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트럼프 향해 "그만 징징대라"

"선거 시스템 부정한 후보는 트럼프가 처음" 맹비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가 선거 조작 의혹을 주장한 데 대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트럼프 후보에게 "그만 징징대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오바마 대통령은 18일(이하 현지 시각) 미국을 방문 중인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후보와 관련된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그는 "현대 미국의 정치 역사에서 선거 시스템을 부정하고 투표가 있기 전부터 선거 자체에 의혹을 제기하는 대선 후보는 처음"이라면서 "게임이 끝나기도 전에 징징거리는 것인가? 선거에서 패배하면 남 탓을 하기 위한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면서 오바마 대통령은 "그렇기 때문에 당신(트럼프)은 이 자리(대통령)에 필요한 자질을 갖추지 못한 것"이라고 일갈했다.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8일(현지 시각)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앞서 트럼프 후보는 지난 16일 본인의 트위터 계정에서 선거가 조작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이번 선거는 사기꾼인 힐러리 클린턴(민주당 후보)을 밀어주는 왜곡된 언론에 의해 완전히 조작됐다"며 "투표소에서도 그렇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후보가 선거 조작 의혹 카드를 꺼낸 것은 본인의 음담패설이 공개된 이후 좀처럼 지지율이 반등의 기미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존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효과와 함께 향후 대선에서 패배하더라도 공정한 경쟁이 아니었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실제 트럼프 후보와 클린턴 후보의 지지율 격차는 트럼프 후보의 음담패설 발언 이후 점점 벌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언론사 및 대학 연구소 등 각 기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여론조사의 평균치를 산출하고 있는 미국 온라인 정치 전문 매체인 <리얼클리어폴리틱스>에 따르면 지난 7일 <워싱턴 포스트>의 음담패설이 보도되기 이전에는 3% 내외였던 양 후보의 격차가 18일 현재 6.9%까지 벌어진 상태다.

지난 15일부터 17일까지 전국 유권자 91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미국 폭스뉴스의 여론조사에서도 클린턴 후보는 45%의 지지율을 기록, 39% 지지에 그친 트럼프 후보에 6% 포인트 차로 앞서있다.

실제 미국 주류 언론 대부분이 클린턴 후보를 지지한다는 것도 트럼프 후보가 선거 조작을 주장하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뉴욕타임스>, <워싱턴 포스트>를 포함해 발행 부수를 기준으로 한 미국의 100대 매체 중 트럼프 후보를 지지한 매체는 한 곳도 없다.

특히 위의 두 매체를 비롯해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보스턴 글로브> 등 미국의 유력 매체들이 잇따라 클린턴 후보를 지지하자 트럼프 후보는 언론이 선거를 조작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후보의 막무가내식 의혹 제기에 공화당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오고 있다. 공화당 소속인 오하이오 주(州) 국무장관 존 허스테드는 트럼프의 주장에 대해 "무책임한 것"이라면서 본인이 오하이오 주 선거를 총괄하고 있는 만큼, 선거 조작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언론이 클린턴 후보에 대해 편향적이라는 지적은 당내에서도 거론되고 있다. 공화당 부통령 후보인 마이크 펜스는 16일 미국 방송 NBC와 인터뷰에서 대선 결과를 전적으로 수용할 것이라면서도 "미국인들은 언론의 편향 보도에 지칠 대로 지친 상태다. 사람들이 '조작된 선거'라고 느끼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SNS는 트럼프 편'…알고 보니 조작?

트럼프 후보는 지난 9월 26일 대선 후보 간 1차 TV토론 이후 대부분의 언론들은 클린턴 후보의 승리라고 평가했지만 SNS에서의 반응은 달랐다면서 언론이 클린턴 후보에 편향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작 조작된 것은 언론이 아닌, SNS라는 주장이 나왔다.

18일 영국 방송 BBC는 옥스퍼드대학교 필립 하워드 교수의 연구 자료를 인용, 트위터에 일정 시간 간격을 두고 자동으로 글을 올리는 이른바 '트위터 봇(Twitter bot)'에 의해 트럼프 후보의 인기가 부풀려져 있다고 보도했다.

방송에 따르면 하워드 교수의 연구진은 1차 TV토론 이후 나흘 동안 트럼프 후보와 클린턴 후보를 지지한 해시태그가 들어간 트윗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트럼프를 지지하는 트윗 180만 건 가운데 32.7%인 57만 6178건이 트위터 봇의 소행인 것으로 드러났다. 클린턴 후보를 지지한 트윗 61만 3000건 중에서는 22.3%인 13만 6639건이 이에 해당됐다.

연구진은 트럼프를 지지하는 일부 계정의 경우 트위터 봇을 이용해 하루에 50개 씩, 최소 200여 개의 게시물을 올리기도 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러한 행태가 컴퓨터를 통한 '선전‧선동' 행위라고 지적했다.

국무부, 클린턴 엄호 위해 FBI에 거래 시도?

한편 클린턴 후보가 국무장관 재직 시절 개인 이메일 계정을 사용한 것과 관련해 또 다른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17일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100여 쪽의 수사 문건을 공개했는데, 이 문건에는 미국 국무부가 클린턴 후보를 엄호하기 위해 FBI에 거래를 시도한 정황이 명시됐다.

문건에는 패트릭 케네디 국무부 차관이 지난해 여러 명의 FBI 인사와 접촉, 벵가지 사태와 관련한 이메일을 기밀로 분류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고 적혀있다. 그는 자신의 요청대로 해준다면 FBI가 파견되는 국외 지역을 늘리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벵가지 사태는 클린턴 후보의 장관 재직 시절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히는 사건이다.

이에 대해 국무부는 부처에 따라 기밀을 분류하는 시각이 다를 수 있다면서 부처 간 기밀을 분류하는 작업을 하면서 의견을 나누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라고 해명했다. FBI 역시 불공정한 행태는 없었다고 밝혔다.

또 오바마 대통령은 18일 "이같은 일(거래 시도 주장)은 국무부와 FBI 사이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고 다른 기관들 사이에서도 발생하는 일을 너무 개괄적으로 정의내린 것"이라면서 "상당히 과장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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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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