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이 '조건부 사드 배치'에 반대한 진짜 이유는?

[정욱식 칼럼] 朴 대통령 '푸시오' 정상 회담이 남긴 것

박근혜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연이어 만났다. 외국 정상들 성의 첫 자를 따면 '푸시오'가 되는 셈이다. 핵심 의제는 북핵과 사드였다. 늘 그랬듯이 정부는 북핵 공조를 강화하고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문제를 둘러싼 소통 기회를 마련했다며 자화자찬한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결코 녹록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9월 3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푸틴 대통령과 정상 회담을 연 뒤 공동 기자 회견에서 북핵은 "우리에게는 삶과 죽음의 문제"라며 사드 배치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푸틴은 "북한의 자칭 핵 보유국 지위를 용인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만 되풀이했을 뿐 사드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정상 회담에 앞서 "현재 놓인 상황을 협상의 길로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긴장감을 도발하는 모든 행동들은 문제 해결에 역효과를 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협상은 거부하면서 사드를 배치하려는 한국과 미국 정부를 에둘러 비판한 것이다.

이틀 후에 항저우(杭州)에서 열린 한중 정상 회담에서 사드 이견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다. 박 대통령은 "사드는 오직 북핵과 미사일 대응 수단으로 배치돼 사용될 것이기 때문에 제3국의 안보 이익을 침해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며, "더욱이 북핵·미사일 문제가 해결되면 사드는 더 이상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중국의 입장은 완강했다. 시진핑은 "우리는 미국이 한국에 배치하는 사드 시스템에 반대한다"며 "상대국의 핵심 이익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틀 전에 열린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 회담에서도 "중국은 미국이 사드 시스템을 한국에 배치하는 데 반대한다"며 "미국 측에 중국의 전략적 안보 이익을 실질적으로 존중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힌 바 있다.

▲ 5일(현지 시각) G20 정상 회의 참석차 중국 항저우에 방문한 박근혜(왼쪽)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양자 정상 회담을 가졌다. 사진은 회담 전 악수하고 있는 양국 정상. ⓒAP=연합뉴스

시진핑의 발언에서 주목할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미국이 한국에 배치하는"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사드는 본질적으로 미-중 간의 문제라는 인식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핵심 이익"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결코 이 문제와 관련해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고도로 연결된 것이다. 사드 배치는 미-중 간의 "전략적 안보 이익"에 영향을 미치는 중차대한 문제인데, 한국이 미국편에 섬으로써 중국의 "핵심 이익"을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진핑의 발언은 "이 문제(사드 배치)를 부적절하게 처리하는 것은 지역의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고 분쟁을 격화할 수 있다"는 경고성 발언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그가 말한 '지역 분쟁 격화'는 한반도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중국은 사드를 비롯한 미국 주도의 미사일 방어 체제(MD)가 강화될수록 자신의 대미 억제력이 약화된다고 여긴다. 이는 곧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일본의 군사적 모험주의,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길 꺼려하는 대만의 민진당 정권의 독립 움직임을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방어력이 강화될수록 최강의 공격 능력을 갖춘 미국의 '지역 분쟁' 개입은 수월해질 수 있고, 이를 믿고 역내 일부 국가들이 중국에 대담한 행보를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중국이 사드를 반대하는 핵심적인 이유인 것이다.

한 발 더 깊게 들어가면 이렇다. 중국이 대만 해협 사태나 동중국해에서 일본과의 군사 충돌 시 미국의 군사적 개입을 억제하기 위해 만든 것이 바로 '항공모함 킬러'로 불리는 둥펑-21D 탄도 미사일이다. 그런데 한국에 사드와 함께 X-밴드 레이더가 배치되면, 미국은 중국 동북부에서 발사되는 둥펑-21D를 조기에 탐지․추적할 수 있다.

한국 배치 레이더는 일본 교토에 배치된 X-밴드 레이더나 유사시 동중국해나 대만해협에 투입될 이지스함에 장착된 SPY-1D 레이더보다 둥펑-21D를 3~5분 정도 빠르고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정보는 실시간으로 지휘 통제 전투 관리 통신(C2BMC)을 거쳐 항공모함을 호위하는 이지스함에 전달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정보를 받은 이지스함은 SPY-1D 레이더로 계속 탐지하면서 SM-3를 발사해 둥펑-21D 요격을 시도할 수 있게 된다.

미사일 요격은 기본적으로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점에서 '지역 분쟁 발생 시' 미-중 간의 군사적 유불리가 확연히 갈릴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이 "핵심 이익" 운운하면서 사드 결사 반대를 외치고 있는 본질적인 이유도 바로 이 지점에서 찾을 수 있다.

아마도 시진핑은 오바마와의 4시간 동안의 정상 회담에서 이러한 점들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사드 배치 결정 철회를 요구했을 것이다. 주목할 점은 오바마가 미-중 정상 회담에서 사드와 관련해 어떤 입장을 피력했는지 공개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박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은 6일 라오스에서 정상 회담을 갖고 "사드 배치를 포함한 연합 방위력 증강 및 확장 억제를 통해 강력한 억지력을 유지해 나가기로 했다." 일단 중국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이 웨이'를 선언한 셈이다.

정리하자면, 박 대통령의 '푸시오' 정상 회담은 한미 관계의 돈독함은 확인한 반면에, 중국 및 러시아와의 갈등 해결에는 실패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이 1990년대에 이어 또다시 대도약을 도모할 수 있는 '북방 정책'이 사드 장벽에 가로막힐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