극복하면서 시민 권력에 대한 자신감과 시민들 서로서로 통해 감동과 위력적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촛불 시위의 규모가 계속 확대되는 것은 단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들의 주체적 역량의 자신감이 질적으로 변모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다.

기존의 정치권은 이런 시민 혁명의 진화 속도와 요구, 역량을 따라잡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압도되는 상황에 처했다. '박근혜 탄핵'을 압박하기 위한 '국회 점령, 포위'와 같은 구호가 나온 이유다. 그러나 탄핵 표결 전후로 이틀간 국회의 전면 개방 문제가 여의치 않은 현실은 아직 대의제와 직접 민주주의 사이에 제도적 거리가 엄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핵심은 시민 혁명의 정치화, 시민 권력의 창출에 있다.

현 단계의 시민 혁명 진행 과정에서 우리가 목격할 수 있는 가장 중대한 의의는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시민의 힘이 조직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그 조직화의 기본 성격은 그렇다면 무엇인가?

시민 권력의 조직화, 그 기본 성격

첫째, 그동안 역사의 무대에서 변방에 속해 있던 이들의 목소리가 중심에 서게 되었다. 자신의 목소리를 공적 영역에서 쉽게 내지 못했던 이들이 자유발언대에 올라 정치적 통찰력과 역사의식을 과시했다.

둘째, 운동의 전문성을 축적해온 지도부 중심의 내려 먹이는 방식의 조직화가 아니라 다채로운 자율성을 동력으로 삼고 있다. 촛불 집회 현장이 축제 분위기가 동반되는 것은 이를 입증해준다.

셋째, 전국 단위의 동시다발적 조직화가 이루어짐으로써 각 지역에서 밑바닥으로부터 스스로 구성되는 힘을 획득했다. 이는 각 지역의 자발적 민회(民會)라고 할 수 있는 '동학의 집강소' 이래 오랜 역사적 경험의 재현이다.

넷째, 기존의 정치 세력을 버텨주고 있던 지지 기반이 와해되고 재편성되는 과정에 진입하고 있다. 특히 지역기반이나 세대 기반의 정치적 의미가 퇴각하고 의제 중심의 세력 통합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다섯째, 시민 혁명의 과정 자체가 전격적인 시민정치 교육의 현장이 됨으로써 혁명적 의식 형성의 토대가 만들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이 중심이 된 토론이 아니라, 시민들 자신의 의견이 자유롭게 교환되고 논의가 진전되는 경험이 생겨나고 있다.

더 추가할 바가 있겠으나, 일단 정리해보자면 '새로운 시민이 탄생'하고 있는 셈이다. 시민 혁명의 주체가 세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주도하는 정치가 시대적 요구로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시민 배제적인 정치'가 '시민주도형 정치'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의회와 시민 사이에 있는 정치적 차단벽이 거두어지지 않으면, 의회는 시민 혁명의 장애물로 인식될 지경인 것이다.

과제는 분명하다. 일차적으로 '박근혜'와 그 부역 세력을 정치에서 퇴출시키는 작업이다. 공적 영역을 사유화하는 정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존립의 근거를 본질적으로 가질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고통을 겪었던 것은 이러한 현실이 변하기 어려운 일상이 되어왔고 그것은 권력으로 군림하여 시민의 정치적 등장을 가로막아왔다. 그러나 이 거대한 담벼락은 무너지는 중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 손문상 화백의 2013년 8월 만평 '"저도…유신의 추억인가요?"'. ⓒ프레시안

청산과 더불어

성서에는 예수의 일곱 귀신 비유가 등장한다. 더러운 귀신이 쫓겨나 돌아다니다가 갈 곳이 없어 '옛집'에 와보았더니 깨끗하게 치워져 있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귀신은 다른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와 살게 되니, '옛집'이라고 일컬어지는 그 사람의 형편은 더욱 나빠졌다는 이야기다. 청산과 함께 새로운 구조물을 만들지 않으면, 쫓겨난 악마들이 복귀해서 더 극성을 부린다는 경고다. 이들 악마가 도저히 살 수 없는 집으로 만들어야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역사적 경험은 이를 증명해준다. 동학 농민 전쟁으로 체제 혁명이 이루어질 수 있었으나, 새로운 구조를 세우지 못한 채 청일전쟁으로 이어지면서 조선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되고, 해방되었으나 친일 세력이 주인 노릇을 한다. 4.19 혁명과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그리고 6월 항쟁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우리의 기억에 분명히 남아 있다. 무수한 변신과 위장, 그리고 기만으로 국민을 속이고 가해자가 보호자인 양 하는 정치는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치열하고 철저한 청산 작업이 필요하다. 조금도 고삐를 늦출 수 없다. 그 청산의 주체에 시민의 힘이 강력하게 작동해야 한다. 그 과정 자체가 시민 혁명의 주체를 바로 세우는 역사가 된다. 해방 정국에서 반민특위의 좌절이 이후 어떤 상황을 가져왔는지,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박근혜 세력'의 청산과 더불어 과도 정국의 혁명적 관리가 절실하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해서 시민 권력의 창출이 전 사회적으로 모색되어야 한다. 시민 대표의 구성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자칫 또 다른 형태의 대의제 구도에 갇히게 된다.

'혁명'을 통과한 정치의 미래

역동적이고 자율적이며 변방이 도리어 전위가 되는 시민의 힘이 도처에서 그 단위의 크고 작음을 떠나 집결되고 조직화되어야 한다. 그 역량이, 곧 정치이자 교육이며 경제이자 문화이고 언론이자 법이 되어갈 것이다. 이미 오래전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규정한 '밑으로부터의 변화'를 이루고자 했던 갈망은 현실적 동력을 얻게 되었다. 너무나도 귀중한 순간이다. 결코 허비하거나 잃어버려도 되는 잠깐의 격동이 아니다. 지난 100년간의 역사가 쌓아올린 성취다.

'혁명'을 통과하지 않은 정치는 때로 일어나는 급격한 변화에 놀라 잠시 달라지는 것 같으나, 다시 부패하고 타락한 관성으로 돌아간다. 이제 우리는 혁명을 자연스럽게 거론하는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유토피아는 '현실에 없는 이상향'이라고 번역된다. 그러나 그것은 기존의 현실에 머물러 있는 시선으로 볼 때만 그렇다. 현실이 우리를 잡고 있는 의식의 중력에서 이탈해야 한다. 미래로 현재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그 유토피아가 '가능한 현실'이 되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 '혁명'이다.

우리는 지금 시민 혁명의 최전선에 서 있다. 여기서 한발이라도 물러서면, 그것은 패배를 자초한다. 불퇴전의 의지가 절실하다. 정치는 시민 모두의 권리다. 그 권리행사의 위력을 확실하게 입증하자.

시민 혁명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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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

미국 진보사학의 메카인 유니온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동화독법>, <잡설>, <보이지 않는 식민지> 등 다수의 책을 쓰고 번역 했다. 프레시안 창간 때부터 국제·사회 이슈에 대한 연재를 꾸준히 진행해 온 프레시안 대표 필자 중 하나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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