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민이 탄생했다

[김민웅의 인문정신] 비상시국회의를 꾸리자

95%의 비토

100만 시민이 집결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미 결정되었다. 국민 95%가 거부한 박근혜의 퇴진을 강제화하기 위한 방식과 이후를 논의하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갑자기 터져 나온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의 박근혜와 긴급회담 제의는 전선 전체에 중대한 혼란을 가져왔다. 하루 만에 정리되었고, 시민사회의 역할 그리고 야권공조 복원의 의미가 다시 부각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민주정부로 가는 길을 더는 늦출 수 없다.

민심은 일찌감치 "박근혜 너머"를 바라보고 있다. 정치권이 할 일은 이를 위해 책임 있게 사태를 관리하는 작업이다. 여기서 실수가 단 하나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 국민이 만들어낸 시민혁명의 열차는 그대로 달린다. 그 앞길을 가로막는 존재나 세력은 가차 없이 밀려나고 말 것이다. 일차적으로 박근혜요, 그와 동시에 새누리당이며 민심을 받들지 않는 야당과 그 지도적 인사도 여기에서 예외가 될 수 없게 된다.

추미애의 긴급회담 제의의 동기를 철회 결정 다음에 페북에 밝힌 대로의 선의로 보자면, "새누리당의 기능 마비상태에서, 박근혜의 오판가능성과 그에 따른 국민적 고통과 국가적 재앙을 막기 위한 제1 야당 대표의 책임감"이 된다. 그에 더하여 "민심이 제대로 박근혜에게 전달되지 못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결정이라는 주장이다.

그 주장 자체로만 보자면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박근혜는 지난 주말 100만 집회 뒤에 여전히 자신의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으며, 이 상황에서 "잠이 최고"라는 거의 정신이상적 발언을 했기 때문에 어떤 오판과 재앙적 선택을 할지 모를 판이다. 더군다나 새누리당은 풍지박산 지경이다. 여당은 더 이상 없다.

추미애의 긴급제안 논란

이런 상황에서, 최순실의 영향력 아래 있던 최고 권력자가 어떻게 나올지는 국민의 운명을 가른다. 그러기에 박근혜가 어떤 독자적인 판단능력도 없는 처지에 민심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채 계속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우려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바다. 당장 한일 군사정보협정 가서명문제도 그 하나의 예다. 따라서 추미애 자신이 밝힌 대로 박근혜 퇴진을 압박하기 위한 "최후통첩과 최후담판"이라는 긴급회담 제의는 그 내용만 보면 정당성을 갖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그간 보여 왔던 어정쩡한 태도에 대한 불신이 존재하고 있는 마당에 제1야당이 그러한 긴급회담의 주역으로 나설 자격을 민심이 준 바 없다. 박근혜 게이트 이후 야당이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된 주도력이나 국면전환의 역량을 보인 적이 없지 않은가. 또한 시민사회와의 협의나 야권공조의 구조물 위에 그런 제안을 한 것도 아니었다는 점은 이 긴급제안을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을 애초부터 갖지 못하게 한 것이었다.

게다가 언론이 영수회담이라고 표현한 이 회담(추미애 자신은 영수회담이라고 표현한 적은 없다)은 이미 퇴출명령을 받은 자에게 영수의 위치를 제공하고 출구를 내주는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민심과 배치될 수밖에 없는 선택이었다. 아무리 의도가 의미 있었다고 백번을 봐준다고 해도 그걸 관철시킬 수 있는 설정 자체가 기본부터 오류였다.

따라서 추미애 대표의 긴급제안에 대한 민심의 분노와 질타는 예견되었던 것이다. 퇴진대상과 무슨 "회담"이란 말인가, 라는 질문에 답을 내놓을 수 없는 제안이었다. 민심의 결정으로 다 죽어가는 자를 다시 살려주는 식이 될 것이라는 비판을 고려하지 않은 결과였다.

그렇다면 더불어민주당 의총은 어떤 상태와 결론을 낳았는가? 첫째, 그간 2선 후퇴론에서 퇴진으로 당론이 결정된 것은 야권공조의 틀을 바로 잡았다. 추미애는 2선 후퇴가 아닌 퇴진론 쪽에 서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번 긴급제안으로 촉발된 결과는 현실에서는 당론의 전환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사방에서 난타를 당한 긴급회담 제안이 내부에서는 묘하게도 퇴진론으로 가기 위한 고리를 만든 격이다. 정치적 역설이다.

둘째, 의총 논의 중 의총 밖 당내에서는 추미애 제안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면서 시민사회와 야권공조복원 작업이 빠른 속도로 성사된 상태였다. 사태의 긴급성을 감안하여 비상시국회의를 토대로 시민사회의 원로와 3당대표 모두가 참여하는 방식으로 철회가 아닌, 계속 추진이 논의되고 있는 중이었다고 한다. 이걸 박근혜가 받지 않으면 그 자체로 이미 박근혜 정권의 파산이 선언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의총의 결정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쪽으로 기울었다. 이왕 정해진 만남이었으면, 철회 대신 "최종통고"를 목적으로 시민사회와 야당공조의 힘을 그대로 관철시킬 수 있는 틀을 살리는 쪽도 생각해볼 수 있는 선택이었다. 시민사회와 야당공조가 기본 틀이 되는 것이라면, 박근혜를 직접 그리고 공개적으로 마주해서 민심의 힘으로 강하게 밀어부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박근혜 퇴진은 단 하루라도 더 미룰 수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민주당의 정치력이 여전히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 대목이었다.

비상시국회의

셋째, 비상시국회의가 보다 탄력을 받게 되었다. 이번 사태에서 우리는 박근혜와 새누리당을 제외하고 국민 전체와 야당의 결속이 얼마나 중대한지를 절감하고 있다. 민심과 하나가 되는 정치권의 존재는 이 난국을 풀어가는 열쇠다. 추미애가 자신의 페북에서 밝힌 대로 "야3당과 시민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힘을 모으기 위한 비상시국기구의 구성을 위해 구체적 노력에 들어가겠다"는 방향설정은 벌써부터 당연한 민심의 요구였다. 그리고 여러 주체가 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제안, 구성하고 작동시키는 중이다. 민주당만의 전매특허나 전유물도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무엇보다 먼저 국회를 일시적이라도 전면 개방해야 한다. 기존의 정치권만의 논의가 이루어지는 곳이 아니라 시민들이 국회를 자신의 의사를 마음껏 발표할 수 있는 만민공동회 차원의 현장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직접 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가 결합해서 작동할 수 있는 상황을 창출하는 작업이다. 국회의 토론 공간 전체를 열어, 도처에서 치열한 논의가 벌어져야 한다. 적어도 3일에서 1주일 간 박근혜 퇴진과 그 이후를 준비하는 일에 대해 우리 모두의 논의를 쏟아놓는 과정이 절실하다.

전국, 아니 온 세계가 이 상황을 지켜보게 될 것이며 이 논의의 뜨거운 현장이 매일 뉴스가 되고 국민적 의제가 설정되며 민심을 파악하고 제대로 이끄는 지도적 인물과 세력이 탄생할 것이다. 논의의 합리적 과정을 만들기 위한 일정한 틀이 필요하겠지만, 그 어떤 발언에도 제한이 가해지지 않으며 그 어떤 주장도 경청되고 그 어떤 의견도 존중되는 민주광장을 국회에다 만드는 것이다. 이러는 가운데 우리는 박근혜 이후를 준비하고 민주정부를 만드는 경로를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다.

과도정부 수립의 중대성

정치는 정치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시민들의 의사를 대변하지 못할 때 대의민주주의는 직접 민주주의에 주도권을 넘겨줘야 한다. 그렇다고 정당과 국회 본연의 역할을 배제하거나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서로가 제대로 결합해야한다. 그 실험의 과정이 이번에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것이 시민혁명의 열매를 우리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길이다.

박근혜 퇴진, 박근혜 정권 청산과 민주정부 이행을 위한 과도정부 수립, 대선 그리고 민주정부 수립이라는 일정표에 따른 정치과정을 이제 마련하고 실현해나가야 한다. 여기서 진행속도를 강화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과도정부의 성격과 기능을 확정하는 일이다. 새누리당은 이에 대한 발언권이 원천적으로 없다. 따라서 여당도 없어진 마당에 여야합의라는 틀도 폐기해야 한다. 혹여 진심으로 개과천선한 자들이 있다면 받아줄 상황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국민이 권력이다

과도정부의 수립은 박근혜가 물러나지 않겠다고 해도 실제적인 헌법적 기능을 확보함으로써 정국관리와 안정을 펼쳐나갈 수 있는 장치다. 책임총리제니 거국중립내각이니 하는 것은 모두 걷어치우고 과도정부를 바탕으로 시민혁명의 요구를 받들 일이다. 머뭇거릴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참여자이며 주체이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세상이다.

국민이 권력이다. 우리가 권력이다. 확실하게 뒤집어엎어야 한다, 이 사악한 질서를. 그리고 완전히 바꿔야 한다. 이 절체절명의 기로에서 우리는 시민혁명을 선택했다. 새로운 시민이 탄생했다. 역사는 그 진로를 결코 바꾸지 않을 것이다. 정치는 시민의 손에 쥐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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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

미국 진보사학의 메카인 유니온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동화독법>, <잡설>, <보이지 않는 식민지> 등 다수의 책을 쓰고 번역 했다. 프레시안 창간 때부터 국제·사회 이슈에 대한 연재를 꾸준히 진행해 온 프레시안 대표 필자 중 하나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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