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 자본 조달? 아끼고 아끼는 게 먼저

[생협평론] 우리에게 필요한 사업자금은 얼마인가

많은 사업계획서가 다양한 미사여구로 성공 가능성을 약속하지만 현실은 대부분이 실패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준비가 어디 있어?" "뭐 대단한 거 있나." "어떻게든 되겠지!" 혹시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면 실패의 지름길로 들어서고 있는지도 모르니 돌아봐야 합니다. 농협이나 대기업이 새로운 사업을 한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그런 과정에서 배우는 시행착오도 의미가 있을지 모릅니다. 다음에는 안 그러면 되니까요.

하지만 초기 단계 협동조합은 한 번의 실수가 폐업으로 이어질 수 있을 만큼 자원이 넉넉하지 않습니다. 피할 수 있는 것은 피하고 준비할 수 있는 건 해봐야 합니다. 단언하지만, 그럼에도 복병처럼 등장하는 각종 사건 사고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때는 정말 마음가짐을 잘 가져야 한다는 말밖에 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단계로 가기 전에 준비해볼 수 있는 것들은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협동조합에 필요한 준비들 중 이번 기회에는 많은 협동조합들이 궁금해하는 협동조합 자금 마련에 초점을 맞춰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시작에 앞서 협동조합은 조합원이 주인인 사업체라는 것이 꼭 먼저 얘기돼야 합니다. 그럼, 그 자금 역시 조합원이 내야하고 조합원이 책임져야 한다는 당연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문제는 조합원이 내는 출자금만으로는 사업이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2015년 협동조합 실태조사를 보면, 협동조합은 소상공인이나 중소기업과 비교해 전반적인 투자액이 30% 정도이고, 사회적협동조합(6034만 원)도 사회적기업(21억118만 원)이나 다른 비영리법인(1만6678원)과 비교해 현저히 낮은 수준입니다. 협동조합이 다른 법인체에 비해 자본 소요가 적어 투자가 적다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주식회사에 비해 조합원 교육·이사 훈련·지역사회 기여·민주적인 의사결정 등 주식회사가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가치비용이 훨씬 많은 협동조합이 특별히 자본소요가 적은 기업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다른 자본 조달 방법이 전무한 상황에서 조합원에게만 의지하는 자본 조달 방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 타당한 설명처럼 보입니다. 오늘 여기서는 초기 단계의 협동조합이 참고해볼 만한 사업자금 준비와 조달에 관한 이야기를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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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필요한 사업자금은 얼마인가

그럼 초기에 어느 정도의 출자금을 모아야 적정한 수준일까요? 자본금 규모는 업종에 따라 정말 다릅니다.

보통 처음에 드는 비용은 기초자산으로 권리금·임차료·사무실 수리비용이 있고, 업종에 따라 물류비·재고비 등이 추가됩니다. 법인등록 비용은 설립 후 등기할 때 생기는데, 법무사를 쓰면 추가로 그 비용도 발생합니다. 보통 초기자산에 들어가는 비용과 매월 예측할 수 있는 비용에 6개월 정도를 추산하면, 적정한 사업자금을 추산할 수 있습니다. 6개월의 근거는 첫 사업을 하자마자 바로 매출이 발생되기는 확률적으로 어려우니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견뎌낼 수 있는 예비비입니다. 6개월보다 더 짧아질 수 있지만 6개월도 채 되지 않는 기간에 매출이 고정비를 뛰어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다만 고정비가 별로 없는 사업 모델이더라도 B2B(Business to Business, 기업과 기업 간 거래), B2G(Business to Government, 기업과 정부 간 거래) 모델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사회적경제위원회가 일괄 발의한 사회적경제 관련법에는 공공기관에서 사회적경제 제품을 5% 의무 구매하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어,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는 협동조합은 더 늘어나지 않을까 예상해봅니다. 보통 B2B나 B2G는 경쟁 입찰을 통해 진행되므로 제안서를 준비하고 PT에 참가해 일을 따냅니다. 그전에 업무능력을 쌓아야 하는 시간까지 필요하다면 실제 사업을 낙찰받기까지도 길지만, 실제 사업종료 후 자본이 회수되는 기간은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기업보다 훨씬 느립니다.

대기업을 상대로 거래가 발생할 경우 비용은 계속 나가고 있지만 수익은 어음일 뿐 바로 현금화가 불가능합니다. 입찰 후 최소 6개월 이상을 버틸 수 있는 운전자금이 마련되어야 새로운 일을 하는 데서 오는 불안감도 덜고 불안감에 계획에 없던 무리한 일을 벌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돈을 주는 사람들도 늦게 줄수록 현금 흐름이 원활하니, 결국 그들도 이러한 생리를 잘 따르는 것일 뿐 그들을 마냥 비난할 수도 없습니다.

일단 협동조합의 현금 흐름을 고려해 자본 조달 계획을 짜보면서 6개월을 기준으로 조달 가능한 자본을 조성하고 현금 흐름이 늦은 모델이라면, 그 기간을 더 길게 잡는 게 좋습니다. 그럼에도 방법이 잘 보이지 않으면 그때 정부의 자금지원 제도를 찾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특히 협동조합은 전통적으로 작게 시작해서 점차 사업의 성취와 함께 출자금과 적립금이 축적되는 형태를 취하기 때문에 초기 출자금만으로 사업자금을 충당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사회적협동조합도 중소기업 자금지원을 적용받는다

올해 4월부터는 사회적협동조합도 중소기업에 포함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돼 각종 중소기업 지원정책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발간한 '협동조합 정책 활용 매뉴얼'을 보면 16개 기관이 운용하는 자금지원정책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정부 자금지원사업이 보통 저리인 데다 다양한 창업 상담과도 연결되어 있으니, 활용한다면 유용한 제도입니다. 특히 협동조합으로 하려는 사업이 지식기반 서비스·기술기반·청년들이 주도하는 사업이라면, 정부의 전략사업과도 일치되므로 활용이 보다 용이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준비하려는 사업계획 속에서 자금조달정책을 활용하는 것이지, 무조건적으로 외부 지원에 의존하다가는 자생력을 잃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적지 않은 기업이 어쩔 수 없이 정부 용역에 손을 댔다가 정작 상품 개발에는 소홀해져 정부 자금 아니고서는 생존이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정부의 자금지원사업은 상품과 서비스를 고도화하기 위한 도구로써 활용해야 합니다. 지나치게 의존하면 협동조합의 자생력뿐만 아니라 조합원의 필요를 해소하는 협동조합의 본질에서 점차 멀어질 수 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협동조합이 실패율이 높은데, 그 원인 중 하나를 협동조합 투자제도(Cooperative InvestmentScheme) 지원금에 의존해 자생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참고해볼 만합니다.


아낄 수 있는 것은 최대로 아낀다

자본 조달로 대출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면, 그전에 아끼고 아끼는 게 먼저입니다. 요즘은 공동 사무실도 보편화되고 오픈 소스로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최근 어떤 기업은 비용 절감을 위해 대학가 근처로 자리를 잡았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밥값도 싸고 하다못해 학교에서 인쇄하면 거의 무료로 사용할 수 있으니까요. 초기 운전자금에 가장 큰 부담이 되는 것은 아무래도 사무실 임차료입니다. 앞으로 사업이 잘돼도 이사할 것이고 안 되도 이사할 것이니, 처음부터 무리해 사무실을 구하기보다 일단 집에서 시작하거나 공동임대 형식의 사무실, 아니면 다른 협동조합 연합회나 사회적경제 기관들의 입주 공간을 활용하면 비용을 아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작은 사무실이어도 비품비는 들기 마련이고 하물며 물 먹을 정수기도 필요합니다. 다른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경제 기관들과 함께 쓸 수 있다면 비용 절감도 용이하고 서로 간의 정보 공유와 연대로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임차료 다음으로 많이 드는 비용은 인건비입니다. 인건비는 높은 고정비의 원인이므로, 채용에 신중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사람을 정말 뽑아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뽑아야 하고 또 4대보험에도 가입해야 합니다. 4대보험 가입을 지연하거나 가입하지 않는다면, 법을 준수하지 못해서 생기는 불이익뿐만 아니라 정작 필요할 때 활용할 수 있는 제도들을 놓칠 수 있습니다.

서울시에서는 상시근로자 3인 이상인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청년혁신활동가라는 제도도 있고, 고용노동부가 지원하는 인턴채용 비용보조는 모두 고용보험 가입 기업에만 해당되므로, 4대보험 가입을 무조건 피하는 게 능사는 아닙니다. 나라장터에서 공고되는 용역사업에도 상시근로자 몇 명 이상의 기업으로 제한한 사업도 적지 않습니다.

이 밖에도 오픈 소스를 이용한 홍보 채널을 직접 만들어보거나 페이스북을 이용한 광고도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초기 단계부터 값비싼 홈페이지를 만들기보다 무료로 만들 수 있는 페이지를 이용하는 게 합리적입니다.

자본 조달의 시작은 협동조합의 출자금

협동조합의 자기자본은 출자금입니다. 결국 정부의 지원과 대출 이전에 협동조합이 충당해야 하는 자금은 출자금입니다. 하지만 아직 실현되지 않은 사업, 우리 눈앞에 볼 수 없는 사업에 확신을 하고 출자하는 조합원이 얼마나 될까요? 소비자라면 그냥 시중 마트에서 구매해도 될 텐데 출자하는 것은 그 자체로 번거로움이자 불편함입니다.

노동자도 사용자와 근로계약을 맺고 피고용인으로 일하면 사업이 망해도 급여를 보장받지만, 노동자 조합원은 출자금을 손실할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특히 노동자협동조합은 회사가 망하면 출자금을 잃을 뿐만 아니라, 일자리도 잃는 이중 위험이 있어 출자에 더욱 소극적입니다. 그래서 조합원의 필요와 결의가 중요합니다. 그런 불편함과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조합원이 되어 기꺼이 출자를 하는 동기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강력한 필요입니다. '이것 아니면 안 되겠다', '내가 출자를 해서라도 만들어야겠다' 그런 필요 없이는 협동조합 비즈니스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공통의 필요가 교육과 훈련을 통과하면 시스템과 거버넌스 구조를 갖추면서 민주적인 사업체로서 성격이 분명해집니다.

필레네 연구소에서 나온 '협동조합 자본현황조사'를 보면, 신생협동조합은 출자금을 가지고 운전자금으로 사용하기보다는 고정자산을 확보하는데 사용하거나 교육과 훈련비용으로 사용할 것을 권고합니다. 출자금을 비용으로 지출하기보다 자산으로 남기는 것이 안정적이라는 것인데, 교육과 훈련을 지출이 아니라 자산적 투자로 보고 있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그만큼 협동조합에서는 교육과 훈련이 중요합니다.

협동조합의 자본 조달은 출자로부터 충당되기도 하지만 조합의 적립금으로부터 충당하기도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업이 꾸준한 성과를 내야 합니다. 소비자가 어떤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하기 위해 의사결정을 내렸다는 건 그것이 고객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일정 부분 해결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감언이설로도 팔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협동조합은 선의에 기대는 사회단체와 다릅니다. 협동조합은 경쟁력 있는 상품과 서비스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합니다. 그 상품과 서비스가 어떤 중요한 문제를 해소 할 수 있어야 매출이 발생하고 조합원이 가입하며 적립금으로 자본을 축적할 수 있습니다.

미국 노동자협동조합 중 7번째로 규모가 큰 '이퀄 익스체인지(Equal Exchange)'는 제3세계에서 커피와 바나나 등 공정무역 원부자재를 수매하고 농지를 확보하기 위해 상당히 많은 사업자금이 필요해 다양한 자본 조달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이들은 노동자 조합원에게 배당하는 금액의 50%를 공동 계정에 적립해 이에 대한 이자만 조합원에게 지급하고 그 자금을 협동조합의 자본으로 적립합니다. 조합원이 주인이라는 자기 책임성과 결의를 높이는 동시에 배당을 통해 지급되는 현금 유출을 줄여 사업자금으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아직 국내에서는 조합원으로부터 차입금을 받는 것도 여러 구설수에 휘말릴 만큼 자본 조달에 상당한 제한을 받고 있습니다.

유럽의 협동조합이 은행을 설립해 다양한 대출과 지원사업을 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한국에서는 협동조합이 금융사업을 하는 것 자체도 법률로 막혀 있습니다. 조합원으로부터 출자금을 모을 수 있는 협동조합의 노력과 함께 제도로서도 협동조합 은행, 금융지원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사업자금을 모을 수 있는 길이 하루빨리 필요합니다.

우리는 왜 산꼭대기로 바위를 옮기려고 하는 걸까

계획에 필요한 사업자금은 출자금으로 충당해야 하며, 그럼에도 부족한 초기 자산투자비나 운전자금은 다양한 지원제도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지원제도의 대부분이 금융대출인 점을 고려할 때 초기 단계에서는 아끼고 아끼는 절약도 고려야 할 중요한 자본 조달 방법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로 이번 글을 마칠까 합니다. 신의 노여움을 산 시지포스는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벌을 받습니다. 그 바위는 정상 근처에 다다르면 다시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다시 시지포스는 그 바위를 정상에 올리는 일을 반복합니다. 멀리서 보면 떨어질 바위를 미련하게 옮기는 이 형벌의 가혹함이 눈에 들어오지만, 알베르 카뮈는 시지포스가 진정으로 위대한 인간인 까닭은 다시 굴러떨어질 것임을 알면서도 부질없어 보이는 이 일을 수백, 수천, 수만 번 밀어 올리는 행위에 있다고 했습니다. 능동적으로 운명을 극복하려는 인간, 비록 그 일이 별로 볼 일 없어 보이더라도 스스로 자신에게 그 일의 의미를 부여하며 밀고 나가는 인간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인간이 아니겠느냐는 말입니다.

시지포스의 관점으로 산비탈에 서면 세계는 달리 보입니다. 우리가 올라가야 할 산이 앞으로 있을 여러 개의 산 중 하나에 불과할지도 모르고, 힘들게 올린 바위가 다시 굴러떨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바위를 밀어 올립니다. 자본기업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경제 환경에서 협동조합이라는 낯선 조직을 선택해 어렵게 사업을 이어가고 있는 협동조합을 보면서 시지포스의 위대함을 떠올립니다. 우리의 삶은 다시 굴러떨어질 바위를 밀어 올리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왜 그 행위를 하는지를 통해 위대함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 어렵고 힘든, 산꼭대기로 바위를 옮기는 일에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를 물으며 이번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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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협평론

계간지 <생협평론>은 (재)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가 펴내는, 협동조합을 다루는 본격적인 전문잡지로서 협동경제·나눔·평화에 대한 의견들이 교환되는 공간입니다. 정보지이자 실천적 교육서로서 협동조합 활동가뿐 아니라 협동조합에 관심 있는 모든 이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전달하고, 협동조합을 둘러싼 다양한 사회·경제·문화적 이슈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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