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송민순 회고록, 美 쇠고기 협상도 틀렸다

2007년 농림부 문건과 달라…美 편향 시각도 눈길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창비 펴냄)가 논란을 낳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유엔 북한 인권 결의 안에 대해 기권한 대목을 담은 내용이 주로 논란이 된다.

송민순 회고록 속 미국 산 쇠고기 내용, 정부 자료와 달라

하지만 이 책 내용 가운데 검증이 필요한 대목은 그밖에도 많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관한 대목이 대표적이다. 이미 공개된 농림부 자료와 다르다. 송 전 장관이 기억에 의지해서 회고록을 쓴 탓에, 부정확한 내용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송 전 장관은 회고록에서 이렇게 적었다.

"2007년 12월 하순 (노무현) 대통령이 쇠고기 문제를 결정하기 위해 총리와 관계 장관들을 불렀다. 나는 우리 코트에서 볼을 갖고 있지 말고 '위험 부위를 제외한 30개월 미만 쇠고기' 수입을 허용하는 방안을 미국에 던지자고 제안했다. 만약 미국이 안 받으면 그때는 미국이 부담을 지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 노 대통령은 미국이 그 방안을 받을 것 같으냐고 물었다. 한(덕수) 총리가 받을 것 같지는 않다는 의견을 내자, 대통령의 안색이 굳기 시작했다. '미국이 받지도 않을 방안으로 우리의 카드를 써버리면, 다음 정부가 들어와서 협상할 여지만 줄여 버리고, 또 국내 정치적으로도 나를 지지한 사람들에게 좋은 소리도 못 들을 제안을 왜 하느냐'라며 역정을 냈다. 노 대통령은 정권이 반대편으로 넘어가게 되니 각료들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은 것으로 보였다.

나는 순간 당황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대통령을 뒤따라가며 '부담을 미국 측에 넘기자고 드린 말씀'이라고 하자, '피도 눈물도 없느냐' 하며 돌아보지도 않고 나갔다."

그런데 농림부가 2007년 12월 17일 작성한 <미국산 쇠고기 관련 대책 검토 보고> 문건을 보면, 한국은 이미 같은 해 11월 17일에 "미국이 강화된 사료 금지 조치를 이행하는 시점에 '30개월 이상 쇠고기'도 수입"한다는 방침을 정한 상태였다. 강화된 사료 금지 조치란, 광우병 양성 반응 소와 30개월 이상 소의 뇌·척수 등 광우병 특정 위험 물질(SRM, Specified Risk Materials)이 많은 부위는 모든 동물 사료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방침을 정한 건, 총리가 주재한 관계 장관 회의였다. 송 전 장관도 참석하는 회의다. 그는 이 내용을 알고 있었을 터다. 따라서 같은 해 12월 말에 송 전 장관이 "'위험 부위를 제외한 30개월 미만 쇠고기' 수입을 허용하는 방안을 미국에 던지자"라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제안했다는 설명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강화된 사료 금지 조치, '이행' 시점이냐, '공표' 시점이냐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자신도 참석했던 회의에서 결정한 방침을 모른 채 대통령에게 건의한 경우, 그리고 회고록 내용이 잘못된 경우다.

첫 번째 경우는 가능성이 낮다. 2007년 11월 17일 회의 이후, 미국과의 협상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무 부처 장관이 관련 내용을 몰랐을 리는 없다. 기억이 왜곡된 탓에, 회고록 속 사실 관계가 엉켜있다고 보는 게 자연스럽다. 농림부 자료를 차근차근 살펴보자.

<미국산 쇠고기 관련 대책 검토 보고>를 보면, 2007년 11월 17일 총리가 주재한 관계 장관 회의에서 단계적 접근을 통한 해결 방안을 정부 입장으로 정리했다고 돼 있다.

첫 단계는 30개월 연령 제한은 유지하되, 기타 사항은 국제수역사무국(OIE) 규정을 수용한다는 것이다. 다음 단계는 미국이 강화된 사료 금지 조치를 이행하는 시점에 국제수역사무국(OIE) 규정을 완전 수용한다는 것이다.

국제수역사무국(OIE)은 '광우병 위험 통제국' 등급을 받은 국가에서 생산된 쇠고기는 광우병 특정 위험 물질(SRM)만 제거하면 원칙적으로 '연령'과 '부위'에 상관없이 수입을 허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은 2007년 5월 '광우병 위험 통제국'이 됐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2007년 11월 17일 정한 방침은, 미국이 강화된 사료 금지 조치를 이행하면, 30개월 이상 쇠고기도 수입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틀 뒤인, 2007년 11월 19일, 미국 측은 한국 정부의 방침에 대해 반대 입장을 전달했다.

한국 정부 방침은 "미국이 강화된 사료 금지 조치를 '이행'하는 시점"이라고 돼 했다. 미국은 "미국이 강화된 사료 금지 조치를 '공표'하는 시점"에 국제수역사무국(OIE) 규정을 완전 수용하도록 요구했다. '이행'와 '공표'의 차이다. 미국은 한국에게 더 큰 양보를 요구한 것이다.

결국 한국의 통상교섭본부는 미국 요구를 반영한 절충 안을 마련했다. 이런 내용이다.


"미국이 강화된 사료 금지 조치를 '공표'하는 시점"에 살코기의 연령 제한을 해제한다.
그리고 "미국이 강화된 사료 금지 조치를 '이행'하는 시점"에 국제수역사무국(OIE) 규정을 완전 수용한다.


미국에 이런 절충 안을 전달한 게 같은 해 11월 19일이다. 같은 해 12월 8일, 한국은 같은 절충 안을 다시 전달했다.

그리고 이날(2007년 12월 8일), 미국은 한국 측 절충 안으로는 미국 의회 설득이 어렵다면서 다른 방안을 제시했다.

2단계 방안이다. 첫 단계는 이렇게 돼 있다.

"30개월 미만의 뼈 있는 쇠고기, 모든 연령의 살코기, 광우병 특정 위험 물질(SRM)은 국제수역사무국(OIE) 규정 준수."

두 번째 단계는 이렇다.

"미국이 강화된 사료 금지 조치 '공표' 시 국제수역사무국(OIE) 규정에 따라 수입 허용 부위 확대."

결국 30개월 이상의 쇠고기를 수입하라는 요구다. 이에 대해 한국 측은 수용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미국산 쇠고기 관련 대책 검토 보고> 문건은 "미(국) 측 제안이 국내적으로 설득이 어렵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수용하기 어려움을 표명"했다고 설명했다.


시기가 엉켜 있는 송민순 회고록

▲ 송민순 전 장관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 ⓒ창비
송 전 장관이 회고록에서 거론한 "2007년 12월 말"은 이런 논의가 진행된 뒤다.


그 시점에, 외교통상부 장관이 "'위험 부위를 제외한 30개월 미만 쇠고기' 수입을 허용하는 방안을 미국에 던지자"라고 대통령에게 제안했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한국은 그보다 더한 양보 방안을 내놓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2007년 11월 19일과 12월 8일, 한국이 미국에 제안한 방안이 "'미국이 강화된 사료 금지 조치를 '공표'하는 시점'에 살코기의 연령 제한을 해제한다"라는 거였다. 2007년 11월 17일 관계 장관 회의에서 정한 방침 역시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수입할 수 있다는 거였다.


따라서 송 전 장관의 회고록 내용은 부정확하다.

통상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가 <미국산 쇠고기 관련 대책 검토 보고> 문건을 찾아내 송 전 장관의 회고록 내용을 검증했다. 송 전 장관의 회고록에 오류가 있다는 걸 입증했다.

이에 대해 송 변호사는 "지난 2007년 정부 문서가 보관돼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검역 주권에 대한 고려가 없다

쇠고기 협상 관련 서술과 관련해서 논란이 될 수 있는 대목은 곳곳에 있다. "쇠고기 협상, 같은 말 다른 해석"이라는 소제목 아래 내용의 각주에서 송 전 장관은 이렇게 적었다.

"당시 쇠고기 문제는 농수산 검역 당국이 비현실적으로 엄격한 수입 조건을 부가한 측면이 없지 않다. 미국의 쇠고기 살코기에 미세한 뼛조각 하나라도 섞이면 컨테이너를 통째로 반송했다. 이러한 조치가 결과적으로 쇠고기 수입 분쟁은 물론 한미 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미국 산 쇠고기 수입 건에 대한 송 전 장관의 생각이 잘 드러난다. 한미 관계에 대한 고려를 앞세우는 시각이다.

하지만 당시 상황을 돌아 보면, 이런 서술은 억지스럽다. 2003년 12월 미국에서 소해면상뇌증(광우병)이 발생했다. 그래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중단됐다. 그리고 2006년 초, 한국 정부는 수입 가능한 미국산 쇠고기의 범위를 30개월 미만 쇠고기 가운데 뼈를 제외한 골격 근육으로 제한하고, 광우병 특정 위험 물질(SRM, Specified Risk Materials)이 제거된 것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광우병 특정 위험 물질이 포함된 고기를 한국에 선적하면, 한국이 수입 중단 조치를 할 수 있게끔 했다.

따라서 송 전 장관이 "미국의 쇠고기 살코기에 미세한 뼛조각 하나라도 섞이면 컨테이너를 통째로 반송했다"라고 한 것은, 한국 정부의 정당한 조치였다. 오히려 미국을 탓하는 게 옳다. 쇠고기를 한국에 다시 수출하기로 하면서 정한 약속을 어긴 쪽은 미국이었다. 그러나 당시 미국은 수출하는 쇠고기를 엄격히 점검하는 대신, 한국 측에 검역 조건을 완화하도록 요구했다. 송 전 장관의 회고록은 지나치게 미국 편에 서 있다. 검역 주권에 대한 고려가 없다.

송민순의 기억은 왜 꼬여 있을까

회고록에 담긴 송 전 장관의 기억은 왜곡돼 있다. 하지만 쇠고기 수입 관련 제안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이 화를 낸 서술은 사실로 보인다. "피도 눈물도 없느냐"라는 발언 등 묘사가 구체적이다. 어떻게 봐야 할까.


송기호 변호사는 "아마도 송 전 장관이 제안한 건, 미국이 강화된 사료 금지 조치를 '이행'하는 시점에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수입하는 방안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어 송 변호사는 "미국의 요구는 미국이 강화된 사료 금지 조치를 '공표'하는 시점에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수입하는 것이었으므로, 미국이 수용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이 '미국이 받지도 않을 방안으로 우리의 카드를 써버리면, 다음 정부가 들어와서 협상할 여지만 줄여 버리고, 또 국내 정치적으로도 나를 지지한 사람들에게 좋은 소리도 못 들을 제안을 왜 하느냐'라며 역정을 냈다는 대목이 설명이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보다 이듬해인 2008년, 새로 들어선 이명박 정부는 "미국이 강화된 사료 금지 조치를 '공표'하는 시점에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수입"한다는 미국 측 요구를 수용했다. 이어 거대한 반발이 일어났다. 연일 촛불 집회가 열렸다.


노무현 대통령이 송 전 장관의 제안에 역정을 냈다는 회고록 내용은, 미국 산 쇠고기 수입이 얼마나 민감한 문제인지에 대해 노 대통령이 알고 있었다는 근거도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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