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정부가 발표한 에너지 공기업 '기능 조정' 방안을 두고 한 쪽에서는 민영화라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아니라고 한다. 기획재정부 관료는 '발전 5개사 및 한국수력원자력 주식 20~30%를 상장한다는 것은 민영화냐 아니냐'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나머지 전부를 공기업 한전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민영화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달리 생각한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중단된 '전력 산업 구조 개편'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되던 민영화 정책을 '기능 조정'이라는 이름으로 바꿔 재가동되는 것이라고 판단한다. 2000년대 진행되어온 철도, 통신, 전력, 보건의료 등의 민영화 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비판 의식이 부쩍 성장한 탓에, 정부가 다른 이름을 붙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2000년 초반 정부는 한국전력공사를 발전, 송전, 배전·판매 부문으로 분할하고 매각하려는 계획을 밀어붙이다가, 노조 등의 강력한 저항으로 어정쩡한 상태로 중단했다. 한전으로부터 발전 부문만 발전 5개사와 한국수력원자력으로 분할되어 한전의 자회사가 되었다. 이 중에서 남동발전을 첫 번째로 매각하려다가 실패하면서 현 상황을 유지하게 되었다.
또 배전 부문도 몇 개의 권역별로 분할하여 민영화하면서 경쟁 체제를 구축할 예정이었지만, 노조의 저항과 노사정위원회의 중재로 분할 계획은 중단되었다. 이에 따라서 발전 부문만 한전의 수직 통합 체제로부터 떨어져 나가서, 6개의 한전 자회사와 소수의 거대 민간 발전 사업자가 경쟁하는 현황이 굳어졌다.
정부, 중단된 에너지 민영화 정책을 다시 꺼내들다
그런데 10여 년 만에 정부가 낡은 민영화 계획을 다시 꺼내든 것이다. 발전사들의 주식 일부를 상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전력 판매 시장도 개방하여 민간 사업자들이 진입하도록 경쟁 체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본격적이고 전면적인 민영화 계획은 아닐지라도 현재 체제를 민영화로 가는 미끄럼틀로 한 걸음 더 옮겨 놓으려는 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정부의 구상은 경쟁은 언제나 좋으며 민간(자본) 부문이 할 수 있는 것은 공공 부문에 맡겨 두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에 기반하고 있다. 정부 보도 자료에 따르면, 한전 발전 자회사의 상장은 "경영 투명성과 자율 감시 감독(을) 강화"하고 "시장 자금 유입으로 자본이 확대되어 재무 구조도 개선"할 것이다. 또 전력 소매 부문의 경쟁 도입은 "원가 절감 등 효율성 제고 및 사회적 편익 증대, 다수의 민간 사업자 참여로 소비자 선택권 보장, 신규 서비스 창출" 등의 효과를 낳을 것이다.
그러나 민영화된 전력 산업과 규제 완화가 이루어진 많은 국가들에서 민간 기업이 어떻게 이윤 추구를 위해서 시장 조작도 마다하지 않았는지, 또 그 결과 전기 요금의 폭등과 대규모 정전 사태를 초래해 왔는지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특히 2000~2001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경험이 그렇다. 뿐만 아니라 민간 기업은 값싼(것으로 착각되는) 석탄과 핵 발전에 매달리면서 재생 가능 에너지 확대 노력도 게을리 해왔으며, 민간 기업과 공공 기업들 사이의 경영 효율성에도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에너지 전환에서 민간 기업이 뒤떨어져 있는 독일의 경험이 그렇다.
전 세계, 에너지 민영화 바람이 잦아들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전력) 민영화 바람은 잦아들고 있으며, 많은 나라에서 에너지(전력) 산업이 재국유화 혹은 재지역화되는 역전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영국 그린위치 대학교에 자리한 공공서비스국제연구단(Public Services International Research Unit, PSIRU)에 의하면 2000년대 중반부터 2013년까지 아르헨티나, 벨리즈, 볼리비아, 브라질, 도미니카공화국, 이집트, 핀란드, 일본, 리투아니아, 베네수엘라 등에서 민영화된 전력 산업에서 재국유화 흐름이 발견된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핵사고의 처리를 위해서 도쿄전력(TEPCO)을 국유화한 것은 예외적인 사례일지 모른다. 그러나 2012년 설비 투자를 하지 않아서 전력난과 도-농 간 전기 요금 불평등을 겪고 왔던 볼리비아가 전력 산업의 국유화에 나섰으며, 투자 부족으로 잦은 정전을 겪고 있는 아르헨티나 정부도 국유화를 경고하고 있다. 전력 산업 민영화의 진원지가 되었던 남미에서부터 역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 PSIRU은 독일의 재지역화(remunicipalization) 흐름도 강조하고 있다. 1990년대 전력 산업의 자유화 결과, BWE 등의 4개 거대 기업(빅 4)에 의해서 독과점된 독일 전력 시장은 민영화된 전력 산업을 가진 국가들이 경험한 폐해를 모두 드러냈다. 전기 요금 인상, 정전 등 서비스 질 저하, 재생 가능 에너지 확대 외면 등이 나타났다.
이에 따라서 각 지역 시민은 지방 정부가 발전·배전 사업 운영권을 민간 기업으로부터 거둬들여서 지역 에너지 공기업(stadtwerke)에 맡기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 결과 2005~2013년까지 72개의 새로운 지역 에너지 공기업이 설립되었으며, 2007~2012년까지 배전 운영권을 지방 정부가 되찾은 사례는 192개나 되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3년 주민 투표를 통해서 배전망 운영권을 되찾은, 독일에서 두 번째 큰 도시인 함부르크다.
2010년에는 노스트 베스트팔렌 주의 두 개 지방 정부(commune)가 연합해서 독일에서 다섯 번째로 큰 에너지 생산 기업인 Evonik-Steag를 인수했다. 2013년 현재 지역 에너지 공기업이 발전 시장의 10%, 배전 시장의 대부분 그리고 판매 시장의 40%를 점유하고 있어서, 독일 전력 시장에서 지역화된 공공 부문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에너지 민영화 도전, 노동 운동과 시민 운동의 연대는 탄탄한가
정부가 다시 꺼내든 에너지 민영화 정책이 저강도로 추진되고 있는 탓이기도 하지만, 지난 2000년대 초 민영화 반대를 위해서 격렬히 투쟁해왔던 전력 부문 노동조합의 대응은 아직까지 조용하다. 노동조합이 '성과 연봉제'와 같은 노동 조건 악화 문제에 대응하느라 이에 적극적으로 맞서고 있지 못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다만 최근 배전 부문 민간 개방과 관련하여, 전력노조(전국전력노동조합)가 12월 총파업을 결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물론 민영화는 업무의 외주화 등으로 공기업을 안으로부터 허물어 약화시키는 방식으로도 추진되기 때문에, 전력 부문 노동조합의 성과 연봉제 반대 투쟁이 에너지 민영화 반대 투쟁과 전혀 별개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꺼내든 민영화 정책에 대응하기 위한 준비, 특히 연대 노력이 부족하다는 반성이 노동조합으로부터도 나오고 있다.
에너지 민영화 문제에 대해서 토론한 <매일노동뉴스> 좌담회에서 신현규 전력노조연대회의 의장(발전노조 위원장)은 "(노조가 공공성을 대표하는 화신이 되어야 한다는) 과제를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솔직히 고백한다. 반성하면서 고민하겠다"고 이야기했다. 또 에너지 부문 노조와 환경 단체의 연대체인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의 이종훈 공동대표도 "연대 전략은 10년 넘게 고민해온 숙제다. 노조 간 연대도 잘 안 됐고, 시민·사회단체와의 연대 부문에서도 반성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2000년대 초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의 결성은 에너지 민영화 반대 투쟁 국면에서 시민 사회 일각에서 핵 발전에 대한 입장 차이 등으로부터 민영화에 지지하는 입장이 나왔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노조와 시민 사회 사이에 대화와 연대를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를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다시 밀려오는 민영화 도전 앞에서 노동 운동과 시민 운동 사이의 연대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우려가 된다.
후쿠시마 핵 사고 이후 활성화된 탈핵·에너지 전환 운동의 흐름 속에서, 밀양과 청도, 삼척과 영덕 등에서 주민들이 초고압 송전탑과 신규 핵발전소 부지를 두고 에너지 민주주의를 위해 격렬히 싸웠다. 그러나 그 때 에너지 부문 노동조합과 지역 주민 그리고 에너지 운동 사이에 어떤 대화와 연대가 있었는지 알기 힘들다. 밀양 할매 입에서 절규처럼 나오는 "한전 놈의 새끼"외에는.
에너지 공공성과 에너지 민주주의를 위해 연대하자
여기에서 '에너지 민주주의를 위한 노동조합(TUED)'의 코디네이터로 활동하는 숀 스위니 뉴욕시립대학교 교수의 이야기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작년(2015년) 10월 국회에서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사회공공연구원·공공운수노조 주관으로 열린 '에너지 산업 공공성 회복을 위한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었다.
숀 스위니 교수는 에너지 민영화 저지 투쟁을 위해서 재생 가능 에너지로의 확대·전환 이슈를 연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의 구준모 집행위원과 가진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민영화 저지 투쟁에 환경 이슈를 포함시키면 우리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오늘보다>, 2014/11 창간준비1호)
반대로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서도, "민주적인 통제와 공공이 소유, 관리하는 에너지 생산으로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한겨레> 2015년 11월 2일)고 주장했다.
재생 가능 에너지 확대, 신규 핵·석탄 발전소 반대를 함께 요구해야
여러 번 지적해온 것이지만, 한국의 에너지 부문 노동조합의 '공공성'은 왜소하다. 저렴하고 보편적이며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라는 개발주의 시대의 '공공성'에 매달려 있다. 기후 변화, 핵 위험, 에너지 정의, 에너지 민주주의와 같은 의제들을 포괄하고 재구성하는 에너지 공공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인식은 안일하다. 에너지 민영화 방침 보도에 "국민 여론, 분위기 좋다"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정부에 대한 비판과 반대일지는 몰라도, 노동조합에 대한 지지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탈핵·에너지 전환 운동 진영은 재생 가능 에너지 확대와 신규 핵·석탄 발전소·초고압 송전탑 반대 운동을 위해서 나서고 있다. 국회에서는 소규모 재생 에너지 사업자에 대한 발전차액지원(FIT) 제도 재도입을 위한 법안이 발의되었으며, 이를 위한 서명 운동도 진행 중이다. 또 전력 수요가 늘지 않는 상황에서 신규 핵·석탄 발전소를 건설하려는 정부 계획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려는 요구도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작년 말부터 올해 늦봄까지 겪었던 미세 먼지 문제로 시민들에게 석탄 발전소 증설 계획에 대한 회의가 폭넓게 확산되고 있다. 시민들은 이런 문제에 직면하면서 스스로 에너지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에너지 자립 마을을 만들기 위해서 뛰고 있다. 시민들의 에너지 문제에 대한 관심이 어디로 흐르고 있는지 주위 깊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제 에너지 민영화 반대 투쟁의 연대를 위해서 노동조합과 시민 사회가 만나야 한다. 그리고 그 연대는 개발주의 시대의 공공성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기후 변화와 에너지 전환 시대에 맞게 재구성된 공공성을 향해 있어야 한다. 공공 부문에 대한 기대와 신뢰를 되살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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