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이 옳다는 문형표, 틀렸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이재용 3조 이익, 고스란히 국민 피해

주식회사 간 합병은 어려운 분야입니다. 용어도 생소하고 숫자도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삼성물산 합병 과정의 문제점을 이해하면서 모든 국민이 합병 전문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래저래 국민 노릇하기 힘든 나라입니다.

전체적인 구도에서 2015년에 이루어진 (구)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비율이 적정했는지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구)삼성물산이 심각하게 저평가됐고 반대로 제일모직은 고평가된 상태에서 합병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됩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최근 경제 신문들을 중심으로 이런 기사들을 많이 나옵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주가 고공 행진, 합병 찬성 옳았다."

합병 당시 비상장이었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가치가 크게 올랐으니 그 주식을 많이 보유하고 있던 제일모직의 가치를 높게 책정하여 진행한 합병 결정도 옳았다는 의미입니다. 문형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도 지난 30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 농단 국정 조사'에서 '합병 비율이 부당하다'는 야당 의원의 지적에 "합병 시너지 등으로 인한 미래 가치 증가 효과가 이런 합병 비율의 불리함을 상쇄 가능할 것으로 봤다"고 해명했습니다.

과연 적절한 주장일까요? 부분만을 보고 판단할 수는 없는 일이니 시야를 넓혀 전체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일모직과 (구)삼성물산의 기업 가치 평가

보통 인수 합병(M&A)의 목적으로 기업 가치를 평가할 때 그 회사의 영업 활동에서 얼마나 돈을 버는지를 핵심적으로 봅니다. 그래서 영업 이익(EBIT)이나 영업 이익에 현금 지출이 없는 비용(감가상각비, 무형자산상각비)을 더한 EBITDA(Earings Before Interest, Taxes, Depreciation and Amortization, 법인세, 이자, 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 이익)가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최근에 삼성전자가 미국 오디오 전문 기업 '하만'을 80.2억 달러에 인수했습니다. 주당 가격으로 환산하면 112달러에 해당합니다. 이는 전일 종가인 87.65달러에 27.8% 프리미엄이 붙은 수준인데, 증권 시장에서는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고려하여 하만 EBITDA의 11배 수준에서 인수 가격이 형성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하만은 영업과 관련이 없는 자산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영업과 무관한 자산이 많은 기업의 경우 그것을 별도로 평가해 더해줍니다. 예를 들어, 계열사 주식을 보유하는 것은 영업과 관련이 별로 없기 때문에 주식의 공정 가치를 계산해서 영업 가치에 추가로 더해주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입니다.

제일모직과 (구)삼성물산의 기업 가치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계산해 볼 수 있습니다. 제일모직은 삼성생명과 삼성바이오로직스를, (구)삼성물산은 삼성전자와 삼성SDS 등 기타 계열사 주식을 보유하기 있었기 때문에 계열사 주식 가치에 영업 가치를 합산해 보면, 자본 시장에서 통용되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두 회사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습니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연합뉴스

(구)삼성물산이 보유한 주식은 대부분 상장 주식입니다. 삼성전자를 보통주 기준으로 4.1% 보유했으니 8조 원 정도됩니다. 17.1% 보유한 삼성SDS도 시장 가격으로 계산하면 3.5조 원입니다. 기타 제일기획, 삼성엔지니어링 등 기타 상장된 계열사 주식을 시장 가격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비상장 주식을 장부가액으로 다 더해주면 전체 주식 가치가 15조 원가량 됩니다.

제일모직의 경우를 볼까요? 우선 제일모직이 보유한 삼성생명의 시가는 약 4조 원 정도 됩니다. 이 주식은 애초 348억 원에 취득한 것이었는데, 2010년 삼성생명이 상장됨에 따라 보유 가치가 많이 올랐습니다. 상장에 따른 차익을 보험 계약자에게 한 푼도 배분하지 않고 주주가 모두 차지하도록 결정한 것의 혜택을 톡톡히 본 것입니다.

한국의 생명보험사는 형식으로 보면 주식회사이지만 실제 내용면으로는 상호회사 방식으로 운영되어 왔습니다. 1990년대 말까지 유배당 보험이 주로 팔렸는데, 생명보험사가 손실을 보면 계약자가 배당을 덜 받는 식으로 메꾸어 왔습니다. 사실상 보험 계약자들이 키워 놓은 회사였던 셈입니다. 당연히 상장에 따른 이익이 보험 계약자에게 주로 돌아갔어야 하는데, 석연치 않은 이유로 보험 계약자를 완전히 배제하고 주주가 상장의 혜택을 독차지하도록 결정됩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구)삼성물산과의 합병 과정에서 이재용 일가의 지분율이 높아지는 데 기여합니다.

제일모직은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투자한 돈은 4800억 원 정도 되는데 그동안 영업 손실을 계속 보고 있어서 제일모직 장부에는 3400억 원 정도로 평가됐습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비록 상장되기 전이었지만, 상장만 되면 가치가 많이 오를 것이기 때문에 장부 가격으로 평가하면 안 된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를 평가할 때, 보통 바이오 제약 기업인 '셀트리온'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바이오시밀러를 연구 개발하고 바이오 의약품을 위탁 생산하는 사업 구조가 똑같기 때문입니다. 비교하는 데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입장에서 두 가지의 핸디캡이 있습니다. 셀트리온은 유럽, 미국 등지에서 임상 3상(의약품의 효능, 효과, 부작용 등에 대한 시험 단계)을 통과하고 품목 허가까지 받은 바이오시밀러를 보유한 반면에,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아직 그 단계까지 이르지 못했습니다. 위탁 생산의 기술력도 차이가 제법 납니다. 평가하는 사람마다 좀 다르지만 2~3년 정도의 기술 격차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시밀러를 연구 개발하는 사업을 삼성바이오에피스라는 자회사를 통해 하고 있는데, 바이오젠이라는 다국적 제약 회사와 50대 50으로 합작하는 구도입니다. 바이오시밀러의 연구 개발 분야를 회사 내에 두기 때문에 그 효과를 100% 누릴 수 있는 셀트리온에 비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50%의 효과만 보게 됩니다.

그런 두 가지 핸디캡이 있음에도 합병 논의 당시 셀트리온의 시가 총액인 10조 원 수준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를 평가한다면, 제일모직이 보유한 가치는 4.6조 원 정도 됩니다. 제일모직의 기업 가치 평가에서 삼성생명 지분 가치보다 더 큰 금액으로 나옵니다. 제일모직이 삼성바이오로직스에 투자한 것도 (구)삼성물산과의 합병 과정에서 이재용 일가의 지분율이 높이는 데 기여합니다. 전체적으로 제일모직이 보유한 주식 가치는 8조~9조 원 정도 됩니다.

엄밀히 말하면 제일모직의 참여는 그룹 내의 배려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같은 비율로 투자한 회사가 삼성전자인데, 삼성전자의 투자 여력으로 본다면 혼자 감당해도 아무 문제없는 바이오 사업 진출 기회를 투자 여력이 빠듯한 제일모직에 나누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투자를 시작할 때에는 (구)삼성물산이 10% 투자를 담당했는데, (구)삼성물산이 그 이후의 공동 투자에서 빠졌기 때문에 제일모직 지분율이 더 오를 수 있었습니다. 이래저래 그룹 내의 배려를 많이 받은 결과 4.6조 원이라는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연합뉴스

지금 기준으로 평가하면 오히려 조금 더 내려갑니다. 2016년 11월 상장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시가 총액은 약 11조 원 수준입니다. 통합 삼성물산의 지분율은 43.44%인데, 이것은 제일모직의 46.3%와 (구)삼성물산의 4.9%가 합쳐진 후 상장 과정의 공모주 발행으로 지분율이 내려간 것입니다. 지금 시점의 시가 총액을 기준으로 계산해 보면 합병 당시 제일모직이 보유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지분 가치는 4.3조 원입니다.

그 평가액이 4.3조 원이든 4.6조 원이든 삼성전자나 (구)삼성물산 주주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일입니다. 수십조 원을 쌓아두고 투자할 곳이 없다는 삼성전자가 좀 더 높은 비율로 삼성바이오로직스에 투자했다면, (구)삼성물산이 처음에 시작한 비율로 공동 투자를 계속했다면, 삼성전자와 (구)삼성물산 주주들의 부는 증가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업 가치를 계산할 때에도 그룹 차원의 배려가 드러납니다. 2014년 연간 연결 영업 이익을 확인해 보면 제일모직은 2134억 원으로, 6524억 원인 (구)삼성물산의 3분의 1밖에 안 됩니다. 제일모직의 영업은 패션, 건설, 급식-식자재 유통, 레저로 구성되고, (구)삼성물산은 건설과 상사 부문으로 구분됩니다. 패션 사업부는 2013년 12월에 사왔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영업 이익이 많이 줄어듭니다. 건설과 급식-식자재 유통 역시 계열사 물량을 확보하지 못했다면 이 정도의 영업 실적이 나오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2014년의 차이가 예외적인가 확인해 보면, 2015년 1분기에는 그 격차가 더 벌어집니다. 제일모직의 연결 영업 이익은 (구)삼성물산의 8분의 1밖에 안 됩니다. 감가상각비와 무형자산상각비 금액은 (구)삼성물산이 더 많습니다. 그나마 2014년 연결 영업 이익이 제일모직에 유리한 기준입니다.

합병 당시 삼성그룹에서는 제일모직의 성장성이 높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 근거는 알기 어려우나, 영업 이익 대비 기업 가치를 계산할 때 사용하는 배수(Multiple)를 (구)삼성물산에 비해 제일모직에 3배 높게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즉, 제일모직에는 영업이익의 30배, (구)삼성물산는 10배만 적용해 보는 것입니다.

사실 이 계산에도 불안한 측면이 있습니다. 제일모직의 영업 가치를 높게 평가하면 할수록, 2013년에 그룹 내 계열사 간 거래를 통해 패션사업부를 헐값에 사왔다는 비난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헐값에 판 회사의 주주에게 손실을 준 거래가 아닌지 의심이 증가하는 것입니다. (구)삼성물산과의 합병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1년 반 전에 패션사업부를 헐값에 사와 거래 상대방의 주주에게 손실을 주었다는 것을 자인해야 하는 딜레마가 있습니다.

이제 두 기업의 가치를 비교해 봅시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 기업 가치를 계산해 보면 (구)삼성물산은 17조 원이 넘고, 제일모직은 13조 원 정도 됩니다(구체적 계산 과정은 내가만드는복지국가 블로그 이슈페이퍼를 참조). 주식수로 나누어 주당 가치를 계산해 보면 (구)삼성물산의 경우 10만 원이 넘습니다. 계열사 주식이 너무 많아서인데, 시가로 평가한 주식 가치를 낮출 수는 없는 일입니다.

반면 제일모직의 주당 가치는 10만 원이 안 됩니다. 삼성생명 상장 논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투자 기회, 계열사 간 사업부 거래의 적정성 등 자본 시장의 룰을 흔들었던 사건들을 그대로 반영했는데도, 비상장 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를 가능한 한 높게 평가하고 영업 가치를 평가할 때에도 (구)삼성물산에 비해 3배 유리한 방법을 적용했는데도 10만 원이 안 됩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주가가 고공 행진 한다고 경제 신문들이 그렇게 흥분할 일이 아닌 것으로 드러납니다.

기업 가치를 따져 보는 건 경영자의 기본적인 책무

앞에서 언급했던 삼성전자의 하만 인수를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하만 입장에서 80.2억 달러라는 인수 가격이 적정한지 따져 봤을까요? 그냥 시장 가격에 맞춰서 팔았을까요? 인수 발표 전 협상이 이루어지는 동안 시가 총액이 60억 달러 수준이었는데, 하만의 경영자와 대주주는 하만이라는 회사의 가치가 그 이상이라는 것을 열심히 설명했을 것입니다.

80.2억 달러로 평가는 하긴 하는데, 대금을 달러로 주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물건으로 준다고 하면 그 가치를 따져 봤을까요? 그낭 덥썩 받았을까요? 부동산으로 준다고 하면 받지도 않겠지만, 그 가치를 엄밀히 따져봤을 것입니다. 상장 주식이라고 해도 상장한 지 얼마 안 되고 유통 물량도 많지 않은 주식을 주었다면, 그 주식 가치를 냉정히 따져봤을 것입니다. 합병 당시 제일모직은 상장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았고 유통 물량도 많지 않았습니다.

합병 비율이라는 것이 별 게 아닙니다. 합병을 하면 (구)삼성물산이 없어지기 때문에 (구)삼성물산 주식은 휴지가 됩니다. 없어지는 (구)삼성물산 주식 대신에 현금을 받을 수도 있지만, 현금 대신에 제일모직 주식을 받는 것입니다. 내가 파는 것의 가치를 따져보고, 그 대신 받는 물건의 가치를 따져 보는 것이 합병 비율입니다.

같은 이치로 (구)삼성물산 경영진은 팔게 되는 (구)삼성물산의 기업 가치를 정확히 계산해 보고, 그 대신 받는 제일모직의 기업 가치를 냉정히 따져보았어야 합니다. 그런데, (구)삼성물산 경영진은 주가로 계산된 1대 0.35로 비율 이외의 어떤 분석도 하지 않았습니다. 기업 가치를 계산하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따져보면 1대1의 비율도 나오기 힘든데도 말입니다.

▲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안에 찬성해 국민에게 손해를 끼쳤다. ⓒ연합뉴스

에버랜드부터 삼성물산까지. 자본 시장이 놀이터인가?

지금까지 언급한 제일모직은 에버랜드가 이름은 바꾼 회사입니다. 20년 전 전환 사채 저가 발행으로 이재용이 최대 주주가 되었을 때만 해도 작은 회사였는데, 앞에서 언급한 삼성생명의 상장 효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투자 기회, 계열사 간의 사업부 인수를 통해 성장하더니, 결국 (구)삼성물산을 집어 삼켰습니다.

제일모직과 (구)삼성물산을 만약 1대 1의 비율로 합병했다고 하면 이재용 일가의 통합 삼성물산에 대한 지분율은 20%쯤 됩니다. 1대 0.35라는 비율로 합병해서 30%의 지분율이 되었기 때문에, 합병 비율 산정으로 10% 차이가 난 셈입니다.

상장 직후 통합 삼성물산의 시가 총액은 30조 원을 넘었습니다. 10% 지분 차이는 3조 원에 해당합니다. 합병 비율 협상에 따른 지분율 결정은 제로섬 게임이기 때문에 이재용 일가의 지분율이 올라간 만큼, 다른 주주의 지분율이 줄어들게 됩니다. 다른 주주에는 외국인 투자자도 있지만, 직접 소액 투자자, 국민연금을 통한 간접 투자자 그리고 펀드를 통한 간접 투자자가 훨씬 더 많습니다.

에버랜드가 제일모직이 되는 과정에서도 보험 계약자와 거래 상대방이 된 주주에게 준 피해가 적지 않은데, (구)삼성물산과의 합병 과정에서도 큰 피해를 주었습니다. 자본 시장에 참여하는 수많은 국민들이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정당한 자신의 몫을 빼앗기는 황당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자본 시장은 재벌 총수 일가의 놀이터가 아닙니다. 삼성그룹 이외에도 동일한 방식의 계열사 간 합병으로 소액 투자자의 재산이 재벌 총수 일가에 이전되고 있습니다. 삼성물산 합병 문제가 그 고리를 끊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홍순탁 내만복 정책위원은 회계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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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시민들이 복지국가 만들기에 직접 나서는, '아래로부터의 복지 주체 형성'을 목표로 2012년에 발족한 시민단체입니다. 건강보험 하나로, 사회복지세 도입, 기초연금 강화, 부양의무제 폐지, 지역 복지공동체 형성, 복지국가 촛불 등 여러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칼럼은 열린 시각에서 다양하고 생산적인 복지 논의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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