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6.29 선언'에 대처하는 법

[김민웅의 인문정신] 절반의 승리를 완결하려면

자진사퇴 거부 담화

박근혜의 3차 담화의 핵심은 "자진사퇴 거부"다. 그러나 조건부이긴 해도 박근혜의 입에서 처음으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라는 발언이 나온 것은 시민혁명의 중대 성과이다. 시민혁명의 위력적인 기세가 아니었다면, 이 발언을 우리는 결코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진퇴문제 결정권을 국회에 넘긴 것은 "국민의 압박에 의한 결과"라는 점과 "정치권 교란술"이라는 두 가지 차원이 얽혀있다. 첫 번째 지점을 주목하면 국민에게는 "절반의 승리"다. 시민혁명이 일단 여기까지는 해냈다.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두 번째 지점이 가져올 수 있는 전선교란을 막고 문제의 본질로 그대로 육박해 들어가야 한다. 당연히 즉각 퇴진을 실현시키고, 청산정국을 대대적으로 펼치는 것이다.

김무성이나 손학규, 박지원, 김부겸 등 지속적으로 여기저기서 돌출하고 있는 개헌논의는 청산정국을 덮기 위한 술책이라고 규정해도 무방하다. 아니라면 청산작업이 이 시국에 최우선 순위라는 점을 내세워야 한다. 개헌논의의 의도가 새로운 공화국 건설에 있다면 마땅히 적폐를 처리하는 과정에 온 힘을 기울여 자신들의 뜻이 순수함을 입증해야 할 것이다.

청산정국 전개가 관건이다

박근혜 퇴진과 구속수사, 그리고 부역세력의 청산을 진행하지 않은 채 개헌으로 넘어가면 우리의 미래는 구조적 질곡을 반복하게 된다. 사표를 막고 공정한 대표성을 구현하기 위해 100프로 정당명부제와 비례대표 확대, 그리고 대선에서 결선투표제 정도도 밝히지 않고 개헌문제로 직접 들어가겠다는 것은 정략적 술수에 불과하다. 지금의 정치적 기득권을 그대로 움켜쥐거나 새로운 기득권을 창출해서 시민혁명의 열매를 자기들의 밥상으로 만들겠다는 것 외에 다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우선 야 3당이 박근혜의 담화가 탄핵 피하기 꼼수로 규정하고 신속하게 탄핵대열을 흐트러뜨리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다. 새누리당 비박계가 탄핵대열에서 멈칫거리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으나 그렇게 되는 경우, 이들은 친박과 동렬로 묶여 함께 무너지고 말 것이다. 이들은 그렇지 않아도 탄핵과 개헌을 연계시키려는 술수를 구사하려는 중이다. 자신들의 부역범죄에 대한 청산정국을 피하면서 재기의 틈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야권 내 개헌파는 이들의 비빌 언덕이다. 이들 사이의 음습한 거래를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박근혜의 담화는 자신의 범죄에 대한 변명으로 일관했다. 국가 최고 권력의 사유화는 중대범죄다. 그럼에도 자신이 어떤 범행을 저질렀는지 도대체 의식이 없다. 단지 주변의 물의를 관리하지 못한 "불찰"만 있을 뿐이다. 언제나 책임전가다. 그래서 자신의 진퇴문제도 국회로 넘겼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여럿 있다.


포장 바꾼 또 다른 "6. 29 선언"에 속지 말아야


"진퇴문제"라는 표현은 매우 교묘하게 기획된 단어이다. 박근혜에게는 지금 물러설 "퇴(退)"만 허용되어 있을 뿐이지, 앞으로 나설 "진(進)"은 없다. 즉각 퇴진이라는 국민적 요구를 적당히 희석시켜버렸다. 결국 시민혁명의 목소리는 담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담화 전체에서 단 한 차례도 촛불시위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대국민담화가 아니라 대국회 협조 요청이었던 것이다. 국민의 압박을 받고 있으면서도, 정작 국민은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는 "이번 일로 마음 아파하시는 국민 여러분의 모습을 뵈면서"라고 했는데, 누구도 아파하지 않는다. 엄청나게 격분하고 있다. 게다가 퇴진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는 것 역시도 이 격분을 더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그래서 3차 담화는 시민혁명의 각오를 더욱 굳건히 만들고 있다. 국민들은 여기서 멈추면, 6월 항쟁이 직선제 개헌을 약속한 6.29 선언에 만족한 채 퇴각하고 항쟁의 성과를 정치권이 말아먹고 만 것을 되풀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의 3차 담화는 포장만 바꾼 또 다른 "6.29 선언"인 것이다.

혁명적 과도정부의 임무

해야 할 일들은 분명하다. 박근혜가 이미 자신의 운명을 국회에 넘기겠다고 했으니 이건 적극적으로 살려서 움쩍달싹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정권이양 방안까지 마련해달라고 거론했지 않은가? 따라서 시민혁명이 요구하는 청산정국의 막을 과감하게 올려야 한다.

그것은 오로지 혁명적 과도정부의 수립을 통해 가능하다. 오늘의 급변하는 현실은 시민혁명의 결과라는 점에서 혁명적 과도정부는 당연하다. 임무가 분명해지면, 인선도 확실해진다. 이 의식이 없으면, 혁명은 정치적 흥정의 제물이 되고 만다.

1) 의회는 탄핵을 그대로 추진한다. 이와 동시에 즉각 퇴진 촉구를 결의한다.
2) 특검은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여 박근혜의 신병을 확보한다.
3) 박근혜를 비롯, 부역세력의 죄상을 모든 부문에서 낱낱이 밝히고 추적해서 이들의 정치적 기반을 완전히 해체시킨다. 반민특위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다. 새누리당은 해체수준으로 밀어붙여야 한다.
4) 박근혜 체제 전체에 대한 거부선언과 함께 현 내각의 직무정지를 선언하고, 과도정부 수립을 선포한다. 이는 시민사회와 야3당이 의회에서 국민적 선포의 내용과 격을 갖춰 모든 정부권력의 합법적 이양이 이로써 이루어짐을 확고히 한다. 권력을 접수해야 한다.
5) 국정 역사교과서, 사드 배치, 한일 군사정보 협정 등 문제적 정책 일체를 중단시킨다.
6) 위기적 징후를 보이고 있는 경제문제에 대해 역량 있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7) 이와 같이 박근혜 퇴진, 청산작업 그리고 대선관리에 이르는 임무를 완료하고 새로운 민주정부 수립의 경로를 준비한다.

이상과 같은 작업은 시민혁명의 역량을 가진 시민사회와 야3당의 강력한 결속, 그리고 민주적 논의구조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다. 의회가 이를 위해 자신을 개방하고, 뜨거운 논의가 펼쳐지고 국민적 합의를 구성해나가는 일정과 기획을 짜임새 있게 한다면 시민혁명은 교란당하지 않을 것이며 그 성과는 온전히 국민들의 미래를 위해 창출될 것이다. 청산정국의 주체를 세우는 것은 정치권만의 독점물이 아니다.

이제 촛불은?

이제 촛불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모든 작업들이 이루어지도록 지속되어야 한다. 보다 강력한 기세로 더는 다른 꼼수를 생각조차 할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건 박근혜만이 아니라, 정치권 전반을 향해서도 마찬가지다. 혁명이란 "이 정도에서 적당히"는 애초부터 없는 거다.

박근혜는 하루라도 빨리 그 자리에서 내려오도록 해야 한다. 계속 내려오지 않겠다면, 결국 국민들이 강제로 끌어내려야 한다. 이른바 "질서 있는 퇴진"은 기만이다. 여기서의 "질서"란 저 자들이 살 수 있는 시간을 벌겠다는 속셈 말고 뭐가 있겠는가? 퇴진이 곧 질서다. 거기서부터 새로운 미래가 열린다.

시민혁명의 불길은 이제 누구도 꺼뜨릴 수 없다. 머뭇거릴 일이 아니다. 결단력 강한 쪽이 마침내 이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김민웅

미국 진보사학의 메카인 유니온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동화독법>, <잡설>, <보이지 않는 식민지> 등 다수의 책을 쓰고 번역 했다. 프레시안 창간 때부터 국제·사회 이슈에 대한 연재를 꾸준히 진행해 온 프레시안 대표 필자 중 하나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