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역한 민주주의' 재구축하자

[기고] 지금의 시스템, ‘박근혜-최순실'은 다시 출현한다

돌이켜 보면, 6월 항쟁 때 6.29는 단지 직선제 하나만 바뀌었을 뿐 유신 독재 체제와 전두환 군사 독재 체제는 그대로 온존시킨 것이었다. 그리하여 봄은 왔지만, 우리는 봄을 맞이하지 못했다. 새로운 시대가 왔지만, 앙시앙 레짐은 여전히 강력했던 것이다.

그 앙시앙 레짐의 체제 위에서 박근혜-최순실 시스템이 전횡할 수 있었다. 사실 이명박 정권의 4대강사업도 나라를 망친 전형이었다. 이제 이번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에 여전히 강력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유신과 군사 독재의 구조를 철저히 걷어내고 '불가역(不可逆)한 민주주의'의 기본을 구축해 내야 한다.

현 시스템으로는 국가 사유화 세력의 재출현을 방지할 수 없다

현재와 같은 제왕적 대통령제 하에서 이번처럼 국가를 사유화(私有化)하는 사태는 언제든 다시 출현할 수 있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대통령 직속으로 있는 감사원이 어떻게 진정한 감사기관이 될 수 있으며, 감히 청와대를 감사할 수 있겠는가?

현재의 '정치검찰제'를 운용하면서 법치주의를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이며, 대법원장이 임명·제청·추천·위촉할 수 있는 자리가 무려 1만6000개나 되는 '제왕적 대법원장' 시스템에서 법원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것 역시 지나친 욕심에 불과하다.

또 재정을 중앙정부가 독점하는 조건에서 진정한 지방자치는 절대로 실현될 수 없다. 1번이냐 2번이냐만을 강제로 투표하게 하는 '차악(次惡)'의 현 선거 제도는 민의를 왜곡·봉쇄하는 반민주적 제도다.

물론 모든 것을 한꺼번에 얻을 수는 없다. 그러나 모진 희생과 고초를 겪으면서 획득해낸 지금의 이 절호의 기회를 바람처럼 그렇게 가볍게 흩날려버릴 수는 더더욱 없다. 무엇보다도 지금처럼 "나라도 아닌 나라"의 시스템을 후대에 물려줄 수 없다. 이 새로운 시대에 또 다시 앙시앙 레짐을 그대로 온존시켜 재생산할 수는 없다.

이번 기회에 '불가역(不可逆)한 민주주의' 재구축해야

진정한 봄을 맞이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현 정치사회 구조는 한 마디로 유신과 군사독재 시스템을 벗어나지 못한 제왕적 대통령제의 비민주적인 '봉건적' 시스템이다. 이러한 시스템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최고 규범으로서의 헌법을 국민 주권의 원칙하에 '불가역한 민주주의'의 강령으로 재구축해 내야 한다.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지 않고도 이번에 요행히 야당이 한 번 정권 교체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뒤 반드시 보수 세력으로 정권이 넘어가고 그때 보수정권은 반드시 현 정권처럼 '반동'으로 회귀하게 된다. 그것은 역사에 커다란 죄를 짓는 일이다.

차기 정권을 과도 정권으로 해서 국가 기본을 재구축하고 국민 기본권을 완전하게 보장하는 '개헌 기간'으로 설정하는 방안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임기응변의 타협이나 정치권만의 섣부른 단기적 이익에 갇혀서는 안 된다. 바둑에 "선작오십가자 필패(先作三十家者必敗)"라는 격언이 있다. 먼저 50집을 지은 사람은 패배한다는 말이다. 자기가 유리한 것만을 생각해 계속 '부자 몸조심'으로 일관하다가, 싸워야 할 때 싸우지 않고, 공격해야 할 때 공격하지 않고, 수비에만 급급하며 강하게 맞서야 할 때 거꾸로 약하게 대응하면 결국은 패배하고 마는 것이다.

시민의 힘을 강화시키고 그에 의존하라

오늘의 엄중한 시대적 과제 수행을 정치권에만 맡겨둘 수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우리 사회의 시민 역량은 지난한 투쟁을 견디며 단련해 온 '세월호 대책위원회'를 비롯해 '백남기 농민 대책위원회'를 거치면서 꾸준하고도 급속하게 성장·발전하고 있다.

특히 이번 과정에서 끝내 승리를 거둔 이화여대의 장기적 투쟁과 각 대학 젊은 학생들의 창의적인 흐름, 그리고 중학생을 비롯한 '대구 여고생' 등 어린 세대까지, 이제껏 나약하게만 보였던 젊은 세대들의 놀라운 성장을 목도할 수 있었다.

이렇게 성장한 시민 역량은 정치권과 함께 6월항쟁 당시의 '국민운동본부'처럼 역할하면서 진정한 민주주의 정착을 위한 시대적 과제를 실천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미래의 희망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시민과 청년의 힘은 더욱 성장해야 한다. 강력한 시민 역량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가장 확실한 방어력이다.

문제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시민의 힘을 강화시키고 그에 의존하는 것, 그 길이 우리의 방향과 가치가 돼야 한다. 비록 그 힘이 지금은 미약하고 비현실적으로 보일지라도, 그것은 광야의 불씨처럼 신속하게 '폭풍 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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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준섭

1970년대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학생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몸담았으며, 1998년 중국 상하이 푸단(復旦)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2004년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일했다.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2019), <광주백서>(2018), <대한민국 민주주의처방전>(2015) , <사마천 사기 56>(2016), <논어>(2018), <도덕경>(2019)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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