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쓰레기 주운 '촛불' 노인, 은행 계좌에…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노인 서로 돌봄 연대 은행', 죽을 때까지 서로 보살피자

"누군가와 밥을 먹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

강병학(가명.73) 어르신은 외출을 잘 하지 않는다. 점심을 같이 먹자는 말에 어르신은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대답했다. "나가면 다 돈이잖아"라며 집에서 TV를 보며 시간을 보낸다. TV를 볼 때 밥 먹는 장면에 관심이 간다고 한다.

"외로운 노인네들이 주로 혼자 밥 먹어. 그걸 보면 동병상련을 느끼지."


어르신은 은평구에 있는 고시원에서 혼자 산다. 젊은 시절엔 건축 현장 소장으로 일하며 자기 이름으로 된 2층짜리 단독 주택에서 살았다.


"말년에 고시원에서 살리라고는 전혀 생각해 보질 않았는데 인생이 어쩌다 이리됐는지…."

한숨과 함께 탄식을 길게 뿜는 어르신.

생활이 어려워진 건 55세에 퇴직하면서다. 아내가 심장병으로 갑자기 쓰러지고 거기에 아들까지 우울증을 얻으면서 병원비 부담으로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10여 년에 걸친 병치레 끝에 아내가 사망하고, 아들은 그 날로 집을 나가서 지금껏 소식이 없다. 그 사이 어르신은 아내와 아들 병시중으로 집을 팔고 고시원을 전전하게 되었다.

지금 어르신 수입은 40만 원이다. 기초연금 20만 원, 노인 일자리 급여 20만 원. 지출은 고시원 월세 20만 원, 약값 5만 원을 제하면 15만 원으로 한 달을 산다. 될 수 있으면 외출을 하지 않는 이유를 알 만하다.

▲ 병원비는 가계 파탄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연합뉴스

아내 병시중 들 때가 행복했다

보건복지부가 낸 '2014 무연고자 사망자 현황'에 따르면 2014년 무연고 사망자는 1008명으로 처음으로 1000명을 넘었다. 무연고 사망자는 2011년 682명, 2012년 719명, 2013년 878명 등 매년 증가 추세다. 고독사의 잠재적 위험군인 독거 노인 수는 2015년 137만8000명으로 전체 노인의 20.8%로 추정했다. 노인 5명 중 1명이 홀로 살고 있다는 뜻이다. 독거 노인 수는 2025년에 지금보다 1.6배가 늘어 224만8000명이, 2035년에는 2.5배가 증가해 343만 명이 될 전망이다.

"난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이야. 세상에 도움을 주지도 못하고, 나를 찾는 사람도 없고."

강병학 어르신은 지금 생각해 보니 아내와 아들 병구완을 할 때가 행복했다고 한다.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자부심이 있었다.

"누군가에 꼭 필요한 사람이었으니까."

공동체가 지속 가능해지려면

누군가에 도움을 주고, 어려울 땐 도움을 받는 것이 공동체 형성의 기초이다. 그렇다면 공동체를 만들어 내는 가장 작은 행동은 무엇인가?

예를 들어, 내가 김치를 담그는데 고춧가루가 부족했다. 부족한 고춧가루를 마트에 가서 돈 주고 산다. 이러한 거래에서는 나도 마트 점원도 다음 번에 상대방에게 무엇을 주거나 상대방으로부터 무엇을 받으리라는 기대가 없다. 돈을 통한 교환은 그 자체로 완결된다. 이렇게 되어서는 공동체가 창조되지 않는다.

다른 가정을 해보자, 고춧가루를 사러 밖으로 나간다. 나가다가 옆집 할머니를 만난다. "어디 가?"라는 할머니 말에 고춧가루 사러 마트에 간다고 대답한다. 할머니는 우리 집에 고춧가루가 많다며 가져가라고 한다. 돈을 드리려고 해도 받질 않는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물질적인 관점에서 볼 때 두 경우 모두 나는 고춧가루를 가지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두 번째의 경우는 다른 어떤 것이 덩달아 생겨났다. 내가 옆집 할머니를 다시 만날 때 반갑게 인사를 할 것이다. 그리고 할머니가 집 안에 짐을 옮겨 달라고 하면 기꺼이 해 드릴 것이다. 고춧가루 하나가 호혜적인 선물이 됨으로써 공동체 형성의 기초가 된 것이다. 공동체란 서로 주고받는 선물 교환의 결과로서 오랫동안 형성되어 왔다. 반대로 공동체를 해체하기 위해서는 공동체 형성의 반대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된다. 금전적 교환이 호혜적인 선물 교환을 대체할 때 공동체가 붕괴한다.

'노인 서로 돌봄 연대 은행'

노인들 간의 호혜적인 선물 교환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노년유니온은 노인 공동체 형성을 위해 새로운 개념의 자원 봉사 운동인 '노인 서로 돌봄 연대 은행'을 만들었다. 노년 세대가 교육과 봉사 활동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능동적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이다.

노인 서로 돌봄 연대 은행은 돈이 아니라 시간이 오가는 은행이다. 어떤 조합원이 몸이 아픈 다른 조합원을 위해 1시간 동안 장을 봐왔다면 그는 자신의 계좌에 1시간을 적립하게 된다. 자신이 적립한 시간만큼 다른 조합원으로부터 원하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이런 일이 있었다. 조합원들 사이에서 우쿨렐레를 배우고 싶은 움직임이 일었고, 우쿨렐레를 다룰 줄 아는 조합원이 다른 조합원들을 상대로 우쿨렐레 교육을 했다. 그만큼 그는 자신의 계좌에 시간을 적립했다. 그런데 이 조합원은 남들의 돌봄이 더 필요한 조합원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계좌 이체'했다.

노인 서로 돌봄 연대 은행의 사명은 '죽을 때까지 서로를 보살핀다'이다. 여기서 서로를 보살핀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기존의 자원 봉사는 봉사하는 사람은 봉사만 하고 받는 사람은 받기만 하는 일방통행식 자선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쩔 땐 주는 사람은 우쭐하고 받는 사람은 움츠러드는 현상이 벌어진다. 또한, 대가를 바라지 않는 자원 봉사가 취업이나, 진학에 '나, 이렇게 봉사 많이 했어요'라는 스펙용 자격증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봉사를 통해 누군가 우위를 점하고 움츠러든다면 공동체는 지속하기 어렵다. 서로가 평등해야 한다. 서로가 주고받아야 한다. 예를 들어 거동하지 못하는 노인은 A로부터 도시락을 받고, B로부터는 목욕 봉사를 C로부터는 미용 봉사를 받는 복지 서비스 수혜자로 존재했다. 노인 서로 돌봄 연대 은행에서는 서비스를 받기만 했던 거동 불편 노인도 이웃을 위한 봉사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가령 움직이지는 못해도 전화로 독거 노인 안부를 확인할 수는 있다. 독거 노인에게 안부 전화를 해서 저축된 시간을 목욕 봉사를 받는데, 시간을 사용하면 된다. 갑과 을이 존재하지 않는 평등한 관계가 이루어진다. 모든 사람 행동에는 가치가 있다. 그 노동을 발견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게 노인 서로 돌봄 연대 은행의 역할이다.

노인 서로 돌봄 연대 은행의 네 가지 가치

노인 서로 돌봄 연대 은행은 하나의 복지 프로그램이 아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추구하는 네 가지 가치들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첫째는 사회적 자산이다.

"이 사회의 진정한 재산은 사람이며, 모든 사람은 나누고 줄 것이 있다."

우리는 모두 나누고 줄 것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눔으로써 자신이 불필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고, 세상의 모든 사람이 자산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아주 작은 힘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회원 전체를 위하여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가는 것이다.

둘째는 새로운 노동의 정의이다.

"다른 사람이나 사회에 가치를 생산해주는 모든 활동은 노동이다."

현대 사회는 돈을 버는 것만을 일이라고 규정한다. 시장 경제는 비시장 경제의 토대 위에 있다. 비시장 경제가 없으면 시장 경제는 존재할 수 없다. 아이를 기르고, 가족을 지키고, 이웃을 안전하고 활력 있게 만들고, 약하고 취약한 사람들을 돌보며, 불의를 고쳐나가며 민주주의를 앞당기는 데 드는 노력이 포함되도록 노동을 새로이 정의해야 한다.

셋째는 호혜성이다.

"내가 누군가를 돕는 것은 나를 돕는 것이며, 도움을 받는 것은 도움을 주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주기만 하고 다른 한쪽은 받기만 한다면 우리는 진정한 사랑을 얻을 수 없다. 내가 봉사를 제공할 뿐만이 아니라 봉사를 받음으로써 모든 회원이 평등한 위치에 서게 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봉사 하면 나는 봉사 시간만큼을 저축한다. 그리고 저축한 시간은 나를 위해 사용할 수 있다. 내가 다른 회원에게 봉사를 받는다는 것은 사실 봉사 제공자에게 '봉사 시간'을 벌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봉사 시간'을 기부하여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렇게 봉사를 주고받음으로써 서로 서로 돕고 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끌어낼 수 있는 '서로 돕는 지역의 그물망'을 만들 수 있다.

넷째는 사회적 자본이다. '나'와 '너'를 '우리'로 연결하여 서로 돕고 나누는 지역 공동체를 형성한다. 시장 경제에서는 서비스나 물품을 주고받을 때 돈을 사용한다. 그러나 돈으로 되지 않는 것이 있다. 사랑과 정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우리는 '주고받는 봉사 시간'을 통하여 새로운 공동체 경제 체계를 세우는 것이다. 서비스를 주고받는 시간은 모여서 공동체의 자본이 된다. 이 사회적 자본은 '나'와 '너'를 '우리'로 연결하여 사랑과 정이 넘치는 건전한 지역 사회를 만들어간다.

▲ 지난 12일 광화문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하야 민중 총궐기 대회'에 참가한 강벽학(가명) 어르신은 4시간을 참여하면서 쓰레기도 주웠다. 어르신은 '노인 서로 돌봄 연대 은행' 계좌에 4시간을 저축했다. ⓒ프레시안(최형락)

세상에 쓸모없는 노동, 사람은 없다

강병학 어르신은 11월 12일 나와 함께 점심을 먹고 '박근혜 대통령 하야 민중 총궐기 대회'에 참가했다. 4시간을 참여하면서 쓰레기도 주웠다. 어르신의 행동은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숭고한 노동, 거리를 깨끗하게 한 노동으로 인정받아 노인 서로 돌봄 연대 은행의 계좌에 4시간을 저축했다.

"이제야 내가 살아 있는 것 같아."

자신은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자책했는데, 세상을 위해, 이웃을 위해 아주 조그만 행동도 이렇게 귀하게 여겨지니 좋다고 하시며 농을 건넨다.

"계좌 하나 더 만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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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시민들이 복지국가 만들기에 직접 나서는, '아래로부터의 복지 주체 형성'을 목표로 2012년에 발족한 시민단체입니다. 건강보험 하나로, 사회복지세 도입, 기초연금 강화, 부양의무제 폐지, 지역 복지공동체 형성, 복지국가 촛불 등 여러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칼럼은 열린 시각에서 다양하고 생산적인 복지 논의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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