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도 "자괴감 들고 괴로워, 빨리 내려와요"

[현장] 청운동 주민센터부터 경복궁역까지…가득 메운 시민들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범국민행동이 5주차를 맞이한 가운데 처음으로 청와대 200m 앞까지 시민들의 행진이 허용됐다. 시민들은 법원이 허가한 오후 5시 30분까지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며 평화적으로 행진을 마무리했다.

26일 첫눈이 내린 서울 광화문 광장과 도심 곳곳에서는 '박근혜 즉각 퇴진 5차 범국민행동'이 열렸다. 이날 '청와대 인간 띠 잇기 행진'은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위한 범국민행동이 시작된 지난 10월 29일 이후 처음으로 청와대 앞 200m에 위치한 청운동 주민센터까지의 진출이 허용됐다.

오전부터 내린 눈으로 이번 집회에 참석 인원이 예상보다 저조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기도 했지만 오후부터 시민들은 속속 청운동 주민센터 앞으로 모여들었다. 당초 오후 4시 광화문 광장을 출발하기로 예정돼 있었지만, 오후 3시 30분경부터 광화문 광장에 있는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청운동 주민센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행진을 시작하는 시간에 맞춰 눈이 그치면서 점점 더 많은 시민들이 청운동 주민센터로 향했고, 4시 45분 경에는 주민센터부터 3호선 경복궁역 까지 약 1km의 도로에 시민들이 가득 차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 청운동 주민센터로 행진하고 있는 시민들 ⓒ프레시안(최형락)

청운동 주민센터 앞으로 모여든 시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들을 수 있도록 큰 함성을 질러달라는 사회자의 주문에 함성과 더불어 "국민이 승리한다, 국민의 명령이다, 박근혜는 퇴진하라, 박근혜가 몸통이다, 박근혜를 구속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면서 주민센터 앞 분위기는 점점 고조됐고 특히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세월호를 상징하는 고래 모양의 조형물이 청운동 주민센터 쪽으로 들어오면서 현장 분위기는 절정에 다다랐다. 주민센터 앞에 모여있던 시민들은 박수와 환호로 이들을 환영했다.

▲ 세월호를 상징하는 고래 조형물이 청운동 주민센터 앞으로 들어오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시민들은 약 1시간 30분 동안 주민센터 앞에서 자유 발언을 진행했다. 이날 대전에서 올라왔다는 한 헌법학자는 "박근혜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끌어 내릴 법적인 방법이 없다"면서 "정치권에서 개헌을 한다고 하는데, 국민소환제도를 반드시 추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요 '피노키오'의 가사를 바꿔 박 대통령을 풍자한 노래도 등장해 시민들의 앵콜 세례를 받기도 했다. 자신을 인터넷 방송 '아프리카 TV'의 방송 진행자라고 소개한 이 시민은 "너는 언제쯤 정신 차리니 혼이 빠진 박근혜 씨야, 오늘 국민들앞에 지금 당장 나타나 사퇴한다 말해줄 수 있겠니, 하야해라 박근혜 퇴진해라 박근혜 그런 말 좀 하지 않게 해줄래"라고 가사를 바꾼 노래를 불러 열띤 호응을 얻었다.

서울에 사는 초등학교 6학년 정가연 학생은 사회 교과서를 들고나와 눈길을 끌었다. 정가연 학생은 "대통령은 정부의 최고 책임자이자, 우리나라를 대표한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차디찬 바다에 무고한 생명들이 공포에 떨며 희생되어 가고 있을 때 무엇을 했나?"라며 "잠시나마 당신의 국민이었던 것이 자괴감 들고 괴롭다. 빨리 내려오라"고 말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주민센터에 모여있던 시민들은 법원이 허가한 5시 30분까지 자유발언을 이어가다가 6시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는 본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박근혜는 퇴진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광화문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경찰은 이번 행진에 대비해 주민센터 인근을 차벽으로 막고 수백 명의 병력을 주민센터 인근에 대기시키며 혹시 모를 불상사에 대비했다. 그러면서 "평화로운 집회 성숙한 시민의식 여러분이 지켜주세요"라는 현수막을 내걸며 시민들과 충돌을 사전에 방지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청운동 주민센터 차벽에 경찰이 내건 현수막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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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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