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도통신>은 5일 아베 총리가 오는 26~27일에 미국 하와이를 방문해 2차 세계대전 당시 양국 전쟁의 발발이 됐던 진주만에서 "전쟁 희생자를 위령할 의사를 밝혔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아베 총리가 기자들과 만나 "희생자의 위령을 위한 방문이다. 두 번 다시 전쟁의 참화가 되풀이 돼서는 안 된다. 그 미래를 위한 결의를 다지고 싶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통신은 양국 정상이 진주만에서 전쟁 희생자를 위령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아베 총리가 지난해 전후 70년을 맞이해 미국 의회 연설을 한 것을 바탕으로 진주만 방문을 검토해왔다고 보도했다.
아베 총리의 방문으로 미일 양국은 오바마 대통령 임기 종료 전 마지막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양국 정상은 애리조나 기념관에서 헌화를 하고 희생자를 추모할 계획이다.
이번 방문은 지난 5월 오바마 대통령이 미에(三重)현 이세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 계기에 히로시마(広島)의 평화기념공원을 방문, 원폭 희생자들을 추모한 것에 대한 답방의 의미로 보인다.
통신은 "양국의 현직 정상이 진주만에서 전쟁 희생자를 위령하는 것은 처음"이라며 "1941년 구 일본군에 의한 진주만 공습이 발생한 지 올해 75년이 지나는 것을 계기로 '일미 화해'를 연출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으로는 아베 총리가 '오바마 대통령 달래기'를 위한 행보를 보이는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17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을 찾아 트럼프 당선자와 회동하는 등 발빠른 행보를 보였는데, 오바마 대통령이 이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통신은 트럼프 당선자와 아베 총리의 회동이 결정된 이후 오바마 대통령이 "트럼프는 아직 대통령이 아니다. 전례 없는 일을 하지 않길 바란다"는 뜻을 일본 정부에 전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베 총리의 방문 의도는 양국의 '역사 화해'나 '오바마 달래기'보다는 트럼프 집권 이후에도 미일 관계를 강화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 아베 총리는 진주만 방문을 통해 "미래를 향해 동맹 강화의 의의를 세계에 발신하는 기회로 삼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과 안보 협력 강화를 통해 전범국가에서 보통국가로 한 걸음 씩 나아가고 있는 아베 총리 입장에서는 오바마 정부 때 구축했던 미일 관계를 트럼프 집권 이후에도 이어가는 것이 필수적이다.
지난달 아베 총리가 미국 대선이 종료된 이후 열흘 만에 트럼프 당선자를 찾은 것도 트럼프 집권 이후 미일 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조급함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당선자는 선거 기간 내내 일본을 포함, 동맹국들과 관계를 재검토할 뜻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특히 트럼프 당선자를 비롯해 공화당의 주요 지지 세력인 재향군인들이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비판한 것을 의식한 아베 총리가 진주만에 방문해 사실상의 사과 행보를 보임으로써 이들을 달래려는 것이 진짜 목적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다만 아베 총리는 자신의 국내 정치적 기반인 우익 세력들을 자극할 정도의 사죄 표명은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정부 임기 마지막에 열리는 외교 이벤트에서 아베 총리가 트럼프 당선자와 미국 공화당 지지세력, 일본 우익 사이에서 미묘한 줄타기에 성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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