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취임식에서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밝힌 일성이다.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취임식에는 1000여 명이나 참석했다. 인상적인 취임식이었다. 하객의 규모도 놀라웠지만 정세균 국회의장,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남경필 경기도지사 등 참석 인사의 면면도 대단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축전 대독도 등장했다. 사회는 윤인구·엄지인 KBS 아나운서였다.
정계·재계·지자체·종교계·방송계까지 총망라한 거창한 취임식 비용을 본인이 부담했다고 하니, '이기흥 스타일'이려니 했다. 명망가를 모시고 세를 과시하는 것도 추진력의 일종일 수 있으니까. 체육회 관계자가 한 말을 후에 들었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검소하게 준비했다." 조금은 불편했다. 검소하지는 않았으니까.
미래기획위원회 첫 회의가 지난 11일 열렸다. 미래기획위원회, 이기흥 회장의 첫 작품이다. 이날 이기흥 회장은 "미래기획위원회를 통해 결정되는 사항을 교과서로 삼아 4년 임기 동안 사업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했다. 앞서 10월 27일 기자간담회에서는 미래기획위원회의 임무를 '한국 체육 백년대계 설계'라고 밝히기도 했다. 중차대하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미래기획위원회가 출발부터 어긋났다. 체육회 정관을 무시한 채 이기흥 회장의 독선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체육회 정관 42조 2항은 '체육회는 필요에 따라 이사회의 의결로 제 1항 각 호의 위원회 이외의 위원회를 설치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미래기획위원회는 1항 각 호 이외의 위원회이기 때문에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하지만, 체육회는 이기흥 회장 당선 이후 단 한 차례의 이사회도 개최한 바 없다.
정관 47조 1항은 '위원회 위원은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 회장이 위촉한다‘고 정하고 있지만, 미래기획위원회 위원 승인을 위한 이사회 또한 열린 바 없다. 이기흥 회장이 위원을 선임하고 정관을 무시한 채 미래기획위원회를 발족시켰다는 뜻이다. 체육회 관계자는 "미래기획위원회는 회장 개인을 위한 자문위원회기 때문에 이사회 의결을 거치지 않았다"고 해명한다. 궁색하다. 한국 체육 백년대계를 위한 위원회가 체육회 정식 위원회가 아닌 회장 개인의 위원회일까? 그렇다면, 첫 회의 식사비와 경비를 회장이 지급했는지 궁금하다.
이사회 의결을 거치지 않은 채 독선으로 만들어진 미래기획위원회의 위원은 누구일까? 이귀남 위원장(전 법무부 장관)과 차문희(전 국정원 제2차장), 권기선(전 부산지방경찰청장), 김용섭(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김병철(전 감사원 감사위원), 반장식(전 기획재정부 차관), 전충렬(행정안전부 인사실장) 등 11명이 이 포함되어 있다. 체육의 백년대계를 도모하자는 미래기획위원회인데, 쉽게 공감하지 않는 면면이다. 이 또한 '이기흥 스타일'이리라.
이기흥 회장은 본래 반정부적인 인사가 아니다. 지난해 체육회 통합 과정에서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의 1대1 통합에 반대해 잠시 문화체육관광부와 갈등했을 뿐, 정부와 각을 세운 적 없는 인물이다. 통합 후 스스로도 "나는 반정부 인사가 아니다"라고 누누이 강조했다. 굳이 반정부 인사가 아니어도 체육회의 자율성을 강조할 수 있다. 문체부의 간섭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이기흥 회장이 지난 15일 국가올림픽위원회연합(ANOC) 총회가 열린 카타르 도하에서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을 만났다. 어김없이 '자율성'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이상한 점은 '대한체육회 아젠다 2020'의 최종 검토를 위해 IOC와 만나기로 약속했다는 것이다. 미래기획위원회의 한국 체육 백년대계 설계도인 '대한체육회 아젠다 2020'인데, 굳이 IOC의 검토를 받겠다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역시 '이기흥 스타일'이리라. 호가호위의 새로운 호랑이가 필요한 것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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