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표는 이날부터 예정된 주요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안경환 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등 원로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원로들은 한결같이 문재인 전 대표에게 하야 요구와 같은 '극단적인 선택'은 자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추미애 당 지도부가 박 대통령 2선 후퇴 등을 내건 조건부 '정권 퇴진 운동'을 언급한 것과는 결이 다르다.
남재희 전 장관은 "좀비라는 게 있다. 우리 대통령이 이미 좀비 대통령"이라며 "국민 감정은 거의 만장일치로 하야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혹평했다. 그러나 남재희 전 장관은 "지금의 혁명적인 사태를 혁명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부작용이 많다"면서 "혁명적인 사태를 가급적이면 합법적인 룰에 따라 풀어나가는, 비유적으로 얘기하면 혁명적 사태를 반혁명적으로 해결하는 게 순리"라고 말했다.
남재희 전 장관은 "충분히 법적인 절차를 진행한 다음에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며 검찰 조사나 특검, 국정 조사 등을 진행해 진실을 밝히는 것이 먼저라고 조언했다. 그는 "(야권 대선 후보 가운데) 문재인 전 대표가 가장 신중하고 합리적인 발언을 한다고 본다"고 칭찬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성남시장이 '하야'를 요구하는 것은 성급한 태도라는 것이다. 이에 문재인 전 대표는 "야권 지지층들은 분노 때문에 '야당 뭐하냐, 빨리 하야해야지'라고 아주 압력을 가하고 있어서"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안경환 전 국가인권위원장도 "박근혜 대통령이 남은 임기에 국정을 수행하기 어렵다"고 진단하면서도 "밤마다 집회가 이어져도 평화롭게 이어지는 한, 국가 비상 사태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지금 시점에서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문재인 전 대표가 국정 공백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안보, 국방, 민생 등을 챙기라고 조언했다. 박승 전 총재는 가계 부채와 부동산 과열 문제, 조선 해운 산업의 구조 조정 문제에 대한 특별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문재인 전 대표는 "지난 10월 29일과 11월 5일 우리 국민은 아주 높은 민주 역량을 보여줬다. 4.19 혁명과 6월 항쟁으로 민주화를 이룬 국민의 저력을 다시 보여준 것"이라면서 "이제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을 더 부끄럽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전 대표는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국민의 뜻을 존중해서 국정의 공백과 혼란을 하루빨리 끝낼 수 있는 결단을 스스로 내려주는 것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남은 마지막 도리"라고 말해, 박근혜 대통령이 2선으로 물러나고 '거국 내각' 구성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압박했다.
문재인 전 대표는 "여야 정치권도 마찬가지"라며 "당도 오늘 이런 사태를 만든 데 함께 책임이 있다는 깊은 책임감을 가지고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국민의 뜻을 정치적으로 실현해낼 수 있도록 함께 지혜를 모으는 게 여야가 해야 할 책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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