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부자들은 헐값에 '촛불' 막아냈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부자 감세 철회 성과'를 달성했다고?

지난 2일 국회 본회의에서 내년 세법 개정이 의결되었다. 세법 개정 보도에서 언론을 장식하는 제목 중 하나가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의 폐기다. 소득세에서 40% 세율이 적용되는 최고 구간이 신설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심지어 세법 개정 여야 합의 핵심 당사자인 더불어민주당은 "법인세율 인상은 정부-새누리당의 반대와 악화된 경제 상황을 고려하여 관철시키지 못했지만, 소득세 최고 세율 구간을 신설하고 고율로 과세(과표 5억 원 초과 고소득자 38%→40%)하는 등 부자 감세 철회 성과를 달성하였다"고 자화자찬한다.

"부자 감세 철회 성과" 주장은 견강부회

과연 이번 세법 개정이 이리 자화자찬할 만한 성과일까? 우선 사실부터 바로 잡자. 소득세율 최고 구간 신설을 두고 '부자 감세 철회' 운운하는 건 견강부회이다.

이명박 정부의 부자 감세에서 애초 소득세 최고 세율 인하는 실행되지 않았다. 처음에 최고 세율 35%를 33%로 낮추는 입법이 이루어졌으나 국민의 강한 비판으로 35%가 그대로 유지되었다. 오히려 이명박 정부 임기 마지막해인 2012년에는 과표 소득 3억 원 초과자를 대상으로 38% 세율이 신설되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최고 세율은 인하되지 않고 오히려 인상된 것이 팩트이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소득세 증세는 진행돼 왔다. 임기 첫해인 2013년 소득세법 개정으로 38% 세율이 적용되는 과표 소득이 3억 원에서 1.5억 원으로 강화되었다. 소득 공제의 일부 항목(의료비, 교육비, 연금보험료 등)을 세액 공제로 전환하는 하후상박의 개편도 단행했다(2015년 연말정산). 이는 연봉 7000만 원 초과자들을 대상으로 연 1.6조 원을 더 거두는 조치였다.

또한 2013년부터 '금융 소득 종합 과세' 적용 금액도 4000만 원에서 2000만 원으로 내려왔다. '주식 양도 차익 과세'도 단계적으로 강화됐다. 비과세 대상인 소액 주주 기준이 기존 '3% 지분-시가총액 100억 원'에서 2013년에 '2% 지분-50억 원', 그리고 2016년에 '1% 지분-25억 원'으로 엄격화되었다(이번 세법 개정으로 2018년에 '1% 지분-15억 원'으로, 2020년에 10억 원으로 더 강화됨).

이러한 조치들에 힘입어 소득세 세입은 2011년 GDP 3.5%, 2012년 3.7%, 2013년 3.7%, 2014년 4.0%, 2015년 4.4%로 증가 일로에 있다. 종종 소득세 세입이 증가한 것을 두고 유리알 지갑 근로자 부담을 늘렸다는 비판이 등장하는데, 근래 소득세가 증가한 대상은 거의 상위 계층이다. 넓게 보면 부자 증세라 칭할 수 있다. 반면 2014년 소득 공제가 세액 공제로 전환하면서 하위 계층 세금 부담이 줄어들어 면세자 비중이 2013년 32.4%에서 2014년 48.1%로 늘었다. <그림>에서 보듯이, 추가로 면세자가 된 사람들은 거의 서민이다.

▲ <그림> 2013/2014년 근로자 소득별 면세자 비중 변화(출처 : 국회예산정책처, <경제동향 & 이슈> 2016.9).

소득세율 40% 적용 대상은 인구의 0.1%

물론 소득세에서 40% 구간을 신설한 것은 이전보다 개선된 것임에 틀림없다. 특히 소득세 세율에서 40% 수치가 지니는 상징성(김대중 정부에서 최고 세율이 40%에서 36%로 인하되었는데, 이를 원상 회복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아무리 세율이 높아도 적용 대상이 극소수면 효과는 반감된다. 현재 과표 소득 1.5억 원 초과자에게 38% 세율이 적용되는데, 이번 소득세법 개정으로 5억 원 초과자에서 40% 세율이 적용된다. 과표 소득이 5억 원(실제 소득으로 대략 6억 원 추정)을 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약 6만 명, 인구의 0.1%에 불과하다.

소득세 강도를 평가하는 지표 중 하나인 '소득 배수'를 보자. 이는 최고 세율 적용 금액이 상시 근로자 평균 소득 대비 어느 수준인가를 가리키는 지표이다. 2015년 우리나라에서 최고 세율이 적용되는 과표 소득 1.5억 원은 상시 근로자 평균 소득 대비 4.2배로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 평균 5.9배보다 조금 낮은 편이다. 그런데 이번 개정으로 소득 배수가 약 13~14배 수준으로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이번 최고 세율의 세입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부자 감세를 철회하는 성과'라고 자화자찬하나 애초 최고 세율 감세가 없었으니 사실과도 다르고, 새롭게 얻는 세입도 고작 연 6000억 원에 그친다. 2016년 중앙 정부 소득세 세입이 약 63조 원으로 전망되므로 1% 세입을 늘리는 조치이다.

우리나라 소득세 세입을 OECD 평균(2014년 8.4%)과 비교하면 약 국내총생산(GDP) 4.0%가 부족하다. 국민 소득 대비 가계 소득의 차이를 조정해 계산하면, 우리나라가 OECD 평균보다 부족한 소득 세입이 50조 원을 넘는다. 심각한 계층 간 소득 격차로 상위 계층에 대한 소득세 강화 목소리가 높은 상황에서 이번 소득세 증세 규모를 대단한 성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새누리당 정진석,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 ⓒ연합뉴스

여소야대 국회에서 접은 법인세 인상 카드

게다가 원내 교섭을 책임지는 야당은 이 소득세법 개정을 얻기 위해 법인세 인상을 단념했다. 우리나라에서 기업과 가계의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국민 소득 중 기업이 가져가는 몫이 과도하다(GNI 대비 기업 소득 비중이 한국은 약 25%, OECD 평균은 약 18~19%). 그런데도 재벌 대기업들은 낮은 법인세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기업 이윤 비중을 통제해 계산하면 우리나라 기업들은 OECD 평균 부담보다 대략 연 8조~10조 원 정도를 덜 내고 있다.

이에 최소한 노무현 정부 시절 법인세율(25%)만큼은 회복해야 한다는 게 국민적 요구이고 야당 역시 이를 오랫동안 주창해 왔음에도 이번에 이를 양보했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들이 여소야대를 만들어주었으며, 현재 예산결산특별위원장, 국회의장이 모두 야당 소속이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정부와 여당의 입지마저 취약해져 어느 때보다 법인세율 인상의 호기임에도 야당은 이를 관철시키지 못했다. '앞으로 국회가 준조세를 막아줄 테니 이제 법인세를 제대로 내라'며 자신있게 나아갈 순 없는가?

주택 임대 소득 과세 유예에 동조

또한 2000년 만 원 이하 임대 소득에 대한 과세가 또 2년 뒤로 미뤄졌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원칙을 공공연하게 무너뜨리는 조치인데도 이 역시 여야 합의의 결과이다.

국회는 국민건강보험료 부담을 유예의 이유로 제시한다. 주택 임대 소득이 과세되면 세부담 이상으로 국민건강보험료 부담이 생긴다는 걱정이지만, 앞뒤가 바뀐 변명이다. 임대 소득이 인정되면 이에 따라 건강보험료를 부과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른 지역 가입자들은 소득에 따라 국민건강보험료를 내고 있는데 임대 소득자라고 소득이 있음에도 보험료 부과를 미루는 건 형평성에도 위배된다.

현행 지역 가입자 부과 체계의 문제점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래서 임대 소득자만 예외로 둘 것이 아니라 조속히 부과 체계를 손봐야한다. 이미 국회에 관련 법안도 발의돼 있다. 국회가 자신의 의무를 방기하면서 이를 핑계로 임대 소득자 과세를 미루니 어이가 없다.

이번 세법 개정 결과를 냉정히 평가하는 이유

이번 소득세 인상이 이전보다 개선된 것임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소득세율 적용 금액의 한계, 법인세 인상의 포기와 임대 소득 과세 유예 등을 감안하면 결코 후하게 점수를 줄 수 없는 세법 개정 결과이다. 오히려 부자들이 소득세를 올리라는 민심의 요구를 저렴하게 (6000억 원으로) 방어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앞으로 몇 개월 대한민국 정치가 격동의 시간을 맞을 것이다. 이를 추동하는 촛불 민심은 복지국가를 열망한다. 공평 과세를 통한 조세 정의 실현과 복지 재정을 확충하는 실질적인 증세가 절실하다. 이번 세법 개정 결과를 냉정히 평가하고 되돌아봐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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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시민들이 복지국가 만들기에 직접 나서는, '아래로부터의 복지 주체 형성'을 목표로 2012년에 발족한 시민단체입니다. 건강보험 하나로, 사회복지세 도입, 기초연금 강화, 부양의무제 폐지, 지역 복지공동체 형성, 복지국가 촛불 등 여러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칼럼은 열린 시각에서 다양하고 생산적인 복지 논의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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